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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08 11:45:55
Name 이니그마
Subject [일반] 아내의 생일
아내는 음력으로 생일을 센다.
직업상 아이들 겨울방학은 나름의 대목이기에 신경쓸게 많은데 한가지에 몰두하면 다른것이 잘 눈에 안들어오는 성격을 가진 나에겐 음력 1월초중순인 아내의 생일은 학생들 방학과 겹쳐 떠올리기가 쉽지않다.

그나마 요샌 스마트기기들이 지인들의 대소사를 알려주기에 망정이지 그거라도 없었으면 매년 연초에 그 '이해하지만 원망한다'의 eye beam을 어찌 감당했을까.

바쁜 나날이 끝나고 비수기에 접어든 양의 해 3월초 어느날 아침. 그동안 접어뒀던 게임이나 할까하고 이불속에서 폰을 가로보기로 집어든순간 당일이 D데이임을 인지한다.  유부남 경력 9년차의 감이 위험을 알린다.

마침 아내는 애기유치원 통학때문에 출타중. 계획을 짜야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양 기승전결을 창조해야만한다. 설겆이와 청소기는 기본사양. 울집 꼬맹이의 카레사랑을 증명하는 그릇들을 보고 한숨쉴 겨를도 없다.

장기간 문화생활과 담쌓고 살았기에 요새 하는 콘서트 연극영화 아무것도 모른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요새 즐길만한 컨텐츠를 묻는다. 다들 출근해서 바쁜지 답이 없어 초조해하는 중에 한녀석이 간결하게 '영화 위플래시' 라 보내온다. 미친 드러머란다.

아이템은 입수했다. 다음은 장모님께 도움을 청할 차례 "아내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는 인사와 미역국 끓이기 레시피를 여쭌다. 한참 대화가 오가고 어렵사리 저녁에 오셔서 애기를 하루 봐주십사하는 본론을 꺼내고 승인받는다.

평일심야영화라 예매할 필요는 없고. 영화평이나 보자고 폰을 잡는순간 냄비에서 뒤틀린 황천의 구울마냥 미역이 기어나오는게 보인다. 말린 미역의 압축력을 구현하면 최고의 압축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을까?

오랜만에 둘이서 외출하는 저녁. 비싼거 먹지말고 대신 있다가 영화볼때 먹고싶은 팝콘이 있다길래 이제 이사람도 아줌마구나 싶어 마음 한켠이 짠했는데..
가렛팝콘. 금가루같은걸 끼얹나? 1갤런 큰통하나 샀더니 5만원을 넘는다. 컬처쇼크.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간 영화관.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며 보는 위플래시 광고현수막에 수상한 글자가 보인다. 3/12 개봉.
맙소사. 아직 개봉까지 며칠 남았다. 친구놈이 시사회도 자주다니는걸 깜빡한 내 실수.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던 미역을 탓해 뭐하랴.

뭔가 나사하나 빠질걸 예상이나 한듯 마님은 관대하게 킹스맨도 재밌다더라고 말씀하셨고 아무런 예비지식없이 15분뒤 시작하는 영화관으로 입장했다. 킹스맨? 서양판 왕의남잔가?

러브액추얼리의 콜린퍼스가 절정의 중년신사가 되었군. 전에 하던 게임에서는 아서가 백만명이고 갤러헤드가 여자였지하는 잡생각은 잠시.

아아 마에스트로 엘가.
그대의 위풍당당 서곡은 이제 폭죽 광시곡정도로 이름을 변경해야할듯합니다.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는 지난주 의뢰받은 결혼식 반주에서 신랑입장곡으로 위풍당당을 연주했는데 왜 몇몇 사람이 웃었는지알겠다며 패닉에 빠졌고. 영화 끝난후 고대앞 멸치국수 먹으러가면서 계속 같은 얘기를 반복. 다행이다. 웃는걸 보니 즐거웠나보다.

새벽에 귀가했더니 아이가 문소리에 깨어버렸다. 일상으로의 복귀. 그래도 애 안고 도닥이는 아내의 표정이 피곤하지만은 않아보인다. 임무완료. 올해도 무사히.

다음날 아침에 장모님 포함 가족전체가 숙면하느라 애기 유치원 못보낸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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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글링아빠
15/03/08 11:51
수정 아이콘
흐흐흐 글은 너무 재미진데 왜 눈에선 눙무리... ㅠ_ㅠ
이니그마
15/03/08 11:57
수정 아이콘
같은 처지가 아니실지 생각해봅니다 ㅠㅡㅜ
작은 아무무
15/03/08 12:09
수정 아이콘
위플래시에서 불길한 느낌이 전해져 왔습니다..크크
이 영화가 개봉했을 리가 없는데 심히 당황하셨겠군요..마치 준비 안 해놨다는 걸 들킨 느낌?
이니그마
15/03/08 12:15
수정 아이콘
마님의 관대함에 황송할 따름이지요 ㅠㅡㅜ
15/03/08 12:24
수정 아이콘
킹스맨이 재미있었던 것이 다행이군요 크크...
이니그마
15/03/08 12:28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취향은 아닌데 사실 영화내내 긴장제법하면서 봤습니다. 수작이더군요 흐흐
에리x미오x히타기
15/03/08 12:29
수정 아이콘
갤러해드~~에서, '갤러해드가 여자가 아니라고..?'라고 생각했던.. 반성합니다.
이니그마
15/03/08 12:41
수정 아이콘
아사님이신가보군요. 브리튼은 평안한가요 흐흐
에리x미오x히타기
15/03/08 14:06
수정 아이콘
섬에 잠든지 두 시즌(?)째입니다. 크크
코카스
15/03/09 11:23
수정 아이콘
https://twitter.com/cocaas/status/574567912691777536
그래요. 분명 저만 이 생각 하는 거 아닐 줄 알았어요!
종이사진
15/03/08 12:42
수정 아이콘
미션 임파시블을 방불케하네요...크크

저도 아내의 생일이 1월 초순입니다.
보스가 자신이 소유한 4성급 호텔의 스위트 룸을 공짜로 내주더군요.
남편 잘 둔 덕에 호텔에서 생일을 보낸다며 주변에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하지만 내년에도 아내의 생일은 돌아오는 거죠.
큰일입니다. 전작보다 못한 후속편은 늘 비난에 시달리니까요.
이니그마
15/03/08 12:51
수정 아이콘
와 스위트룸 부럽습니다!!
전작보다 못한 후속편은 정말 조심해야죠.
그나마 애기키우다 둘다 건망증이 커져서 작년엔 뭐했는지 기억을 잘 못하는게 불행중 다행이랄까요 흐흐
tannenbaum
15/03/08 12:50
수정 아이콘
잠시만요 팝콘 1갤런에 5만원이 넘어요?????
아무리 시카고 명물이라지만
이니그마
15/03/08 12:52
수정 아이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그렇더군요 ㅠㅡㅜ
너무 비싸요~
이니그마
15/03/08 21:53
수정 아이콘
윽 아내가 그때 산건 2갤런이라네요;;
잘못된 정보 죄송합니다....
외계인
15/03/08 13:10
수정 아이콘
갤러해드는 당연히 여자 아닙니꽈!
별이 다섯개!
이니그마
15/03/08 13:15
수정 아이콘
요샌 8성도 있다죠? 브리튼은 무서운 동네입니다 흐흐
15/03/08 15:33
수정 아이콘
역시 사람은 임기응변에 능해야 그만 아닙니까?! 아무튼 잘 헤쳐나가셨군요 흐흐

아서가 백만명이 아니라, 최근에 천만명 늘었다던데 말입니다...
이니그마
15/03/08 15:41
수정 아이콘
그동네 명줄도 질기구만;;;
15/03/08 15:52
수정 아이콘
그거 말고 옆동네에서 천만 아서가 나왔습니다.

어차피 그동네는 이제 안녕히가세요죠.. 크크
마스터충달
15/03/08 15:46
수정 아이콘
킹스맨이 살린 유부남.txt
역시 싫어할리가 없죠 흐흐
이니그마
15/03/08 15:49
수정 아이콘
제목 좋군요 흐흐
재미있게 보고왔습니다~
예원아빠
15/03/08 15:50
수정 아이콘
생일은 서로 스킵하는게 유행아닌가요? 결혼 8년차동안 서로 생일에 뭐사주고 외출한 기억이 없네요. 아 행복한 삶이어라...
이니그마
15/03/08 15:57
수정 아이콘
그 유행 저도 타보고싶습셒습..
기아트윈스
15/03/08 18:04
수정 아이콘
고대앞 멸치국수 먹고싶네요. 인근 벽산에서 산 적이 있어서 자주 갔었지요.
쿠이도라쿠는 아직 잘 있는지 몰라요 ㅠㅠ
이니그마
15/03/08 21:43
수정 아이콘
휘모리밖에 기억안나는 학번이라 쿠이도라쿠를 잘 모르겠네요 ;;;
베요네타
15/03/08 20:33
수정 아이콘
아내가 뭐예요?
이니그마
15/03/08 21:45
수정 아이콘
여친에서 강화를 시도하면 낮은 확률로 드랍되는 개체입니다. 무리하게 시도하면 파괴될 수 있습니다. 한번 강화되면 다운그레이드가 쉽지 않으니 신중하게 판단하세요(...)
작은마음
15/03/09 15:00
수정 아이콘
여친은 어디서 구하나요??? ㅠ.ㅠ
마이러버찐
15/03/08 20:54
수정 아이콘
캬 ~ 추천추천 글 너무 잘쓰시네요 ^^
이니그마
15/03/08 21:4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ㅠㅡㅜ
한달살이
15/03/09 15:18
수정 아이콘
많이 보던 아이디이긴 한데.. 누구셨더라.. 하다가..
댓글에서 백만아서 얘기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전 체력의 한계로 아서와 담쌓은지 좀 되긴 했지만..

아내와의 기념일에 대한 그런 스릴.. 겪어본 분만이 아시죠..
결혼 13년차에.. 딱 한번 제대로 놓치고 넘어갔다가.. 멘탈 찢어지는줄 알았습니다.
ㅠㅠ 어찌나 미안하든지..
'제부 그러는거 아니야.. 오늘 무슨날인지 모르지? 우리집에 있으니까.. 와서 데려가..' 라는 처형의 전화에 온몸에서 식은땀이..;;
왜 생일을 음력으로 따지는건지.. (스마트폰 좋은겁니다!!)

행복하셔요.
이니그마
15/03/09 20:28
수정 아이콘
생각만해도 소름끼치는 상황이군요 ㅠㅡㅜ

진짜 남자로서 자기동굴안 상황만은 자기편을 만들어야하지요.
그게 안되면 만사무소용.
참 피곤하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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