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6일 69세의 한 남성이 인도 뭄바이에 있는 고급 호텔인 타지마할팰리스호텔에 체크인을 합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K. R. Ramamoorthy였으며 뭄바이에는 출장을 온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인생이 곧 엄청나게 바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밤 11시경, Ramamoorthy는 본인이 묵고 있던 객실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걸 듣습니다. 곧이어 그가 묵고 있던 방문을 두드리며 누군가가 룸서비스라고 외칩니다. Ramamoorthy는 결코 룸서비스를 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는 문을 열어주는 대신 화장실로 몸을 피하려고 합니다. 객실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갑자기 객실 문을 통해서 총알 세례가 퍼부어지고 곧 객실 문이 부서지면서 중무장을 한 사람들이 Ramamoorthy의 방 안으로 물밀듯 밀고 들어옵니다. Ramamoorthy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무장한 사람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옷이 다 벗겨지고 결박을 당하게 됩니다.
무장을 한 사람들은 알카에다 조직과 연계된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LeT라는 테러조직의 일원들이었습니다. Ramamoorthy는 재수가 없게도 이날 이 조직이 일으킨 뭄바이 테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로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넌 누구냐? 여기 뭐 하러 왔어?”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고 Ramamoorthy는 잔뜩 겁에 질려 “저는 그냥 평범한 학교 선생입니다. 살려주세요.”라고 애원을 합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인도의 학교 선생이 이런 고급 호텔에 머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객실을 뒤진 테러리스트들은 곧 그의 신분증을 찾아냈고 Ramamoorthy라는 그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당들은 가지고 온 위성 전화로 테러리스트 조직의 본부로 전화를 겁니다.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LeT 조직의 본부에서 전화를 받습니다. 이곳은 마치 군대의 상황실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러 대의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고 각각의 모니터에서는 CNN, BBC, 알자지라, 그리고 지역 인도 TV 방송사의 현장 생방송이 방송되고 있습니다. 본부의 사람들이 현장의 행동대원들이 전해준 Ramamoorthy의 이름을 듣고는 곧바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봅니다. 곧 그의 사진이 화면에 뜨고 그의 직업이 나옵니다. 테러조직 본부 사람들은 곧 Ramamoorthy가 그가 주장하는 대로 죄 없는 일개 인도의 학교 선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놀랍게도 인도 최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ING Vysya의 회장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모니터에 뜬 인물의 사진과 현장 요원들이 잡고 있는 사람이 동일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본부에서 타지마할팰리스호텔의 대원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거기 인질 말이야, 덩치가 좀 큰가?”
“예”
“앞 머리 좀 벗겨지고?”
“예”
“안경 쓰고 있나?”
“예”
사진 속의 인물과 매치가 됩니다. 그의 신원이 호텔을 점령한 테러리스트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이 xx 어떻게 할까요?” 현장의 테러리스트들이 파키스탄의 본부로 해당 인질의 처리 여부를 물어옵니다. 테러리스트들의 상황실에서 최종 명령이 하달됩니다.
“죽여!”
2008년에 벌어진 뭄바이 테러는 여러 가지로 주목할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이때의 테러리스트들은 최신의 정보통신기술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넘어올 때 이들은 모두 야간 투시경을 쓰고 있었고 GPS 기기를 사용해서 뭄바이까지 이동했습니다. 그들은 타지마할팰리스호텔의 층별 안내도가 pdf 파일로 저장된 블랙베리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글어스를 사용해서 테러의 목표물이 되는 건물들의 3-D 모델을 확인하고 최적인 진입 경로와 탈출 경로를 선택합니다. 뭄바이팰리스호텔은 물론이고 뭄바이 내 유대인 거주지역, 도심지의 카페들도 무차별 테러의 목표물로 선정됩니다.
테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현장의 테러리스트들은 위성전화, GSM기기, 스카이프 등을 이용해서 파키스탄의 본부와 실시간으로 테러 활동을 조율합니다. 파키스탄의 본부는 생중계되는 위성방송, 인터넷과 SNS를 이용하여 상황의 진행을 확인하면서 실시간으로 현장 팀들에게 그때 그때의 전략과 지침을 내립니다.
우연히 테러 현장 근처에 있던 한 사람이 경찰 특공대들이 헬리콥터에서 유대인 거주지역에 있는 테러범들이 점령하고 있던 건물 지붕으로 라펠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트위터에 올리자 파키스탄의 통제실에서 즉각 이 사진을 가로채서 현장의 테러리스트 요원들에게 상황을 알려주면서 건물 외벽에 설치된 계단을 따라서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합니다. 건물 지붕에 내려서 테러리스트들을 급습할 생각이었던 경찰 특공대원들은 오히려 이미 이들이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매복해 있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긴급 보도로 생중계를 하면서 BBC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타지마할팰리스호텔 360호와 361호실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고 보도하자 이를 상황실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던 본부에서 즉각 그곳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바로 연락해서 장소를 이동할 것을 지시합니다.
2001년 9/11때만 하더라도 일단 미국으로 입국한 테러리스트들은 그때부터 지도부와의 연락은 제한된 상황에서 현장에서 그들 자신들의 판단과 재량으로 테러 행위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테러리스트 조직의 본부 상황실과 현장의 대원들이 실시간으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그때그때 작전과 행동을 수시로 바꿔가며 가장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방식으로 테러 행위가 벌어지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해킹을 이용한 조직운용자금 마련이나 돈세탁에 이르기까지 테러조직들의 행동방식이나 조직운영방식이 8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큰 변화가 발생한 것이지요. 이제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무심코 매일 찍어서 SNS에 올리는 사진들이나 우리에 대한 개인 정보들이 어느 새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놓이게 되어 생사를 가늠하는 판단의 근거로 사용되게 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기본적인 정보만 주어진다면 컴퓨터 키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나의 모든 정보가 적나라하게 공개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첨단 기술들을 마음껏 사용하는 데 있어서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이러한 기술들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세계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IS같은 경우도 SNS나 게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조직원들을 모집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김군 역시 이러한 경로를 통해서 IS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뭄바이 테러가 진압이 되는 데는 68시간이 걸렸습니다. 단 12명의 테러리스트들이 그 68시간 동안 뭄바이라는 대도시를 마비시키고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이 테러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앞에 언급했던 K. R. Ramamoorthy였습니다. 파키스탄의 조직 본부에서 살해 명령이 내려오고 총구가 자신의 머리를 항해 겨눠지던 바로 그 순간 호텔에 폭발음이 울립니다. 경찰들이 급습하고 있다고 판단한 테러리스트들은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고 기적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는 가까스로 호텔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 Marc Goodman [Future Crimes: Everything Is Connected, Everyone Is Vulnerable and What We Can Do Abou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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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구가 겨눠진 상황에서 다른 큰 상황이 펼쳐지고 목숨을 건지는 건 액션 영화의 흔한 클리셰인데 볼 때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군요. 중국 지하철 역에서 벌어진 무차별 테러도 떠오르고, 일단 계획된 테러를 사전에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테러리스트 집단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설득하면 쉽게 넘어오는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라도 아무한테나 자기 목숨을 맡기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건데 우리나라 독립 운동할 때 테러라는 방식으로 독립 운동 하신 분들도 대개 나이는 젊었지만 그 뒤에 있는 분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전문가들이 버티고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