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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13 01:02
기다리건 정치 관련 능력자 워리어분의 귀환입니다. 환영합니다 :)
일본군이 정신력 정신력 노래를 부르다가 제대로 망했다더니, 물론 가장 극단적인 경우들을 모아오신 것이겠지만, 이건 뭐 적군인데도 안습한 수준이네요. 이승만 초대 내각은 저도 몰랐던 이야기입니다. 확실히.. 처음은 그래도 좀 해보려고 하긴 했었군요. 한민당도 이승만한테 이용만 당했다고 볼 수 있었으니, 이승만 전대통령이 비범하긴 했지요. 근데 잘 나가다가 왜 나중에 그모양 그꼴이... 사람은 역시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인데 말이죠.
09/11/13 01:10
유게에서 몇번 본 기억이 있을 정도로 Bottle신이죠..
뉴라이트들... 일본 가서 일본을 위해 일해주는게 우리를 위한 길인듯..
09/11/13 01:16
OrBef2님// 사실 이때도 친일파를 비호하긴 했습니다. 다만 경찰들에 한한 것이었지요. 이승만 정권에 충성스러운 무력을 담당하는 부분은 군대 보다는 경찰쪽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사실 피부로 가장 드러나는 친일파들이 바로 일제시대 순사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리박사에게 충성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리박사가 철저히 활용했지요. 반민특위가 쓰러진 이유입니다.
09/11/13 01:17
많은 거 배우고 갑니다. 며칠 전에 박정희 친일 관련 글을 적었는데, 이렇게 자세한 자료를 가지고 친절히 글을 적어주셔서 더욱 공부가 됐네요. 이적집단초전박살...이라는 단어에도 공감합니다.
09/11/13 01:28
이적집단초전박살님// 제대로 그 분야를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경찰과 이승만의 유착에 대해서는 들어본 기억이 납니다. 근데 소속단체에 건준은 전혀 없네요. 한 명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뭔가 착각을 했는지.. 하여튼 의외네요.
09/11/13 01:29
절대적인 가치에 상대적인 잣대를 들이댑니다.(친일인명사전 논란)
상대적인 가치에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댑니다.(루저 논란) 100분토론을 보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전혀 다른 두 논란이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지네요.
09/11/13 02:04
제가 대학교때 총장님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자중의 한분이던 윤 총장님이었습니다. (한성대 나왔습니다) 그때 저희 대학역사상 처음으로 총장님이 교양 수업을 진행하셨었죠.
그때 친일 인명사전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란, 현재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그 시절의 상황에서 그 것이 어떻게 민중들에게 다가갔느냐도 무시못할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셨죠.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때의 사실에 입각해서 만든다는 점을요 살아보지 못해서 모릅니다만, 친일 인명사전이란 지금의 기준이 아닌 그때의 행위에서 비롯되었단 걸 역설하시더군요.
09/11/13 05:58
그나저나 리박사 말기때 경제성장률이 5.35% 나 됐었군요. 리박사가 낙농업 육성 정책을 썼다는 얘기와 13.3% 의 2차산업 성장률도 정면으로 배치되구요.
보통 < 장면 정부때 기획한 것을 박통이 실행했다 > 라는 공식이 있습니다만, 그럼 최소한 리박사때는 장기 경제 개발 플랜은 없었다는 얘기인데, 저때의 성장동력은 뭐였을까요.
09/11/13 08:36
OrBef2님// 경제개발계획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1951녀『5개년 계획안』,1953년 『경제재건계획의 기본방침』,1954년 『한국경제부흥 5개년 계획안』등이 있었지만 '일본은 공업국, 한국은 소비국'이라는 미국의 지침때문에 무산되었지요. 그러던 것이 당시 우위에 있던 공산권의 평화공세(남조선 인민 여러분! 북조선이 더 잘살아요!)가 심했고 미국도 슬슬 경제 원조 삭감을 생각한 때였습니다. 남한을 일본 공업의 소비시장으로 놔 두는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경제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결국 1956년부터 미국의 인식이 남한의 산업 발전에 우호적으로 바뀌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수출이 급증했고 섬유, 식품등의 경공업등의 산업과 전후복구를 위한 건설업 급성장하게 되었지요. 거기서 나온 정책이 1956년의『무역체제강화요령』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성장동력은 당연히 천조국님의 은혜였지요. 이승만 시절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 바로 미국의 원조였으니까요.
09/11/13 09:30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일본 출신 독립 유공자들의 맹활약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일본인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후후;;
09/11/13 09:37
이적집단초전박살님// 에잇 성장동력이 천조국님이란 것은 모두 알지만 덮어두는 공공연한 비밀인.. (응?)
'무역체제강화요령' 이라..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답글 감사합니다.
09/11/13 11:07
그래봐야 반민특위 때려잡은 것 하나로도 이승만은 두고두고 까일 소스 제공입니다.
덕분에 지금 이런 친일인명사전 같은 안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친일파의 후예들과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09/11/13 12:23
"전쟁이 끝난 후 일본군장군이었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감옥에 들어가게 되지만 '오히려 일본군에게 손해를 줬다' 라는 이유로 기소가 중지됩니다"
웬지 독립기념관에 모셔야 될 것 같은 분위기...
09/11/13 12:35
빈 터님// 반대로 우리나라 인물 중 몇몇 분은 일본에서 고마워하며 기념관을 세워 줄 수도 있겠군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나중에 토론 할 일 생기면 딱 한 줄 써먹겠습니다. "일제시대 조선인은 조선시대 백성보다 못먹고 못살았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1공화국 국민은 조선시대 백성보다는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고 막장 정권이라도 독립국가에서 사는 것이 백성들 먹고 살기에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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