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어색해서 오히려 제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붙이려고 노력했고, 그게 사람들에게 좋게 보였는지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과 연락도 하고 학교 내에서나 외에서나 도움을 받으면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다가 문득 한 후배녀석과 한 선배누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저보다 1살이 많고, 후배는 저보다 1살이 적습니다.
그 녀석은 저와 같은 기숙사에 살고 애교도 부리고 이런저런 얘기들도 하면서 굉장히 친해졌고 그래서 아끼는 놈이죠. 생긴 것도 귀엽게 생기고 유머감각도 있어서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고있는 녀석입니다. 그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명이구요.
그녀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좀 도도하고 시크하면서 털털한 성격입니다.
희한하게도 저는 평소에 도도한 여자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도도한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어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후배도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간혹 신입생 애들과 얘기할 때면 그 누나와 오늘 연락했다면서 자랑하는 모습도 보이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참 못된 사람처럼 가슴 속에 이질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사람들 분위기는 이미 그 신입생과 그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느껴지구요.
그러다가 어제 할로윈데이라서 어떤 선배의 집에서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걸 알고있는 사람이 그 집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형님이 이번 기회에 한번 친해져보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하고, 춥다고 그래서 겉옷도 입혀주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만취된 그녀를 부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까칠한 성격이 술 마셔도 어디 안 가더군요. 이리저리 치이도 하고, 욕도 먹었지만 그래도 오늘 그녀와의 거리를 좁힌 것 같아서 속으로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아침이 밝아서 아침을 먹으려고 부엌에 갔는데 그 후배녀석과 그녀가 다정하게 서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얼굴을 마주보며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제 머리 속에 저를 대하는 행동과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 오버랩 되면서 마음이 어지러워졌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해맑게 웃는 적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 그녀에게서 고맙다는 인사 혹은 따뜻한 웃음조차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서로 해맑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보고나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싶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그녀와 몇몇 사람들은 집에 가고, 저와 신입생들, 집주인 선배들만 집에 있다가 대낮이 되서야 일어났습니다.
담배를 피러 밖을 나갔는데, 통화하고 있는 그 녀석의 웃고있는 표정이 보였습니다. 시침 뚝 떼고, 누구랑 통화하냐고 물어봤더니 역시 그녀와 통화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담배만 들고 반대쪽으로 가서 피고 들어왔습니다. 집에 와서 메신저로 그녀에게 말을 걸자, 평소에 그 시니컬함을 마음껏 발산했습니다. 그녀와의 대답의 절반이 '몰라' 였고 (심지어 "잘 들어갔어요?" 라는 물음에도 저렇게 대답하더군요), 저도 살짝 짜증이 나서 대화를 끄고 나와버렸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태우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와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느낀 것이 착각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혹시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와 그녀는 단 한 발자국도 좁혀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다른 신입녀석에게 살짝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 녀석도 저와 비슷한 타이밍에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제 마음을 아시는 선배님도 그렇고, 다른 신입후배도, 시간을 가지고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해보라고 하지만 글쎄요, 제가 이렇게 잘해줘도 그녀는 느끼지도 못할 것이고, 오히려 희망고문만 당할까봐 망설여졌습니다. 머리로 그만하고 싶다고 해도, 그녀의 미니홈피에서 하루에 한번 그녀의 사진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버렸네요.
그렇다고 학교 생활하면서 안 만날 수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답답합니다. 평소에 못 보다가 한번 만나기라도 하면 또 흔들려질게 뻔하니까요. 그녀가 어장관리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와 그 후배가 해맑게 웃으면서 대화하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리네요. 저와 그녀와의 거리는 이걸로 만족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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