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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3 13:53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던 상황이 아니라,
퇴보하는 10년이 되지 않을련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혹시 모르죠. 이런글과 댓글을 남겨서 이미 정보부 좌파빨갱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을수도요. 덕분에 정부차원 특별관리되면서 사회에 진입장벽이 생기는 그런 무시무시한 상상까지도 드네요.
09/06/03 13:54
진짜 살벌했네요. 저는 중딩이었는데 저희 교회에 단체로 나오던 전경 아저씨들이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매주 불려서 올라갔다왔다 하던 기억이 납니다. 딱 97년 무렵이었는데 그 전경 아저씨들도 깁스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09/06/03 14:04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희들이 보기엔... 한없이 평화로운 시위도... 그들눈엔 불법폭력집회일 뿐입니다... 그리고... 작년에 여기 pgr에서도... 촛불집회때... 공권력측을 비호하던 분들이 몇몇 계셨었구요.... 요새는 눈팅만 하시는지 모르겠지만요.... 저도 91년~96년 초등학교 시절 전남대학교 상대쪽에 살아서.... 필자님께서 말하시는 그 옛날 시위가 뭔지 대강은 알고있습니다..... 그 때와 비교하자면... 지금은 촛불시위가 아니라 촛불행사라고 해야하죠.... 그런대도... 이렇게 민감하게 곤봉 살수차 사무라이 조가 등장하는 이유를 저는 절대 이해할수 없습니다.....
09/06/03 14:30
요새는 확실히 쁘락치라고 하는 괴상한 분들은 거의없는거같아요.
뭐 어디에나 희한한 사람들은 있지만 그건 일부분인데 우리 가카는 참..너무하시죠.정말. 예전에야 시위! 라고 하면 화염병던지고 한총련혹은 이상한 단체를 우르르르와서 선동하고 막 그랬지만 요새는 그렇지두 않는데..후; 아 정말 후딱 4년이 지나가던지 아니면 2년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09/06/03 14:31
김영삼 시절만 해도 시위가 장난아니었죠..
학생들은 보도블럭 깨서 던지고,쇠파이프 들고, 밀리면 학교건물안에 바리케이트 치고 농성하고 전경들은 최루탄은 기본에,건물들어가면서 학교내 각종집기며,유리창이며 다 부시고.... 학교정문앞 가게들은 5-6월만 돼면 만신창이가 돼곤 했었죠... 버스타고 가다보면 최루탄냄새 자주 맡을수 있었고 이런날은 교통정체도 심해서 버스탄걸 후회하곤했습니다. 사실 진압도 문제였지만 시위의 과격함이 한총련이 몰락한 주된 결과였죠.. 저역시 당시의 시위는 너무 무서워서 안갔으니까요.. 지금의 시위들이 폭력시위라니.. 예전처럼 시위하면 쿠데타라고 할듯...
09/06/03 14:39
제가 1988~1992년도를 서울 신촌 근처에서 살았었는데
그때는 참.. 어머니랑 어디 좀 나갈라고 하면 시위 때문에 나가지 못했던 기억이 많네요. 어렸을 당시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09/06/03 15:49
95년-97년에 의경 생활을 하셨으면, 꼭 저와 반대 방향에 서있으셨겠네요.
96년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저하고 조금 다르시지만, 뭐 이제는 흘러간 일이니까요.
09/06/03 16:03
친절한 메딕씨님// 저도 당시에 대해 남아있는 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전경들이 힘들었던 만큼 갖혀있던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고생했다는 겁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을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칼 휘두르는 데 힘든 것 이상으로 그 칼에 맞는 사람은 아픕니다.
09/06/03 16:34
비루하지만 96년, 97년 저 자리에도 있어봤고 후에 전경으로 군 복무도 해보아서
전체적인 글엔 동감합니다. 근데 97년 한양대 사건의 진실은 저게 맞나요? 제 아는 형이 저 사건으로 구속이 되서 면회도 가고 했는데 "고문"이 있었는지 "쁘락치"로 오해 받은 건지 혹시 사건 전말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 주실 수 있나요?
09/06/03 16:48
Into the Milky Way님// 일반 학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쁘락치" 로 오해받아 고문 받고 사망한 것 사실일겁니다.
당시 학교가 굉장히 어수선했었습니다. 네X버에 찾아보니, 일반인이었고 1명이었다고 하네요.
09/06/03 16:56
Into the Milky Way님// 학생도 쁘락치도 아니었고, 대학가에 흔히 있는 '대학생이 되고 싶은 ' 일반인이었습니다.
당시 한총련 출범식으로 민감한 상황에서, '학생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대학을 돌아다니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학생들이 학생회에 '잡아들여'(지금보면 굉장한 문제지만, 당시는 정말 쁘락치와 정보과 형사들이 학교를 돌아다니던 시절입니다) 조사했고, 학생증이 없어 '쁘락치'라 의심하고 고문을 하다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한총련은 (과 같이 싸잡힌 여타 학생운동조직들) 국민으로부터 완전 신뢰를 잃고 거의 지리멸렬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진을 보면 그냥 동네 바보형이던데... 어제 PD수첩에서 경찰들이 명동에서 지적장애인을 연행한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적능력이 떨어지니까 자기자신을 잘 설명, 변호 못하게 되고 이것이 되려 의심을 증폭시키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09/06/03 17:22
말씀하신 97년 사건은 이석씨 치사사건 같은데요. 당시 사망한 이석씨가 실제 프락치인지 아닌지는 밝혀진게 없습니다만, 통장에 부정기적으로 상당한 액수의 금액이 입금된 내역들이 있고 이게 학생들이 프락치로 의심한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사람이 죽은건 맞구요. 근데.. 96년 연대 사건(.. 항쟁?혹은 사태?)은 작정하고 학생운동의 씨를 말리고자 해산이 아닌 전원검거를 목적으로 봉쇄했죠. 당시 단전단수에 기본의약품, 생리대까지 반입금지, 그렇다고 해산도 불가. 고립된 학생의 부모들이 "전쟁포로한테도 이렇게는 안한다, 의약품만은 반입허용해달라"고 애원하고 분노하셨지만 전혀... 참.. 그것과 별개로, 96년 연대사건때 사망하신 고 이종희 상경은 너무 안타깝습니다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왜 세브란스 병원 등 가까운 병원들을 놔두고 굳이 서울 반대편에 있는 경찰병원(송파)으로 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송중에 숨을 거두었다고 하길래 더욱 그렇네요.
09/06/03 17:32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빼먹은거 같습니다. 어제 PD수첩을 보면서 계속 느낀건데...
방패나 헬멧 등에 중대 표시가 없다는걸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제가 복무하던 당시만 해도 중대 표시는 필수였으며 일종의 자부심이었죠. 방패는 물론 헬멧과 봉, 방독면, 무전기를 메는 벨트에까지 중대마크와 표시를 했었습니다.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만들더군요.. 한가지 더 지역주민들의 시위 현장에선 시위하시는 아주머니들이 고생한다, 미안하다, 그리고 이해해 달라며 밤이되면 야식으로 컵라면을 끓여주시곤 하셨습니다. 정릉동 판자촌 일대의 재개발 사업 시위에서 그러했었죠.. 오히려 강력계 형사들이 현장에 나와서 용역직원(깡패새끼들이죠 뭐)들에게 주민들이 당하지나 않을까 지켜주시더군요. 실제로 용역직원들과 저희 중대가 대치했던 상황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이 어찌 변했을지 궁금하네요. 제대후 한번도 안가봤는데...
09/06/03 17:36
친절한 메딕씨님// 그건 작년 여름부터 그랬습니다. 중대 표시 뿐만 아니라 군복에 새겨져 있는 어쩔 수 없는 작대기 제외하고 기타 관등성명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도록, 어느때부턴가 청테이프 붙이고 하더니 나중엔 아예 지우고 나오더군요-_-
09/06/03 17:38
나누는 마음님// 학생들의 안타까움도 이해하고 있었던 1人 이었습니다. 나중에 저희 경찰서로 이송시킬때 다들 몰골들이 처참했었거든요. 오히려 먹을거좀 달라고 사정 하던 학생도 있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웠던건 붙잡혔던 99%의 학생들은 그저 선배 따라 왔거나 동아리 모임에서 왔다거나 였다는 겁니다.
09/06/03 17:42
흠.. 97년도에 그 학교 다녀서;;; 저때 저 분이 진짜 쁘락지였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이상한 구석이 있긴 했습니다. 학생증 없으면 수업이 있어도 학교에 들어갈 수 조차 없었거든요;; 정말 군대갔다가 휴가 나온 동기는 과사에서 휴학생 맞다고 확인해줬는데도 경찰이 못 들어가게 해서 친구들도 못 보고 쓸쓸히 돌아갔습니다. 심지어 학교 안에 있는 병원가는 길도 다 막아서 환자들이며 환자가족들이며 다 통행증 들고 다녔는데... 학교로 들어가는 통로란 통로는 다 전경들이 4~6줄로 막고 있었는데 신분증도 없는 일반인이 학교에 들어온걸 참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09/06/03 17:48
친절한 메딕씨님// 예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단순참가자였음에도 당시 정권은 해산조차 하지 못하게 하면서 극한적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애초에 학생운동의 씨를 말리면서 공안정국 조성이라는 목적이 있지 않았나 싶구요. 그후 연세대측에선 폐허가 된 건물을 그 상태로 보존하면서 교훈삼겠다 운운하며 정권에 아첨하는 모습을 보였죠.
09/06/03 17:49
분위기가 점점 "그것이 알고 싶다" 로 가는군요.
10년도 더 된 이야기 이고, 각자의 신분이 달랐기 때문에 더욱 그런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할려고 한다고 하던데...
09/06/03 17:56
나누는 마음님// 공안정국이니 하는건 전 모르겠습니다. 입장의 차이로 보자면 그럴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토론을 하자는 것두 아니고 진실 규명하자는 것두 아닙니다. 제가 몇 자 적은 것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하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삭제합니다.
09/06/03 18:05
지금도 대학교마다 정보과 형사들 돌아다닙니다. 학내 신문이나 유인물 같은 것, 혹은 폐지함 모아놓은 곳을 뒤지면서 문서를 입수하려고 하죠.
09/06/03 19:35
와....저도 95~97년도에 의경 기동대에서 복무했었습니다.
친절한 메딕씨님이 올리신 글을 읽어보니 그때가 다시 생각나네요...96연세대때와 97년 5월 광주에 내려갔을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사실 그당시 진압현장에선 의경입장에선 아무생각안납니다.(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그저..."뚫리면 부대복귀해서 죽는다..."라는 생각밖에는요...쩝....제대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그렇게 만든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었지만 말입니다..안타까울 따름입니다.
09/06/03 20:57
95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96년 연세대에 있었고 97년에는 한양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서울시내를 돌아다니기만 했는데
이후 시간이 흐르고 군대를 갔다오고 복학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복돌이시절 촛불시위를 보며 '저렇게 강력하고 좋은 무기가 있었는데 왜 우리때는 꽃병에 젓가락을 들고 다녔어야했나'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군요.
09/06/05 17:27
1980년대에 비하면 1995~97년은 양반 세대죠.
당시 저희들끼리는 [요즘 애들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구만] 수준의 언사를 농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프락치가 거의 필요 없는 세대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뭐... 작금의 소통부재는 어떻게 해도 1980년대와 비교할 만한 상황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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