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보통 사람이 보기엔 뭔 소린지도 모를 제품 스펙을 보며 깊은 고찰을 할 수 있다던가, 하드웨어 뉴스 등을 정독하며 '음... 3/4분기에 드디어 이런 것들이 나오는군.' 따위의 생각과 함께 총알을 장전하는 사람들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입니다.
일단 저는 우리나라에 흔해빠진, 전자제품과 IT에 관심이 있고, 아주 약간의 공부로 얻은 어줍잖은 지식과 지름신 숭배로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얻은 평범한 남자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이 흔해빠진 부류의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이런 질문에 시달리게 되죠.
"나 전자제품 사는데 뭐가 좋냐?"
여자친구의 '오빠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와 맞먹는 이 심오한 질문의 무서움은 제품을 추천한 후에 있습니다.
게임이나 인터넷 키워질 등등으로 바쁜 내가 무시무시한 귀차니즘의 압박을 이겨내고 제품을 추천하면 그때부터 진정한 고난이 시작되는 것이죠. 기껏 추천해줬더니 '야 이거 구린 거 같아. 괜히 샀네.' 따위의 말을 지껄이면 이놈을 차단할지, 차단 삭제를 할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컴퓨터 같은 경우엔 문제가 더욱 심각해서, 견적만 내기도 빡셔 죽겠는데 놈은 온갖 것들을 귀찮게 다 물어보죠.
게다가 그렇게 조립한 컴퓨터가 파란 화면이라도 뜨는 날엔 메신져 스크롤이 미친듯이 올라가는 것은 기본이요, 심각한 문제일 경우 외장 하드와 윈도CD를 짊어지고 고난의 여정을 떠나는 무임금 A/S 기사로 전직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걔 컴퓨터에 불을 지르는 게 좋을지, 그놈 손가락을 모조리 분지르는 게 좋을지 고민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놈 마저도 없다면 내 결혼식엔 틀림없이 신랑 측 하객이 0명이 될 거라는 공포에 못 이겨 오늘도 하염없이 고난의 여정을 떠나는 저 같은 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런 친구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 구매를 위한 가이드라인 1 - 정말 필요해?
일단 제일 중요한 건 내게 정말 그 제품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구매 의지죠. 이걸 꼭 사야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천천히 생각하며 파악해야 합니다. 정말 너무너무 필요하고,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이걸 꼭 사야겠다는 물건이 아니라면 십중팔구 실망감을 주거나 장농에 쳐박히는 신세가 될 겁니다.
왜냐? 이 글을 읽고 도움을 받을 분들은 전자제품에 해박하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닐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수준의 전자제품이란 딱 짐덩어리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구매를 위한 가이드라인 2 - 내일 신제품이 나온답니다.
일단 전자제품은 거의 예외 없이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가격이 떨어집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발전하는 성능은 불과 1~2년 전에 구매했던 위풍당당한 신상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 버리죠. 그래서 신제품으로 바꾸려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띄우는 순간 볼 수 있는 것은 몇 달 뒤에 고성능, 고기능성으로 무장한 신제품이 나온다는 뉴스입니다.
하지만 1번을 통과한 분이라면 일단 이 2번에 절대 신경써선 안 됩니다. 몇 달 뒤에 등장할 그 제품은 분명 매력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격은 절대 매력적이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난 지금 당장 구매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지, 몇 달 뒤에 느끼는 건 아니란 거죠.
일단 매우 드문 일이지만 신제품의 출시와 함께 기존 제품의 가격이 폭락한다면 몇 달의 기다림은 충분히 값질 수도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그런 일은 정말 거의 없다는 거죠(물론 가격이 떨어지긴 떨어집니다. 근데 분명 기대 이하일 겁니다). 그리고 그 몇 달의 기간동안 우린 당장 필요한 제품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아야 합니다.
* 구매를 위한 가이드라인 3 - 인터넷이나 친구에 앞서 주머니와 상담하세요.
일단 전자제품은 대부분 고가입니다. 드래곤볼을 다 모은 게 아닌 이상 갖고 싶다는 생각을 죽어라 한다고 책상 위에 짠! 하고 생길 리는 없고, 당연히 돈 주고 사야 합니다. 근데 이 전자제품이 어떤 놈들입니까?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제품이라도 수많은 레벨이 존재하며, 지름신을 소환하기 매우 적합한 놈들이죠. 일단 카달로그에 주르륵 나열된 제품을 보고 마음을 정할라 하면 느닷없이 지름신이 강림하셔서 외쳐댑니다.
'자, 3만 원만 더 쓰라고! 딱 그것만 더 투자한다면 이런 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어!'
친히 강림하신 지름신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그 제안을 수용한 순간 지름신은 분명 다시 외치실 겁니다.
'어이 자네, 기능만 있으면 전부인가? 그 제품은 좋은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안타깝게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처리속도가 아니야. 자 여기 5만 원만 더 투자한다면 자넨 처리속도까지 갖춰진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어!'
여기서 지름신의 외침에 넋이 나가 그분의 말씀을 좇으면 다시 외치십니다.
'이봐, 그런 처리속도가 있는 제품인데 이런 기능은 탐나지 않아? 이 기능이 탑재되지 않은 제품은 속도만 빠른 어정쩡한 물건에 불과하다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식으로 결국 하이엔드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지름신의 외침은 절대 멈추지 않습니다. 그 분의 진정한 목표는 재정의 파멸이기 때문이죠. 아니면 한 달 내내 라면만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구매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구매액의 범위를 정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20~30정도? 이런 게 아니고 아주아주 칼 같이 정해야 합니다. 난 22만 원 이상 절대 안 씀! 하고 딱 정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죠. 가장 위험한 것은 '이 정도면 허리띠를 좀 졸라매서 더 투자할 수도 있겠는데?' 같은 생각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은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며 사람들이 칭송하는 고급 제품군이 절대 아닙니다.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어떤 한 기능만 바라보고 구매하는 경우) 초보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제품은 매우 무난한 보급형 제품들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무난한 수준으로 지불 가능한 액수를 확실하게 정하고 그 위를 절대 쳐다보지 마십시오. 최고의 성능이란 대부분 그 필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출혈을 강요합니다. 얼리 어답터가 아닌 이상 그건 참 의미없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만 딱 정하면 다음부턴 일사천리입니다. 유명 하드웨어 사이트 등에서 약간의 검색을 하거나 간단힌 질문 글을 올리는 정도로도 진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입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초보자를 가장 곤욕스럽게 하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입니다. 정보의 수집, 분류 자체가 참 난감한 일이란 것이죠. 일단 각종 리뷰면 봐도 그렇습니다. 사실 내게 중요한 건 센트리논지 뭔지 알 수도 없는 플랫폼 따위가 아니고 바디가 핑크색인지 검은색인지, 디자인이 과연 뉴요커의 간지가 범람하는지, 야구 동영상이 몇 개나 들어가는지, 여기서 와우가 굴러가는지, 빳데리가 몇 시간이나 버티는지 하는 것들인데 막상 이런 정보보단 제품의 세세한 것에 지나치게 많은 텍스트를 할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저 구매 가이드라인의 두 가지만 확실하게 정해도 그 다음부턴 매우 쉽습니다. 범위를 좁혀지는 것만으로도 일단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넘어가게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분류된 정보에서 사용자 후기라던가 하는 정보를 보며 구매 여부를 결정하고, A/S 정도만 고민하면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제품의 유혹에 눈을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정한 범위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그 제품이 우리에게 가장 잘 맞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제 남은 건 각종 가격 비교 사이트 등을 돌아다니며 어디가 싼가 찾아보는 것입니다. 중고를 구매한다면 중고 거래 사이트 등을 돌아다니며 사기꾼은 아닌지, 물건의 상태는 어떤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사실 이 가이드가 모두에게 현명한 척도가 될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랜 세월 신상을 질러오며 느낀 교훈은 '꼭 필요하냐? 돈은 있냐?' 이 두 개였습니다. 그리고 저 두 가지가 충족된 제품은 대부분 만족감을 주는 반면, 충족시키지 못한 제품은 장농에 쳐박히거나 중고로 되팔리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름 매니아라면 매니아인 사람도 이런데, 보통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아무튼 결론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전자제품 사는 건 어려운 거 하나도 없습니다! 필요한가, 돈은 있나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친구를 전화나 메신져로 괴롭히지 않아도 충분히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덧 : 업무 시간에 농땡이를 피우는 절 용서하세요 사장님...
덧2 : 고수 님들... 여자가 부탁할 경우엔 무조건 들어줍시다. 이것도 일종의 기회입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전자제품을 잘 사려면 충동성과 필요성을 잘 구별하는게 최선입니다
두가지를 구분하려면 전자제품 사기에 앞서 2~3일정도 기다려보는게 테크닉입니다.
정말 필요해서 사는 제품이라면 2~3일 후에도 구매욕이 그대로이니까요^^
충동이라면 며칠 후엔 없어질테고요. 제가 비싼물건 살땐 꼭 지키는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