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핸드폰은 2분마다 울렸다. 하루에 720번, 일주일에 5040번, 한달에 약 151200번? 정도 울릴 것이다. 지금도 우웅~하는 진동소리가 들린다. 학기초 그의 옆자리에 배정 받았을 때 부르르하는 진동음을 듣고 내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문자는 오지 않았다. 옆자리 앉은 남자의 핸드폰일꺼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메세지를 확인하지 않는지 1시간 내내 주기적으로 진동음이 들렸다. 신경쓰였다.
"저기요 문자 온거 같은데..아까부터 계속 진동이.."
그는 나를 힐끔 쳐다 보았다. 그리곤 억양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신경쓰지 마세요"
대답을 마친 그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넓은 강의실, 책상의 반수만 차지한 학생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나는 그의 핸드폰 진동음이 너무나도 잘 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저냥 어떻게 첫번째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 다음주에도 그의 진동음은 끊이지 않았다. 강의실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체온 때문에 온도가 상승한 것은 아니다. 날씨가 너무 뜨겁기 때문에 강의실 안에도 운동장 한가운데 처럼 더웠다. 기분이 나빴다. 불편했다. 더구나 주기적으로 울리는 그의 핸드폰 진동음. 2분 간격으로 울리는 것을 봐서 수신된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기요.문자좀 확인 하세요. 계속 울리잖아요."
"알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더위 때문이였을 것이다. 갑자기 짜증이 몰려온 것은..
"신경쓰여요! 신경쓰인다구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러 버렸다. 수업시간 도중에..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지만 그는 난 쳐다보지 않았다. 교수님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의실 안은 불편한 정적이 흘렸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강의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 잠시 나갔다 올께요."
강의 시간은 1시간 가량 더 남아 있었지만 강의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건물 정문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늘하나 없는 벤치는 햇빛에 달궈져 엉덩이를 회초리로 맞은 듯한 따끔한 통증을 주었다. 그냥 앉았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생각했다.
'뭐야 정말? 그 이상한놈 때문에 나만 미친년 꼴됐네..다음시간부터 어떻게 그 수업듣지? 쪽팔려 정말. 나쁜놈 문자가 왔으면 확인을 해야지. 귀머거리야? 내말에 대답도 했으면서? 핸드폰은 꺼놓던지 무음으로 해야 하는 거 아냐?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 이기적인 자식..멍청이. 쓰레기...'
이런 저런 생각으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약 한 시간을 보내고 가방을 가지러 강의실로 돌아갔다.
<2>
우웅~
또 시작이군.. 일주일이 지나고 강의실에 들어왔다. 들어오기 싫었지만 이상한놈 때문에 학점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강의실에 들어올때 주변 사람들이 한번씩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분명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다음시간부터는 맨 처음 들어와서 앉아있어야 겠네..귀찮아 졌어..
놈의 진동음은 나만 듣고 있는가 보다. 그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봐서는. 놈은 여전히 내 옆자리에 앉아서 우웅~하는 진동음을 울리고 있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가 사각형으로 볼록 튀어 나와있다. 그러니 오른쪽에 앉아있는 나에게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다. 자리가 지정석이 아니라면 다른 곳으로 옮겨 앉을수 있으려만 좌석으로 출석을 체크하는 교수의 성향 때문에 그럴 수 없음이 통탄스러울 지경이다.
화는 사그라 들지 않았고, 게다가 점점 궁금증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놈은 왜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지 않는 것일까? 아예 꺼내지를 않는다. 쉬는 시간에도 언제나 오른쪽 바지주머니 속에 들어 있을 뿐이다. 귀머거리도 아니면서, 또 이렇게 큰소리의 진동이면 느낌이 날텐데 그냥 가만히 있다. 아니. 그냥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진동이 올 때면 미세하게 표정이 변화한다. 미소짓는 듯하면서도 처연한 ..뭐라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표정이다.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유일한 변화이다. 변화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미세한 변화지만 워낙 무표정한 그이기에 그 정도는 변화라 불리울 만 했다. 머리가 복잡해서 교수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왜 저딴놈을 의식하느라 시간당 몇만원씩하는 강의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무시하자. 무시하자. 무시.무시.무시..
우웅~
하지만 저 진동음이 또 다시 울리면 진정되었던 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중간고사는 조별과제로 대체합니다. 조는 여러분들의 폭넓은 대인관계를 위해서 앉은 자리 순으로 세명씩 하는 것으로 합니다. 가운데 앉은 사람이 조장이예요. 과제의 주제는......"
교수님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옆자리의 진동남하고 같은 조잖아? 아 짜증나. 말도 섞기 싫은 사람과 같은 조라니..
수업이 끝나자 마자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다는 죄로 조장이 되어 버린 나는 왼쪽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과제에 대한 토의 때문에 수업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남아있었다.
"그럼 제가 자료를 대충 검색해 보고 적당한 주제를 찾아서 연락드릴께요."
이번엔 놈의 차례다. 말걸기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다. 긴장이 되었다. 내가 잘못한게 없는데 왜 긴장이 되지?
"저기 핸드폰 번호 알려주세요. 연락드릴테니까."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는 어김없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핸드폰 없어요."
장난하나?
"번호유출 안할테니까 말해줘요. 같은 조 잖아요. 저도 물어보고 싶어서 그러는거 아니니까 곤란하게 만들지 마세요."
그는 내눈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조별과제 제가 혼자 해올께요. 걱정마세요. 이런거 잘하니까.."
화가 치솟았다. 잠시후 우웅~ 하는 진동음이 울리자 그 동안 참았던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그의 핸드폰처럼 내몸도 부들부들 진동했다.
"뭐예요 정말? 그동안 핸드폰 진동음으로 스트레스는 있는데로 다 주고, 과제때문에 번호 알려달라니까 없다고요? 지금 울린 건 뭐예요? 안마긴가요? 제가 키도 작고 그런 여자라고 만만해 보이세요? 순진해 보여요? 바보같아요? 놀리니까 재밌어요? "
저번처럼 주변의 모든 시선은 나와 그놈을 향했다. 흥분한 나머지 눈에 눈물이 고였다. 부끄러웠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꼬리가 멈칫 했지만 말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또 내가 미친년이 되어버렸네..
"진짜..."
나는 가방을 낚아채듯이 집어들고 빠른 걸음으로 책상사이를 지나 강의실 문쪽을 향했다. 몸을 옮기려는데 저항이 느껴졌다. 놈이 날 잡은건가? 내 몸에 손대지마! 거칠게 가방을 당겼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앉아있던 책상이 뒤로 넘어졌다. 가방이 책상에 걸린 것이였다. 놈이 잡은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거칠게 당겼던 가방에 예상했던 만큼의 저항이 없자, 균형을 잃었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들 사이로 넘어졌다. 손을 버둥거리다 잡은 책상마져도 함께 넘어져 내 발목을 짖눌렸다. 아팠다.
또 다시 주변은 고요해졌다.
"괘..괜찮아요?"
놈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나를 향하자, 분노, 수치, 고통들이 어울어져 울음이 터져 버렸다. 우아아~ 나는 힘겹게 일어나서 아픈 발목을 끌다시피하며 한쪽발로 걸으며 강의실 밖으로 향했다. 뒷통수를 찌르는 시선들..
정문 앞에 벤치에 않았다. 벤치는 언제나 뜨겁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참을 수 없는 울음이 쏟아졌다. 고개를 숙이고 울면서 담배를 피니 연기가 눈으로 들어왔다. 눈이 아팠다. 담배를 저만치 던졌다. 아! 하는 소리와 바닥을 신발로 땅바닥을 끄는 소리가 났다.
누가 맞았나? 상관없어. 난 슬프니까. 억울하니까.
약간의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살짝 돌려 봤다. 그 사람의 하체만 보였는데 청바지 오른쪽 주머니가 볼록하다. 그놈이다.
<3>
"미안해요..괜찮아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눈물만 났다. 고개를 숙이고 울고만 있었다. 롱스커트 아래로 보이는 내 왼쪽 발목은 약간 부어올라 있었다.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그런데 정말 핸드폰 없어요."
놈의 얼토당토 않은 말을 들으니 또 울음이 터지려고 했다.
"저리 꺼져! 나쁜 놈. 놀리려고 따라온거야?"
나는 울며 소리를 질렀다.
"잠시만 기다려요."
놈은 벤치에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놈이 내려놓은 것은 내 가방이였다. 신경도 못쓰고 있었다. 5분가량 시간이 흘렀고 약간 기분이 가라앉았다. 눈물을 닦아 냈다. 창피했다. 부끄러웠다. 놈이 오기전에 집에 가야되는데 발목이 아파서 걷기가 어려웠다. 일어나려고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보았다. 너무 아프다. 걸어보려고 몇번 뒤뚱뒤뚱 안간힘을 쓰다가 다시 앉았다. 저 멀리서 놈이 온다. 봤을까?
"이거요."
내 앞에 서있는 놈은 헥헥거리며 내게 파스를 내민다.
"필요없어요. 그냥 가세요."
창피함에 고개도 들지 못한 나는 놈이 돌아가 주기를 바랬다. 내가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완전 갇힌 꼴이였다. 녀석은 내 옆에 앉았다.
"붙여요. 발목 많이 부은 거 같아요. 병원갈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눈앞에 무엇인가를 들이 밀었다. 녀석의 핸드폰. 요근래 본 적없는 구형 폰이다. 상당히 크다. 액정을 열어 보여줬다.
[수신메세지 1개 2007년 9월 27일 12시 13분 한원영]
"이거요. 개통안 된 거예요. 안테나 보세요 학교 안인데 안뜨잖아요."
녀석의 핸드폰 좌측 상단에 안테나가 표시되는 자리에 X표시가 나타나 있다. 정말 개통 안되어 있구나..그런데 올해가 2009년인데 2년이나 지난 문자가 화면에 떠있네?
"제가 인간관계가 서툴러요. 말도 잘 못하고요. 그러다보니 조별과제 같은 것을 꺼려하거든요. 그래서 거의 제가 조장을 맏고, 혼자해서 제출해요. 지금까지 조원들의 불만은 없었어요. 제법 잘 해서 제출하니까. 그래서 아까 그렇게 말씀드린거예요. 그쪽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무시하고, 놀리려고 그런거 절대 아니예요. 울지 말아요."
훌쩍..
그때 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 울리잖아요. 메세지 확인 왜 안해요? 벌써 2년이나 지난 문자를.."
훌쩍..눈물이 쉽사리 멈추진 않았다. 그래도 많이 진정되었다.
"음..이건요.."
그는 난처한 듯이 입맛을 다셨다.
"아.. 이건 누구한테 말해본 적 없는데.. 그쪽이 나 때문에 다치고 화도 많이 난거 같아서 어쩔 수 없네요. 들어 보실래요?"
나는 궁금함에 눈물이 그쳤다.
"그 동안 굉장히 신경쓰였으니까요."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4년전에 막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였어요..."
그는 언제나 처럼 억양없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4>
그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없었다. 타인과 관계맺는것을 싫어하고, 타인 자체를 싫어했다. 혼자가 좋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바로 복학했다. 그러던 중 학교 대자보에 붙은 동아리 홍보물을 보았다. 동아리 이름: 별빛. 별을 좋아했다. 군시절 하늘을 꽉채운 수 많은 별을 보고 감동했었던 기억의 애틋함이였을까? 고향 선배에 붙들려 반 강제로 가입하게 되었다. 그 스스로 가입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 대학교도 부모의 선택에 따라 온것일 뿐, 과 선택도 마찬가지였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선배라는 존재가 다행이였다. 동아리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한원영..
"오빠는 핸드폰 없어요?"
없었다. 필요가 없었다. 연락올 사람이 없었으니까. 친구가 없었으니까. 그 애가 물었던 다음날 핸드폰을 샀다. 그애가 좋았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였으니까.
원영의 번호가 1번이 되었다. 2번도 없고, 3번도 없었다. 그녀만을 위해 산 핸드폰이였다.
얼마 뒤 둘은 사귀게 되었다. 그의 핸드폰에 연락을 하는 사람은 원영뿐이였다. 핸드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기쁨을 느꼈다. 예전에는 타인과의 관계가 이렇게 즐거운 것일 거라 상상할 수도 없었다. 행복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가 싫었던 게 아니였다. 그것을 못하니까 싫어하는 것으로 합리화 한 것이였다는 걸 깨달았다. 핸드폰에 번호가 늘어간다. 물론 형식적인 번호 교환이였을 것이다.
23년 동안 홀로 살아온 그가 단시간에 대인관계를 원활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의견 충돌이 많이 일어났다. 그의 표정과 말투도 한몫을 했다. 무표정, 무뚝뚝한 말투. 떠나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다가오는 사람도 많았다. 모두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술을 좋아하는 그에게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그냥 술 마시는 관계였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지만 진정 즐거운 만남은 그녀였다. 핸드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행복에 젖어들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와 결혼할 생각으로 만났고,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녀에게 그런얘기를 자주 꺼냈다. 나와의 만남이 즐거웠던 그녀도 나와 결혼을 약속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녀와 2년을 보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는 여전히 겉도는 관계였고, 진심으로 만나는 사람은 여전히 그녀였다. 그녀의 문자에 언제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많이 싸웠다. 그는 선천적으로 이기적이였다. 무신경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뭔 줄 았았다. 하지만 우유부단했다.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지만 나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은 영원한 거니까..
그에게는 문제들이 즐비했다. 대부분 그의 잘못이였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술을 마시고 실수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끝장을 보는 그의 성격..인사불성이 된 그를 집으로 오는 건 그녀였다.
"한번만 더 그러면 헤어질꺼야."
이말을 몇번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말을 듣고도 술을 과도하게 마셨다. 그러다 그녀가 작별을 고했다. 그는 그녀를 잡았다. 미안하다고 손이 발이되도록 빌었다. 다시는 안그러겠노라..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또 다시 그녀는 이별을 말했고 그는 그녀를 잡았다.'우리 사랑하잖아 결혼 할꺼잖아.' 마음약한 원영은 그를 믿고 마음을 돌렸다. 그러다 마침내..
사귄지 2주년이 가까워 졌을 무렵 그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과 그의 생일 축하하는 의미로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는 것을 싫어하던 그녀에게는 비밀로 하고.. 그러다 시비가 붙어서 사람을 때리게 되었다. 상대는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너 같은 술먹으면 개되는 놈들은 콩밥좀 먹어야 된다고.. 그는 무릎꿇고 빌고 또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구치소에 수감되게 되었다. 모든 소지품을 맡기기전 핸드폰을 보았다. 부재중 통화 32건. 문자메세지 12개.
'오빠 무슨일이야?', '오빠 연락도 안되고 무슨일 있는거야? 나 걱정되서 한숨도 못잤어.','오빠 전화좀 받아 제발.','오빠..'
그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문자 한통을 보내고 배터리를 뽑았다.
'미안해 나 사고쳤어..'라는 말로 시작하는 문자에 그 동안의 일들을 적었다.
3개월이 지나고 구치소를 나오며 들어올 때 맡겼던 핸드폰을 받았다. 배터리를 받고 전원을 켰다. 진동음이 울렸다.
[수신메세지 1개 2007년 9월 27일 12시 13분 한원영]
그리곤 바로 배터리 부족으로 꺼져버렸다.
<5>
"그날 이후 일년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저는 그녀와의 약속을 어긴 것과 이제 전과자라는 사실때문에 그녀에게 연락할 수 없었죠. 그녀에게 이제 연락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나같은 놈과 만나 봐야 그녀는 좋을 것 하나없으니까. 만약 결혼한다 해도 고생문이 훤하니까. 그래서 핸드폰을 정지시켰어요. 혹시나 전화라도 오면 마음이 약해질것 같아서..하하. 전화가 올리는 없겠지만요.."
그의 말이 잠시 멈췄다. 그의 손에 쥐고 있는 진동음이 들렸다.
"그런데요. 이 진동음을 들으면 예전처럼 마음이 참 편안해져요. 그녀에게 온 문자인게 확실 하니까요."
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랑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괴롭습니다. 마지막 문자를 볼 수는 없어요. 이것을 확인해 버리면 이제 그녀에게 문자는 오지 않으니까. 내용은 뭐 뻔하겠죠. 하지만 저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어요. 헤어지는 것이 당연할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저와 헤어졌지만 저는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미안해요 핸드폰을 꺼버릴 수 없어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제 삶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눈물이 흘렀다.다른 의미의 눈물이였다. 그가 안스러웠다.
"그래도 문자 한번 확인해 보세요. 확인하지 않는다면 모르잖아요. 그녀가 기다리겠다고 보냈을지.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연락을 기다릴지 어떻게 알아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 없어요. 저는 용서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잘못을 저지른게 아니니까요. "
"아니예요. 그녀는 당신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을지 몰라요. 당신을 기다릴지도 몰라요. 여자 마음을 남자는 이해할 수 없어요. '잘 다녀와 기다릴께'라는 문자라면 당신은 평생 후회할 거예요. '이번이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용서해 줄께'라는 문자일지도 몰라요. 용기를 내봐요."
그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럴리 없다구요!"
"잠깐만요! 당신은 문자 내용이 헤어지자는 내용이 아닐꺼라 믿고 있죠? 그녀에게 연락올까봐 정지시켰잖아요. 믿어봐요. 자신의 생각을요. 그리고 믿고 있잖아요. 그녀를.."
"제가 괜한 말을 했는가 보네요. 전 갑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려는 그를 나는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어나서 그를 붙잡으려 했다. 흥분한 나머지 발목의 고통을 잊고 있었다. 일어서려는데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그를 향해 넘어졌다. 그는 넘어지는 나를 잡아주느라 손에 있던 핸드폰이 튕겨나갔다. 저만치 날아간 핸드폰은 두세바퀴 굴러서 하늘을 보고 멈췄다.
그는 아이를 떨어뜨린 엄마처럼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그가 놓아버린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그는 재빨리 핸드폰에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다가가던 그의 손은 한 순간 갑자기 멈췄다. 그는 한 동안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멈춰진 시간은 흘러갔다.
"아.."
나도 모르게 적막을 깨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손은 천천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도 천천히 일으켜졌다. 너무나 느리게 진행된 행동이라 멈춰진 시간이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렇게 그는 언제 앉아있었냐는 듯이 서있었다. 그리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어서던 것과 같은 속도로 저만치 걸어간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뒤에 그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멍하니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은 핸드폰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액정을 중앙이 거울처럼 깨져있었고, 꺼져가는 생명처럼 깜빡거리며 헐떡였다.
제가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이건 아닙니다.
이렇게 글 잘 쓰시는 분이라면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너무나 잘 쓴 글을 보고 진짜 진짜 화가납니다. 이렇게 글을 잘쓰시면서...
이건 공포소설보다 더 무섭네요.
감정적이라 미안합니다만... 감정적으로 용납이 안되네요. 저 마지막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