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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5/23 16:04:06
Name 시현
Subject [일반] ▶◀ 그 분. 그 분 목소리.
1.
9시 10분 일어났다. 창 밖으로 비가 추적거린다.
컴퓨터를 켜고 브라우저를 열었다가 화들짝 닫아 버렸다.
다시 조심스럽게 열고 '뉴스'라는 것들을 본다. 티비를 켤 엄두는 나지 않는다.
새벽부터 어딘가 나가셨던 늙은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현관을 들어서시면서 부터 통곡을 하신다.

'희망이 없어...왜 다 죽이는거야....조봉암도 장준하도...착하고 똑똑하고 사람같은 사람들은 왜 다 죽이는거냐고...희망이 없어!!'

바닥에 주저앉아 70이 다 되신 어머니가 통곡을 하신다. 내 눈에도 하릴없이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는 그 분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다.


2.
나도 그 분의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분의 출마연설이나 그 이전의 삶의 행적은 충분히 존경하고 존중할만 하다고 생각했었다.
대통령이 되어 충분히 우편향이 되어가는 모습에 반대도 하고 비판도 했을 망정, 최소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소한 권위주의, 학벌중심, 돈과 권력의 지배구조의 사회에 파문을 만들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대통령이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분의 존재가치는 충분했고,
비판적 지지를 하던 전 국민적인 안주가 되던 말던, 충분히 존경받고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좌,우를 떠나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상식' 쪽에 가깝게 이끌었던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인정했다.
정치적인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퇴임 후에는, 제발 좀 더 편안하게 고향에서 사시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리고 그의 평화로운 웃음과 봉하에서의 행복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좋았다.
대한민국에 이런 '전' 대통령이 이제는 한 명 쯤 있어도 될만큼 되었구나 하고 흐뭇했다.  

그게 이렇게 짧을지 몰랐다.
얼마나 심각한 착각이었는지 깨닫지 못한 내가 정말 멍청하게 느껴진다.
'아직 총을 내려놓을 때'가 아니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3.
그 분의 온라인 마지막 글에는 자신을 버리라고 했다.
자기는 더 이상 정치적 상징이 될 수 없을만큼 훼손되었으니 같이 수렁에 빠지지말고 자기를 버리라고 했다.

난 그 글에서 묘한 통쾌함을 느꼈었다.
그래 노무현은 죽어도 노무현의 정치적 이상과 그를 뽑은 자들의 정치적 꿈은 살아있는 것이다.
노무현이 당하는 훼손을 두려워하지말고, 오히려 더 많은 꿈을 더 진보한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말을 자기 입으로 하는 그 분의 당참과 단호함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넘어서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을 인정해야하는 상황에서도 놓치지 않은 정치적 입장.
인정할만한 언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그 분이 바로 그때,
스스로 짊어졌을 그 무거운 패배감과 회한과 외로움, 자책감 같은 것들은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분은 강한 분이라고 한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너무 미안하다. 나의 경박함과 그 분의 산산히 부서졌을 뼈마디를 생각하니, 말문이 막히고 어쩔 수 없는 눈물만이 흐른다.
그 분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 슬픔과 안타까움과
이 빌어먹을 나라의 구석구석, '포괄적' 살인이 난무하는 사회에 대한 답답함이 동시에 뒤섞여 도대체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모를 마음이다.


4.
나는 오래 전 이 동영상으로 그 분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었다. 다시 봐본다.
그 분의 어이없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나의 존중은 변함없을 것이다.
그 분의 꿈이 이 진심 가득히 느껴지는 '말'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며, 우리가 끝까지 꿈꿔야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난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다.
정말 나는 죽는다.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고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육백 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해본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역사를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 분의 유서 전문이다.
마지막 담배 한대 피우지 못하고, 부인의 재소환일 날 새벽 그가 잠못이루고 서재에 앉아 썼을 글이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화장해달라.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국정이 잘못됐다고 비판 받아 정말 괴로웠다.
지금 나를 마치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것처럼 비쳐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후 농촌 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 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멋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 지금 방송에서는 아래 단락이 삭제된 유서내용만을 말하고 있는데 무엇이 사실인지 모르겠다. 모르겠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지금 뭘 어떻게 해야겠는지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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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혼
09/05/23 16:15
수정 아이콘
유서 뒷부분은 처음보네요..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이신거 같은데..
Arata_Striker
09/05/23 16:22
수정 아이콘
오늘만 이 영상을 100번은 넘게본 듯 한데, 봐도 봐도 울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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