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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24 17:10
너무나도 멋진 이론이라 이거에 공격당한 교수님들이 모든 커리큘럼을 VS 피케티이론 으로 바꾸시는 통에 졸업한 학우들에게 받은 족보, 요점노트, 필기 모두 무효화된 저번 학기가 생각나네요. 부들부들...
피케티의 저 주장이 얼마나 효과적이냐면 21세기 자본이 한국에 번역되기전에 한국 경제학과 교수들이 모여서 반박책을 먼저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피케티 책이 발간되는 달에 관련 세미나만 여러개 열리고 해당 세미나에서 주창한 것은 피케티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가 가 다수던걸로 기억합니다. 이정도면 얼마나 멋진 이론인지 대충 감은 다 잡으실듯
15/02/24 17:1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왜 불평등을 해소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언급해주시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불평등이 박탈감과 같은 개인의 문제 이외에 언급하신 대공황 등의 경제 불황을 야기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15/02/24 17:34
저는 사실 해당 논쟁은 잘 모르지만 이준구 교수님의 말을 빌자면
http://m.huffpost.com/kr/entry/5520810 멘큐의 defending the one percent 라는 글에서 왜 불평등이 문제나는 근본적 질문에 대래 피케티는 민주주의 사회는 분배의 불평등은 혈연이나 지대가 아닌 능력과 노력에 기초한다는 믿음으로 이뤄지며, 따라서 사회적 불평등은 공정하며 그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때 용인될 수 있다는 답을 했다고 합니다 (롤스의 차등의 원칙과 유사)
15/02/24 17:34
사실 이런저런 반론이 있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그쪽에 더 수긍하긴 하지만 워낙 학문적인 얘기인지라 어떻게 일반적인 얘기로 끌어낼 수 있을지가 난감하더라요. 물론 이것도 어느정도 성향에 따라 가는면이 있으니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해봐야 별 의미는 없겠지만...아무튼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 제기 자체는 어느정도 의미가 있다고 보니...
15/02/24 18:36
저는 반대로 반론이 내용의 일부는 건드려도 본질을 건드리즈 못하므로 피케티의 의견에 좀더 수긍하는편입니다.
하지만 이미 문제제기 자체가 의미 있다는것은 그 주장 자체가 설득력을 얻는 상황인것이고 그렇다면 반론측 조차도 여러 예시들에 대한 반박은 있어도 그 주장 자체에 대한 반론은 힘을 얻지 못하고 있죠. 뭐 역시나 결국엔 님과 저의 성향차이 때문에 차이가 나는것도 클테고 지켜보긴 해야죠. 하지만 적어도 피케티의 이 본제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는것은 동의하는측이 반론하는측이나 모두 같은 생각일겁니다.
15/02/24 18:55
개인적으로는 설득력보다는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이라는 측면으로 보고 있긴 합니다만...뭐 어쨌든 이런 종류의 논란은 피케티가 맞든 틀리든 앞으로 계속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이론과 다르니...
15/02/24 19:39
뭐 그 이야기도 제 생각과는 반대이시군요. 저는 그것이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고 대중들이 충분히 인식할만큼 '경험적'데이터가 충분햇기에 그랫죠. 단순히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이라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피케티의 주장 자체를 호도 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밑에 댓글에도 있지만 피케티 이론의 첫번째 의의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증명을 "경험"적 데이터로 증명하므로써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카운터를 날린것이죠. 데이터를 가지고 장막을 치던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똑같이 경험적 데이터를 가지고 카운터를 친 셈이니까요. 그리고 이 근본적인것에 아직까지 제대로된 반론이 나오지 않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할일을 한 셈이죠. 이제 어찌되엇든 비주류 학자들이 주류 학자들에게 그러는 너희는 현실에 맞지 않아"로 데이터를 가지고 역공할 수있는 기회가 분명히 생긴셈이고 주류학자들은 아직까지 이에 근본적인 반론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봤을때 저는 님과 정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고 또 이것이 어찌 되었든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주류 경제학자' 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게 만들었죠. 분명히 이야기 하는거지만 그들도 노력하고 있다, 인식 안하는것 아니다는 통하지 않습니다. 실제 그들이 지금껏 해온 학문의 주류가 현재 현실과는 어느정도 괴리감이 있다는것은 내부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니까요.
15/02/24 19:54
주류 경제학의 범주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피케티의 그 데이터가 기존의 어떤 이론을 뒤엎을만큼의 엄밀한 이론을 보여주는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때문에 반론 역시 그런 방향으로 계속 나오는걸 볼 수 있고요. 제대로 된 반론이 어떤 범주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이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역에 너무 있으려한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긴 합니다.
15/02/24 19:25
논문 같은거 언급할 내공은 안되어서...사실 개인적으로도 잘 정리가 안 된게 있는데 여기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려니 좀 부담이 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글이나 링크달기도 그렇고...
15/02/24 22:45
아 사실 직접 찾아봤어야 하는데 귀차니즘때문에... 그래도 덕분에 반론이 많다는 걸 알고 인터넷 찾아보고 반론들에 대해 접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15/02/24 17:34
어떻게 부의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은 이견들이 많을 수 있지만 문제 제기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운 탁월한 화두라고 봅니다.
노동과 자본의 대체 가능성이나 기타 불라불라 여러 가지 잔 이론들로 공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받고 있지만) 언급하신 것처럼, 장기적으로 g는 한계가 있고 (예를 들어 장기적으로 5% g는 가능하지 않고), 특수한 상황이 아닌 경우 r이 대체로 g보다 큰 이상 (통상 5%는 넘고), 장기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그리고 이에 따른 계층화(비록 계층간에 약간의 이동은 가능할지라도)는 사실상 거스르기 어려운 자연 현상에 가깝죠. 문제는 이것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현대 사회의 중심 이데올로기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입니다. 자유를 옹호하는 측은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데, 계층화가 어느 이상 계속되면 기회의 평등도 사실상 가능해지지 않는 시점이 옵니다. 사실, 자유를 옹호하다 보면 못 가진 자의 자유보다는 가진 자의 자유, 기득권층의 자유를 옹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결과의 완전한 평등은 또 아닌 것이, 이미 역사적으로 실험해 본 후이기 때문입니다. 대압축 시대라고 불렸던 미국의 1950 ~ 1960 년대가 이상향이기는 합니다만, 이게 장기적으로 안정된 체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 보편 복지가 필요한 이유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15/02/24 18:49
말하신대로 피케티도 명문사립대 입학생, 기부금등을 보면 부로 학벌도 살수 있고 능력도 부로 세습될 경향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사실 저도 불평등 관련해서는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고, 답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자연계의 먹이사슬처럼 인류란 종 내부에서도 먹고 먹히는 피라미드적 관계가 안정적 평형 상태인가 싶기도 합니다. 아니면 정 반대로 1950-60년대가 나중엔 불평등한 시기였다 라고 서술될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댓글처럼 문제제기는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됩니다.
15/02/24 17:37
이 책도 읽어보긴 해야하는데.. 읽어봐야 할 책들이 많아서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행히 친절한 분들이 요약을 잘 해줘서 대강의 내용이라도 알게 되니 좋습니다. pgr에서도 관련 내용이 여러번 올라와서 얻어 들은 것이 좀 되는군요. 자게에서 피케티로 검색하면 제법 검색됩니다.
15/02/24 17:39
내용 자체에대해선 이런저런 이견이나 반론도 많고 학계에서 알아서들 잘 싸우고 있겠지만..
파급력이 엄청난 책이었지요.. 저는 전공자가 아니라서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호수에 돌을 던졌으니 뭐라도 변하겠죠.
15/02/24 17:45
불평등을 계속 방치하면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네요. 그러기 전에 자본세 도입하자는 건데.. 이게 조지헨리 토지세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 듭니다.
15/02/24 18:53
토지도 자본이니까요. 그리고 조지헨리가 토지세 주장할때는 자본의 대부분이 토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토지를 임대하고 작물을 벌어들이는 것도 자본수익이고요.
그리고 불평등을 방치하면 전쟁이나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는 사실 피케티 책에선 몇줄 정도로 간략히 서술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는데 제가 글 쓰다가 불평등을 방치하면 안된다고 쓰려고 강조하게 되었네요. 적당히 걸러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5/02/24 17:52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경제학에서 주류였던 분배에 대한 믿음을 경험적으로 부정한데 있습니다
여태까지 경제학에서는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단기적 현상일 뿐 장기적으로는 회복되고 좋아진다라는 수식을 사용해 왔는데, 이러한 문제는 바로 "장기"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수식적으로 옳은 답이 나온들 그게 현실에 적용되는 시간에 대한 해법은 아니거든요. 이러한 소위 "좌파"류의 주장에 대해 주류경제학적인 시각에서 맹공을 펼칠 수 있던 기반에는 바로 수식의 답이 기존 경제학의 이론에 합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분배를 논하고 현 경제제도의 적극적 개선을 요구하는 소위 '좌파류'는 혼자서 수십명이 내는 경제이론을 맞상대하면서 그 세력이 매우 줄어들었었고, 이미 어느정도 정립되어있는 주류경제학 이론(과 엄밀히 말하면 어느정도의 케네지언까지)에 비해 반대측의 이론은 언제나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했고, 해당 이론은 기존 이론의 수식앞에서 물거품이 되거나 훼손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피케티가 들고 나온 이론은 자신의 이론에 대한 증명을 "경험"으로 해내었다는데 그 파급효과가 다릅니다. 기존의 경제학은 가정을 토대로 그 수식의 완결성을 증명해오는 방식을 사용해왔는데(그래서 경제학 이론을 실 상황에 대입하려면 수십가지의 가정에 따라 다른 모형을 계속 끌어다 쓰는 형태로) 피케티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통해 자신의 가정이 맞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여태까지 기를 펴지 못하던 비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상대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지도 모르는 도구를 쥐어주었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넌 수식에 맞지 않아"로 당하던 공격을 "그러는 너희는 현실에 맞지 않아"로 데이터를 가지고 역공을 취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15/02/24 18:59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피케티도 맺음말부분에 그런 가정과 수식을 통한 주장을 펼치는 '경제과학'이 아닌'경제정치학' 이 실제 경제학엔 더 알맞은 연구방향이라는 식으로 서술했던걸 보면 지금까지의 비주류경제학을 긍정하는 거라고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주류경제학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15/02/25 09:36
경제학에서 수식은 그냥 어떤 변수를 담느냐에 의의가 있는정도 아닌가요?
사실 완결성이라는 표현자체가 경제학의 수식에는 상당히 과분한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기존 수식도 해석하기에 따라 피케티이론의 근거가 될 수 있으니까요.
15/02/25 13:21
해당 가정하에서 얼마나 수식의 완결성이 있는가 정도의 의미입니다 애초에 가정으로 시작한 학문이니까요. 피케티 역시도 본인 책이 아닌 논문에서도 경제학 수식을 많이 사용합니다만 굉장히 단순하게 본 피케티의 의의는 기존 가정으로 시작한 수식을 실증된 자료로 맞상대해냈다 정도일까요
15/02/24 18:34
1700년의 데이터로부터 시작해서 300년간의 데이터가 연속성을 가진다는게 진짜 신기하네요. 어느 정도 사회 구조/시장 구조가 지금과도 비슷하니까 그 데이터로부터 시작해서 쭉 데이터를 모아서 그걸 분석한거 같은데 우리나라가 1700년에 뭘하고 있나 생각하면 진짜... 뭔가 신기합니다.
15/02/24 19:08
저 데이터들은 소득세기록, 토지실소유자, 세율의 변화, 인플레이션율, 국민계정(국가에서 매년 각 부분의 소득/지출등의 세부항목이 차지하는 비율과 금액에 대해 조사한 통계표) 등이에요. 우리나라(조선이) 어쨌든 통치를 하는 과정에서 그런 자료가 아예 없진 않았을것 같습니다.
피케티도 1780년대에 프랑스 혁명때문에 프랑스 구조가 전면 변동해서 이런 자세한 결과를 내고 통계가 나올수 있었다고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통계들은 과소/과대평가된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고요.. 게다가 대부분의 식민지화를 겪은 나라들은 그 기간동안 통계자료를 만들수가 없었기에 한계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사회구조/시장구조가 비슷하다기 보단 통계를 내고 보관할 생각을 한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 대단함은 선진국이어서라기 보다는 이 모든 자료를 모으고 분석할 생각을 한 근성+컴퓨터로 많은 자료를 쉽게 처리할 수 있게된 기술발전에도 돌리는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대학원생들 ㅠㅠ)
15/02/24 18:48
그래도 반복한다.. 가 개인적인 제 예상... 그리고 어쩌면 그건 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중... 그냥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불평등하게 굴러먹도록 설계되었을수도...
15/02/24 19:08
영유아 수준의 어리석은 짓을 하던 인간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차원이 높아지면, 그 때 하던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지유. (똥을 싼다든지 ;;) 물론 높은 수준에 맞는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어린 수준에서 상상도 못할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지만요. 이런 식으로 인류가 레벨업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석기시대나 중세시대보다 지금이 사회적으로 좋듯이 당장에는 후퇴가 와도 더 나은 시대가 결국에는 오는걸로 믿어야죠. ㅠㅠ
15/02/24 18:59
아닌게 아니라 위기죠. 저 개인적으로는 세계의 흐름은 일방이고, 그 흐름의 속도를 늦추는게 보수, 보다 빠르게하는 것이 진보라고 보는데요. 보수가 지나치게 이 속도를 늦추고, 도리어 후퇴하는 모습도 보이게 되면, 그 반발 역시 강해져서 나중에 제 속도를 맞추려면 지나친 파괴력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회혼란을 피하려면 하루빨리 제도적으로 속도를 맞춰야하는데 계속 붙잡고 있죠. 이러면 결국은 옛적표현으로는 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모습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15/02/24 19:10
위에서 많은 분들이 기존의 주류경제학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글을 쓰셨죠. 그런데 사실 저 한계들은 과학 그 자체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특히 실험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과학의 특성상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자연과학 보다 더 크죠.
사실 사람들을 괴롭히는 문제점들은 쓰나미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다 사회적 문제점들 입니다. 그런 것을 해결하는데 경제학이 도움이 되어으면 좋겠지만 과학의 틀에 얽매여서 현실과 따로 노는군요. 경제학을 공부하고 나서는 과학 자체에 회의감이 좀 생겼습니다. 과학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것이고, 수많은 연구 방법론들 중에 하나일 뿐인데 너무 환상들을 가지고 계신 듯 합니다.
15/02/24 19:42
하지만 과학이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었는지 세계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환상은 아니더라도 기대감을 가지게 되죠.
저는 되려 묻고 싶네요. 지금 현 상황에서 과학 이상으로 현상황을 깊고 넓고 자세하게 이야기해주는 학문이 어디있을까요? 그 많은 연구 방법론들은 수세기~수십세기에 걸친 인류 데이터의 산물이고 이것이 단순히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솔직히 기분이 굉장히 나쁠수 밖에 없네요.
15/02/24 20:59
과학이 인류가 발견한 가장 엄밀한 지식축적 방법이라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죠. 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단순히 환상이라고 한적이 없습니다. 과학은 완전무결하지 않고, 분명한 결점이 있는 연구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라고 하면 진리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참 많아요. 대학생들 중에서도 꽤 많던데..... 그런 사람들에게 환상을 좀 깨라고 말했던 겁니다. 그리고 다른 연구방법론들 중에서 과학의 단점을 보완하여 현실과 좀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있죠. 특히 사회과학에서는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과 혼합해서 단점을 보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비주류경제학자들 중에서는 경제학이 애시당초 수학을 도입하지 말았어야 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또한 사회학자들도 경제학을 비판할 때 매번 하는 소리가 이론과 현실의 괴리입니다. 이것을 싸잡아서 간단히 말하면 과학 자체의 결점을 그 사람들이 걸고 넘어지는 겁니다. 좀더 자세히 쓸껄 그랬군요.
15/02/24 21:22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세상에 완전무결한것이 있다는거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요?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건 진짜 그것이 진리처럼 느끼는게 아니고 설명할 가장 좋은 방법이 과학이라는것에 이점을 두고 있죠.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여러차례 겪어봄 대학생들과는 많이 다르네요. 제 느낌은 딱 이거 였는데... 뭐 저도 신분은 대학생이다보니...
그리고 말씀드리지만 피케티 이야기과 관련되서 그러한 비주류경제학자들이 수십년동안 주류학자들을 까고도 그들이 주류로 올라서지 못했던 이유는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해서 입니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그들의 힘을 잃게 만드는 원동력이였죠. 현실과 이론의 괴리는 경제학자들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비판중 하나이지만 그것이 과학 자체의 문제점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이비 과학이 판을 치던 시기에도 이러한 비판은 줄곧 자연과학쪽 사람들에게 까일거리만 주는 일이였습니다. 과학이 해석해주는 현상에 대해서 그 해석을 어떻게 사용할것인가는 나머지 사람들의 몫입니다. 애초에 사회'과학' 이라고 말이 붙여지긴 했지만 분명 과학이라는 이야기와는 분명히 구분해서 써야합니다. 둘은 하는 일이 달라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과학자체의 결점에서만 오는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과학에 누명을 씌우는 꼴이죠.
15/02/24 21:34
물론 이론과 현실의 괴리의 원인이 백퍼센트 과학 자체의 결점 때문만은 아니죠. 자도 명치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한 대학생들 중 과학 맹신자는 대부분 예체능계열이나 인문대 학생들을 말한 거였어요.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를 배워보지 못한 학생들은 과학적이다 라고 말하면 꽤나 신봉하더군요.
그런데 밑에서 두번째 문단은 제가 잘 모르겠는데 좀 더 보충설명해 주시면 감하겠네요.
15/02/24 19:45
저는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http://quidproquo.egloos.com/5231006 http://quidproquo.egloos.com/5241658 경제 알 못인지라 직접 비판하고 어쩌고 할 그릇은 못 되지만, 위 블로그 글에서 지적한 몇 가지 비판은 납득이 갑니다. 1.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자본에 대한 누진세)이 정말로 비용이 없는지 믿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정부의 비효율적인 것뿐만 아니라, 시장 실패가 나쁘다면 통제 경제도 만만치 않게 폐해(비용)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2. 절대적인 부의 증가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초창기에 비해 오늘날의 경제적 불평등이 커졌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경제력으로는 구매가 불가능하던 것들을 오늘날 쉽게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부를 어느 정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평등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지가 관건이겠죠.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가치 판단이니까요. 본문의 내용대로라면 피케티는 그 근거로 '혁명이 일어나면 너무 고통이 심하니까'를 들고 있는데, 사실 근거로 쓰기엔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건 심지어 가치 판단도 아닙니다. 그냥 사건 터지면 안 되니까 조심하자고 말하는 것뿐이죠. 사실 이런 종류의 대중서는, 특히 경제 분야의 책은 맞는 말을 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봐서, 기본적으로 편견을 깔고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책은 일단 멀리하고 차근차근히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5/02/24 19:59
시장경제 그리고 나아가 시장 자체가 소위 '지저분한 손'이라고 불리는 외적통제들을 기초로해서 굴러가는 물건인지라, 외적통제의 양상이 '변화'하는 것 만으로 통제경제를 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자본에 대한 누진세'가 초래하는 비용이 이득보다 크냐 하는 의문은 얼마든지 제시될 수 있지만요. 이 비용과 이득의 판단 역시 상당부분 정치적인 영역이기도 하고요. 사실 경제영역과 정치영역 자체가 엄밀하게 구분이 안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경제분야의 책이 이론적 한계등으로 인해 '전공서'건 대중서건 맞는말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적기는 합니다만... 일단 학계에 논쟁을 야기할 정도의 가치는 있는 주장으로 볼수는 있을것 같습니다.
15/02/24 20:17
해당 블로그의 글은 여러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피케티가 사용하는 경제학 툴 자체가 기존에 있는 경제학 툴에 자신의 자료에서 나온 결과를 반영하여 사용하는 것이므로 단순한 사칙연산에 불과하다는 말은 그대로 돌려서 기존 경제학에서 유용하다고 분류된 틀이 사칙연산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또한 피케티가 책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기존 경제학의 정도인 수리를 이용한 접근이 아닌, 해당 데이터의 통계치를 이용한 접근입니다. 이러한 접근법에 대해 "경제학적인 접근"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에 가깝습니다. 이 글을 쓴 블로거의 주장에 맞게 피케티가 이야기하려면 결국 기존 경제학을 비판하는 도구로 기존 경제학을 사용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해당 사항을 피케티가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사칙연산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기존 경제학의 방식을 벗어나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는 파트에 대해선 "경제학적인 접근법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블로거가 원하는데로 글을 쓰려면 해당 자료에 대한 기존 경제학의 해석을 들고 와야합니다. 이것은 피케티가 채택한 방식이 아닙니다. 피케티는 자신의 방법을 통계치를 이용한 역사적 분석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에 대한 비판을 그저 자료만 제시한다 라고 하고 자료 해석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실증"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틀린 이야기라는 소리죠. 기존 경제학적 방식이 아닌 역사적 분석방법을 실시한 것에 대해 경제학적 이야기가 없다는 걸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니 애초에 책을 이해할 생각이 없는 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심지어 태클을 거는 본문의 내용은 더욱 가관입니다. 피케티는 책에서 "능력 위주 사회가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기업가와 정치인 사이의 경쟁만이 있을 뿐, 그 양쪽에 해당되지 않는 자들은 도태된다"고 한 것을 본 블로거는 해당 경쟁이 만약 존재하지 않았을 시에는 소득이 상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전혀 논증하지 않는다 라는 것으로 대답합니다만, 피케티는 애초에 경쟁이 소득을 상승시킨다는 기본 경제학 논리를 반박한 적도, 무시한 적도 없습니다. 해당 사안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어떠한 위험이 생기는 것을 경고하는 문장에 대해 경제학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헛소리입니다. 애초에 그런 논증을 하려면 피케티의 본문에 노동생산성은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피케티는 경쟁을 옹호하는 쪽으로 봐야합니다. 피케티는 노동간의 경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생산성이 아무런 경쟁없는 자본생산성에 상대가 안되는 점을 문제시하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죠. 블로거는 피케티의 주장에 대해 차트 하나로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만, 실제 책을 읽어보았을 때 그 차트에 입력되는 데이터는 실제 데이터들을 입력해놓은 것이며 가정의 문제를 들이밀기엔 기존 경제학 도구들에 비해 가정의 정도가 훨씬 약한 편입니다. 올려주신 링크의 글은 애초에 공격대상을 피케티로 잡고 이야기하지만, 링크 내 링크(타일러 코웬)와 달리 지엽적인 문장을 멋대로 곡해하고, 해당 주장에 대한 자신의 논증은 전혀 없는데다가, 기본적으로 경제학에서 하는 가정에 대한 잣대를 피케티에게만 없애라고 적용시키는 한편 그러한 가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경제학의 논리는 또 무한히 신뢰하는 이상한 태도를 보입니다. 본인의 논리에 함몰되어 피케티 책 전반에 있는 문장 중 한 두문장을 떼와 맥락없이 내버려둔다음 해당 문장을 비판하는 신기한 태도네요. 우선 의아해하시는점에 대해 피케티?의 이야기를 하자면 첫째로 누진세 비용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타 부양정책이 짊어지는 정부부채가 생기지 않는다라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비용은 사회의 비용이라기보단 실행시에 드는 비용을 이야기함으로 봐야할겁니다.(후자의 경우에도 피케티가 가정하는 '전세계에서 동일한 누진세'면 비용문제는 해결되긴합니다) 둘째로 절대적인 부의 증가 가치는 피케티에게 중요 논증 대상이 아닙니다. 애초에 자본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한 논증이고 현재 자본이 생산성에 영향을 줄만큼 그 파워가 크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최대한 없애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발전은 K&L&A... 등등으로 이루어지는데 현재는 이러한 밸런스가 맞지 않으니 분배를 통해 밸런스를 맞춰야 장기적으로 더욱 안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피케티의 누진세 발언은 과격하지만 그것은 그가 찾은 답(재분배)에 대한 새로운 주장(누진세)입니다. 피케티의 주장은 분명히 유토피아적이고 본인 역시 그것을 인정하는 내용을 적어두었습니다. 또한 피케티의 책은 완전무결한 책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주류 경제학자들의 다양한 논증이 나오는 것이고, 해당 사항에 대한 비판도 정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논증이 맞는지 아닌지, 새로운 해석의 방향을 볼 수는 없는지를 찾는 과정에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해당 블로그의 글은 굉장히 질이 낮은 지엽적인 비판에, 자신의 잣대를 변형시키는 이상한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352 http://media.daum.net/series/112789/newsview?seriesId=112789&newsId=20140924012003509 해당 링크들은 피케티의 인터뷰입니다. 읽어보시면 피케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는 대충 알 수 있습니다.
15/02/24 20:23
친절한 답변 고맙습니다.
1. 사회적인 비용과 실행 시의 비용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듣고 보니 제가 비용이라는 말을 너무 두루뭉실하게 쓴 것 같은데, 정확한 분류를 알고 싶습니다. 2. 즉, 피케티의 주장 자체는 재분배의 중요성을 논증한 것이고, 누진세는 추가적인 별도의 주장으로 봐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15/02/24 20:29
1번의 경우 제가 틀린것일수도 있습니다만
어떠한 경제의 분배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보조금 t 를 사용한다면 해당 보조금을 위한 재원 A가 있어야합니다 경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실시한다면 채권을 발행하거나 채권을 다시 매입해올 돈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정책에는 돈이 듭니다. 그러나 세금을 올리는 것 자체의 비용은 들지 않습니다. (자본 유출과 관련하여 피케티는 제가 알기로 전세계가 같이 누진세를 올리는 방안을 이야기한걸로 압니다) 2. 피케티의 책은 끊임없이 21세기에 자본의 집중화현상이(표현이 안맞을수도 있습니다 오래되서..)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역사적 자료를 통해 유추하는 과정을 밟습니다.여기까지가 A 이를 통해 현재 자본의 집중화 수준이 위험하다 여기가 B,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의 재분배를 실시하여야한다. 여기까지가 C 그러므로 누진세를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하자 여기가 D입니다. 해당 피케티의 논증에서 중요한 것은 A-B-C까지의 고리입니다. D는 피케티 생각에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 는 일종의 자체 해답입니다만, 애초에 피케티를 논의할 때 저 누진세 주장보다는 자본의 재분배까지를 논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5/02/24 20:32
1. 아... 그건 좀... 그 수밖에 없어 보이긴 하는데 좀 나이브한 대책 같군요... 그거 말고 다른 대안은 혹시 언급한 게 없습니까?
15/02/24 20:35
사실 정확히 기억은 안납니다
저는 피케티를 책으로 대충읽고 수업에서 교수님의 공격대상으로 더욱 많이 만난 사람이라서요. 해당 누진세 관련 파트는 좀 대충 넘어갔습니다. 다른분들이 대답해주실겁니다?! ps. 피케티는 스스로도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 합니다 http://skytreesea.tistory.com/105 해당 인터뷰에서 왜 안될거라고 생각하냐고 말하기까지 하죠 크크크크
15/02/24 21:08
(한국을 기준으로) 자산에 대한 누진세의 실행 시의 행정비용을 따진다면, 통합적인 조세정보망 구축 및 관계법령정비를 통한 '금융정보', '부동산', 기타자산정보 의 포괄적 공유에 들어가는 비용과 '금융거래'감시체계 확충에 들어가는 비용, 금융자산관련 정보공유를 위한 '외교적 관계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등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비용이라면 '직접투자된 해외자산의 유출', '해외직접투자'를 통한 국내자산의 유출, 부동산 등 자산시장 침체가능성, 사치성 내구재 시장의 위축(이라지만 이 부분은 해외수입에 의존하므로 유통관련 업종의 위축) 등이 있습니다. 각각의 규모에 대한 추정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15/02/24 23:15
음.. 사실 피케티 책은 대중서라기 보단 학술적 내용이 잔뜩 들어가 있는 내용을 최대한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려고 한것 같습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나 아님 엘리건트 유니버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저 두책은 읽지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흔한 경제 관련 대중 불쏘시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급이지요. 그리고 이 책이 맞는 말을 하지 않는 정도의 대중서라면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달려들었는데 이미 논파되고 너덜너덜해 졌겠지요.
링크해주신 저 블로그의 글을 보고 어이가 없었고, 영어로 읽어서 책을 자기가 제대로 이해 못한걸 피케티 탓으로 돌리는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는데.. 물님이 자세히 잘 설명해 주셔서 넘어갑니다. 그리고 피케티는 불평등을 없앨 이유를 혁명이 일어나면 너무 고통이 심하니까 라고 쓴게 아닌데 제가 간략화 하다보니 저렇게 되었네요. 저도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피케티가 든 가장 대표적인 이유중 하나가 세습을 통한 자본소득의 불평등은 경쟁없이 얻어지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1. 그리고 모든 자본을 통제하자는 통제경제가 아니라, 소득은 다 파악하면서 왜 자본은 그냥 나두는지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자본도 정확히 파악하고 부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누진세를 적용하자 입니다. 그러니까 부의 불평등에 자본이 크게 기여하는데 그건 나두고 소득만 누진세로 제어하는건 도움이 안된다라는 의견이고, 오히려 통제경제적인 공산주의는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듯 해요. 물론 누진세의 비용문제는 무시할 만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피케티는 현 민주주의 + 능력과 경쟁을 통한 부의 분배를 옹호하는 쪽입니다. 일부의 오해와는 다르게 마르크스적 통제경제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멀어요.. 2. 말그대로 정치와 가치판단의 영역이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수 있는건 소수에게 집중된 부의 불평등이 납득가능하지 않을때,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부가 결핍된 다수가 그 사회를 참고 유지할 것인가? 그렇게 불평등이 강화될 경우 계급주의적 사회로 가든가 아님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까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15/02/24 20:21
사회과학도 '과학'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네요. 물론 데이터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로써 부정하기 힘든 사실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좋은 이론일수록 증거에 철저하기 마련인데, 300년의 증거라면 충분한 노력으로 평가받을만 한 것 같네요.
그리고 읽어야만 할 책을 이렇게 정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크크
15/02/24 20:57
이 이야기도 좀 의견이 많은데 사회과학도 과학은 많는데 좀더 따지면 자연과학쪽과는 엄연히 차이점이 있다고 해야하나...
애초에 경제학 시작과 흐름, 그리고 자연과학과의 관계등을 봤을때 사화과학은 엄밀히 이야기해서는 다른 분야이지요.
15/02/24 22:03
자연과학과 엄연히 다르죠. (그러니 다르게 부르겠죠) 그래도 과학이라는 같은 테두리 안에 있다고나 할까요.
고등학교 때 이과와 문과로 나누는데, 철학, 문화/예술, 비평이 문과라면 사회과학은 오히려 이과가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걸 뭐라그래야 되나... 문학 보다는 자연과학과 더 가깝다고나 할까요.
15/02/24 21:08
모바일이라 댓글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얘기가 없는 것 같아 첨언합니다. 위의 맨큐의 주장과 함께 피케티 데이터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위에 내생성 문제 언급은 있는 것 같고요. r>g 인데 그래서 뭐 어쨌다는거냐... 뭐 이런 거죠.
15/02/24 23:01
Shandris 님과 retara 님의 댓글을 읽어보고 피케티 비판을 찾아보니 몇가지가 있어서 댓글로 추가합니다.
경제전공이 아니라서 그냥 이런저런 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정도만 찾아보느라 일단 엔하위키에 정리된 내용이나마 가져와 봅니다. 얼마나 맞고 틀린지는 제 지식 범위를 넘어나네요... 참고만 해주세요 https://mirror.enha.kr/wiki/%ED%86%A0%EB%A7%88%20%ED%94%BC%EC%BC%80%ED%8B%B0 피케티의 주장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할 경우 우선 인도의 개발경제학자인 데브라즈 레이(Debraj Ray)는 Bonnet et al(2014)라는 논문을 소개하면서 피케티가 제시한 자본 중 부동산을 제할 경우 r과 g간의 우세가 사라진다고 한 바 있다. 또한, 자본수익률은 말 그대로 자본을 1원 투자하면 거기서 추가로 얼마나 얻는지의 문제고, 성장률은 생산에 얼마나 투자했건 상관없이 오늘 생산한 것이 어제에 비해 얼마나 더 많아졌는지의 지표이므로 전혀 별개라는 개념상의 미스를 지적했다. 아울러, 자본투자는 저축을 해야 가능하므로 r에는 당연히 g가 반영된다고도 햇다. 또, 자본가들이 소득의 많은 부분을 더 저축한다는 피케티의 가정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17] 퍼 크루셀(Per Krusell), 토니 스미스(Tony Smith)는 우선 저축 성향에 대한 가정이 비현실적임을 제시했으며, 오히려 실증분석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이 최근 들어 상승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18] 아울러 피케티가 순저축률을 양으로 설정한 점을 두고 순(net) 개념과 총(gross) 개념을 착각한다고 한 바 있다.[19] 또, 피케티의 이야기와 달리 저성장일 때 저축률은 약하게 하락했으면 하락했지 상승하는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Friedman (1957), Cass (1965), and Koopmans (1965)의 연구실적으로 개발해낸 벤치마크 이론에 따르면 순저축율은 0%라는 것이다 미국의 거시, 공공경제학자인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의 경우 피케티의 데이터 자체에 근본적인 착시효과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선 과거와 마찬가지로 장남이나 어느 한 명이 선친의 유산을 전부 상속받는 시스템 하에서는 피케티 말대로 상속으로 부의 분배가 악화되지만 오늘날의 균분 상속제 하에서는 결국 자녀나 배우자, 친인척 수에 따라 한 사람당 배분되는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속이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는 약화된다. 그리고 개인은 청장년기에 일을 하고 노년기에 그 저축의 상당수를 소비하므로 유산 역시 개인이 벌어들이는 평생부에 비하면 적어진다. 이리하여 총 부의 성장률과 소득의 상승률은 비슷해진다. 아울러, 오늘날의 고소득층 중 적지 않은 이들은 따로이 법인을 만들어두고 그곳으로 소득을 이전시켜 세부담을 회피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이 경우 감세[20]가 있을 경우 부자들은 이러한 법인으로 소득을 분산시킬 유인이 보다 악화되고 따라서 개인 소득으로 전환해 신고하면서 오히려 부의 분배가 악화되는 듯한 착시효과를 유발한다고 했다. 아울러 피케티의 분석이 중산층, 저소득층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을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로런스 서머스는 순저축으로 볼 경우, 오히려 요소간 대체탄력성이 1보다 적다고 한 바 있다.[21]이는 노동 한 단위당 자본이 증가한다면 오히려 자본수익 대비 노동수익(임금)이 그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의미다.[22] 거기에 더해 부동산을 자본으로 본다면 자본의 축적, 즉, 건물 건설 증가는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폭락시킨다. 현실적으로 부동산 공급곡선은 비탄력적인바 공급 증가에 따른 가격폭락의 피해는 전부 부동산 공급자가 지게 된다.[23] 아울러, 자본 보유자들이 소득의 대부분을 저축한다는 가정에 관해서도 자가주택 보유자들은 결국 그 주택에서 생활하므로 자기가 보유한 주택의 귀속임대료를 매달 소비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가 그 집에 안 살거면 남에게 월세를 줄 수 있고, 결국 그 사람은 기회비용 관점에서 그 월세만큼을 지출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같이 자기 주택 보유자들의 비중이 높은 곳에서 저런 가정은 더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카탈루냐 출신 거시경제학자 살라-이-마틴[24]은 첫째로 r>g가 자본주의 국가건 공산주의 국가건 상관없이 일어난다고 한 바 있다. 둘째로 펠드스타인이 지적한대로 자본은 결국 소비, 상속의 과정을 거쳐 다 까먹게 되고 거기에 더해 r>g가 성립한다고 해도 자본소득자의 면면은 계속 바뀐다고 하면서 r>g는 불평등 증가와 상관없다고 했다. 셋째로 피케티의 예상과 달리 2012년의 전세계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 역시 지적했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해왔다는 연준의 자료를 제시했다. 넷째로 전세계적인 불평등이 개도국의 성장으로 줄어든 점을 지적하면서 선진국만을 분석한 점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불평등이 왜 경제적으로 해악인지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역시 지적했다.
15/02/25 10:27
두캉카님이 소개하신 반론들이 너무 많아 일일히 다루기는 힘든데 (그럴 능력도 안 되고) 일부라도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 성장률 g는 장기적으로 2~3 %도 되기 힘듭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한 세대마다 두 배로 증가하는 정도입니다. 기하급수적인 특성을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수천 년은커녕 수 백년도 갈 수 없다는 것은 계산해보지 않아도 당연합니다. (피케티의 관점은 수백 년은 고려하는 장기적인 관점이니까요.) - 자본 수익률 r은 수익을 내는 어떤 물건의 시장 가격이 얼마냐 라는 질문을 뒤집은 것과 동일합니다. 일 년에 1000만원 수익을 내는 그 어떤 물건이 있다면 그것의 가격은 얼마나 적당한가? 에 답을 하면 그것의 수익률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주식에서 PER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 수익률 20%는 (가격이) 많이 저평가, 1%는 많이 고평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수익률의 범위를 조금 넓게 잡으면 3~10% 사이일 것입니다. 이러한 자본 수익률은 (저는 사람의 수명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만, 그 설명은 생략하고) 대체로 장기적인 성장률을 상회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 저도 피케티가 논리를 펼 때 저축률을 사용한 것은 조금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저축률을 들고 올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반론처럼 g와 r은 다른 개념이므로 직접 비교하는 것은 조금 이상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g가 r보다 큰 사회에서는 축적된 자본보다 지금의 현 세대가 열심히 사는 것이 더 중요하고, g보다 r이 큰 사회에서는 축적된 자본이 보다 중요해진다는 결론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과 관계를 하나의 식으로 설명 혹은 압축하려 하다 보니 피케티가 조금 무리한 짓을 했다고 보는데, 결론은 여전합니다. - 굴리는 자금의 규모가 커질수록 수익률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피케티는 여러 가지 예로 실증합니다. 물론 정말 막대한 규모가 되면 오히려 수익률이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예를 들어 100만원 ~ 1000억원 사이 규모의 자금에서는 체감이 아닌 체증이 적용됩니다. 결론은 부익부입니다. 부의 개념을 상대적으로 본다면 부익부는 곧 빈익빈이기도 합니다. - g<r은 인간 사회의 본성이므로 자본주의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로써 유도되는 현상은 빈익빈 부익부, 계층화이며, 왕정시대,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모두 망라합니다. 피케티의 주장은 빈익빈 부익부를 현재의 주류 경제학만으로는 개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피케티는 불평등 자체를 문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지나친 불평등을 문제시하는 거죠. 지나친 불평등이 왜 해악인지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식의 반론을 하니까 기존의 경제학자들이 불신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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