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쩍 영화관 나들이에 재미를 붙이신 부모님 덕분에 잔잔한 화제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를 보고 왔습니다.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다큐영화였지만, 단순히 노부부의 사랑이 주는 감동에서 그치지 않는 성찰이 담긴 영화였습니다.
[좋았던 점]
1. 기존의 다큐멘터리를 무리 없이 재구성하여 만들어 낸 수작
본작은 지난 2011년 11월 인간극장에서 방송한 '백발의 연인'에 나온 사연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많은 이들이 아는 사연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에 자칫 복붙영화로 보일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극장에서 보여주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훈훈함을 영화 초반부에 적절한 분량 배분으로 담아낸 후에 이후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인간극장을 복붙해서 꾸며낸 영화' 라는 한계에 부딛칠 수 있는 상황을 유연하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2. 단순한 감동과 슬픔이 아닌, 담담함이 주는 것
영화 제목으로도 그렇고, 인간극장 방송 후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조병만 할아버지께서는 98세라는 고령을 이기지 못하시고 노환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무기로 사용하는 비겁한 신파' 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신파를 넘어서서 시시각각 닥쳐오는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사태를 받아들이는 할머니의 담담함에서 오히려 상당한 것들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영화의 백미 장면이라고 꼽고 싶은 할아버지의 수의를 널어놓는 할머니의 초연한 표정은 정말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사람의 절절한 심정이 그 담담한 표정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세상의 그 어떤 연기자도 차마 담아낼 수 없는 말로 형용하지 못 할 표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 진부한 수미쌍관이지만 그게 더 좋았다
영화의 시작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할머니께서 곡을 하고 계시는 부분이 짤막하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할머니께서 다시 무덤가에서 곡을 하시는 부분으로 마무리가 되죠. 사실 이 영화를 보는 왠만한 사람들이야 죄다 내용을 짐작하고 있으니 별로 큰 상관은 없겠지만, 처음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는 '굳이 곡 장면을 앞에 집어 넣었어야 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마지막에 할머니께서 하시는 기나긴 곡을 보면서 오히려 처음에 넣어둔 장면 덕분에 마지막의 곡이 좀 더 부각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의 곡으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길래?' 라는 궁금증을 주고, 마지막의 곡으로 '저렇게 될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상황을 만들어 낸 것 같았습니다.
4. 스탭롤의 노래
그냥 꼭 들으세요.
[아쉬웠던 점]
1. 있으나 마나한 음악
워낙에 내용에 몰입하게 되는 영화인지라 애초에 음악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인간적으로 음악은 너무 짜게 집어넣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음악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비중이 없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즐거이 노니시는 장면에서라도 조금은 음악을 잘 집어넣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슬픈 장면에서만 고명 얹듯 조금씩만 뿌려대니 없는 것만 못한 감질남을 선사했습니다.
2. 굳이 자식들의 갈등을 집어넣었어야 했는가
영화의 중간에는 많은 집들에서 흔히 나오는 자식들의 갈등이 있습니다. 어느 집안에서나 나올 법한 '난 부모님께 이거저거 했는데, 댁은 뭘 했수?' 라는 싸움이죠. 다큐 영화이기에 실제로 있었던 일일 것이고, 나름 영화의 주요 타겟인 중장년층을 겨냥한 장면이긴 하겠습니다만, 그 장면은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 에서 심히 동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다만 유족분들께서 영화를 보셨다던데, 제작진들이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싸우셨던 분들도 영화에서 나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을 보셨을텐데, 그 때의 감정은 정말...
독립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했던 '워낭소리' 와는 다르게 본작은 이미 인간극장에서 입소문을 타고 그 사연의 감동과 절절함을 인정받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감독은 인간극장의 방송에 나왔던 분량은 많이 쳐내고 이후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시게 된 부분을 주요 부분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리수로 보이지 않고, 상당히 적절한 구성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수작으로 불리기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 흔한 눈물 빼는 감동과 신파에서 그치지 않고, 7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한결 같이 한 사람만을 사랑해 온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준비하는 자세가 보여주는 형언하지 못할 감정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이시라면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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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인데 판타지같아서 주변 현실을 보여주고 그 위에 사랑을 올려 놓았을 때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애들 옷을 사길래 손주들 옷 사는 즐 알았는데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죽은 자식 나이 기억하고 할아버지 죽기전에
안타까움을 달래보려고 한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또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죽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이 보이는데 아무도 모시는 자식이 없으면 관객들이 자식 욕만하고 이해하기가 힘들겁니다. 그러한 현실이 특수한게 아니라 우리가 처해있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