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종류 중 이성 간 사랑이 있습니다. 흔히 연인 관계라고들 말합니다만, 우리는 살면서 이런 사랑을 하고, 앞으로도 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영원히 못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20살 때 만난 그(녀)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합니다.
‘사랑해’
‘죽도록 사랑해’
‘너만을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그 사람은 5년이 지나고 사랑한다고 말했던 상대방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또, 또...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저 말은 밥먹듯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아끼고 아끼다 결정적일 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정말 죽도록 사랑한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25, 여자는 24입니다. 둘 사이에 이제 5개월 된 예쁜 딸도 하나 있습니다. 둘은 혼인 신고만 했을 뿐 남들이 말하는 결혼식이란 걸 하지는 않았습니다. 않았다기 보단 못했습니다. 남자의 어머니는 일찍 5살된 아들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홀아비가 된 아버지는 이 남자를 홀로 키우고 돌아가셨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아버지 형상으로, 밥보다는 술을 더 많이 마셨고, 하루 벌어 하루 끼니를 해결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만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을 닥치는대로 했습니다. 자기 용돈에 밀린 방세, 아버지 술 값, 약 값 등 간간이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을 가까스로 이 남자는 유지했고, 그러다 결국 군대에 갔고 제대 후 얼마 안돼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집주인이 싸늘한 아버지 주검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방 안은 술병과 김치 조각이 널브러져있었고, 며칠 동안 불을 안 땠는지 시멘트 바닥 처럼 방바닥은 딱딱했습니다. 아들은 눈물을 흘릴 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방 세 타령은 ‘사람이 너무한다’할 정도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고, 아직 군 생활이 남았기에 이 남자는 간신히 아주머니를 설득했습니다. 재대 후 밀린 방세를 드리겠다고. 이미 보증금 500만 원을 날린 건 오래전 일이지만 월세 15만 원은 상당히 버거운 돈이었고, 군인 신분이라는 한계는 이 남자를 절망의 길로 안내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재대 후 이 남자는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먹어야 사니까요. 다행히도 멀쩡한 몸 하나는 있기에 그는 주유소, 신문배달, 세차장이라는 세 가지 일을 하면서 밀린 방세와 끼니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는 몸소 치열한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주유소에서 경리 업무를 하는 아가씨였습니다. 남자 보다 한 살 어린 여자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역시나 월세를 밀리지 않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구부러진 허리와 다 낡아 빠진 무릎에 파스를 붙여가며 근근이 버티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주유소에 만나 서로 호감을 갖기 시작했고,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은 결국 연인이 되었습니다. 신문배달 20만 원, 주유소 50만 원, 세차장 15만 원 도합 85만 원의 돈은 이 남자에게 넉넉한 돈이었습니다. 월세도 내고 끼니도 해결되며 저축도 가능했고, 가끔 친구들과 호프집에 갈 형편도 됐습니다만,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는 걸 그는 몰랐을 겁니다. 이 여인은 60만 원의 월급이 적었습니다. 어머니 월급은 고스란히 약 값으로 나갔고 여인의 월급으로 월세와 끼니를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각종 세금과 연료비 등은 그녀에게 큰 산처럼 느껴졌고, 꼬박꼬박 나가는 교통비는 너무 아까운 사치처럼 보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1년 정도의 연애를 하면서 여자가 손수 만든 반찬을 남자의 집에 갔다 주고, 남자는 월 10만 원씩 꼬박꼬박 여자의 통장으로 저축했습니다.
"이제 우리 합치자. 어머니도 점점 몸도 안 좋아지시고, 우리 아기도 생겼으니까. 지금 나 사는 집은 보증금도 없으니까 우선 내가 들어가서 같이 열심히 살자. 그러면 곧 돈도 모으고 방 2칸 짜리로 이사 갈 수도 있을꺼야”
남자의 말은 여자의 가슴을 적셨고, ‘희망’이라는 큰 선물을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여자는 꼭 다짐했습니다. 우리 둘은 남들처럼 헤어지지도 말고, 영원히 함께 하자고. 남자 또한 약속을 하고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래 살진 않았지만, 널 너무 사랑한다. 이렇게 가슴이 벅찬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 사랑해”
“오빠, 나도 사랑해. 우리 영원히 사랑하자”
한 방에 남자와 여자, 여자의 어머니, 그리고 아기. 이렇게 네 사람은 한 방에 오붓하게 살았습니다. 출산으로 여인이 일은 못했지만 남자는 수입이 85만 원에서 95만 원으로 늘어 마치 10만 원 는게 아내가 일을 안 해도 될 만큼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인의 어머니 또한 일하는 시간을 줄이며 몸을 회복할 여유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석 달 정도 지나면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시고 아기를 돌보고 아내가 일을 다시 시작할 것으로 이 가정은 계획을 잡았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도 남자는 밤11시에 일이 끝나고 새벽 3시에 일을 나가는 패턴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말입니다.
아기가 아토피에 매일 보채고, 어머니 무릎이 도저히 서 있을 수 없게 만들고, 남편이 잠을 매번 설치고 눈이 땡그래지고, 아내의 몸무게가 35k에을 육박해도 이들은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곧 아내가 다시 주유소 경리 일을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남자의 수입 95만 원에 아내의 수입 60만 원이 합쳐지면 155만 원이 되니까요. 155만 원이면 저축이 70만 원 이상 가능할 것이고 이렇게 2년만 고생하면 1700만 원의 거금을 만질 수 있으며, 그럼 방 2칸 자리로 이사를 갈 수 있을테니까요.
아마 제 기억으로 1998년 12월이었을 겁니다. 남자의 수첩에 나온 전화번호를 보고 저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경찰 말로는 사고 발생 시간은 새벽 2시 쯤으로 추정되고, 여자는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연탄 아궁이 옆에 쓰러져 있었고, 남편은 방안에 누운 채, 어머니는 방문과 부엌과 연결된 작은 계단에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어머니가 가스 냄새를 맡고 밥 준비를 하려던 자신의 딸에게 가스가 새는 것을 말하려다 쓰러진 것 같다고 했고, 남편은 가장 먼저 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뜬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부검 후 알게됐지만 남편은 이미 위암 말기 증세이기도 했었구요.
연탄불에 구워줬던 조기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시기에 연탄불에 조기 구워 먹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니까요.
어제 점심에 조기구이 먹고 잠시 생각난 이야기를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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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날이로군요. 늘 세상이 해피엔딩은 아니고, 현세의 땀방울이 현세에서 꼭 보답을 주리라는 법도 없기는 하다는 어쩌면 당연한 동시에 참 가슴 사무치게 슬픈 현실.
가슴이 먹먹한 것이, 잠시 하던 일을 모두 멈추게 만듭니다.
그러고보니 딱 말씀하셨던 그 무렵, 1998년 늦가을 그 어느 날, 막노동하는 남편을 비명횡사에 보내고 이제 여섯식구가 어찌 먹고 살아야 하냐며 오열하던 판자촌 쪽방살이 급우 어머님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화꽃 한 송이도 놓을 정신이 없던 영정 앞은 썰렁하기가 그지없고 문상올 사람도, 와봐야 대접할 것도 없어 담임선생님이 들고 가셨던 주스를 그대로 다시 대접받고 나왔던 기억이 나는군요.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