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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1/14 12:07:47
Name Siestar
Subject [일반] 건조한, 너무나도.
-십변잡기& 잡소리 입니다.


어릴적 저는 무척이나 다혈질의 성격이어서 친구들과 주먹다툼을 하는 경우가 잦았고 본의아니게 사고를 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진정되고 난 후에는 굉장히 후회를 하며 다혈질인 성격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누구나 그렇지만 저는 주위사람 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 이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작은일에도 크게 기뻐하거나 상심하는적이 많았었고 나중에 감정이 식은 이후에는 격하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에도 사후엔 이해할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기괴한 행동을 하는경우도 많았습니다. 정신과에 가는것은 겁이나고 혼자 책을 뒤적여보고 스스로를 조울증이라 진단했었지만 실제로 어땟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던중 고등학생때 어쩌다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안되는 머리로 닥치는대로 철학책을 구해서 읽었었습니다. 그다지 좋다고 할수도 없는 머리로 이런저런 철학서적들을 읽었지만 가장 좋아했던 철학자는 니체와 칸트 였었습니다. 이제 와선 그 내용들의 일부조차도 가물가물 합니다만 당시에 칸트에 대해선 숭상이라고 일컬을 정도의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알음알음 듣던 그의 몇가지 일화들을 항상 머리에 새겼고 이성 그 자체를 숭배하게 되었고 세상의 모든 문제는 그것으로써 해결될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가슴에 비해 압도적으로 약했던 자신의 머리에 대해 좌절을 하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해 저주하며 이성적으로 사고 하자 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네였습니다. 건조해지자, 냉정해지자, 쿨해지자. 내 감정을 죽일수 있다면 내가 겪는 가슴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해방될수 있을거야 라고 자신을 설득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타고난 천성을 바꾼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고 어느새 자신의 가슴을 죽이기로 다짐했던 사실조차 잊어 버렸습니다. 그 로부터 몇년후 제 주변에 태풍이 휘몰아치게 됩니다. 그 태풍은 저와 제 주변에 너무나도 커다란 상처를 남긴채 사라졌고, 그 상처를 메꾸는것에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시간은 약이 되듯이 영원히 낫지 않을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 상처는 어느샌가 머리속에서 떨쳐 낼수 있게 되었고. 가끔가다 한번씩 생각이 나더라도 쓴웃음을 지으며 털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에 돌아올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자신이 슬픔 이나 기쁨을 느낀적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랫만에 열어제껴본 가슴에는 무척이나 건조해져 버린 제 가슴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척이나 기뻣습니다. 오래전 포기했었던 바람이 이루어졌으니 말이죠. 오랜만에 꺼내 입은 재킷속에서 지폐뭉치를 발견한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더 이상 저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날뛰는 감정에 휘둘려 극심한 후회에 빠지는 일도, 울컥하는 감정에 삼켜져 일을 그르치는일도 거의 찾아볼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만은 않는 법이죠. 그 이후로도 계속 시간은 흘러갔고 그에 따라 가슴은 점점 더 건조해져 갔습니다. 이게 아닌데, 이건 아닌데, 이렇게 되는것은 원치 않았는데 하며 계속 가슴에 물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수고의 보람도없이 가슴은 자꾸만 건조해져 갔고 결국엔 앙상하게 메말라 버렸습니다. 싱그러웠던 가슴이 있었던 자리에는 바싹 발라버린 무언가의 물체가 자리하고 있을뿐이었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어떤 감정의 변화도 없는 인간이란것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누굴 만나든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두근거림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스스로가 자신은 음식을 연료로써 움직이는 로봇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그 어떤것을 해도 바싹 말라버린 감정을 되살릴수 없다고 스스로 체념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래전 자신이 바라던 이상향이 된것이 아닌가 하고 예전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일치한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약간의 쓸쓸하단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이미 그에 대한 감상을 품을 가슴은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 였기 때문이죠.



그 이후로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하루 하루 살아집니다.

세상엔 정말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많은것 같습니다. 1년 전에도, 며칠전에도, 그리고 2시간전에도 느꼈습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 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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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14 12:11
수정 아이콘
아까 글은 아까 글로 접기로 하지요.

힘든 일이 많으신가 봅니다. 근데 뭐..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메마른 사람이라고 느껴지다가도, 몇 달 지내다 보면 다른 순간도 오고 그러더군요. 저도 밥먹고 일하고 승패를 겨루고 밥먹고 일하고 ... 무한 반복하는 삶이 된 것이 몇 년 전인지 이제 기억도 안나지만, 그래도 가끔 길에서 초콜렛 줏어먹는 다람쥐 보면서 빙긋 웃고 그럽니다.

시에스타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십쇼.
앙앙앙
09/11/14 19:26
수정 아이콘
아까 아침에 글 봤었고, 대략 60 리플 정도까지는 확인했었는데, 그 후에 다시 들어오니 글이 삭제 되었군요. 삭게 가서 확인해보니 댓글이 더 많이 달린 듯 한데....

님이 하고자 하는 말은 어렴풋이나마 이해했습니다. 다만, 표현에 있어서, 그리고 그 표현에서 느껴지는 글쓴님의 태도에 있어서, 많은 pgr 분들이 공감하지 못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만 더 윤기 있게, 그리고 동시에 맥락을 정확하게 적어주셨다면, 좋은 "다른 관점의 글"이 될 수 있었다고 보는데 아쉽네요.

앞으로도 종종 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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