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짤려서 2편으로 나눠서 나머지를 올립니다.
1편 - 
스페인 재정위기와 관련해 이런 독특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지역이 바로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입니다. 시장의 강도짓에서 나타났듯이 안달루시아의 재정은 바닥으로 떨어져 지난달 중앙정부에 49억 유로 상당의 구제금융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안달루시아의 경제와 사회는 썩 좋은 편이 아닙니다. 과거 아메리카 식민지에 의존했던 경제는 식민지의 독립과 함께 타격을 입기 시작했고 급기야 영국에서부터 내려오던 산업화의 물결이 남쪽으로 내려오기에 너무 지친 나머지 안달루시아에서는 실패를 거듭하게 되면서 안달루시아는 경제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토지 소유의 집중화로 인한 무토지 일용직 노동자들은 빈곤층으로 몰리게 되고 그리고 이들 빈민층은 끊임없이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어느 곳보다도 문맹률이 높으며 확고한 정치 리더쉽이 확립되지 못해 무정부주의 상태가 만연한 지역입니다. 시장의 강도짓을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취지는 기특하나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지역의 정치와 행정력이 얼마나 부재한가를 알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현재의 안달루시아는 조금은 초췌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왕년은 어느 누구보다 화려했던 지방입니다. 안달루시아의 위치를 한 번 보시죠. 내륙으로는 스페인의 다른 지방과 유럽으로 연결되어 있고 해안으로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함께 접하고 있습니다. 이 두 바다가 만나는 지브롤터 해협은 불과 9마일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안달루시아와 아프리카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안달루시아는 '신세계의 관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심지어 동방의 문화까지도 스페인 내륙을 넘어 유럽 대륙으로 넘어서기 위해서는 바로 안달루시아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구요. 특히 15세기의 탐험가들에 의해 대서양 항로가 열리면서 안달루시아는 신세계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됩니다. 또한 안달루시아는 비옥한 토지와 풍요로운 바다와 풍부한 자원으로 치장하고 있어 외국인들과 타인종들이 바로 이 안달루시아에서 정착하고 픈 강한 욕구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안달루시아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어울리게 되었고 그리고 이로 인해 복잡한 역사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 안달루시아의 대표적인 세 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안달루시아의 매력에 빠져보도록 합시다.
1) 코르도바 “평균 키에 몸 곳곳에는 점이 있었으며 악취를 풍겼고, 암갈색의 머릿칼에, 매력적이라기보다는 평범한 풍모였다. 눈은 유약해 보이는 파란색이었고, 목은 굵었으며 배가 나왔고, 다리는 매우 가늘었다.”
여러분 주위에 이런 외모를 가지신 분이 있으신가요? 일단 눈이 파란색이니 국내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겠군요. 아마도 그런 분이 있으시다면 그분은 바로 로마의 ‘네로’ 황제를 닮은 것입니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12황제 열전>에서 네로 황제를 저렇게 묘사했으니까요.
네로는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된 역사적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네로는 로마를 불태우고 창녀와 결혼하기 위해 어머니와 아내를 살해하고 기독교인을 무자비하게 박해한 인물로 나오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네로의 이미지도 영화 속의 네로로 굳어지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네로가 로마의 대화재를 보며 악기를 연주하며 띵까띵까 한 것으로 나오지만 다른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네로는 로마 대화재 당시 로마에 있지도 않았으며 로마가 화마에 휩싸이자 이에 흥겨워 연주를 한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불길을 막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네로 황제에게는 세네카라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세네카는 당시 부루스와 함께 로마의 실질 통치자였으며 다수의 철학 저작과 비극을 남긴 아주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마지막은 네로에게 자살을 명령 받고 죽게 되죠.
그런데 이 세네카라는 인물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중에 한명입니다. 바로 이 세네카의 고향이 안달루시아에 있는 코르도바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이 이베리아 반도로 팽창해 나갈 때 첫 관문은 역시 안달루시아였고 안달루시아는 로마가 침략할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로마에 통합되게 됩니다. 로마는 이베리아반도를 세 곳의 행정구역으로 나눠 통치하였는데요 현재의 포르투갈 지역을 포괄하는 루시타니아, 이베리아 반도 북부인 타라코넨시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살펴보고 있는 안달루시아의 지역인 베티카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이 베티카의 행정수도가 코르도바였습니다. 이 코르도바에서 인물이 난 샘이지요. 물론 베티카의 다른 도시였던 이탈리카에서는 로마 황제인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야누스를 배출했지만 말입니다.
코르도바는 로마시대에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지만 실제 최고의 전성기를 구했던 시기는 로마의 점령기가 아닌 이슬람 점령기인 9~10세기 경이었습니다. 바그다드의 칼리프에서 독립한 코르도바의 칼리프는 코르도바를 서구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곳으로 변모시켰죠. 당시에 파리의 인구가 약 2만명이었고 런던의 인구는 더 적었습니다만 코르도바의 주민 수는 무려 10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대사원은 계속 확장되었는데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코르도바의 자랑 메스키타(Mezquita) 회교 사원입니다.
(메스키타)
메스키타 사원이 사람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슬람 사원와 그리스도교 성당이 동거한 유일무이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메스키타 사원은 후기 우마미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의 이슬람 사원에 뒤지지 않는 규모의 사원을 건설할 목적으로 785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코르도바의 발전과 함게 848년부터 확장을 시작해 2만 5000여 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라곤의 페르난도가 코르도바를 다시 점령했을 때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게 되었고 이후 카를로스 5세가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을 사원 중앙에 지으면서 현재의 메스키타가 됩니다. 안달루시아만의 독특한 문화 용광로다운 매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그라나다
아마도 그라나다 제국이 없었다면 카톨릭 공동왕이었던 페르난도와 이사벨의 레콘키스타 완성과 스페인 제국 완전한 건설은 200년 앞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몇 세기 동안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이슬람의 힘이 강했다고 할 수 있겠고 그라나다가 스페인 이슬람 문명의 마지막 보루임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카스티야의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그라나다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라나다에는 아주 귀중한 요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요새가 바로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알함브라 궁전 입니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성벽은 2km, 길이는 740m, 넓이는 142,000㎡에 달합니다.
(알함브라 궁전)
알함브라 궁전은 ‘중세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 혹은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그 환상적인 모습이 관광객들을 압도하며 더 나아가 이슬람 문화에 대한 경외감까지 느껴지게 한다고 합니다. 정말 개인적으로 꼭 가고 싶네요.
3) 세비야 그라나다가 함락되고 대항해시대를 맞아 스페인의 전성기가 시작될 즈음에 가장 번화했던 도시가 바로 세비야입니다. 카스티야가 스페인을 통일하면서 마드리드가 모든 권력을 쥐었지만 아메리카로 향하는 함대와 상선 선단을 지휘하는 상무청의 본거지는 세비야였습니다. 세비야는 당시 15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는데 물론 마드리드보다 더 인구가 많았으며 특히 세비야에 자리잡고 있던 조폐국에서 주조한 금화와 은화는 우수한 품질 덕분에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축제의 도시 세비야에서 빼 놀 수 없는 것이 바로 안달루시아의 민속 춤인 플라멩고(flamenco)입니다. 플라멩고는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한 집시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는데요 이들이 방랑생활을 하면서 느껴던 슬픔을 노래와 춤으로 승화하여 표현한 춤입니다. 발을 힘차게 구르며 손뼉을 치는 이 열정적인 몸동작은 안달루시아의 기풍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엘 클라시코보다는 유명하지 않지만 안달루시아 더비인 세비야 vs 레알 베티스도 매우 유명합니다. 무엇으로 유명하냐고요? 바로 세계 최고의 폭력적이 더비로 유명합니다.
이 안달루시아 더비에서는 항상 기마경찰들이 출동하고 경기 후 삼엄한 경기바 따르는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안달루시아 더비의 배경에는 노조 vs 반노조의 격렬한 충돌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단 당시 세비아는 노조를 대표했고 베티스는 지주를 대표했다고 합니다. 두 팀은 1915년 2월 8일 처음 맞붙어 세이바의 4-3 승리를 시작으로 90년 넘는 기간 동안 그 어떤 더비보다도 열정적이고 치열한 경기를 펼쳐왔습니다. 2007년에는 당시 세비아 감독이 베티스 관중이 던진 플라스틱병에 맞아 실신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카탈루냐가 분리 독립을 원하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자신들의 만든 경제적 부가 가난한 지방으로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그 가난한 지방이 바로 안달루시아입니다. 안달루시아는 과연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몇 년 안에 제가 안달루시아의 재건을 관광객으로서 도와야겠네요 ^^
이것으로써 엘 클라시코로 시작한 스페인 지방에 대한 정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P.S) 20대 초반 기타에 살짝 빠졌을 때 친구 놈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멘붕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요 음악적 재능도 평균 이하에다가 손기술마저 없던 저는 ‘트레몰로’ 주법을 몇 번 시도하다가 걍 포기했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음악 들으시면서 심신을 달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