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초기, 조선과 명나라의 애매한 관계는 어느정도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말하자면 두 나라는 상당히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이 당시 오고간 이야기를 보면, 문자 그대로 명나라쪽에서 "친다? 너 그러다 맞는다" 라고 하면,
조선쪽에서는 "어쩌라는거냐" "저 인간 지-랄병이 또 도졌는데 그래도 우리가 참아야지 어쩌겠냐" 는 식의 대단히 노골적인 언급들이 실록에 상당히 자주 남아 있어, 살펴보는 쪽에서는 꽤나 재미 있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명나라 초기, 조선과 명나라가 신경을 곤두세운 문제는 바로 여진족 문제였습니다. 여진족에 대한 영향력 싸움으로 두 나라는 굉장히 신경전을 벌였는데, 급기야 주원장은 굉장히 노골적으로 "너, 자꾸 그러면 나에게 맞는 수가 있다." 라며 협박을 가해왔을 정도입니다.
당시 주원장 쪽에서 이성계에게 보낸 문서 내용이 이러한데, 특히 막판의
"어찌 그대의 고려에서 속히 병화(兵禍)를 일으키는가? 짐은 또 장차 상제(上帝)에게 밝게 고(告)하고, 장수에게 명해서 동방을 정벌하여 업신여기고 흔단을 일으킨 두 가지 일을 설욕(雪辱)할 것이오."
라는 부분은 간단하게 말해서 '군사 보내서 너 치겠다. 그러니까 개기지 마라.' 는 표현 입니다.
(주원장의 경우, 이런 직접적인 협박을 상당히 자주 사용했습니다. 일본 쪽에서도 '공격 하겠다' 는 운운을 한 적 있고, 카네요시 친왕이 상당한 명문으로 이를 반박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성계는 소위 잠저 시절부터 꽤나 꾸준히 반원, 친명적인 태도를 보인 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성계의 선조가 원나라에 부역하던 입장이라, 원나라와 선을 싹 긋는 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성계를 지지하는 사대부들이 명나라를 지지하는 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러한 이성계도, "너 친다?" 라는 말에는 순간 울컥했는지, 굉장히 극단적인 발언을 내뱉습니다.
이 당시 이성계는 아주 직접적으로 "주원장은 사람 잘 죽여서 대신들하고 장수들이 남아난 사람이 없다." 는, 후대에서는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대놓고 명나라 황제를 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원장은 1390년, 호유용의 옥에서 수천명의 사람을 죽였고, 바로 이 언급이 나온 1393년에 남옥의 옥에서 역시 수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 소식은 조선에서 전해졌는지, 이성계는 주원장이 장수하고 대신들 잘 죽였다는 부분을 까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경우,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반대가 되는 무인 세력에 대해서는 꽤 강경한 태도로 숙청을 한 편이지만, 대신들에 대해서는 좀 위험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신임을 보인 편이었습니다. (결국 그 반작용으로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한편, 여기에 더해,
"황제라는 사람이 작은 나라 하나 못 갈궈서 뜯어내려는게 끝이 없는데, 이제 별것도 아닌데 죄라고 묻고 나에게 따지니 이건 어린이 협박하는 공갈꾼이나 할 짓이다."
라는, 문자 그대로 자기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하며 주원장을 욕하기까지 합니다. 중화질서의 일인자인 중국 황제에게 "힘 쎄다고 괜히 시비나 걸면서 어린이 협박하는 공갈꾼 놈" 이라고 욕을 한 셈이니 보통 수위는 아닌 셈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직이 이성계에게 "그래서 어쩌시려느냐." 라는 말에는, "내가 더 조심해서 모셔야지 어쩌겠느냐" 라는 식으로 삭이면서 대꾸했습니다.
그런데, 주원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선에 대한 경고' 차원이 아닌, '이성계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퍼붓습니다.
1593년 12월 8일에 도착한 주원장의 글은 "고려에 이성계는 왜 해마다 변경에서 말썽이나 부리고 있느냐" 는 글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제딴에는 자기 나라가 바다하고 산으로 막혀 있는 험지라고 그거 믿고 우리나라가 한나라, 당나라라고 여기는 모양" 이라며 명나라가 조선을 치면 막을 자신이 있어서 이성계가 배짱을 부리느냐고 말하며, "한나라 당나라 장수들이야 말이나 잘 타지 배타는건 서툴러서 망했다고 해도, 나 주원장이는 중국을 통일하면서 물에서도 육지에서도 다 이겨보았다. 내 장수들이 한나라 당나라 장수들만 못하겠느냐" 고 욕을 퍼붓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네가 변경에서 말썽을 안 부리면 동이의 군주 노릇은 잘 할 것이다." 며 '임금 노릇 하고 싶으면 깝치지 말아라.' 라고 경고도 아닌 숫제 협박을 퍼부었습니다.
이렇게 분위기가 험악해지던 중, 중국 연안에서 불법 해적 행위를 하던 조선 출신 해적 최독이라는 인물이 명나라 산동도사 영해위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사소해 보이던 사건은 최독이 "난 사실 조선 조정에서 보낸 첩자다." 라는 해괴한 발언을 하자, 주원장은 이를 이용해서 또 이성계를 욕하는 글을 보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주원장의 이 글의 발신인이 '이성계' 가 아닌, '조선의 신령들' 이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내용이 "아무개 대통령 귀하" 가 아닌, "대한민국의 순국선열들이시여, 내가 보기에 당신네 나라 대통령이 이러저러 하답니다." 라는 식으로 보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굉장히 이상한 방식으로 서신이었는데, 이렇게 서신을 보낸 이유는 바로 단 한가지입니다. 대놓고 이성계를 욕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주원장은 이 서신에서 "조선 땅의 귀신들아, 내가 보기에 이성계라는 작자가 하는 짓을 보니, 그 사람은 왕 노릇 할 작자가 못되는 것 같다." 고 인신공격을 퍼붓습니다. 아무러해도 대놓고 이성계에게 글을 보내 "넌 왕 노릇할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귀신에게 말한다는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양상으로 돌려서 욕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여기에 더해, "귀신들은 이 사정을 하늘에 알려줘라, 그래도 쟤들이 계속 까불면 내가 군사를 일으켜서 치겠다" 고 협박합니다.
여기에 대한 이성계의 반응은, "천자가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천자일텐데, 여기 산천 모두에 귀신들이 널려 있는데 내가 하늘(천자)을 속이고 공갈을 쳤으면 왜 그 귀신들이 하늘에 내 잘못을 고해서 나를 벌주지 않고 있겠느냐"
라고, 이런 식의 문서에서는 여간해선 보기 힘든 개인적인 감정을 아주 있는대로 표출해서 주원장에게 답변합니다. 물론 뒤에는 "아랫 사람을 잘 봐주시길 바란다." 라며 현실적인 발언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재미있는건, 제위 기간 내내 조선과 이성계에게 "너 자꾸 개기면 맞는 수가 있다." "군사를 일으켜서 치겠다" "자꾸 이런식으면 공격할 수 밖에 없다" 고 끝도 없이 군사적 협박을 일삼았던 주원장이, 실제로는 조선을 군사적으로 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주원장은 조선에 보내는 문서에서는 틈만 나면 "너 자꾸 까불면 친다." 라고 언급하면서도, 실제로 치자는 식의 의견이 나오면 이를 기각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후대에 대한 교훈 목적의 황명조훈에서 "정벌하지 말아야 할 나라 15국" 를 뽑으며 조선 등을 첫번째로 언급했을 정도이니, 조선을 실제로 칠 생각은 전혀 없었던 셈입니다.
이 부분은 하는 말과는 다르게 실제 판단은 냉정한 주원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러면서도 주원장 특유의 괴팍한 면모를 보여주는 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