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조차 그 옛날 동네 문방구에서 친구 생일선물이라고 제도샤프 하나사서 포장해달라고 할 때 해주던 그 포장보다도 못한
이 찹살떡의 여정을 알고 싶지 않니? 아니다. 물을게 아니라 그냥 내가 말해주고 싶은게 맞겠구나. 이 찹살떡은 말이다...
어제 였나 그제 였나, 몸에 온기가 필요해 순대국 한그릇하러 갔었단다. 식당안에 서너 테이블 손님이 있었는데 저마다 한병, 두병
순대국의 친구 초록색 술병들이 올라와 있는게 아니겠니. 지기 싫어 "나도 하나 주이소 이모" 라고 패기 있게 외치고 두잔인가 털어넣었을때
였나보다.
무슨무슨 정공이라고 적힌 작업잠바를(아마도 어디선가 주은듯한) 입으신 주름이 꽤 깊으신 어르신 한 분이 공손하게 말을 걸어왔단다.
"안녕하세요. 연말이고 한데 이 찹살떡 하나 댁에 가져가시면 가족분들이 좋아 하실거예요. 하나 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예, 어르신 이 찹살떡은 얼마인가요?
"5,000원입니다. 유통기한도 많이 남았어요. 맛이 아주 좋습니다."
"예, 그럼 하나 주시지요."
"고맙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닙니다. 어르신, 어르신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렇게 내 손에 왔단다. 그 전에는 아마 그 어르신이 어딘가에서 받아왔을테고 그 전에는 경기도 어드메, 아니면 저 남쪽 어딘가에서
만들어 졌겠지.
그 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었단다.
이 어르신 추우실텐데 내가 이거 하나 팔아줬으니 조금 일찍 들어가시게 되겠지. 밖에서 떨지 않으시고...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때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어르신, 얼추 다 파셨으면 식사도 안하셨을텐데 여기 앉으셔서 순대국 하나 하시지요. 저도 마침 반주로 하기에 한병이 과하다 싶었는데
어르신이 좀 도와주시지요."
라고 할걸....
취기가 올라와서 그런가 집에 오는 내내 생각이 나더라. 나의 이 좁디 좁은 그릇에 대한 실망이 이루 말 할수 없는 정도였단다.
그 5,000원에 참.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세웠는데, 그 6,000원 더 쓸 생각을 못해서 말이다.
아저씨 어릴적엔 동네마다 꼭 거지가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거지였어. 육교에, 버스정류장에, 지하철역에서 구걸을 했다.
걔중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도 많아서 내가 꼭 너만했을때 우리 또래들의 놀림감들이곤 했다. 참으로 못됐지. 뭐 던지고, 침뱉고...
요즘은 거지들은 많이 보이지 않더라. 대신 옛날엔 보이지 않던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참 많이 보이더라.
어느 동네 어느 골목을 가도 조그만 택배 박스 쪼가리 하나가 한시간 이상 그 자리에 버티질 못하더구나.
찹살떡을 팔 던 그 어르신은 좀 형편이 낫다고 생각한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5,000원을 쓰면서 어르신을 도와드렸단
마음보다 그래도 나는 이 순대국 하나정도는 마음편하게 먹으니까... 라는 자기위안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아참, 소주도 한 병 곁들였구나...
아, 미안.. 아저씨가 취해서 오락가락 하는구나. 자 여기 찹살떡 이거 너 다 먹어라.
생각해보니 아저씨는 아저씨보다 두배는 더 사셨을 어르신에게 이걸 사서 아저씨의 반의 반밖에 안 산 너에게 이걸 주고 있구나.
5,000원 쓰고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기분이 마구 좋아지네. 너도 크면 알게 될거야 짜식아.
세상은 아저씨들이 어르신과 너같은 꼬맹이들을 멕여살림으로써 돌아가는거다. 그래도 그게 불공평 하지 않은게 꼬맹이들이 아저씨가되고
아저씨는 또 어르신이 된단다. 우리는 빚지고, 또 갚고 그렇게 살아가는거야. 많이 힘들지만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순대국집에서 찹살떡을 팔던 어르신은 이십몇년전 흑석동 판자동네에서 천방지축 코흘리고 뛰어다니던 꼬맹이에게
귀엽다고 주머니에서 눈깔사탕 하나 꺼내 쥐어주던 얼굴 시커멓던 아저씨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체한단다. 천천히 하나씩. 따뜻한 물 많이 마셔가며 먹어라. 엄마, 아빠, 형한테도 나눠주고...
집에가는길 미끄러운데 조심히 가렴.
P.S 올해로 삼땡이 되었습니다. 지난해는 다섯끗이라 어디 명함도 못내밀고 계속 죽기만 했는데 삼땡이면 패 꽤 괜찮네요.
레이스 걸어오면 콜 할 수 있게 준비해야 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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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따뜻한 분이시군요
분명 잘하신 일이라고 저도 생각하고
그리고 이렇게 글 남기신것도 잘하신것 같아요
우린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온기를 나눠주지만.
그치만 그행동을 상대방이
혹은 또 다른 누군가가
알아봐주거나 칭찬할때 그 온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더욱더 빛나게
타오를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왼손이 한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전 그말 재미없더라구요
우린 예수님도, 부처님도 아니니까요 흐흐
그리고 말씀하신 폐지줍는분들
점점 많아지는것 같아 정말 괜찮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의 열기를 이쪽으로 조금만
나눌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