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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9 05:41
잘읽어보았습니다...
아직은 무슨말을 해야할진 모르겠네요..제목만 보고선 무턱대고 들어오긴했는데 쨌든 정성이 가득한 글 같으며, 내일 맨정신으로 다시읽어봐야겠습니다 흐흐
14/12/29 05:57
새벽에 뒷통수를 한 대 강하게 맞고 갑니다.
단순히 인간이 사회화를 이루고 문화를 학습하게 됨에 따라서 이성애를 유도하는 유전자가 약화되더라도 번식에 크게 불리하지 않게 되어 동성애자가 늘어나는게 가능해지지 않았나.. 막연히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저는 실제로 몇만,몇십만년 전에 비해서 동성애자 비율이 늘어났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연구가 있다면 궁금하네요.) 이런 해석이 가능한거였군요. 오래된 책인데.. 저의 무지함을 반성해야겠습니다. 궁금한게 이러한 동성애의 유전적 성공에 대한 가설이 어느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건가요? 물론 한가지 요인만은 아니겠습니다만.. 정설이라고 할만한지요?
14/12/29 06:09
현재는 뇌과학에서 이 부분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고 있는데 후천적이 아니라 생물학적이라는 것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동성애는 유전적으로 성공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초기 인류에 관한 윌슨의 주장은 가설일 뿐입니다.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른 주장을 하니까요. 윌슨의 주장을 인용했습니다. 제가 윌슨의 추종자라서...
14/12/29 06:01
애인분과 대화 중에 의아한 부분이.. 호모포비아의 범주에 '내가 동성애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포함된다는 건 이해가 안되네요.
아무튼 저는 학창시절까지 극단적인 호모포비아였습니다. 동성애 혐오자를 넘어서 동성애 박멸주의자였거든요 ㅡ.ㅡ 그런데 지금와서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무지, 그리고 종교의 영향으로 인한 공포감이었던 것 같아요.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에 대한 비교적 많은 정보를 접하고 나니 무서울 것도, 싫을 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만약 현실에서 동성애자를 보면 다를 거라는 얘기에도 담담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됐죠. "게이라고 날 좋아할 리가 없지... 좋은 친구 될 듯" ㅠㅠ
14/12/29 06:13
그 부분은 제가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군요.
포비아를 어떤 범주로 구분해야 정확할 지 저도 확신이 없어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이것도 이견이 분분하네요. '광의의 포비아' 정도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14/12/29 07:10
동성애에 관심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호모포비아에 가깝다는는걸 추정할수 있는게 고등학생시절 나에게 접근한 동성애자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느꼈고 지금도 동성애자가 나에게 동일한 행동을 보인다면 여전히 혐오심이 일어난다는 변하지 않았기에 동성애자를 차별하지도 백안시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평등론에서 보면 전 지탄받아야할 차별론자일수 있겠지요
14/12/29 09:48
뭐.. 이성애자라고 해도 최홍만 같은 여자가 접근한다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아요.
성적인 매력이 0% 또는 마이너스인 상대가 그런 식의 접근을 하면 꼭 동성애자가 아니라도 아주 싫은 마음이 들겠죠..
14/12/29 08:27
머리로는 지지하나 마음으론 지지 못하겠더라구요.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에 자고 있는데 다른 반 학우가 저를 창문으로 계속 보고 있었다는 증언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뭐가 무섭더라구요.(남고)
제가 대상이 아닌 남성 간의 동성애는 지지합니다. 경쟁자가 둘이나 주는 효과가 있다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이더라구요.
14/12/29 08:45
저는 약간의 호모필리아적인 성향이 있다는걸 자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애쪽이 월등히 강하기 때문에 이성애자의 범주에 묶이는거겠지요. 아주 넓게 보면 양성애자 정도. ...이게 다 워낙에 여자들이 도망을 가서 남자라도 붙들어야 한다는 무의식 때문입니다..?
14/12/29 09:00
본문의 나와 애인의 대화는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많죠. 사실 이건 인종차별 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만, 두드러지고 주로 문제시되는 건 린치일지언정 사회적으로 양자를 갈라놓는 건 은근하고 모호한 구별이라는 점은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습니다. 남녀차별에서 언제나 언급되는 '유리 천장'같은 것이죠. 임의의 두 집단을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가르는 행위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차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동성애자가 원시 인류 사회에서 독특한 롤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그것이 전승되는데 성공했다라는 가설은 흥미롭습니다(사실 비슷한 얘기를 꽤 예전부터 접했지만 깊게 안보고 그냥 '오 재밌군'하고 넘어가서 그렇기도 합니다만). 반면에 의문 역시 떠오르는데, 동성애자만큼이나 자주, 본질적인 레벨로 보이는 지점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터부의 생성과 폭력적 진압, 그리고 터부시된 존재의 역할 변형과 재사회화의 연속적 과정입니다. 아마도 둘을 조합하면 동성애자는 때로는 박해의 희생양으로 사회 결속에 유지했다가, 때로는 경쟁에서 벗어나서 독립적인 롤을 수행하는 존재이기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봅니다.
14/12/29 09:06
저는 이런 식의 접근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동성애가 사회에 기여하는 점이 있느냐 없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동성애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느냐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단 하나도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난할 아무런 당위가 없습니다. 사회생물학은 인간 행동의 기제를 설명해 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에 그쳐야지 거기서 어떤 당위나 방향성을 이끌어내려고하는 순간 대단히 위험합니다.
14/12/29 09:16
윌슨이 사회적 차별이 시작된 지점으로 유목민들의 예를 든 것은 그들이 차별받는 이유가 근거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입니다.
원시인류 사회에서 동성애가 사회에 기여했기 때문에 차별하지 말아야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구요. 끙끙님의 의견은 정치적인 올바름에 관한 것이고, 윌슨의 주장은 사회생물학적 관점입니다. 글 아랫부분에 명시했듯이 [동물로서의 인간]을 이해햐야 정치적으로 올바름에 대한 우리의 편견도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왜냐하면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사람도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할테니까요.
14/12/29 09:13
현실보다 감정에 가치를 두는 것. 감상은 흔히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순진함이나 나약함으로 간주된다. 가축들이 사육되는 조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혹은 관심만 보여도) 감상주의자라고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누가 감상주의자이고 누가 현실주의자인지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좋겠다. (중략) 두 친구가 점심 식사를 주문한다 치자. 한 명이 “햄버거가 먹고 싶은 기분인데.” 이렇게 말하고 햄버거를 주문한다. 또 한명도 “햄버거를 먹고 싶은 기분이야.” 라고 말하지만, 어느 순간 무엇을 하고 싶은 기분인지보다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른 것을 주문한다. 누가 감상주의자인가? -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중
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것이 옳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실천하려 노력하기에 더 값진 거겠죠.
14/12/29 09:25
재밌긴 한데 이런식의 접근은 동성애자를 더 탄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죠. 진화심리학이 아직 윤리적 기반이 약해서일수도 있구요. 본문에 있는 윌슨의 견해의 논리적 결함은 초기 인류에게 동성애자들이 기여했다는게 어떻게 진화심리학적으로 그들을 혐오하지 않아야 되는 근거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그때 동성애자들은 남성사냥꾼들의 경쟁자들이 아니었죠.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자 사냥꾼 입장에서는 동성애자를 볼 때, 남자인데 경쟁자가 아니야? 개이드기네? 이렇게 생각했겠죠. 자기 자식마저 결국엔 자기를 잡아먹는(신화에서 나타나듯) 경쟁자였던 시대에 남자의 힘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경쟁자가 아니라는 건 그들을 살려줄 충분한 명분이 되는 겁니다. 반대로 본문에 언급했듯이 인구증가가 중요한 시기에는 동성애자들은 당연히 혐오 대상이 되죠. 지난 몇천년간 인류는 말그대로 인간을 갈아넣어서 번영을 이뤘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공밀레가 농담이 아니라 초기 농경사회에서 밀 밭과 논에 갈렸던 수많은 노예들 하며, 산업화시대에 방직기에 갈렸던 수많은 어린 공장노동자들 하며, 인구수가 곧 번영의 근간이었죠. 어쩌면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구의 한계점에 다다른 지금 동성애에 대한 관용이 다시 부각되는 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번영했던 시대의 동성애 혐오는 납득이 됩니까? 또 그렇다면, 혹시 어떤 나라에 인구수가 중요해서 그 나라 최고의 가치가 인구수 증가라면 그 나라 내에서는 문화상대주의라는 방어막을 사용에서 동성애를 혐오해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제 의견은 초기 인류에서의 동성애자들의 기여 -> 동성애자들을 존중해야 된다라는 논리적 비약이 오히려 상대주의의 미명 하에 동성애 혐오의 논리적 기반도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글의 결론도 이상합니다. 지나치게 휴머니즘적인(이상한 표현이지만) 비약이 심해요. 이글의 논지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면 검은책님이 호모포비아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사람이 님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했기 때문이죠. 이글의 논리라면 동성애자는 어디까지나 이성애자의 성적인 경쟁상대가 아닐때 존중받습니다. 그런데 그 동성애자가 님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했을때 검은책님의 유전자 어디 한부분이 극렬하게 반응했겠죠. 아, 이 놈은 내 경쟁자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동성애 대한 윤리적 기반을 된다는 게 허술하다는 건 검은책님도 잘 아실 겁니다. 결국 진화심리학은 영장류로서의 인간을 설명하는 데는 효율적이라도 윤리적 인간을 설명하는 데는 논리적으로 허술한 점이 있다는 거죠.
14/12/29 09:50
윌슨이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논리는 그들이 유전적으로 성공했음에 대한 윌슨의 가설입니다.
아래에도 밝혔듯이 그 때문에 차별하지 말아야한다는 논리는 아닙니다. 다만 [동물로서의 인간]을 이해하자는 주장의 일환이지요. 동물로서 여성 인간은 발정기를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결속을 야기시켰던 것과 같은 맥락이죠. 여성이 이러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은 맥락에서 동성애도 차별할 이유가 전혀없다는 사회생물학적 관점입니다. 말하자면 동성애를 생물학적 특성으로 이해한다면 남성과 여성이 다르듯 차별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성애에 씌워진 사회/정치적 맥락을 이야기 하시는데 거기에 덧씌워진 것들을 제거하고 [동물로서의 인간]을 이해하자는 것이죠. 새로운 윤리를 쓰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일'이 일어난 시점과 저 대화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합니다. 제가 대화를 나누면서 그 분을 상상했던 것도 아닙니다. '왜 내가 이런 흔한 장난에 이런 혐오를 보일까'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참고로 '놈'도 아닙니다. 제 결론이 지나치게 휴머니즘적이라는 것도 인정하겠습니다. 윌슨이 그런 사람이니까요.
14/12/29 10:03
앞서 끙끙님의 댓글에서도 보이지만 [동물로서의 인간]을 이해하는 것과 휴머니즘적인 결론 사이에 비약이 심합니다. 제 생각엔 그 이유는 "[동물로서의 인간]을 이해하면 [새로운 윤리]를 쓸 수 있다"는 어쩌면 아무 근거없는 전제를 두고 있기 때문이죠. 만약 윌슨이 과학자라면 [동물로서의 인간]을 연구했을 때 어쩌면 더 잔인하고 냉혹한 현실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죠. 휴머니즘적 결론을 전제하고 과학적 사실을 해석하면 이런 비약이 생기는 겁니다. 마치 창조를 가정하고 과학적 사실을 끼워맞추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여요. 제가 보기엔 윌슨의 논리에 의하면 현실은 오히려 더 잔인합니다. 여자든 동성애자든 서바이벌 세계에서 끊임없이 자기자신의 생존 이유를 증명해야 되거든요.
ps. 정성스러운 본문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인데 좀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댓글을 달면 마음 상하실까봐.. 어그로 글에 다는 댓글과는 달리 진짜 흥미를 느끼고 비판점을 발견해서 댓글을 다는 거에요.
14/12/29 10:24
아닙니다. 제가 논리가 좀 약한 것은 맞습니다.
제 애인이 여기서 키배를 자주 하는데 그거 감시하러 들어왔다가 그만 여기 걸려들었네요. 다만, 자연선택으로부터 도출되는 도덕적인 교훈이란 없습니다. 사회생물학적 분석은 인간의 사회행동에 대한 중립적인 설명을 제공할 뿐입니다. 정당화나 도덕적 진단, 무엇이 ‘마땅히’ 어떠해야 된다는 규범적 선언이 아닙니다. 기회가 된다면 윌슨의 다음 책에서 이 [휴머니즘]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두둘겨 맞겠지만...
14/12/29 09:50
윌슨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었는데... =_=;;;
가설로는 흥미롭지만, 결론을 깔아두고 환원주의적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더라구요.
14/12/29 13:30
음, 제가 어떤 맥락에서 환원주의를 언급한 건지는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볼께요.
요점은 이겁니다. [동성애 유전자가 과연 사회성을 통해서만 유전자의 생존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일까?] 나중에 윌슨은 <지구의 사회적 정복>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죠. '동성애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만으로 발생하기에는 너무 빈도가 높고 보편적으로 발생한다.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아닌데도 이렇게 유전자의 번식 가능성을 낮추거나 제거해 버리는 형질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형질이 분명 다른 방식으로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저로서는 이쪽 표현이 보다 마음에 듭니다. 본문에서 요약하신 글에 비해 훨씬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거든요. 하나의 유전형이 다양한 표현형을 가질 수도 있고, 여러 유전형이 하나의 표현형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발현되지 않은 동성애 관련 유전자가 다른 표현형에 영향을 끼쳐,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해줄 수도 있겠죠. 이런 경우에는 동성애가 사회성과 크게 영향을 주고받지 않고도 충분히 높은 비율의 동성애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동물에게서 일어나는 동성애 행동의 경우에도 이를 통한 설명이 가능할 테고요. 또는 아예 자연선택과 관계 없이 -_-;;; 인류의 초기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 풀이 고립되었거나, 동성애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 얼기설기 섥혀서 '태생적으로' 동성애의 가능성을 포함하게 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성애 유전자와 운명공동체인 상태로 시작하는 거죠. 비단 유전자의 사회성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아도 다양한 설명이 가능한 문제고, 여기서 유전자의 '친족을 위한 자기 희생'을 딱히 유력한 가설로 밀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환원주의를 언급한 겁니다. 반대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유력한 가설 중 하나죠. 하지만 저한테는 뒷맛이 찝찝한 주장이에요.
14/12/29 13:41
아마 [지구의 정복자]라는 책에 등장하는 말인것 같습니다. 사실 두 책의 시간차가 많이 나는데 윌슨의 [인간본성에 대하여]는 조금 선언적 성격이 강해서 이런 문제가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지적 정말 감사히 받습니다. 책을 꺼내기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얼버무린 제 게으름을 탓해 주세요.
14/12/29 11:07
곤충에서 포유류까지 집단에서 동성애자가 큰 역할을 하나요? 어차피 대개의 경우 양육은 암컷의 몫이므로 수컷이 자유롭게 역할을 가질수있고 굳이 동성애커플이 아니라도 결혼을 하지않고 독신으로 말씀하신 선지자, 샤먼, 예술가, 부족의 지식 보유자 역할을 할수있는데 이해가 잘 안되네요. 그리고 발정기에 동성애를 즐기는 동물이 있나요?
그리고 동성애가 자유롭게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호모포비아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론 중학생쯤 사랑을 시작하며 그 대상이 당연히 이성이 되야하고 동성은 배제한다는 사회적관념에서 호모포비아가 훨씬 강해진다고 보거든요. 호모를 용인하는 사회에서는 반대로 호모포비아가 가지지말아야할 감정이 될테니깐요.
14/12/29 11:32
동성애의 행동이 곤충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만
동성애가 이성애의 대안으로 나타나는 것은 가장 지적인 영장류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적인 영장류는 발정기가 아닐 때에도 성애의 행동을 합니다. 초기 인류사회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었을테니 수컷끼리의 동맹이 맺어지려면 성적 긴장감 해소가 가정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였겠죠. 동성애인 개체가 선지자, 사면, 예술가, 부족의 지식 보유자 역할을 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사냥에서 제외되는 대신 주거지에 남아 가까운 친족의 아이를 돌보았을 가능성에서 유추하는 것이구요.
14/12/30 00:05
"동성애인 개체가 선지자, 사면, 예술가, 부족의 지식 보유자 역할을 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사냥에서 제외되는 대신"
이부분이 이해가 안가네요. 사냥이란 단순히 먹을걸 놓아둔 장소를찾아 먹이를 가져오는 일이 아니고 내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나가는 일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몇날몇일을 큰 초식동물을 쫒을수도 있고 그러다 다른 육식동물에게 공격당할수도있고 이것저것 생각하면 힘들일이 많지만 단순히 생각해도 "집떠나면 고생" 이라는 말이 지금도 있는데 이런 힘든일을 단지 "넌 동성애자니 집에서 편하게 다른사람을 지켜 우리는 이성애 남자니까 죽을힘을다해 사냥나갔다와서 소화 잘되는 고기 나누어 줄께" 라는게 이해가 안갑니다. 혹시 이 주장을 뒷받침할 다른 이유가 있는지요.
14/12/30 05:27
일단 수컷의 유전자적 기본명령은 1)같은 수컷은 만나면 죽이고 2)암컷은 만나면 강간하라 입니다. 이것을 극단으로 잡고...
이 명령에서 파생되는 성적 긴장감이 동성애와 자위, 성적환상 같은 [뇌의 활동]으로 해소되었다고 치면 양성애는 동성애의 진화적 위치는 거의 비슷하다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양성애와 동성애의 구분은 편리를 위해 고안한 말일뿐 진화적으로든, 뇌의 활동의 영역으로 생각하든 별로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지요.
14/12/30 06:22
다시 말하자면 동성애의 코드는 유전자에 그 발현은 뇌의 영역이고 인간의 뇌는 [가소성]으로 특히 유명하지요. 뇌의 가소성문제는 뇌과학의 영역이긴한데 간단히 말하자면 뇌세포와 뇌의 부위가 유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칭하는 말입니다. 가변적이라는 것이죠.
14/12/29 11:33
1. 내가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말하기가 두려워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2. 최근 동성애에 관한 논의들이 너무 남성위주로 치우쳐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남초사이트라서 그럴수도)
14/12/29 11:46
동성애를 [동물로서의 인간]을 이해하자고 하는 이유는 아무리 정치적으로 올바른 체 해도
제 안에 어떤 거부감과 두려움을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나니 그 반감이 훨씬 줄었습니다. 저는 여자지만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저 피상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14/12/29 11:39
제가 보기엔 검은책님은 호모포비아에 해당하는 것 같지 않네요.
동성애자들은 본인이 이성애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걸 헤테로포비아라고 하진 않으니까요. 양성애 성향이 없다는 것이 호모포비아로 정의될 수는 없는거죠. 본문은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고 상당부분 윌슨의 주장에 동조합니다. 홍석천씨가 이혼한 누나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운다더라..는 소문도 묘하게 떠오르구요. 본문에서는 '모든 학문이 생물학으로 환원된다'라 하셔서 다소 거부감이 들었지만 인용된 윌슨의 이야기를 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성 동물들을 조사하러 어떤 다른 행성으로부터 날아 온 동물학자에게 역사학, 문학, 인류학, 사회학은 물론 법학, 경제학, 심지어 예술까지도 모두 인간이라는 한 영장류에 관한 사회생물학에 불과하다.] 생물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수학 천문학 등등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은 '인간의 활동'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이는 것이므로 윌슨의 주장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죠. 광의로 묶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니까요. 대분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학문을 한다 해서 굳이 기분나빠하거나 반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윌슨은 동성애자를 일벌이나 일개미 같은 존재로 보는 것인데 - 성에 의한 생식활동을 다른 개체에게 맡기고 자신은 집단의 생존 및 후손 양육에 기여하는 것으로 - 인간과 같은 포유류의 경우 개체당 생식에 한계가 있으므로 대다수가 생식에 참여할 수 밖에 없고 생식에서 벗어난 개체가 소수라는 거겠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동성애가 '생물학적으로 정상이다'라고 이야기하려면 반대로 동성애가 발견되는 생물은 사회적 생물이어야 할 겁니다. 동성애 개체도 유전자의 존속에 기여할 수 있도록요.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죠.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 생물에서도 동성애현상은 발견됩니다. '정치적 올바름'과 '생물학적 정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윌슨은 동성애를 차별하지 않아야 할 '생물학적 이유'를 들기 위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죠. 저는 인간이라는 종에 있어 동성애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왔을 수 있다 라는 윌슨의 주장에는 동조할 수 있지만, 여전히 '생물학적으로 동성애는 정상이다'라는 주장이 되기 위해서는 큰 비약이 있다고 봅니다. 다른 생물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이 정상이라는 표지가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장애나 기형도 다른 생물에게서도 발현되지만 그런 개체를 생물학적 정상개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요즘의 장애 트렌드에 따르면 장애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죠. 트랜스젠더를 '성동일성 장애'라고 하는 것과 같이, 동성애자는 '성기호성 장애'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그저 상황에 따라 약간의 배려가 필요할 수 있는 평등한 인간인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도 그저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죠. 다만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생물학의 영역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인간적 윤리를 다루는 게 아니라 그냥 생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왜 굳이 동성애개체를 정상이라고 정의해야 하는지를 오히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생물학적 비정상과 인간적 비정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오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구별을 해서는 안된다 것처럼 느껴져요.
14/12/29 11:53
생물학적으로 정상이라는 이야기는 성경에서 기원한 사회적 맥락의 차별이 생물학적 차별이며 부당하기 때문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정상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적 동물의 동성애성향으로 인간을 설명한 것이고 그 역이 왜 성립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사회적이 아닌 생물이 동성애성향을 가지는 이유는 또 다른 것일 수도 있지요.
14/12/29 12:04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생물학적으로 정상이라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겁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맥락의 차별의 기원이 성경이다 - 라는 명제를 우선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생물학적 차별이다 - 유목민족에게 있어 종족번식이 더 우선되는 생물학적 필요였어서 - 라고 한다면 당시 해당 유목민족에게는 '생물학적으로 유전자의 효율적인 존속을 위한 진화의 발현'이었던 것이 됩니다. 그러니 '동성애가 유전자 존속에 기여하므로 정상'이라는 주장을 해보았자 그 당시 유목민족에게 적용될 수 없는 이야기이니 그 생물학적 차별(?)이 비효율적인 진화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생물학적 차별'이라는 말도 이상하지만 거기에 '당, 부당'을 나누는 것은 더 이상한 얘기가 됩니다. 생물학 레벨에서 생물의 행동에 무슨 당위와 부당함이 있습니까? 당위를 따지는 것은 이미 생물학의 범주가 아닙니다.
14/12/29 12:11
그때의 윤리가 여태 통용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생물학적 레벨에서는 당위가 없지요. 그리고 제가 동성애자에게 느낀 불편함은 이런 윤리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동물적]이해가 필요했다고 말씀드린겁니다. 모두 과거의 문제이기 때문에 오는 혼란이긴 한데 유목민으로 살았던 인류는 초기인류로 살았던 시간보다 훨씬 짧습니다. 유목민의 선택이 생물학적으로(유전자) 반영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지요.
14/12/30 13:48
반대로 그 선택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동물적 이해'로 동성애 혐오가 인간종의 생물학적
필요에 부합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동성애자의 유전자가 남아있는 것 이상으로 동성애 혐오의 유전자가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문화적이 아닌 '본능적인 거부감'을 말한다면 말이죠. 애초에 사람들은 성경말씀이라고 다 그렇게 열심히 잘 따르는 게 아닙니다. 취사선택을 하죠. 성경에 동성애는 죄악이다 라는 말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 것이 이웃을 사랑해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지만 이것들은 그다지 대강대강이고 희안하게 동성애 혐오는 참 잘도 지키죠. 결국 성경때문에 동성애를 혐오한다기보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핑계를 거기서 찾는 것이고 그런 윤리가 현재 통용되는 것은 그런 윤리를 인간이라는 종이 여태까지 선택해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건 부당하죠. 그러나 생물학적레벨에서는 그게 유용했을 수도 있죠. 유목민의 선택이 반영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은 견강부회입니다. 그 선택이 유목시대에만 유용했다면 시간에 따라 그런 금기는 사라졌을 겁니다. 이미 지금까지 반영되어 온 것이 현재의 상태라고 보는 게 사회생물학적으로 더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14/12/30 14:01
사악군님께서 말씀하시는 금기는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생물학적 영역중 편견 즉. 뇌(정확히 말해 쇄뇌)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야기하는 생물학적 차별의 문제는 진화의 영역이구요. 진화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유목민의 윤리가 통용된 것을 맥시멈 이천년으로 잡아도 너무 짧아요. 파리 더듬이 하나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시간이라는 겁니다. 유목민의 편견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하고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14/12/30 14:05
아뇨 저는 그 유목민의 편견이라는 것도 진화의 결과 나온 생물학적 차별이 구체화된 양태중 하나일 뿐이라는거죠.
성경-유목민의 편견-에서, 고작 수천년전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성경에 그렇게 씌여지게 되었을 뿐이라는 겁니다. 성경에서 창조된 혐오, 유목민의 선택에 불과했다면 이후 사라졌을 것인데 그게 아니라 남았다는 겁니다. 그 생물학적 혐오도 진화의 영역이고, 동성애를 혐오하는 유전자를 가질수록 살아남기에 좋았다. 라는 겁니다.
14/12/30 14:14
레지엔님의 덧글과 구밀복검님의 덧글과 그 아래 제 덧글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동성애자의 사회적 위치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혐오가 생물학적 영역인 것은 맞지만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은 사회적 영역에서 그 편견의 필요(또는 불필요)때문이지겠지요. 이 둘을 구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4/12/29 12:18
일단 좋은 글 감사드리며, 저도 좋아하는 주제이고 좋아하는 학자인지라, 이것 저것 생각나는 대로 댓글 달겠습니다.
1. 우선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인간의 이타심은 유전자의 이기심으로 환원할 수 있다' 라는 주장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도킨스가 책 속에서나 강연에서나 여러번 이야기한 부분인데, 유전자는 생각하는 능력이 없고 따라서 이기심을 가질 수 없지요. 유전자는 그냥 자기 복제 능력이 있는 약간 복잡한 유기화합물이고, 무수히 많은 사본이 존재한다는 유전자의 특성상, 유전자의 성패는 각 개체의 생존이 아니라 수많은 사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보' 의 생존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개체를 희생해서 사본의 숫자를 늘릴 수 있다면 그것은 유전자의 성공이고 이것이 유전자 각 개체의 생존 기계에 해당하는 우리 생물 개체의 이타심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 도킨스의 주장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전자가 성공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유전자는 그냥 자신을 무한히 복제해 나갈 뿐, 자신의 복제 전략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지요. 사실 이기심이든 이타심이든 이런 종류의 개념이 의미를 가지려면 '욕망' 과 '선택 능력' 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유전자는 당연히 욕망도 선택 능력도 없고 개미도 아마 없을 것이고 상당한 수준의 예측 능력을 지는 고등동물정도는 되어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2. 검은책님도 이미 아시는 부분이겠지만, Is-Ought problem 은 윤리학에서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인간은 모두 죽지만 그렇다고해서 죽는 게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없듯이, 동성애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동성애가 올바른 일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없죠. 물론 윌슨이나 검은책님께서 주장하시려는 것이 '동성애의 자연스러움을 근거로 동성애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가 부자연스러움을 근거로 동성애를 공격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방어선을 형성하려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그런 부분은 동의합니다. 3. 과학의 정수 중 하나가 환원주의라는 점은 동의합니다만, 윌슨을 환원주의자로 분류할 때에는 조금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보통 환원주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은, "물은 산소 하나와 수소 두 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산소와 수소 뿐이지 물이라는 것은 인간의 환상이다." <<< 이런 식의 파괴적인 환원주의거든요. 이런 환원주의가 한 때나마 과학계를 지배한 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긴 한데, 요즘은 저런 식으로 과학하는 사람은 없지요. 윌슨의 환원주의는 "물 분자 간의 상호 작용등을 이해할 때 물이 산소 하나와 수소 두 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이해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걸?" 정도의, 계층적 환원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4. 괜히 딴지를 건 느낌이라서 마지막으로 엄호 사격 하나 하고 갑니다. 누구 책에서 본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인간은 로봇처럼 공장에서 규격대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고 인간의 개성은 어떤 평균점을 기준으로 정규분포에 가깝게 분포할 겁니다. 그럴 때 수컷의 마초스러움이 0 이면 개체의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마초스러움이 100 이면 협동하는 부족 연맹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니,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마초지수 50 이었겠지요.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인간의 개성은 정규 분포니만큼, 50을 중심으로 게이부터 상마초까지 나타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였다는 뭐 그런 주장을 본 기억이 납니다. 동성애자가 자연발생한다는 이런 류의 가설을 받아들이고 (저는 실제로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진화 전략이 채택된 배경에는 수십만년 동안 동성애자가 인류라는 종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받아들이면 (이것도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호모포비아가 오히려 세뇌의 결과라는 결론은 꽤나 자연스럽게 도출된다고 생각합니다.
14/12/29 12:27
저도 도킨스를 저런 식으로 요약하는 것은 무리수였다는 생각이...
다만 세 학자의 서로 다른 주장을 비교하기 위해 쓴 것인데 저런 식이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저도 윌슨을 전혀 환원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글을 요약하고 축약하다 보니 환원적인 글이 되어버려서 존경하는 학자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 같아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윌슨의 추종자 꼬리표는 떼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이런 덧글 받으려고 글쓰나 봅니다 2 제가 아주 좋아하는 분야인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 감사합니다.
14/12/29 12:43
근데 도킨스 + 윌슨 + 굴드의 책을 한 권도 아니고 몇 권씩 읽는 분이면, 저쪽 분야에서 일하시나봐요. 저도 호기심이 강한 편이지만 도킨스만 세 권 읽었고 윌슨은 한 권, 굴드는 누가 요약해놓은 것만 봤네요.... 솔직히 도킨스는 거의 소설가 수준으로 흥미진진하게 책을 쓰는 영감님이라서 많이 본 거지 윌슨만 돼도 중간에 여러 번 책 덮게 되더라구요. 내용은 엄청 좋지만.....
14/12/29 12:57
아닙니다. 직업하고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진화심리학하고 뇌과학 책을 워낙에 좋아합니다. 많이 읽었는데 읽기만 하고 정리를 안하니 다 따로국밥이 되어서 요새는 블로그질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 책을 읽는 분이 워낙 적다보니 제대로된 피드백을 받는게 어렵네요.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은 제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검증받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연말 보너스 받은 기분이네요. 흐흐흐
14/12/29 17:44
사실 제가 몸담고 있는 '사회학'이 '동물행동학의 한 하위분과'로서 생물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
동물행동학을 포함하는 생물학적인 접근은 '사회학'과 다른관점, 다른 '수준'에서 시작하는 접근을 통해 '연구대상'에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가시켜 줄 테니까요. (어차피 뺏길 밥그릇도 없는 상황이라 더 홀가분할지도 모릅니다?) 그냥 이제 (우리 사회학자 들 뿐만 아니라) '생물학자'들이 연구자(다른인간종 개체)를 속이는 기제들이 자연선택으로 '강화'되었을 개연성이 충분한 생물을, 정치적으로 극도로 제한속에 위치한 '방법'을 사용해서, 그 결과물조차 연구대상이 자신의 '시각'에서 재단하고 여기에서 어긋날 경우 직접적으로 자신의 자원을 동원해서 적극 저항하는 조건 속에서 연구하는 고난의 길에 같이 참여하게 될 뿐이니까요 ㅠㅠ
14/12/29 21:55
저게 흔히 말하는 '친절한 게이 삼촌 가설'일 텐데, 과문합니다만 제가 아는 바로는 꽤나 많은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1) 군집 생활을 하지 않는 생물들 사이에서 왜 동성애가 출현하는지 설명이 안 되며, 2) 결정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은 통계적으로 볼 때 가족이나 주변 사회와 트러블을 겪는 빈도가 높으며, 가족이나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헌신하는 경향도 낮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동성애 유전자가 만약 존재한다면 모계 유전이 될 것이며, 이것이 외가 쪽의 생식력을 높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동성애 유전자가 보전된다'는 설명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역시도 아직은 가설 단계라고 하고..
14/12/29 23:31
그렇군요. 책이 나온지 워낙 오래전이라 그럴만하다고 봅니다. 윌슨이 생물종의 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에는 바로 이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비교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죠. 또한 인간을 아는 것이 인간을 용서하는 길이기도 하구요. 타인에게 죄의 굴레를 씌우기를 인간이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런면에서 모든 가치의 잣대가 되는 이성은 가장 교활한 악일 수도 있지요.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이 무엇인가. 그 근거가 무엇인가 여러 분들이 역설해 주셨는데 그런 논리를 몰라서 가설일 뿐인 저 이야기를 믿어보자 한 것은 아닙니다.
차별이 생성된 시대에 유목민들도 이성이 있었습니다. 짐승이 아니었죠. 그들이 만들어낸 편견이(물론 그들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생각했겠지요) 아직도 작동하고 있지요. 우리라고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비웃음을 당할 편견을 만들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 안의 짐승을 인정하면 타인의 허물에 대해 죄의 굴레를 씌우는 일도 훨씬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가설들을 빨리 업데이트 해야겠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1)번의 경우 군집생활을 하지 않는 종의 동성애는 저 가설로 설명되지 않지만 동성애가 성적 긴장을 해소하는 구실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영장류의 동성애가 암컷의 발정기 동안 수컷들의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면 인간에게도 그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발정기가 따로 없었어도 무리을 이루면서 수컷들 사이의 긴장이 없지는 않았겠죠. 친절한 삼촌은 아니고 우리 엄마 안넘보는 삼촌 정도? 사회성이 없는 종의 동성애는 다른 목적일 수 있고 아예 목적이 없을 수도 있지요. 진화의 방향성은 없으니까요. 사실 흥미로운 것은 2)의 예인데요. 동성애가 뇌의 영역인 활동이라면 지금 말씀하신 [현대의 동성애자의 성향]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동성애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 아닌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친철한 게이 삼촌이 요새 왜 필요하겠습니까. 다른 것들이 대신해 줄 가능성이 훨씬 높지요. 이런 [사회적 위치의 하락]이 공동체에서의 이탈을 가져온게 아닐까요?
14/12/30 02:10
1> 동성애 유전자의 출현을 설명할 순 없지만 동성애 유전자의 유지를 설명할 순 있다고 봅니다. 유전자의 [유지]가 아니라 [출현]을 설명하는 건 좀 어려운 노릇이기도 하구요. 물론 이 경우 사회를 구성하지 않는 다른 생명체의 동성애 [유지]를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이성애의 대안으로서 동성애가 나타나는 부분에 대해선 설명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2>현대 사회의 이례적인 양상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고대 그리스와 신라의 사례까지 거슬러 갈 것 없이 중세까지도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어려운 공동체에서 동성애는 종종 나타났죠. 사제와 궁녀는 물론이고, 영지를 물려받지 못해 여성의 선택을 받지 못한 기사와 종자 사이에서도 그렇구요. 아마 이를 통시적으로 개괄한다면 레지엔님의 말씀(동성애자는 때로는 박해의 희생양으로 사회 결속에 유지했다가, 때로는 경쟁에서 벗어나서 독립적인 롤을 수행하는 존재이기를 반복)과 비슷한 양상을 그리겠지요.
14/12/30 05:46
동성애의 코드가 유전자 단계의 문제지만 실상 발현되느냐 마느냐는 뇌의 영역이고 인간의 뇌는 [가소성]으로 특히 유명하죠.
그렇게 생각해볼 때 동성애가 군집생활을 하는 무리에게 이성애의 대안으로 존재했음을 부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봅니다. 인구의 일정부분이 항상 동성애자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동성애 코드가 유전적으로 성공했다는 뜻이고, 성적욕구 해소가 어려운 지경에서 동성애를 이성애의 대안으로 선택한 역사적 결과가 분명 존재하니까요. 특히나 애니 프루의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런 점을 시사하는 대표적인 서사지요. 영화보다 소설이 더 훌륭하구요. 거기다 하나 더 하자면 측천무후...? 여성 동성애를 대하기가 남성의 동성애를 대하는 것보다 훨씬 당황스럽더군요. 그래서 남성들이 남성 동성애자에게 린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물론 옳다는 건 전혀 아닙니다. (항상 정치적 올바름을 생각해야 하는 곳이니까 이런 말을 꼭 써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나 동성의 동성애가 이성의 동성애보다 대하기 훨씬 어렵고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봐요. 저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아주 재밌게 봤거든요.
14/12/30 07:45
가장 현대에 가까운 예는 19세기에서 20세기초에 걸쳐 사립학교 -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내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동성애 문화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회적/지적 엘리트 계급에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고찰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성/이성의 동성애에 관해서는 업계의 명언이 하나 있잖아요. "게이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어!" (마찬가지로 레즈를 싫어하는 남자도 없... 겠죠 아마) 사실 이성간의 동성애는 비교적 간단하게 이성애로 뇌내보완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덕분에 다양한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소재로 사용될 수도 있고요.
14/12/30 10:20
글내용과 닉네임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흐흐
다양성과 재미는 비례하죠. 저랑 말이 잘 통할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듭니다. ^^
14/12/30 11:55
2)의 예가 동성애의 사회적 위치의 하락과 연관이 깊다라고 말씀드린 이유 중 하나는 원시인류에게 샤먼이었을지도 모르는 동성애자의 역할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독특하죠. 말하자면 사냥나간 수컷 하나 둘 정도는 대체가능하지만 부족의 지식, 죽음과 자연재해에 대한 미지의 공포로부터 신화적 위안을 해줄수 있는 것은 샤먼 뿐이거든요. 그는 절대 죽으면 안돼죠. 만약 그가 불을 피우는 지성을 가졌다면 그의 죽음은 부족 전체의 몰살로 이어지구요.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야 말로 인간이 지성의 동물로 나아가는데 첫 단추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14/12/30 13:38
으잉? 이건 너무 나간 생각인데요. 윌슨의 주장도 '샤먼역할이었을지도 모른다'이지 동성애자가 샤먼이었던 것도 아니고
동성애가 다른 생물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라는 이야기하고도 완전히 반대되는 얘기구요.
14/12/30 13:50
먼저 엘에스디님이 [지구의 정복자]라는 책에서 인용해 주신 구절을 가져오자면
[동성애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만으로 발생하기에는 너무 빈도가 높고 보편적으로 발생한다.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아닌데도 이렇게 유전자의 번식 가능성을 낮추거나 제거해 버리는 형질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형질이 분명 다른 방식으로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유전자가 다양한 표현형을 가질 수도 있고, 여러 유전자가 하나의 표현형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요. 말하자면 제가 동성애의 유전자가 이성의 동물로 나아가는 첫 단추라고 한 것은 지성의 발전에는 여러 유전자가 간여했겠지만 사회성에 관련된 유전자는 동성애와 연관이 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의 말이었습니다. 제가 말이 짧아서 혼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진화의 방향성은 없습니다. 사회성이 없는 동물의 동성애는 다른 목적일 수도 있고 목적이 아예 없을수도 있습니다. 다만 영장류는 사회성과 동성애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거의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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