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14년 콩월 콩일. 하늘이 나에게 시련을 준비한 것 같다. 사실 오늘은 기숙사 퇴사일이다. 그러나 나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4인 4실을 그대로 신청했고, 연장입사도 함께 신청했기 때문에 이사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멀쩡하던 배가 마치 잘못된 육회를 먹은 것처럼 싸르르 아파오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폭풍 러시를 시전하고 나온 나는 뭔가 불안함을 느끼며 학교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런 젠장, 뭔가 잘못되었다.
분명히 4인 4실을 신청했는데 당첨된 것은 6인 3실이었다. 4인 4실은 거실을 끼고 있지만 개인실이 하나씩 있는 구조이고, 6인 3실은 2인 1실 방이 세 개 달려 있는 구성이다. 어쩐지 기숙사비가 싸다 했어. 4인 4실은 가장 비싼 방이고 6인 3실은 3인 1실 다음으로 가장 싼 방이다.
4인 4실이 안 되면 차라리 탈락을 시켜서 원룸을 알아보게 하면 될 것인데, 6인 3실으로 합격을 시켜둔 것이었다. 아, 젠장. 꼬였구나. 당장 오늘 짐은 싸서 나가야 되는데, 당장 오늘 잘 방도 없으니 꼼짝없이 6인 3실으로 가야 할 판이었다.
사실 우리 학교 기숙사는 엄청나게 비싸다. 근처 원룸도 싸지 않지만 원룸에서 사는 것과 별로 차이가 없을 정도니까. 굳이 기숙사에서 사는 이유가 룸메이트 없이 혼자 살 수 있다는 건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리다니... 이제 10시 출근해서 10시 퇴근한 후의 유일한 낙인 스2 하기도 힘들겠다 싶다. 기계식 키보드의 소음은 솔직히 매우 크다.
어쨌든 12시 전에 나가야 하니 부랴부랴 짐을 즉석에서 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 배정받은 방이 현재 살던 방과 같은 층이라는 것이었다. 일단 복도에 짐을 방치해두고 열쇠를 기숙사에 반납한 다음, 밥은 먹어야 하니 학교 밖으로 나왔다.
점심을 먹고 입사 시간이 돼서 운영실에 갔다
"XXX호 누구누구요"
"아, XXX호 C번이시네요"
뒤적이더니 열쇠가 지금 없단다.
배정받은 방에 가보니 외쿸인이 'Oh, this is your room? Sorry~' 라며 꼬부랑말로 씨익 웃으며 말한다. 거기서 실랑이하고 싶지 않고, 그래 뭐 금방 싸겠거니 하고...
한시간동안 멀쩡한 방과 짐 냅두고 밖에서 떨다가 들어갔다.
운영실에는 키가 여전히 없댄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그 시옷쌍기역이 열쇠를 반납하지 않고 자기 나라로 쓩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스2 테란 유저다. 이 정도 일로는 멘탈이 흔들릴 리가 없다. 이런 건 프로토스님을 상대로 아 이번엔 어떤 은총을 내려주시올까 고민하는 상황에 비하면야 뭐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오늘 하루만 인종차별주의자 할란다. 후....
학생 알바들은 그냥 멀뚱히 서서 오는 사람에게 열쇠만 주고 있었다. 니들 이등병이냐?
그래서 나는 스스로 운영실 직원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지금 없어진 열쇠들을 복제하러 갔으니, 일단 짐을 풀어두고 나중에 내려오란다. 마음엔 안 들지만 계속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으니 그러마고 했다.
C호랬지. 일단 방은 비었으니... 외국인들이 살던 방이라 암내가 좀 나네. 일단 창문을 열고,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내고 물걸레질을 쓱쓱쓱. 깨끗해진 방을 보니 상쾌하다.
그러고 나서 짐을 풀었다. 라텍스 매트리스를 깔고, 커버를 씌우고, 이불을 놓고, ...
옷가지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 컴퓨터까지 설치하니 이사 끝!
짐을 풀어놓고 보니 베란다에 눈이 갔다.
우리 학교는 유교적 전통이 어쩌구 하면서 기숙사 이름도 인, 의, 예, 지, 신으로 지었다. 그 중에서 내가 살고 있던 신관은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의관 예관에 살고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학원생과 외국인이 신관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비싸다.
신관과 다른 관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용 샤워장과 세면장, 화장실을 사용하는 구 관들과는 달리 각 방마다 공용 거실공간이 있고 거기에 화장실과 샤워장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 밖으로 굳이 나오지 않더라도 샤워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무한 이기주의의 장이다. 생각해 보라, 자기 개인 공간은 청소할지언정 누가 공용 공간을 청소하겠는가. 당연히 화장실과 세면장은 엄청나게 더럽게 마련이다. 그나마 세면장, 화장실은 사는 사람들끼리 합의해서 치우는 경우도 있겠지만, 방에 딸린 베란다는 청소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내가 본 베란다 역시 그런 수많은 신관 베란다 중 하나였다. 틀림없이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 약 5년, 아무도 청소를 하지 않은 듯, 베란다는 아예 먼지로 새까맣게 뒤덮여 원래 깔려 있는 타일 색이 뭔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새로 산 걸레로 닦아 보았다. 불쌍한 전우는 타일 하나도 채 닦지 못하고 전사했다. 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세제 물티슈였지만, 이 역시 까맣게 달라붙은 얼룩만 늘어날 뿐, 별다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냥 이 쯤에서 포기했어야 했는데, 오기가 생겼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쓰레기통이었다. 그래, 쓰레기통에 물을 받아서 물청소를 하자! 군대에서도 내무검사 직전이 되거나 해야 한번씩 했던 물미씽을 혼자서, 직접, 완전 수동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빨래용 액체 세제를 살짝 풀고, 빗자루 하나와 쓰레기통 하나를 들고 열심히 뿌리고 닦고 문질렀다. 그러기를 십여 분, 드디어 까만 먼지층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 물기만 마르면 될 것 같다. 물은 빗물 나가는 배수구로 흘려보냈으니 끝.
반짝반짝해진 베란다를 보니 정말 보람차다.
피지알에 청소 수기를 올려야징 하고 열심히 이 글을 쓰다가 시계를 보니 네 시.
어라, 운영실이 닫을 수도 있겠는걸. 나는 황급히 운영실로 향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열쇠를 받고 방에 돌아왔다 뭐 그래도 방이 깨끗해졌으니 주말 하루 날린 건 감수해야지.
그리고 난 충격적인 것을 알아내고 말았다.
내 방은 C,D번 열쇠로 열리는 B호였다.
방 번호가 ABC면 열쇠엔 1234로 붙이던가 해라 좀.
지금 다시 이사하러 갑니다. 다음 학기에도 기숙사를 신청하면 제 성기를 잘라 인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