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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2/22 13:26:11
Name 마빠이
Subject [일반] 어느 할아버지의 육아일기
'정월 초닷새 오전 9시쯤 며느리 김씨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9월 21일 아침 손자를 안아 무릎에 앉혔네.
그때 한방울 누런 설사를 하네.
이것이 이질의 시초였다네.
설사는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해가네
물똥은 끈적끈적 고기 씻은 물 같고,
곱똥은 방울 방울 똥을 잘 누지 못하네
바라보는 내 마음 절로 슬퍼지도다
잠시도 염려 놓을 수 없어, 왔다갔다하며 자주 손자의 얼굴을 살피네'

'4개월이 되니 들춰 안아도 되고
고개를 제법 가누어 잡아주지 않아도 되네
6개월이 되어 앉아 있기도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점점 달라져 가는구나.'

'손자가 태어난지 7개월 아랫니 두개가 났구나'

'커가는 손자 지켜 보는 일 즐거워
내 자신 늙는 줄도 모르겠네
사람의 말 분명하게 흉내 내는 것이
나날이 전보다 나아지는구나.'

'나를 향해 두 손 들고
웃으며 다가오는데 미끄러질까 겁내는 듯도 하구나
등을 어루만지고 다시 뺨을 비벼주며
우리 숙길이 하며 끌어안고 환호하네'

'손자가 이불을 파고들며 내게 안기는구나.
잠에서 깨어나면 매번 할아버지를 부르며 안기는구나.'

'손자가 자야 할 시간에도 자지 않고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네
이것이 바로 사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머리를 끄덕이며 책 읽는 흉내를 하는구나.
책 읽는 모습만 봐도 역시 여자애들 노는것과는 다르구나.'

'아이의 지각이 날로 깨여, 시험 삼아 글자를 쓰게 하고 읽게 했다
혀가 짧아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고, 심란하여 잘 잊어버리고 제대로 외지 못한다.
아이의 자품이 중간 정도이기에, 책망하는 것은 오히려 너무 급하다
그래서 권장하고 깨우쳐줄 때에는, 능하지 못하더라도 성내가면서 지도하지 말아야 한다.
응당 상세하고 천천히 깨우쳐주어야 할 것이니, 조급하게 윽박지른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금년 숙길이 나이 14세 시골 사람들이 술 권하니 부끄럼 없이 마시네
손자하나 이 지경으로 무심하게 행동해, 할아비 오히려 근심하고 걱정하네
늙은이 자식 잃고 손자에게 의지하는데 손자는 지나치게 술을 탐해 자주 취하네
빈번히 취하고 토하는 걸 한타할수도 없으니 기박한 운명이 얼마나 한스러운가.'

'언제 아이의 지혜가 밝아져 이 할아비의 마음을 알아줄까.'

'아이의 종아리를 때리는 것은 내가 악독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나쁜 습관을 금지시키기 위해서라네.
악습을 금지시키지 않으면 고질이 되어 끝내 금지시키기 어려우리, 악습의 기미는 초창기에 바로 꾸짖고
금지해야 하는 법, 손자를 불러 혹독하게 꾸짖고, 손들고 있으라 준엄하게 꾸짖었네, 회초리로 종아리를
세차게 때리니, 외마디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네, 10여 대를 때리고 차마 더 때리지 못하고, 나중애 봐가면서
더 때린다고 타일렀네, 그만 때리자 한참을 엎드려 우는데 늙은이 마음 또한 울고 싶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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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육아 일기는 조선시대 초중기 문신인 이문건의 양아록 입니다. [李文楗, 1494 ~ 1567]
자신의 손자인 이숙길의 1~16세까지 16년간의 성장기를 육아일기로 간단한 설명과 시형식으로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문건은 우리가 흔히 아는 드라마 여인천하의 시대배경인 중종과 명종시절 문신이며 그 유명한 조광조[趙光祖] 문하생이였습니다.

중종시절 조광조가 잘려?나갈때 이문건의 형제들은 의리를 지키다 다 죽고, 그 후 이문건은 홀로 지방으로 유배를 갔다가 7년후
김안로[金安老]의 협조로 사면후 순탄한 관직생활을 하다가 다시 을사사화[乙巳士禍]때 유배를 가게됩니다.
이 유배로 이문건은 죽을때까지 23년간 경북 성주에서 살게됩니다.

드라마 허준이나 마의에도 나온것처럼 조선시대는 전염병도 많이 돌았고 쳔연두에 걸리면 워낙 생존률이 낮아서 이글에 나온
손자의 아버지를 빼고는 병에 걸려 어릴때 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문건의 그 하나 남은 아들도 병에걸려 약간 모자랐고
결국 이숙길이 7세때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이문건이 손자에대한 기대와 사랑은 얼마나 컷을지 알수있을거 같습니다.

21세기인 요즘도 아버지의 육아일기조차 보기 힘든데 조선시대에 양반가의 할아버지가 육아일기를 남겼다니...
정말 요즘 엄마들이 쓰는 육아일기와 하나도 다를 봐 없는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잘 보이는 일기 인거 같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청소년의 모습은 요즘 청소년과 그리 다르지 않고 그걸 바라보는 부모나 할아버지의 마음 또한 요즘 부모님과
다를 봐 없는 조선시대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일기 이기도 합니다.

이문건은 이 일기의 취지를

할아버지가 모질게 교육시킨걸 훗날 숙길이가 이 일기를 보고 이해해 달라는 취지로 쓴다고 적었습니다.


손자 이숙길은 성장 후 할아버지의 바램대로 장원급제하여 큰 관직을 한건 아니지만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니
할아버지의 손자 교육은 성공한게 아닌가하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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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롯기
14/02/22 14:30
수정 아이콘
http://58.120.96.219/pb/pb.php?id=humor&no=194603&divpage=33&ss=on&sc=on&keyword=%ED%95%A0%EC%95%84%EB%B2%84%EC%A7%80
얼마전 유게에 올라온 내용인데 리플에 보면 후손분의 비하인드스토리도 있습니다.
같이 보면 좋을거 같네요.
14/02/23 12:31
수정 아이콘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가득 느껴지네요. 이걸 보니 저도 나중에 손주들 육아일기 써주고 싶네요. 그 전에 결혼 아니 연애부터 해야겠지만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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