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이 존재합니다. 용역과 재개발의 문제, 권리금에 대한 재산권 인정의 여부, 도시개발 방향 등등 말이죠. 저는 여기서는 한가지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20년이 넘게 전철연은 재개발지역에서 투쟁을 해 왔고 이런 류의 싸움은 수천 수백번이 넘게 있어왔습니다. 심지어 지난 10년 정권 동안에도요. 그런데 왜 용산에서는 6명이 생명을 잃었을까요?
당시 상황에 대한 검찰조사에서 한 참모들의 진술.
기동본부장 - (특공대가 진압할 당시) "망루 안에서 시너를 투척하고 화염병을 던진다는 보고를 받았고, 내가 총 결정권자였다면 작전을 중지시켰을 것이다"
정보관리부장 - "상황을 잘 체크해 들어가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망루가 몇 층인지도 파악을 하지 못했다"
경비본부장은 - "다른 기관과의 연계가 시간적 부족으로 (작전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특공대장 - "대원들 교육을 마친 뒤인 새벽께 새로운 진압 계획이 나왔다. 하지만 대원들이 자고 있는 상황이라 다시 교육을 하기가 어려웠다"
일반특공대원들 "무리한 진압 작전이었다" "만약 내가 지휘자였다면 철수를 명령했을 것"
놀랍게도 최종책임자인 김석기 전 청장부터 핵심 참모, 현장 지휘관, 특공대원까지 일관적으로 '나는 몰랐다. 알았다면 중지했을 것이다.'라는 진술을 했습니다. 현장 경찰 전원이 상황파악을 못했다는 건 사실 책임소재를 뺑뺑이 돌리는 것인것 같고 제가 바라보는 핵심은 경찰 관계자의 당시 작전을 평가하는 관점입니다. 경찰 관련자 전원이 만약 자신이 지휘를 했다면 하지 않았을 정도로 무모한 작전이라고 당시 참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농성이 몇층에서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현장의 위험한 상황에 대한 파악도 안되어 있고 필요한 장비(작전입안때는 소방차6대 컨테이너2대로 하기로 했으나 현장의 소방차는2대, 컨테이너는 1대)도 부족한 상황에서 과거 일본의 황군이 했던 것처럼 반자이정신으로 돌격을 했었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모든 국민이 아는 바와 같습니다.
몇년 전 동일한 상황에서 똑같은 경찰은 인화물질이 많은 농성장에 무리하게 진입을 하는게 아니라 물자를 차단한체 굶겨서 사고없이 처리했습니다. 그러던 경찰에 왜 갑자기 닥돌을 한것일까요? 바로 김석기 청장 때문이었지요. 당시 차기 총장에 김석기 청장이 각하의 마음에 들어서 1순위 후보였습니다. 당시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한 자세가 가카의 하트~♡를 get!한 것이지요.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 김 전 청장은 '전공'이 필요했습니다. 시위대를 멋지게 때려잡아 가카의 총애를 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김 전 청장은 전형적인 책상물림으로 그동안 이런 현장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었습니다. 떠오르는 사람이 한명 있지요. 자유행성동맹의 도손대장.
1년 전에도, 지금도 저의 결론은 이겁니다.
욥 트류니히트 "시민 여러분! 저는 압니다. 6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왜 죽었는가를!"
양 웬리 "수뇌부의 작전이 잘못됐기 때문이지."
- 은하영웅전설 1권, 다나카 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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