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시절 H의 뒷자리에 앉았던 친구인데 그 웃음에 빠져 같은 동아리가 되었고,
어느 순간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거절 당했던 그런 친우가 하나 있습니다.
1년간 부끄럽기도 하고 그 아이를 보면 가슴도 아파서 모른 척 그렇게 그냥 그런 친구로 지내다 고3 가을이 다가오던 어느 날, H는 그 아이에게 작은 떨림을 감추고 다시 한번 그녀에게 편지가 아닌 말로 H의 마음을 전하려 합니다.
“나 네가 좋아, 이 마음을 가지고 너와 친구로 지낼 수 없어”
이미 한번 차인 몸입니다.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사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H는 이날을 위해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그녀와 관련한 많은 사람들을 포섭해 왔습니다. 거기에 수능을 앞에 둔 스트레스는 그를 지배하던 무수한 이성적 움직임을 정지 시킵니다.
그리고 소녀는 그녀답지 않은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허락의 말을 전합니다. 핸드폰이 아직 많은 이에게 퍼지지 않았던 1999년 어느 가을날의 일입니다.
2
그녀의 이름은 O입니다. H의 첫 여자 친구지요. H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심장은 고동치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릅니다. H와 O는 가난한 학생입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수 많은 미지의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도 그녀도 첫 연인입니다. 그들의 데이트는 어떤 것 이라도 즐거웠습니다. 영화관에서 보았던 영화도, 같이 멍하니 바라보던 한강도 그 어떤 로맨틱한 것들보다 아름답게만 보였습니다.
어둡던 놀이터에서의 두근거리던 첫 키스도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어가던 겨울날 결국 수능은 그들 고3의 어리석은 연인들에게도 찾아왔습니다.
3
H와 O는 결국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습니다. H는 결국 재수를 결정하고 O는 그 점수로 가능한 대학을 찾아 입학합니다. 두 연인 사이에 작은 금이 생깁니다. 대학생과 재수생 이 작은 차이는 재수생이 된 H를 괴롭힙니다. 그가 아무리 잘해도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떠날 것만 같았으니까요. H는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그녀를 육체적으로 라도 잡아 놓겠다고 …
그녀의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H는 해보지도 않았던 아르바이트를 하고 불안해 하는 O를 달래봅니다. 결국 2000년의 겨울 그녀의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들켰습니다. H와 O는 헤어지게 됩니다. H는 담배를 배웠고, O는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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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이름만 명문인 지방 캠퍼스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은 그녀 생각 뿐 입니다. 그의 학점은 그리고 그녀의 학점은 부서진 다리 위를 달렸던 자동차처럼 멈추지 못하고 떨어져만 갑니다. 2002년 봄, H는 도망치듯 군대에 입대합니다. O는 밉지만 사랑하는 H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남는 것은 상처뿐이었습니다. 외로움과 아픔의 괴로운 시소게임이 둘을 집어 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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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가 군대를 재대하고 벌써 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H는 매일 밤마다 보이는 O의 모습이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오늘도 담배를 입에 뭅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회색연기가 그가 서있는 아파트 계단을 감싸 오릅니다. 그날 아침 O의 눈물을 보며 일어났기에 H의 마음은 심란 하기만 합니다. H는 O의 친구에게 O의 근황을 묻습니다. 잘 지내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O의 친구는 말합니다.
“O말야, 네가 말한 그 날밤 진짜 울고 있었데”
H의 마음은 무거워만 집니다. 어떻게든 다시 만날 기회를 노려 O를 만납니다. 그녀는 변했습니다. 그가 사랑하던 맑은 미소는 어둡고 지쳐 보입니다. 자신감 넘치던 그녀의 몸짓은 자신감을 잃고 어딘가 움츠려있습니다. H의 눈에 눈물이 흐릅니다. 미안함에, 그리고 아픔에
그는 울어 버렸습니다.
6
H는 세번째로 O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 동안의 모든 어긋남을 어떻게든 돌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H는 적극적이었고 O는 그의 마음에 마음을 허락합니다. H는 변했습니다. 그의 성적은 올라만 갔고 부모의 시선도 따뜻해져 갔습니다. 그의 구속하지 않겠다던 다짐도 훌륭히 지켜집니다. 하지만, H는 O를 외적으로 지켜줄 수 있었을지 몰라도 내적으로 그녀는 지쳐 갑니다. 그의 마음은 그녀의 아픔을 다 감싸지 못하고 둘 사이는 작은 균열이 생기고 사라지는 아픔이 계속됩니다.
“난 사랑 받고 싶어”
“내가 어찌해야 너의 마음을 채워 줄 수 있을까?”
7
2008년의 봄입니다. H는 대학을 졸업하고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취업의 문은 좁고 그가 사랑했던 인문학은 그의 취업에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O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은 H를 무섭게 눌러옵니다. 그녀의 아픔을 감싸보려 많은 책도 읽고, 공부도 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변함없이 커져오는 아픔에 O도 지쳐갑니다. 그녀의 상처는 그녀에게 화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고 중압감에 시달리던 H도 지쳤습니다.
2008년 3월 두 연인은 다시 두 사람의 개인이 되었습니다. O의 생일을 1주일 정도 남겨놓은 어느 날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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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와 O는 서로를 욕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H는 다시 끝없는 외로움에 절망하고, O는 아픔이 그녀의 가슴을 다시 검게 물들입니다. H는 어학연수를 가기로 합니다. O는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 지려 노력합니다. 다시 보지 않겠다며 스스로 다짐하지만, O를 닮은 H를 닮은 누군가를 찾게 되는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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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 벌써 절반이 넘게 흘러갔습니다. 들어가지 말아야지, 벌써 수백번은 다짐 한 것만 같은 그녀의 홈페이지에 H는 접속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 자신이 놓쳤던 그녀의 아픔이 가슴에 바늘이 되어 들어옵니다. 이제는 시간이 그를 무겁게 누릅니다. 이제 너무도 많은 시간을 흘렀고 H는 자신이 O를 힘들게만 만들었구나 하는 자괴감에 얼마 만에 흘리는
눈물인지도 모르는 눈물을 흘려 봅니다. 떨리는 손으로 아직도 기억하는 그녀의 이메일에 자신의 마음을 적어 갑니다. 고등학교 1학년 첫사랑이었던 O에게 떨리는 손으로 썼던 편지가 생각납니다. 무심코 손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립니다.
10
오랜만의 H의 편지에 O는 망설입니다. 결국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정지된 핸드폰, 예전과 달라진 자신에 고민하다 결국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많은 문제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둘의 만남은 약간은 어색하고 조금은 슬픈 그런 모습입니다.
“행복하니? 난 네가 행복했으면 해”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 그래서 난 나도 너도 사랑할 수 없나봐 ”
H는 바랍니다. O가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짐합니다. 이번에는 그녀를 지키겠다고.
O는 바랍니다. H와의 행복을 그리고 생각합니다. 변하고 싶다고.
둘의 3번째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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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미수다 이야기를 읽다보니 생각나 써내려 갑니다. 만난지 12년 사귄지 10년 저의 인생의 1/3을 함깨해온 루저의 여친님에게 고마워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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