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09/08/25 04:29:33
Name 휘리노이에스
Subject [일반] 수의학, 그리고 수의사. (1)
PGR 여러분들은 애완동물을 키워보셨나요? 요즘은 애완동물이라는 말에서 오는 부정적인 어감을 해소하기 위해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애완동물이라는 용어가 좀 더 익숙하시겠지요. 용어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지만 어렸을적 반려동물 한번 안 키워보신분은 찾기 힘들겁니다. 가장 흔하게는 개를 키워보셨을거구요, 한때 열풍이 불었었던 소라게나 햄스터, 거북이, 이구아나를 키워보신 분도 있을겁니다. 그밖에 요즘들어 각광받는 거미를 키우신다거나 정말 나는 키워본적이 없는것 같다 하시는 분들도 학교앞에 파는 병아리를 키우시거나 한번 키워보려는 시도는 해보셨을겁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동물이 어느날 갑자기 다치거나 아파보일때, 우리와는 의사소통도 되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소중한 이 녀석들이 아파할때 찾게되는것이 바로 수의사입니다. 바로 제가 지금 한참 배우고 있는 학문인 수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죠. 어찌보면 한번쯤은 동물을 키워보았으니 친숙한 분야가 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수의학의 인식은 아직까지 보편적이지 못합니다. 간단하게 검색엔진을 이용하면 동물이 아플때 어떻게 하면 좋냐는 질문에 답은 대부분이 각종 비법?들을 내놓으면서 병원에 가면 진료비 받을 생각밖에 안하고 한번가면 몇십만원씩 들게 되니 가지말라...는 글이 대부분이죠 -_- 수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은 정말 서글픕니다. (추후에 병원의 진료비에 관해 글을 쓸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같은 취미 한가지를 공유하고 있는 PGR의 여러분들께는 수의학에 관련하여 궁금한점이 있다면 풀어드리고, 오해가 있다면 해소해 드리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이러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질문 란에 쓴 바와 같이 주로 수의사나 수의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수의학에 대해 궁금한점을 풀어드리는 식으로 써 나갈 것이고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실하게 써 나가려고 합니다. 국시 준비하기 전까지요 -_-

우선 오늘 풀어드릴 첫번째 궁금증은 과연 어떻게 수의사는 그 많은 동물을 다루는가? 라는 것입니다. 위에 보시면 개, 소라게, 햄스터, 거북이, 이구아나, 거미 병아리 등등 사실상 수의사가 담당하는 동물의 범위는 인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생명체라 보시면 됩니다. 물론 여기서 생명의 정의를 꺼내시면서 미생물등등을 논하시면 조금 곤란합니다 :) 뭐 미생물도 각종 질병의 진단에 유용해서 수의사가 다루는 범위에 들어갑니다만 진료와 치료와는 거리가 멀죠. 다루는 범위에 들어가서 미생물쪽으로 일하는 수의사의 숫자도 꽤 많지만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이렇게 많은 종을 어떻게 6년만에 배우고 나오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안배웁니다. 네. 안배워요. -_-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진료가 가능한것은 국내에서는 개, 고양이, 말 정도에 한정됩니다. 이상의 종에 관해서는 사실상 인간과 같은 진단과 치료가 모든 질병에 관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예를 들어 MRI, CT등등도 다 합니다. 내시경도 갖춰놓은 병원이 드물게 있구요.) 때문에 대학에서도 그에 맞추어 교육을 합니다. 국내 실정상 마사회가 아닌 일반 대학교에서는 말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는 상태이고 그외의 동물에 관해서는 소나 돼지의 경우 진단과 치료비용이 개체의 비용보다 저렴한 질병에 한해 자세히 배웁니다. 이때 진단과 치료비용이 저렴하다 하더라도 후유증이 남아 증체량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못하게 되는 질병에 한해서는 무조건 도-_-축 입니다. 네. 이제 대충 어떻게 돌아가시는지 감이 오실듯 하네요. 소나 돼지도 치료비용이 비싸면 도축되는데 그럼 닭이나 양식어는? 거의 예방개념밖에 없습니다. 치료라는 개념자체가 산업동물에게는 거의 대부분 적용되지 않으며, 어떻게 예방하여 원하는 만큼의 산자수와 증체량을 얻을것인가가 초점이 됩니다. 따라서 해부학 등등을 자세히 배우지 않으며 질병의 증상을 통해 어떤 질병인지를 알아내고 전염성 질병의 경우는 빠르게 살처분을 통해 전염을 막는데에 교육의 목적이 있습니다.

수의학은 동물을 위한 학문인데 왜 학교에서 치료를 하지 않고 도축하는것을 가르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수의학과에 입학해서 안 사실이지만 현재까지의 수의학의 목적은 동물의 행복과 복지증진이 아니었습니다. 수의학의 목적은 책에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동물의 건강한 상태를 통해 인간에게 기여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이것에 대한 반성으로 동물 그 자체의 복지를 위하는것을 수의학의 기본 목적으로 삼자는 학자들도 많은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수의학은 그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기 때문에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오자면, 그렇기 때문에 6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동물들에 관하여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 동물을 빼곤 자세히 배우지 않기 때문이죠. 특수동물인 설치류, 파충류 등을 키우시는 분께서는 졸업뒤에 전문적으로 따로 공부를 하신 수의사 선생님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러한 방향(중요동물을 제외하고는 예방과 빠른 살처분으로 전염방지)으로 교육이 이루어 지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의사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수의사로서 단 한번도 동물을 치료하지 않는 분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동물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하죠. 그러나 이러한 분들이 있어서 우리의 식탁은 유지되고 나라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라가 유지되고 있는것은 오버아니냐구요? 예전에 터졌던 구제역 기억하시나요? 당시 추정 피해액이 2조원이었습니다 -_- 전 8조원으로 배웠는데 웹상에는 2조원으로 나오는군요. 이분들이 열심히 일하시지 않으면 나라가 휘청일수도 있는 사안이죠.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분은 공무원 인력낭비를 줄이겠다며 담당 공무원 숫자를 열심히 줄이고 계십니다만 :)

늦은 시각이라 제가 많이 졸음이 오는 상황이다 보니 쓰려던 글과 무관하게 자꾸만 글이 흘러가는듯 해 첫 글은 이만 줄이려 합니다. 6년동안 어떻게 많은 동물을 배우는지 얘기하려다 딴 소리만 실컷하고 글을 마치는듯 하지만, 앞으로도 이 글에 댓글로 수의학, 수의사, 혹은 동물병원등에 궁금한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무엇이든 이야기 해 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열심히 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PGR여러분이 가장 많이 수의사를 접하는 공간인 동물병원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불만사항을 말씀해 주시면 더욱 더 서로간의 이해에 도움이 될 듯 하네요. 다음글에 뵙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9/08/25 05:16
수정 아이콘
곧 수의학을 공부할 사람으로서 굉장히 반갑습니다 :)

다행스럽게도 저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마당에서 큰 개들도 키우고 집 안에서는 작은 개를 키워본 추억이나 느낌들 덕분에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수의학이 아니더라도 동물들을 위한 일을 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품고 공부하니 원하는대로 미국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동물과학을 취급하는 대학에 합격해서 다음달에 입학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휘리님과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옛날에 수의학은 '가축' 을 위한 학과에 가까웠지 '애완동물' 을 위한 학과가 아니였기 때문에 과거 70, 80년대에 수의학은 정말로 동물을 아끼고 좋아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과이거나 아니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과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수의학을 다른 의학과 같은 취급을 하기 때문에 대학원 과정도 마치고 학위에 자격증까지 따야 당당하게 병원을 차릴 수 있다고 합니다. 대학교, 대학원, 인턴까지 포함하면 8년에서 10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보면 되겠군요. 제가 수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지 요즘은 길거리에 산책하는 개들이나 TV에 나오는 동물들을 볼 때면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프거나 힘든 상황에 놓인 동물들을 보면 안타깝구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고 언젠가 같은 필드에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ProtossArchon
09/08/25 06:53
수정 아이콘
pgr에서 수의학 전공하시는 분은 처음 뵙는것 같네요. 저는 본과 3학년 입니다. ^^
살찐개미
09/08/25 08:36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네요. 한때, 아주 어렸을때 수의학을 배우고싶었는데.. ^^
다음글 기대할께요~
날라라강민
09/08/25 09:19
수정 아이콘
저도 곧 수의학을 배우게 될 예과 2학년생이네요~ 저도 막 긴장이 됩니다!!
컬쳐클럽
09/08/25 10:52
수정 아이콘
첫번째 궁금증은 저도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것인데 명쾌하게 해결해주셨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레빈슨
09/08/25 11:02
수정 아이콘
저도 첫번째가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09/08/25 12:36
수정 아이콘
저도 수의학 전공하시는 분 처음 뵙네요.
국시 준비하신다면 같은 학년이신것 같은데^^
(어제 개강해서 지금 점심시간이라지요-_-)

"저도 수의학과에 입학해서 안 사실이지만 현재까지의 수의학의 목적은 동물의 행복과 복지증진이 아니었습니다.
수의학의 목적은 책에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동물의 건강한 상태를 통해 인간에게 기여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했습니다."
이부분 많이 와닿습니다. 그래서 참 오랫동안 꾸어왔던 꿈을 놓을까 하는 고민에서 많이 힘들어 했었답니다.
연재 기대할게요.^^
거침없는몸부
09/08/25 15:12
수정 아이콘
제 주변에 수의학 전공생들이 없는지라 예전부터 정말 궁금한게 많습니다.
1. 수의학과 남학생들은 군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의대생들은 국시합격+학교졸업 후 공보의나 군의관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2. 현재 한국에 수의대는 몇 개나 있나요? (대충 10개 안팎이지 싶은데...)
3. 서울대 수의대나 건대 수의대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4. 수의대에선 그럼 해부학 실습은 개와 고양이 정도만 하시는건가요?
글쓴이님 혹은 다른 수의학 전공자분들께서 무지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실거라 믿습니다 ^^;; 감사합니다.
ProtossArchon
09/08/26 00:27
수정 아이콘
1. 3년전쯤(맞나요?) '공익수의관' 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졸업 후 가게 되는데요, 의대로 치면 공중보건의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복무기간도 비슷하구요. 대다수의 남학생들은 이 제도를 통해 병역을 이행한다고 봅니다. 다만, 저를 비롯한 소수의 학생들은 예과를 마치고 현역병으로 군대에 다녀오기도 하며, 또한 일부는(한 학년에 약 3~4명.선발 인원이 많지 않습니다.)졸업 후 수의장교로 복무하기도 합니다. 물론 공익판정을 받으신 분들은 행운아~
2. 총 10개 있습니다. 9개의 국립대와 1개의 사립대(건국대)에 있지요. 9개의 국립대 수의학과는 각 도 마다 하나씩 있습니다. 서울대, 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경상대, 강원대, 제주대 입니다.
3. 글쎄요...현재의 수치화된 수능점수라든지 이런 건 정확히 모르겠네요. 다만, 제가 입학당시(2003년도)에 제가 수능 상위 3%대 였는데 정시모집 평균정도로 합격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 때 보다는 다소 하향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 학교 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희 학교의 경우(충북대) 해부학 실습 시 기본은 개였구요, 비교해부학 이라고 해서 돼지, 산양, 닭 등을 해부 실습 했었고, 실험동물의학 이라는 과목 실습 시간에 랫드(rat; 실습용쥐)와 마우스(역시 실습용쥐 이지만 랫드보다 작습니다.)해부를 했었습니다.

부족하나마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꾸벅-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5459 [일반] 일상에 관한 소고 - 서른여섯번째 [15] 여자예비역2484 09/08/25 2484 0
15308 [일반] ▶謹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임시추모공지글) [386] 분수8444 09/08/18 8444 0
15458 [일반]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셉션(INCEPTION) [7] zephyrus3634 09/08/25 3634 0
15457 [일반] 롯데자이언츠의 역사 - 12. 돌아온 봄 [13] 유니콘스3112 09/08/25 3112 0
15455 [일반] 기아와 SK의 김성근 감독의 편파판정 논란 [89] 윙스4308 09/08/25 4308 0
15454 [일반] 터키 이야기 1화 - 터키는... [15] NecoAki3613 09/08/25 3613 0
15453 [일반] 수의학, 그리고 수의사. (1) [9] 휘리노이에스4694 09/08/25 4694 0
15452 [일반] 바둑을 두지 않고 바둑을 즐기는 법 - 바둑을 모르는 분들을 위한 바둑 강좌 [40] 디미네이트6858 09/08/25 6858 42
15451 [일반] 모래아트 [4] 아이리쉬3514 09/08/25 3514 0
15449 [일반] 휴가 기간입니다.(부제:사직원정 관람기) [18] 달덩이4656 09/08/24 4656 1
15448 [일반] 자전거이야기 [19] 괴수4354 09/08/24 4354 0
15446 [일반] [잡담] 흡연구역을 좀 늘려주세요. [109] 유유히5466 09/08/24 5466 1
15445 [일반] 어머니께서 수술을 받으십니다.. [26] 자갈치3568 09/08/24 3568 0
15444 [일반] [쓴소리] 녹색성장을 가르치는 건 좋습니다. [18] The xian3220 09/08/24 3220 1
15443 [일반]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08/25(화) 프리뷰 [46] 돌아와요오스3403 09/08/24 3403 0
15442 [일반] 숨기고 싶은 개인적인 비밀을 다룬 미국 쇼와 일본 드라마 [12] Alan_Baxter5240 09/08/24 5240 0
15440 [일반] 한국 락 페스티벌 - 5. GO GREEN! 지산 벨리 락 페스티벌 [10] 후치4690 09/08/24 4690 0
15439 [일반] SM에서 새로운 여성그룹이 나오는군요. [64] 세우실8786 09/08/24 8786 1
15437 [일반] 강남분향소의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18] 세우실3059 09/08/24 3059 8
15435 [일반] [인증해피] 100년 역사 뉴밸런스? 그 허와 실! 그리고 1500. [10] 해피5732 09/08/24 5732 0
15433 [일반] 입대 합니다 ... ^^ [31] Dreamlike2992 09/08/24 2992 0
15432 [일반] 요즘 슈퍼스타K란 프로그램을 보고 있습니다. [41] 삭제됨6363 09/08/24 6363 0
15431 [일반] [Book Review] 고인을 추모하며 다시 읽는 은하영웅전설 - the life goes on without you [9] Frodo4120 09/08/24 4120 1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