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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24 08:21
댓글은 없는데 추천만 셋이네요.
올해 큰 별이 많이 지는데요. 그만큼 큰 인물이 올해 새로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중에 제 아기도 있겠지만요. ^^ 가신 두 분이 남긴 어록은 새록새록 제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남아있는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할 때 보다 더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지요.
09/08/24 11:51
"민주주의의 구세주를 기다리지 마라. 민주시민답게 스스로의 역할을 찾아 나서라."
저 역시도 얀의 죽음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좋은 글이네요. 그래도 역시나 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대로 뒀다가는 얀함대가 우주정복할기세(...)여서겠지요. (딱히 암살외에 죽일 방법도 없습니다;)
09/08/24 12:50
'몰살의 다나카' 동의 합니다.
후반부 제국군 장성급들의 이름은 아무리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정도로 많이 죽어나가죠 ^^; 거기에 백병전에서 무적일꺼라고 생각되던 쉔코프의 죽음도 정말 아쉽고요. 20대초반에 읽었던 가장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09/08/24 16:23
쉔코프의 죽음이 제일 아쉬웠죠.
얀 웬리가 로이엔탈과 벌인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를 내다 버린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독한 회의였습니다. 그로 인해 죽음의 목전에 선 민주주의를 살려낸 것이 또 그의 양아들인 율리안이라 하니.. 참 아이러니한 결말이었습니다.
09/08/24 18:30
최악의 민주정치 vs 최고의 독재정치를 대비시키면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죠. '무엇이 최선인가?'
작품 내에 이러한 의견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 상황은 결국 시민들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책임을 질 수 있다. 하지만 전제정치의 억압은 시민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민주주의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09/08/24 20:17
전투의 생존자들을 살아남았다는 이유로만 승진시켜줄 정도로 죽여나갔죠-사자의 샘 7대 원수. 제국군 세력 중 가장 좋아하던 제독인 비텐펠트가 끼어있었지요.
- 다나카 요시키가 우파 작가라는 뜬소문(?)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자유행성동맹의 묘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냉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쪽입니다 저는. 선출된 무능한 정치 지도자(욥 트류니히트)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는 망해가고, 역설적으로 소수의 군부 영웅(양웬리와 13함대, 뷰콕 등등)들이 민주주의적 국가를 방어하다가 결국은 패망하게 되는 식의. '봐라, 민주주의나 제국주의나 결국 전쟁의 세계에서 중요한 건 엘리트 군부가 아닌가!' 그 뭐더라. 암릿차 전투였나요. 제국군이 동맹군을 영토 깊숙히 유인하고, 동맹군은 '해방군' 처럼 제국령 '백성'들에게 보급품을 나눠주지만 결국 보급품이 다 떨어지게 되자 '민중'들을 진압하게 되는 장면 역시 요시키의 냉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하지만 프로도님의 말씀대로 양웬리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군부 출신의 한 인물에 의해 운영되는 민주주의는 결국 허상이고, 중요한 것은 힘을 모아 함께하는 것이다, 라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어찌보면 '민초'들-고아소년 율리안, 난봉꾼 포플란, 정치지도자의 딸이었던 프레데리커 등-이 고난을 헤쳐가리라. 하고. - '제대로 된' 장편 소설이란 다양한 세계의 충돌을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정치의 이런저런 면모들을 잘 보여준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아, 그리고 죽음 중에 가장 멋진 죽음은 파렌하이트의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관을 탈출용 비행선에 태워보내며 '너까지 죽게 되면 천국에서 내 자리가 좁아지게 된다' 고 외치고 죽었지요. 쉔코프의 죽음 만큼 멋진 죽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그나저나 아루스란전기는 완결된 재판 안나오나요....엉엉.
09/08/24 21:18
다나카 요시키가 우파 작가처럼 인식되는 것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형태로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욥 트류니히트를 지키기 위해서 라인하르트를 쓰러뜨려야만 하는가. 먼 장래의 독재의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 희대의 명군을 타도해야 하는가. 사실 쉬운 문제 아니지 않습니까? 부시, MB 같은 작자를 대통령으로 뽑아 주기도 하는 민주정체란 게 과연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인가? 너무 적나라한 딜레마를 제시하다 보니, 우파, 심지어는 극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다나카 요시키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화신이라고 생각할 만한 얀 웬리의 단상들을, 그리고 가끔씩 뜬금없이 나오는 작가 시점 서술들을 보면 말이죠. 그리고 천재가 아닌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불씨를 살려 가는 후반부 전개를 보면요. 한국 인터넷에 떠도는 국개론이 민주주의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 잘 해 보자는 뜻인 것처럼, 다나카 요시키 또한 타락한 일본 근현대 민주주의를 보면서, 민주주의의 참 정신을 생각하며 은영전을 썼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전후 처음으로 자민당이 아닌 당이 제1당이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정치에서는 일본보다 앞섰다고 생각했던 한국 사회, 적어도 이 점에서는 다시 앞서 나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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