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PGR 바둑 이야기’ 연재를 기다리셨던 분들께 지난주, 지지난주 연재 빼먹은 점 사과드립니다. 지난주에 연재를 재개하려던 찰나에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셔서 이런 연재 글을 올릴 타이밍은 아니다란 생각에 자중한 것입니다만, 그 전 주의 약속을 못 지킨 것에 대해서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일단은 주 5~육회 연재라는 당초 목표에는 수정을 가하지 않을 생각이며, 앞으로도 또 꾸준히 못할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 연재 횟수 변경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단 오늘 연재분은 이 기초 강좌로 대신하겠으며, 많은 의견과 지적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통해 바둑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 일단 스크롤 보시면 아시겠지만 깁니다. 제가 바둑 클럽 운영할 때 초보자들에게 한 시간 정도에 걸쳐서 설명했던 바둑 규칙을 글로 담은 건데, 제 글재주가 부족하여 그리 간결하게 정리해내지는 못했습니다. 벌써부터 백 스페이스를 누르실 분들의 모습이 선하군요.;;
이렇게 하나로 몰아서 여러분들의 기가 질리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를 짓을 하게 된 것은, 일단 이곳이 자유 게시판이라고는 하나 바둑 사이트가 아니기에 초보 강좌로 여러 편을 올리는 건 그다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그냥 ‘바둑 연재’는 바둑 관심 있는 사람만 보라는 의미지만, ‘초보자 강좌’란 건 모르는 사람에게도 볼 것을 강요하는 성격이 있으니까요). 또한 여러 편으로 나누기엔 조금 애매한 내용이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나누어서 연재하는 것보다 한 번에 집중도 있게 몰아서 설명하는 게 더 적절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길기는 하지만 어려운 내용은 절대 아닙니다. 수많은 좋은 글들이 넘쳐나는 PGR 자게에 이런 하찮은 글 하나에 귀중한 한 시간을 투자하도록 강요한 감은 있습니다만, 바둑이란 무엇인가를 소개해드리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 시간이기에 어쩔 수 없네요. 아무튼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드리겠습니다.
0.서론
왜 게임 사이트에 와서 번지수 틀린 바둑글을 올리냐, 바둑 전문 커뮤니티에서는 씨알도 안 먹힐 실력이니 이런 데 와서 아는 척 하는 것 아니냐, 뭐 그런 시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는 정곡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코 번지수 틀린 짓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둑과 e스포츠(라고 쓰고 아직은 ‘스타크래프트’라고 읽습니다만)는 관련이 없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한쪽의 성패가 다른 쪽의 성패 또한 좌우할 중요한 관계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때문에 e스포츠 팬들에게 바둑에 대한 관심을 환기 시키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이 글 자체는 그런 대승적인 관점에서 쓰는 것은 아닙니다만.)
‘마인드 스포츠’란 단어가 종종 보입니다. 21세기는 지식 중심 사회네 뭐네 하면서 기존의 보드 게임(체스, 바둑, 브릿지 등등)처럼 머리를 쓰는 두뇌 활동 또한 하나의 스포츠로서 인식해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TV, 컴퓨터 등 현란함으로 눈을 현혹시키는 영상 매체 및 새로운 흥밋거리들이 등장함에 따라 고리타분하게 여겨지고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고전 보드 게임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고육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마인드 스포츠란 단어의 속내가 어찌됐건, 세계적인 레벨에서 보면 마인드 스포츠의 대표격은 체스가 될 것이요, 우리나라만 국한 시켜보면 스타크래프트가 있을 것이며, 한중일 3국으로 살짝 범위를 넓혀보면 바둑이 있을 것입니다. 햇수 10년을 넘어 1에서 2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려는 인기 컴퓨터 게임과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고풍스런 느낌의 두뇌 게임 사이에 ‘마인드 스포츠’라는 신흥 단어가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고 있는 셈입니다. 전략을 만들어낼 두뇌뿐만이 아니라 전략을 제대로 써내기 위해서는 피지컬적인 요소도 많이 필요한 스타크래프트, 전략의 다양성, 창조성, 불확실성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바둑, 그 특성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만, 양측 모두 체육으로 인정받고 대중화를 이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그것이 왠지 그저 실리 없는 구색 갖추기에 불과해 보이는 현실이라는 점마저도)에서는 한 배를 탄 사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스포츠가 인정받으려는 것과 바둑이 체육화 하려는 것, 이 둘은 서로 닮은 점이 많으며, 한쪽의 성공은 다른 쪽의 성공 가능성도 시사하리라 봅니다.
하지만 바둑을 즐기는 사람과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사람의 교집합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스타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 바둑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적습니다(젊은 프로 기사들 중에서는 스타를 즐기는 기사들이 제법 있다고 합니다. 이세돌 같은 유명 기사도 스타를 가끔 하고, 조훈현, 이창호 같은 기사들도 스타를 접해봤다고 하죠.) 뭐, 바둑팬이 체스, 장기, 쇼기, 브릿지, 마작의 팬이 꼭 되란 법 없고, 스타크 팬이 워3, C&C, 워해머의 팬 또한 아니듯, 마인드 스포츠라는 약한 연결 고리 하나로 양측을 묶기에는 무리가 많긴 합니다만, 한때는 (좀 지나치게 심한 뻥튀기가 들어갔을지언정) 1천만 인구를 자랑하던 바둑의 위세를 생각해보면 단순 계산으로 스타팬 네 명 중 최대 한 명은 바둑을 둘 줄 알아야한다는 셈이 나오는데, 그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적다는 느낌이 듭니다. 피지알 자게의 대부분의 글의 조회수가 기본 1000이 넘는 가운데, 제가 연재하는 ‘바둑 이야기’만 2~300대임을 생각해보면 은근히 그 ‘네 명 중 한 명’이라는 셈이 맞는 느낌도 듭니다만, 댓글 다시는 분들의 다양성면에서 비교해보면 또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그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즐기는 연령대의 차이.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각종 e스포츠들은 10대, 20대 위주로 이제 30대까지 저변 확대를 넘보는 떠오르는 태양인 반면, 바둑은 중장년층 위주로 퍼져서 유입 인구수도 줄고 있는 저물어가는 태양입니다. 두 태양 사이의 교집합이 얇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분들이 존재할 가능성입니다. 단순 조회수 비교 1000:200에서 생각해보면 PGR 여러분들 중 다섯 분 중 한 분 이상은 바둑을 ‘둘 줄 아신다’는 겁니다(물론 저 횟수에는 중복 조회도 포함되겠습니다만, 그건 제 글이나 다른 글이나 피차 마찬가지니까요). 우리나라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바둑을 ‘안다’(를 곡해해서 ‘네 명 중 한 명은 바둑팬이다’)라는 뻥튀기성 통계와 비교해볼 때 납득이 가는 비율입니다. 그러나 그 네 명 중 한 명 중에 바둑을 하나의 취미로서 ‘즐기는’ 분은 극히 적은 비율일 것이며, 그 중에서 또 ‘나, 바둑 둘 줄 알아’라고 나서는 분들은 또 그 중 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바둑 두는 분들(특히 남성분들)은 ‘나보다 훨씬 잘 아는 고수가 많다’라는 걸 지나치게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나머지, 바둑에 대해 썰을 푸는 걸 극히 꺼려하십니다. 괜히 아는 척 했다가 피보기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거죠. 실제로 제 연재에서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해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바둑 전문 사이트 타이젬에서 6~8단 정도 두시는 분들이십니다. 그것도 글 쓰는 제가 1급-1단을 오가는 약한 실력이니 달아주시는 거지, 만약 제가 타이젬 9단이기라도 했다간 제 글엔 댓글 하나조차 안 달렸을지도 모릅니다.;;
이 두 원인 간의 공통점은 바로 ‘바둑의 장벽’입니다. 바둑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10대, 20대의 유입이 없는 것이요, 바둑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둘 줄 알아도 나서지 않는 것입니다. 가로 세로 19줄의 바둑판 위에서 흑백이 다툰다, 누구나 아는 바둑에 대한 묘사죠. 하지만 묘사만큼 단순한 게임이 아니란 걸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둑판 위에서 펼쳐질 가능성의 모든 경우의 수가 361 팩토리얼 이상이며, 프로와 일반 아마추어 사이의 격차가 뚜렷할 정도로 깊이가 있는 게임입니다. 프로들 하는 거 보면 한 판 두는데 몇 시간이고 걸리니, 오랜 시간 동안 그 좁은 바둑판 쳐다보고 있는 것도 지루하고 답답해서 못 해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려운 데에다 지루해보이기까지 하니, 어렸을 적에 엄마 손에 이끌려 바둑 학원 간 게 아니면 누가 자진해서 배우려 들까요? 바둑 두는 사람들 배운 경위를 들어보면, 아버지한테 배웠다, 엄마가 바둑 학원 보냈다, 군대에 있을 때 배웠다, 다 남에게 권유(혹은 그를 가장한 강요)받아서 배운 것이며, 저처럼 ‘어렸을 때 우연히 바둑 잡지를 보고 독학했다’라는 식으로 자진해서 뛰어든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의 한국 사람들로부터는 단 한 건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서양 사람들은 조금 케이스가 다르니 제외하겠습니다).
저는 바둑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네, 바둑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지루합니다. 그러나 그걸 지나치게 의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바둑은 어렵지만, 그 어려운 레벨에 도달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지루하다고 느끼는 건 그 즐기는 재미만 알기 전까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 알려드리려는 것은 당장 바둑을 두는 법이 아닙니다. 어려워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을 바둑에 대해 잘 모르시는 여러분들께 나름대로 소개시켜드림으로서, 조금이나마 바둑의 진입 장벽을 낮추어서 함께 바둑을 즐기실 분들을 늘리고, 덩달아 제 연재의 조회수도 올려보고자(^^;;) 하는 게 목적입니다.
1. 바둑의 규칙 -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규칙, 그러나...
바둑의 규칙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아마 모든 마인드 스포츠를 통틀어 놓고 봐도 이만큼 간단한 게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바둑을 둘 줄 모르는 분들도 단수가 무엇인지는 알고 계실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규칙이 세상에서 제일 복잡 다양한 게임을 창출해내고 있으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죠.
바둑의 규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가. 착수 교대의 규칙 - 흑백이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둔다.
나. 활로의 규칙 - 돌의 활로가 모두 막히면 죽는다.
다. 패의 규칙 - 패 모양은 상대가 따낸 뒤 바로 되따낼 수 없다.
라. 승패 결정의 규칙 - 바둑판 위에 살아있는 돌이 많은 쪽이 이긴다.
물론 한국/일본, 중국, 대만, 나라에 따라서 세부적인 내용들이 다르긴 합니다만, 그 모두가 기본은 이 위의 네 가지를 틀로 삼고 있습니다. 위 네 가지가 바둑이란 게임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며, 바둑의 모든 상황은 이 네 가지에서 파생됩니다.
바둑은 논리와 감각이 조화된 게임입니다. 흑돌과 백돌이 얽혀서 싸우는 부분적인 장면에서는 철저히 논리가 작용하지만, 대세를 좌우하는 장면에서는 감각이 작용하며, 바둑이 고수가 될수록 이 감각의 측면이 더욱 강조됩니다. 바둑을 배우고 두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감각’ 부분이며, 바둑의 최대 진입 장벽이기도 합니다. 바둑을 처음 배울 때 우선 규칙을 가르치고, 규칙에서 논리적으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한 판 바둑을 두기엔 19*19=361칸의 넓은 바둑판은 너무 넓기만 합니다. 바둑 왕초보들이 토로하는 고민이 바로 이것입니다. ‘규칙을 알아도 어디다 두어야할 지 모르겠다’.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둑을 가르치는 이들은 이 ‘논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감각을 가르치는 과정’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그냥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 이외에 답이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왜 그렇게 둬요?’, ‘그냥 외우셈.’ 외우고 나서 바둑을 두다 보면 그 감각이 ‘적절하다’란 사실을 몸으로 깨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이 감각 부분도 어느 정도 논리 부분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론의 체계도 어느 정도는 세워져 있긴 합니다만, 논리 부분만큼 직관적으로 알기 쉽게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규칙의 논리로 풀어오던 과정까지는 나름 알기 쉽고 재밌었는데, 판 전체를 지배하는 감각으로 넘어오니 갑자기 어려워집니다. 저도 미국 대학에서 바둑 클럽을 운영하면서 초보자를 가르쳤던 바, 대부분 이 시점에서 다들 나가떨어집니다. 한창 두뇌활동 왕성한 10대 후반, 20대 초반들도 그런데, 바둑 학원 다니는 어린이들은 오죽할까요.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빨리 한 판의 바둑을 둘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으니, 자칫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흡수하기 어려울 만큼 우겨넣기 쉽게 되는 겁니다. 논리만으로는 바둑을 둘 수 없음을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너무 잘 알기에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거겠죠.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논리만으로도 바둑은 ’즐길 수 있다‘’라고요. 꼭 한 판의 바둑을 둘 줄 알아야 바둑을 즐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크래프트에 비유를 하자면, 싱글 미션이랑 컴퓨터랑 1:1, 2:1만 하는 식으로도 스타란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과의 멀티 플레이가 스타를 즐기는 주 방식이지만, 싱글 미션만 즐기는 것을 무시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또한 스타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1:1을 주로 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진정’으로 스타를 즐기는 게 아니긴 하겠습니다만). 그리고 바둑에서는 논리로만 작용하는 그 ‘싱글 미션’에 해당하는 부분이 스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며, 이를 잘 훈련시켜두면 실제 ‘멀티 플레이’에서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스타에서는 싱글 미션 스킬이 멀티 플레이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과 달리).
이 글에서는 그 ‘싱글 미션’을 즐길 수 있는 최소한의 논리, 그리고 그 즐기는 방법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싱글 미션 하는 법만 아셔도 최소한 바투는 즐기실 수 있게 되실 겁니다(바투를 완전 정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투 팬 여러분들은 오해 없으시길.). 거기서 좀 더 나아가고 싶다면 ‘감각’ 부분을 배우시고 바둑의 멀티 플레이로 진출하시면 됩니다. 그 시작점을 알기 쉽게 소개해드리고자 노력하면서, 그에 따라 제 바둑 연재의 조회수도 올려보고자(...) 하는 게 이 글의 목적입니다.
2. 바둑 규칙 하나 하나 알아보기
가. 착수 교대의 규칙 - 흑백이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둔다.
너무나도 간단한, 그래서 그 속에 든 의미를 가끔씩 간과해버리는 규칙입니다. 뭐, 특별히 설명은 필요 없는 규칙이겠죠. 바둑을 생판 모르시는 분들도 이 정도는 아시니까요. 굳이 풀어서 쓰자면 ‘돌은 선과 선의 교차점 위에 두고, 흑이 한 수를 먼저 두고 그 다음 백이 한 수를 두며, 한 사람이 연속해서 두 번 둘 수 없다’, 정도이며, 조금 더 덧불이자면 한 번 둔 수를 물릴 수 없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당연히 돌이 먼저 놓여있는 자리에 돌을 겹쳐 놓을 수도 없겠죠(바둑돌 구조상 겹쳐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이대로 끝내기는 너무 심심하니 조금 더 철학적(?)으로 접근해보자면, 이 규칙은 바둑이 지닌 최대의 장점, 자유도의 근간이 됩니다. 흑백이 한 수씩 둔다라고만 했을 뿐 ‘어디에 둬야한다’라는 언급이 없습니다. 물론 뒤에 설명할 나, 다의 규칙에 의해 약간의 제약이 생기고, 라의 규칙에 의해 올바르게 두는 법에 대한 이론이 발생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무데나 둘 수 있다’란 겁니다.
프로들은 물론 대부분 바둑을 두시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시작을 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림 1> 어느 프로들 간의 대국에서
그러나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그림 2> 많이 특이한 시작
심지어 이렇게 둬도 바둑의 규칙을 모른다고 탓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림 3> 뭐 하자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둑판의 어디에든, 그것이 선과 선의 교차점이기만 하다면, 여러분들은 돌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기는 것에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가는 별개로 치더라도 말입니다. 장기에서 포가 포를 넘을 수 없고, 체스에서 비숍이 직선으로 갈 수 없으며, 스타에서 탱크가 공중 공격이 불가능한 것처럼 제약이 있는 것과 달리, 바둑은 모든 돌들이 평등하며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자기가 둔 돌이 승부를 이기는 데에 가치가 있음을 증명, 즉 자신의 돌에 책임을 져야겠죠. 그야말로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이란 말에 어울리는 게임이 아닐까요. 한 번 둔 돌은 물릴 수 없다는 낙장불입(?)의 규칙은 그 책임을 조금 더 무겁게 만드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둑 처음 배우실 분들께 너무 쓸데없는 썰을 풀어놓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음 규칙으로 넘어갑니다.
나. 활로의 규칙 - 돌의 활로가 모두 막히면 죽는다.
보통 바둑 둘 줄 모르시는 분들도 ‘단수’가 뭔지는 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착수 교대의 규칙과 함께 잘 알려진 규칙이 이 활로의 규칙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보통 바둑 입문서들은 바둑의 규칙을 10가지 내외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대부분이 이 ‘활로의 규칙’으로 요약될 수 있는 부분을 잘게 나눈 것입니다. 그만큼 이 활로의 규칙이 바둑의 모든 논리의 근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에서는 조금 더 원칙적으로 논리적인 연관성을 설명하고자 한 부분으로 몰았습니다(어린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문제가 많겠지만, 성인 대상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방법론이라고 봅니다). 때문에 이 부근에서 설명할 내용들이 좀 많아지겠습니다.
자, 활로가 무엇인가. 일단 그걸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돌의 숨구멍’입니다.
<그림 4> 돌 하나의 활로
여기 돌 A, B, C가 있습니다. 돌 A, B, C에 가로 세로로 인접한 점들을 세모로 표시해 놨습니다. 이 세모로 표시된 점들이 각각 돌 A, B, C의 숨구멍, 활로입니다. 중앙에 있는 돌 C가 활로가 네 개 있고, 벽에 딱 붙은 B가 활로가 세 개, 방구석 폐인 돌 A가 활로가 두 개 있군요.
좀 더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림 5> 돌 두 개의 활로
돌 두 개의 그룹 A, B, C, D 네 가지, 그리고 각각의 활로를 표시해놨습니다. 그룹 A의 활로는 셋, 그룹 B의 활로가 넷, 그룹 C의 활로가 여섯, 그룹 D의 활로가 다섯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림 6> 테트리스
돌 네 개가 가질 수 있는 모양 A, B, C, D, E의 경우의 각각의 활로를 표시해보았습니다. A가 여덟, B도 여덟, C도 여덟, D가 아홉, E가 열. ‘돌(혹은 돌이 연속해서 붙어있는 그룹)의 가로 세로로 인접한 점’이 활로의 정의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다음 돌의 그룹들의 활로의 수를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7> 예제
정답은 A가 여덟, B가 일곱, C가 여덟, D가 아홉, E가 열 둘, F가 열 셋입니다. 특히 E와 F의 차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E 그룹과 F 그룹 둘 다 바깥쪽으로 열 두 개의 활로가 있지만, F는 글자 ‘F’로 표시된 자리가 비어 있고 이 또한 활로입니다. 그룹 F에 가로 세로로 인접한 점이니까요.
<그림 7-1> 정답 - 그룹 F는 ‘F’라고 쓰여 있는 자리도 활로.
이제 활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셨으리라고 봅니다. 활로의 규칙에서는 ‘돌의 활로가 모두 막히면 죽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백이 세모로 표시되어 있는 흑의 활로를 모두 막으면 흑돌을 죽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림 8> 단수
<그림 4>에서 세모로 표시해놨던 흑돌 하나의 활로를 백이 하나만 빼놓고 모조리 막아놓은 상태입니다. 돌 A, B, C는 각각 숨구멍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며, 백이 그 남은 숨구멍마저 막아버리면 질식사 하는 겁니다. 지금과 같이 질식사하기 직전 상태, 즉 활로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그 유명한 단수,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아다리(일본에서 단수를 가리키는 말인 ’あたり‘에서 유래)’입니다. 참고로 외국에서도 단수를 ‘atari’라고 부릅니다. 서양 세계에 대한 바둑 보급을 제일 먼저 시작하고 지금도 가장 활발히 하는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죠.
자, 그럼 실제로 질식사를 시켜보겠습니다.
<그림 9> 돌을 따낸 뒤의 모습
흑돌 A, B, C는 각각 백1에 의해서 사망했습니다. 사망한 돌의 시신은 그 자리에 내팽개쳐두는 게 아니라 바둑판에서 들어내서 백 진영에서 따로 보관해둡니다. 이렇게 상대 돌의 숨구멍을 다 막아서 바둑판 위에서 들어내는 행위를 ‘따내다’라고 부릅니다. 이 따낸 돌들은 나중에 바둑이 다 끝나고 써먹지만, 그 이야기는 일단 제쳐두겠습니다.
백이 둔다면 <그림 8>의 백1을 두어서 흑돌을 죽일 수 있겠지만, 흑의 입장에서는 죽기 싫으니 뭔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림 10> 흑돌 살리기 - 활로를 늘린다
<그림 8>의 단수 장면에서 A만 따로 놓고 보겠습니다. 당연히 흑은 자신의 남은 유일한 활로 자리인 흑1에 놓아야합니다. 그 자리를 백이 두면 <그림 9>처럼 흑돌은 죽게 되니까요. 흑1을 놓고 난 뒤에 흑돌의 활로를 생각해봅시다. <그림 10>에서 세모로 표시된 것처럼 활로가 두 개로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돌(혹은 돌의 그룹)의 활로에 또 다른 돌을 놓음으로서 그 돌(그룹)의 활로를 늘릴 수 있습니다.
단수, 즉 활로가 하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활로가 두 개로 늘었으니 ‘와아, 살았다’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여기서 착수 교대의 규칙의 무서움이 드러납니다. 흑이 한 수를 뒀으니 이제 백의 차례란 거죠.
<그림 11> 어라?
다음 차례인 백이 2를 두어서 흑의 활로를 막아버렸습니다. 백이 두 개 있던 흑의 활로 중 하나를 막아서 다시 흑은 활로가 하나뿐인, 즉 단수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백이 한 번 더 두면 흑은 죽어버립니다. 살았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시 죽음의 위기가 닥쳐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번엔 흑의 차례.
<그림 12> 다시 탈출
흑은 남은 활로였던 흑3 자리에 두어서 다시 활로를 두 개로 늘립니다. 그러나 이번엔 백의 차례. 이미 여러분들은 백이 어디에 둘지 대충 감을 잡으셨으리라고 봅니다.
<그림 13> 비참한 말로
흑이 5로 활로를 두 개로 늘리면, 백을 6으로 다시 활로를 한 개로 줄이고, 흑이 7로 또 활로를 두 개로 늘리면, 백은 또 8로 활로를 한 개로 줄이고, 이런 식으로 죽 반복되다가 결국 백34로 활로를 줄일 때 흑 35로 탈출하는 시나리오까지 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를 어쩌죠. 흑 35로 두어도 흑돌이 벽에 박치기를 해서, 활로가 두 개로 늘지 않고 여전히 하나뿐인 단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음 36은 백의 차례. 백은 세모에 두어서 흑A부터 35까지 무려 열아홉 개의 돌의 숨통을 모두 막아 질식사 시켜버릴 것입니다. 비참한 말로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럼 단수된 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무조건 죽을 운명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흑돌 A가 운이 나쁜 위치에 있었던 것뿐입니다.
다음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림 14> 흑돌 살리기 2
<그림 8>에서 흑돌 C의 케이스만을 따왔습니다. 흑돌 A와 마찬가지로 흑돌 C 역시 탈출할 길은 남은 활로 자리 흑1밖에 없습니다. 다만, 흑1에 두고 나니 흑돌의 활로가 두 개가 아닌 세 개로 늘어났군요.
하지만 백은 ‘훗, 착수 교대의 무서움을 보여주지’ 하면서 바로 흑돌의 활로를 줄여올 것입니다.
<그림 15> 어라라?
백이 백2로 두어서 흑돌의 활로를 줄여왔습니다. 그런데 남은 활로가 두 개 더 있네요. <그림 11>에서는 백이 두니까 흑이 단수가 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흑에게 아직 여유가 남아있습니다. 백이 한 수를 더 두어야 흑을 단수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단 겁니다.
문제는 이번에는 흑의 차례라는 점.
<그림 16> 흑, 여유 만만.
흑이 3의 활로에 놓고 보니 흑의 활로가 네 개로 늘어납니다. 기껏 활로를 두 개로 줄여놨더니, 네 개로 늘어난 겁니다.
백은 또 다시 기를 쓰고 활로를 줄이려고 해보지만...
<그림 17> Catch me if you can
<그림 17>의 상황에서 흑의 활로는 10개. 백이 10수를 두는 동안 흑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간신히 흑돌을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비정한 착수 교대의 원칙. 백이 연속으로 10수를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흑은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자기 활로에 두어서 탈출을 꾀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활로의 규칙과 그것이 착수 교대의 규칙과 조합된 예를 살펴보았습니다. 이것만 아셔도 여러분들은 바로 바둑의 싱글 미션에 돌입하실 수 있습니다.
Capture Game(클릭)
링크를 클릭하시면 Capture Game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Capture Game은 서양권에서 바둑을 맨 처음 배울 때, 활로의 규칙와 착수 교대의 규칙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하는, 말하자면 튜토리얼 미션 같은 겁니다. 혹 영어가 짧은 분들을 위해서 설명 드리자면 자신이 백으로 두어서 먼저 컴퓨터의 흑돌을 하나라도 잡으면 이기는 거고, 먼저 자기 돌이 하나라도 잡히면 지는 겁니다.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안습이기 때문에 몇 게임 해보시다 보면 이기는 게 그다지 어렵지는 않으실 겁니다. 룰에 익숙해진다는 느낌으로 몇 게임 해보시기 바랍니다.
Capture Game으로 착수 교대의 규칙과 활로의 규칙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시면 좀 더 발전된 튜토리얼 미션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모든 바둑의 초보자들이 처음에 접하는 싱글 미션이 바로 다음 장면입니다.
<그림 18> Mission Objective : Kill White
흑이 먼저 둬서 백돌 잡는 미션입니다. 백의 활로가 두 개가 있습니다. 흑은 백돌을 죽이고 싶으니 이 활로 두 개를 막아야겠죠. 그런데 착수 교대의 원칙에 의해서 흑이 한쪽 활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