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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23 21:26
자급자족형 명장이죠. 혹자는 촉의 재정을 파탄시켰다고 비난하지만, 사실 한중 방면에서 둔전해서 번 거 가지고 북벌한 거니까요. 북벌 횟수는 많지만, 실재 북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얼마 없고요.
09/08/23 21:35
swordfish님// 위의 반란을 기회삼아 북진했다가 반란이 진압되자 전투 없이 귀환하는 경우도 많았죠.
촉의 재정 파탄이라... 촉에서 제대로 지원을 해 줬어야 파탄이란 말이 가능한데 말입니다. 애시당초에 촉한이 재정 파탄이 일어난 적도 없고 말이죠.
09/08/23 21:42
위촉오 삼국에서 아무래도 촉은 가장 뒤늦게 나라가 형성됬고 국력 역시 타국가에 뒤쳐지다보니 제갈량이나 강유 입장에서 북벌에 욕심을 낸것이 아닌가 합니다. 만약에 제갈량이나 강유가 위나라에 있었다면, 무리하게 전쟁을 하기보다는 내정에 힘쓰면서 위나라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들면서 촉과 오가 손을 잡고 양동작전하는것만 신경쓰면 되겠지만 촉에서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겠죠. 개인적으론 북벌이 실패하면 촉의미래는 없다...라는 생각을 제갈량과 강유가 가지고 있었던것이 아닐까 합니다.
09/08/23 22:00
Tsunami님// 실제로도 북벌을 하지 않는한 미래가 없지 않았나요? 촉은 땅도 척박하고 무엇보다 그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그나마 있던 명분마저도 세대를 넘어 서서히 잊혀져버리게 될지도 모를일이니까요. 그렇다고 오를 치기에는 그야말로 위에게 촉오가 다 죽겠다는 것이니...
사실 명분만 없었다면 그냥 세력 차지하고 오래오래 편안히 살아도 됐는데 말이죠.
09/08/23 22:03
그런데 글로만 보니까 잘 이해가 안가네요...삼국지 게임으로 따지면 강유의 전성기때 어디까지 땅을 넓힌건가요??보통 게임에서 촉은 무도까지만 점령하고 천수 서량 안정 등은 위가 점령하고 있는 지도로 나오는데...이 지명들이 안나오니 어디까지 땅을 넓힌건지 잘 이해가 안갑니다~설명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9/08/23 22:09
기다리다님// 천수 안정은 옹주의 일부이고, 서량은 량주라고 부릅니다. 강유가 노린 곳은 바로 장안을 둘려 싼 옹주와 량주를 점령하여, 이민족과 연결하고 두주의 자원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세력을 확보한 다음에 장안을 점령하는 거죠. 그러면 기병 전력도 확보할 수 있고, 국력도 좀 위를 따라 갈 테니까요. 단곡 전투 전까지는 강유는 제갈량이 1차 북벌에 이룰 뻔 했던 옹량주의 확보를 거의 이룰 뻔 했습니다. 그런데 제갈량도 그러했지만 강유도 단곡 전투 한번에 이 모든 게 어긋나 버렸죠.
09/08/23 22:12
기다리다님// 단곡 전투는 제갈량의 가정 전투에 필적한다고 이해하시면 쉬울 것 같습니다.
최소한 장안 서쪽은 촉이 장악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단한번의 패배로 완패한 거죠. 제갈량과 다른 점은 강유는 혼자 힘으로 싸웠다는 것...(위에도 있지만 한중군=정규군 없이 강유군으로 싸웠습니다)
09/08/23 22:13
일단 촉한이라는 나라가 한나라를 회복한다는 것을 국가목표로 설립된 나라이니 잦은 북벌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제갈량과 강유를 비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촉의 존재는 지세의 험준함에 의존했을 뿐(사천분지) 국력 자체가 현격하게 기우는 것을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진수의 정사나 다른 집주등을 보더라도 위-진의 국력과 촉의 국력은 5배 이상의 차이였다고 보이니까요. 연의에서야 일개 장수의 무력과 재사들의 활약으로 전력의 차이를 뒤집기도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전력이 2배 이상 벌어지면 싸우지 않는게 이기는 것인데... 강유가 5만 정도 이끌었다고 나오는데, 당시 요동의 공손씨들도 수만 정도의 병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 5만 가지고 중원 진출하려던 강유는 그저 안습...
09/08/23 22:16
빵리발갰뜨님// 한중군과 연계 문제는 단곡에서 참패의 원인이 되죠.
내일은님// 제가 듣기로는 2~4 만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자급 자족 군대의 한계죠.
09/08/23 22:23
촉의 땅 자체는 비옥했습니다. 제갈량과 강유가 보급의 문제를 겪은건 그 풍족한 땅에서 나온 군량을 싫어올 길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죠. 촉 땅은 전선의 후방기지화 시키고 그 물자를 안정적으로 형주에 보급한 후, 형주를 통해 위를 압박하는것이 제갈량의 융중대계였을 터인데 형주 상실로 이 계획이 트러지죠. 후에 형주의 역할을 관중지역으로 대체하려고 북벌을 시작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관중지역의 경우는 강족을 비롯한 이민족과의 접경지역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겠죠.(강유의 북벌은 대게 이 계열 이민족과의 연계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저는 제갈량이나 강유는 북벌로 위와 촉의 국력차를 한방에 역전시켜 위를 단번에 멸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기 보다는 관중지역 점령을 통해서 촉의 국력을 위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봅니다. 강유 역시 그 전략적 대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고(촉의 주력 장수중 이걸 이해 못 한이가 위연 이었죠.)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어내고 있던 찰라에 단곡전투로 성과가 날아가 버렸죠.
09/08/23 22:39
강유가 제대로 지원을 못받은건 촉의 국가목표를 둘러싼 내분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촉은 이전에도 중앙정부에서도 제대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지역이고 호족들이 권력을 잡았던 곳인데, 이들은 중원에 관심이 없었죠. 유언 이후 유장 시대까지도 중원이 혼란스러울 때 별 군사 행동이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굴러온 돌 유비가 촉을 점령했을 때는, 외부에서 들어온 강력한 군사세력에 굴복해 어쩔 수 없이 북벌에 협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군사세력 1세대(유비, 제갈량 등 같이 중원에서 활동한 경험을 공유한 이들)가 물러난 후 촉의 권력을 잡은 2세대들은 굳이 중원으로 진출해야 될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갈량의 유시를 받은 강유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위가 촉을 점령한 이후에도 이들은 그대로 관료로 촉의 지배세력으로 남게되죠.
09/08/23 23:06
역사를 보건대 파촉 땅만을 장악한 정권은 강력한 외부세력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진 못했습니다. 아무리 지형이 험준해도 결국 돌파당하게 되어 있지요. 특히 전한-후한 교체기때 이지역을 장악했던 공손술은 이미 그시대에 참고할 만한 역사적 사례로 남아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파촉뿐만 아니라 관서지역(옹량주)와 장안을 중심으로 하는 관중지역까지 확보한다면 진나라나 한 고조 유방의 경우를 생각해 볼때 외부세력이 쉽게 쓰러뜨리기 어렵고 반대로 전국의 변화 여부에 따라서는 밖으로 치고 나가 천하통일도 가능합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파촉에서 외부로 나가는 길이 험준하다는 것인데, 과거 한신은 이를 기습으로 커버했다면 제갈량은 형주를 전진기지로 확보하고, 형북에서 중원 일대로 견제성 공격을 수행해 관중 일대의 방어력을 분산시킨 후 이 지역을 장악하는 대전략을 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나라의 뒷치기와 이릉대전으로 무위로 돌아간 시점에서, 제갈량을 위시한 촉한 수뇌부가 계획한 것은 상대적으로 위나라의 장악력이 관중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관서지역을 먼저 확보한 다음, 이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추가로 동원해 관중일대를 확보한다는 것이었죠. 관중까지만 확보한다면 이후엔 기회를 노리는 것이 충분히 현실성을 가지게 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촉한의 천하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여집니다.
09/08/23 23:13
역사엔 가정이 불가능한지라 답은 없겠지만 촉이 통일했다고 해서 전진과 꼭 크게 달랐을까요? 유비 사후 촉황실도 마찬가지로 막장스러웠다는걸 생각하면 말이죠.이후 선비족등이 수-당 성립시기까지 강성했다는걸 생각하면(수-당 시조도 선비족 후예란 얘기도) 당시 고대중국대륙에서 기마민족의 발호는 역사적필연으로 볼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09/08/23 23:33
촉은 형주를 잃어버린 시점에서 죽어버린 국가였습니다.. 대륙의 중심이 되는곳과는 너무 멀었고 주위에 많은 이민족과 적은 인구때문에
같은 역량을 지닌 신하들이 일한다면 촉은 필패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09/08/23 23:34
곰님// 일단 촉한의 대 이민족 정책이 동오는 물론이거니와 위, 진보다도 좀 더 낫습니다. 위, 진은 분할통치라는 기본적인 기법을 활용하긴 하지만 강압적으로 찍어누르고 복속시킨 부족에서 강제로 전사들을 끌어들여 반란 진압이나 타부족 및 타국가 공격에 동원해 버렸죠.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 이점에서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촉한의 대 이민족 정책이 더 낫습니다. 제갈량이 평정한 남만의 경우 정치가 좀 혼란스러워진 후기에도 현지에서 진압이 가능한 정도의 소요 수준을 넘어선 반발이 없었죠. 세금도 꽤 강하게 거뒀는데도.
그리고 서진이 완전히 쫄딱 망해버린 건 황족들이 강력한 자기세력을 가지고 중앙정치에 개입하면서 내전을 벌여 이런 이민족들을 상대할 국력을 다 날려버린 8왕의 난이 결정타인데, 촉한은 그런 후계구도 면에서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후계자를 일찍부터 정하고, 여기에 위협을 줄만한 황족들의 세력을 적절한 수준으로(너무 밟으면 조모처럼 세력 강한 신하들에게 실권을 잃을 수 있으니까.) 억눌러 놨죠. 그리고... 그외 정치부분도, 사실 유선이 당대에 나라가 망했다는 점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뒤집어쓰긴 했지만, 조비나 조예, 사마염, 말년의 손권, 손호 등 그시대 타국의 황제들과 비교하면 의외로 나쁘진 않은 편입니다. 좀 보신주의적인 모습이 많긴 합니다만.
09/08/23 23:38
만약 촉한이 천하를 통일했다면, 제갈량 시절의 정책 기조가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북방 유목민족의 발호로 인한 북중국 일대의 상실은 확실히 서진의 경우보다 가능성이 적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될런지는 뭐, 가정일 뿐이겠죠.
09/08/23 23:48
유목민족이 중원을 쳐들어오는 것은 중국사에 있어서 일종의 전통 or 세금과도 같은 것이라... 촉한이 중원을 통일하더라도 피하기는 어려웠다고 봅니다.
09/08/24 00:00
내일은님// 단순히 변방을 침략하는 것과 국가 중심부가 통째로 박살이 나고 이쪽 저쪽 할거 없이 치고 들어오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죠. 서진이 망할때를 보면 그때 서진의 주력에 가까웠던(기존 중앙군은 8왕의 난으로 죄다 박살이 났으니까...) 부역병들부터 시작해서 서진 내외의 이민족들이 죄다 들고 일어납니다. 촉한이 천통을 달성하면 이정도로 막장이 되는 일은 없었지 않을까... 싶은 거죠.
09/08/24 00:19
나이트해머님// 그런 가정이라면 위가 망하지 않거나 오가 통일했어도라고 가정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위나라 역시 오환이나 흉노를 적절히 잘 억제했던것으로 아는데.남만이야 그후로도 계속 중국에 별 위협이 되지 않았구요.
09/08/24 00:29
곰님// 서진의 대 이민족 정책이 위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위의 천통 이후의 상황은 서진과 대동소이합니다. 분할해서 강제로 짓밟다가 폭발, 그때 국내사정에 따라서 막아내거나 못막거나 둘 중 하나인데 서진의 예를 생각하면 못막을 가능성이 크고.
그리고, 산월족도 제대로 통제 못한 오는 서진보다 더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남만이 위협이 안된 원인을 고려해야죠. 촉한의 이민족 정책은 확실히 위나 오보다 낫다는 평가입니다.
09/08/24 01:03
나이트해머님// 촉한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신데요? 혹시 전생에 강유였다거나^^
근데 사실 전진이 쫄딱망한건 말씀하신대로 8왕의난이 결정타였는데... 뭐,촉 역시 수대후에 그런 내분이 발생할지도 모르는거고 위or촉or오에서 의외로 4~5대쯤 성군이 나와서 치세를 누렸을수도 있고 그건 진짜 실제로 되봐야 아는거 아니겠습니까? 정책이 계속 초창기 그대로란 법도 없고 수당원명청 등도 그렇듯이 다들 천하통일후에 대내외정책을 다시 정비하곤 했었으니까요.그래서 역사에 가정은 없다라는 말 쓰는거겠죠.
09/08/24 01:21
촉의 북벌이야 자원없고 인재없는 상황에서 남은건 북벌 올인러쉬 뿐이었으니 크게 나무랄 수는 없는 정책기조이죠.
리플에서 정확하게 지적 하셨듯이 관중지역 장악이 북벌의 가장 큰 요지였으나 마속 크리 한방으로 모든 것이 날아간 형편이고, 사실 첫번째 기산 진출이 실패한 이후로 촉의 가망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가정에서 승리하고 맹달의 호응이 제대로 맞았다면 아마 제갈량 생전에 장안 진출 이후로 중원을 넘보았을 가능성이 컸을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되서 관중지역을 촉이 모두 장악했다면 눈치만 보던 오도 역시나 합비와 서주 지역으로 치고 나왔을테니 말입니다.(사실 북벌의 실패 이유는 오가 제대로 호응을 안하고 눈치만 설렁설렁 보았던 것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만약 양방치기로 밀고 들어왔다면, 최상위 인재간 격돌에선 촉,오 연합이 위를 능가했을텐데 말이죠.)
09/08/24 13:17
나이트해머님// 남만이 위협이 적은 이유는 흉노와 같은 기마민족과는 현저히 다른 전투력에서 보는 건 어떨까요? 진압 가능했다는 사실만으로 정책이 좋았는지 나빳는지를 판가름하는 건 좀 섣부르지 않나 생각해요. 아니면 알고 계시는 추가 사실들을 적어주셔도 좋고요
루크레티아님// 첫 북벌때 뚫었어야 했죠. 먹는 자원 차이가 어마어마한데 초반에 찌르기 실패하면 지지치고 나가서 한겜 더 해야죠.
09/08/24 14:40
윤성민님// 남만이 위협적이지 않았던 게 물론 전투력 차이 때문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한중전투때 후방에서 들고 일어나 위협이 되었던 사례나 유비 사후 익주 남부 호족들과 연계해 촉한 중앙군이 투입되고서야 진압되었던 걸 생각해 보면 제갈량의 남중 평정 이후 현지에서 진압이 가능한 수준의 소요만이 일어났다는 건 그만큼 이민족 정책이 더 나았기 때문... 이라고 생각해 볼수 있지 않나 싶네요. 동시기 위의 경우 지속적으로 현지 주둔군만으로는 제압이 어려운 심각한 봉기가 여러번 있었고, 촉한 멸망 직후에는 양주 일대가 한꺼번에 넘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산월족 문제나 무릉만이 문제를 멸망시까지 완전히 해결 못해 어느 때는 진압을 위해 5만여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하기도 한 손오와는 더더욱 비교하기 어렵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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