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부분은 단 한번에 끝내려고 했지만 그랬다가는 글이 너무나도 성의없게 변해버려 부득이하게 상, 하 두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이제 롯데자이언츠의 역사중 가장 암울한 그 시기.
8888577의 시대입니다.
상편에서는 8888577중 8888부분만 다루며 하편에서 나머지 577을 다룰것입니다.
절취선----------------------------------------------------------------------------------------------------------------------
2001년, 선수협의회파동이 휩쓸고 지나가며 많은 거물들이 줄줄이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하거나 옷을 벗던 상황.
롯데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선수협의 핵심 거물이었던 마해영을 삼성의 김주찬, 이계성과 트레이드합니다.
혹자는 타선의 리빌딩을 위함이었다고 하고 혹자는 보복성 트레이드라고 주장합니다. 대체로 보복성 트레이드라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 타선을 지배했던 우타 거포중 한명인 마해영을 내친것은 롯데의 타선을 빈약하게 만들었다는데 이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용병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1999년 시즌 후반기에 등장해 5승을 올리며 활약했으며 작년에도 10승을 올리며 마운드에서 활약한 기론과 재계약합니다. 그리고 호세.
돌아온 검은갈매기 호세. 호세가 돌아오면서 롯데의 타선은 작년에 비해 강화됩니다.
2001년의 호세는 괴물, 그리고 리그를 지배했던 타자.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2001 호세 : 117경기 출장, 타율 0.335, 499타석 367타수, 123안타, 36홈런, 102타점, 90득점, 127볼넷, 출루율 0.503, 장타율 0.695, OPS : 1.198
타석에 서면 출루할 확률이 50%가 넘는 유일한 타자. - 1982년의 백인천의 출루율이 0.502라고 하지만 0.497로도 표기됩니다. -
역대, 단일시즌 출루율 1위, 볼넷 1위, 장타율 5위, OPS 2위, 그리고 아직도 깨지지않는 63경기 연속 출루 (2001. 6. 17 ~ 2001. 9. 18)
리그를 지배했던 괴물타자들과 한번 비교해보겠습니다. 비교대상은 1984년 이만수, 1991년 장종훈, 1998년 우즈, 1999년 이승엽, 2003년 심정수, 2004년 브룸바입니다.
사실, 1988년 김성한, 2006년 이대호도 넣어보고 싶었지만 의외로 OPS가 10할을 넘지 못해 부득이하게 제외했습니다. 그렇다고 김성한, 이대호가 부족한 타자는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1997년 김기태, 2000년 김동주도 넣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양이 넘칠것 같아서 일단, 제외했습니다.
1984 이만수 : 89경기 출장, 타율 0.340, 출루율 0.409, 장타율 0.633, OPS : 1.043, 342타석 300타수, 102안타, 23홈런, 80타점, 45득점, 26BB, 12HBP, 고의사구 3개, 37삼진
1991 장종훈 : 126경기 출장, 타율 0.345, 출루율 0.450, 장타율 0.640, OPS : 1.090, 558타석 464타수 160안타, 35홈런, 114타점, 104득점, 76BB, 15HBP, 고의사구 8개, 88삼진
1998 우즈 : 126경기 출장, 타율 0.305, 출루율 0.393, 장타율 0.619, OPS : 1.013, 521타석 452타수, 138안타, 42홈런, 103타점, 77득점, 65BB, 2HBP, 고의사구 5개, 115삼진
1999 이승엽 : 132경기 출장, 타율 0.323, 출루율 0.458, 장타율 0.733, OPS : 1.190, 614타석 486타수, 157안타, 54홈런, 123타점, 128득점, 112BB, 12HBP, 고의사구 6개, 114삼진
2003 심정수 : 133경기 출장, 타율 0.335, 출루율 0.478, 장타율 0.720, OPS : 1.197, 601타석 460타수, 154안타, 53홈런, 142타점, 110득점, 124BB, 9HBP, 고의사구 17개, 63삼진
2004 브룸바 : 132경기 출장, 타율 0.343, 출루율 0.468, 장타율 0.608, OPS : 1.076, 594타석 475타수, 163안타, 33홈런, 105타점, 92득점, 114BB, 1HBP, 고의사구 10개, 79삼진
2001 호세 : 117경기 출장, 타율 0.335, 출루율 0.503, 장타율 0.695, OPS : 1.198, 499타석 367타수, 123안타, 36홈런, 102타점, 90득점, 127BB, 1HBP, 고의사구 28개, 72삼진
리그를 지배한 타자 호세를 비롯해 타율 0.303, 홈런 26개, 102타점을 기록한 또다른 정확성과 파괴력을 갖춘 타자 조경환, 선수생활중에 유일하게 3할을 친 2001년의 김민재, 정확한 타격솜씨를 지닌 포수 최기문등을 앞세워 롯데는 타 팀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화끈한 타선을 자랑합니다.
그렇다고 투수쪽이 형편없는것도 아니어서 15승을 올리며 처음으로 다승왕을 차지한 손민한, 1997년 롯데에서 14승을 올리며 분투한 박지철, 평균 자책점 1위의 박석진등이 버티고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롯데는 시즌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놓고 다른 팀들과 엎치락 뒤치락하며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에 또다른 비극이 롯데를 엄습했습니다.
2001년 7월 24일. 김용희 감독의 하차이후, 감독대행으로 취임한 후,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 2000년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던 김명성감독이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2001년 9월 18일, 마산에서 벌어진 삼성과의 경기에서 또다른 사고가 벌어집니다.
삼성의 투수, 배영수가 호세에게 2타석 연속 빈볼을 날렸고 2번째 빈볼 후, 호세는 1루에 출루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 타자였던 얀에게도 배영수가 빈볼을 던지자 호세는 또다시 폭발하고 맙니다.
1루에서 마운드로 순식간에 달려온 호세는 곧장 배영수에게 주먹을 날렸고 배영수는 그자리에서 쓰러지고맙니다. 결국, 호세는 남은 잔여경기 8경기를 출장정지 당했고 김명성 감독의 사망, 호세의 출장정지등은 롯데에게 치명타를 안기고 말았습니다.
결국, 롯데는 59승 70패 4무로 꼴찌에 머무릅니다.
일단, 배영수의 빈볼시비와 호세의 폭행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하자면 배영수는 호세에게 한방을 맞고 난 후 전치 2주 진단을 받았으며 배영수의 빈볼여부는 당시에 빈볼이 아니었다는 김양경 경기운영위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배영수에게 엄중경고조치를 내립니다.
그리고 2001년의 4위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4위 한화이글스 : 61승 68패 4무, 승률 0.473
5위 기아타이거즈 : 60승 68패 5무, 승률 0.469
6위 LG트윈스 : 58승 67패 8무, 승률 0.464
7위 SK와이번스 : 60승 71패 2무, 승률 0.458
8위 롯데자이언츠 : 59승 70패 4무, 승률 0.457
만약, 호세가 남은 8경기를 모두 출장했다면 롯데도 충분히 4위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배영수 폭행사건으로 인해 호세는 MVP와 골든글러브, 홈런타이틀등을 모두 놓치는 불운을 맞습니다.
2002년, 호세가 롯데와의 재계약 외에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소속의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이중계약을 함으로 인해 롯데구단은 KBO에 호세의 영구제명을 신청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기 싫은 2002년. 2002년 6월 2일부터 6월 26일까지 롯데는 무려 16연패를 당합니다. 결국, 성적부진을 이유로 김명성 감독의 후임 우용득 감독이 물러나고 다음 감독으로 롯데팬들에게는 악몽같은 XXX가 등장합니다.
2002년에는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35승 97패 1무, 승률 0.265.
단일시즌 최다패전 공동 1위 - 99년 쌍방울레이더스와 공동 1위입니다. -
당연히(?) 꼴찌입니다.
그나마 이 해에 주목할만한 선수는 8승을 올리며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진 팀을 이끌었던 "염슬라" 염종석, 포수 최기문, "호랑나비" 김응국등이 있습니다.
2003년,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무리한 주형광이 팔꿈치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그 수술은 실패. 이제 리그를 지배했던 에이스 주형광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XXX감독의 만행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이대호에게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강요했고 그로 인한 무릎부상과 다이어트 실패가 겹치자 타 팀으로 트레이드를 시도합니다.
선두타자로서 좋은 자질을 지니고 있던 김주찬을 거포형 타자로 성장시키려다 실패.
자신의 스윙폼을 선수들에게 강요하며 타격폼교정에 실패한 거포 조경환은 SK와이번스로 트레이드합니다. 독특한 타격자세라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박정태 역시 많이 시달립니다.
손민한도 한때, 포수 채상병과 트레이드 당할뻔 했습니다.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백골프". 그리고 롯데관중들은 사직 무관중 운동을 벌이며 항의했습니다.
결국, 시즌 중반부에 성적부진으로 경질당합니다.
그리고 2003년, 롯데는 또다시 39승 91패 3무로 꼴찌를 합니다.
끈질기게 버텨낸 김응국과 박정태도 이제는 선수로서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2004년, XXX감독, 김용철 감독대행에 이어 롯데, 청보, 태평양에서 활약한 투수 양상문을 감독으로 맞이한 롯데자이언츠.
하지만, 몇년사이 팀은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상황이었습니다.
팀의 고참 김응국, 박정태등은 이미 선수생활의 한계가 다가왔고 거포 조경환은 2002년 시즌 중반부에 SK로 트레이드, 주형광은 수술실패.
일단, 팀의 리빌딩이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해에 영입한 용병 페레즈가 0.314라는 고타율에 18홈런, 86타점을 기록하며 팀 타선을 이끌었고 이대호가 이제 미래의 거포로 성장가능성을 크게 보여주었습니다.
마운드에서도 손민한과 박지철이 다시한번 분발했으며 1998년에 데뷔했던 임경완이 불펜에서 활약 22홀드를 기록하며 홀드부문 타이틀을 차지. 팀의 든든한 계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황폐해진 팀을 1년만에 소생시키는 것은 힘든 법.
롯데는 50승 72패 11무로 또다시 꼴찌에 머무르고 맙니다.
그리고 사상 초유의 4연속 꼴찌.......
하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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