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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8/01 08:52:57
Name 시지프스
Subject [일반] 서른다섯해만의 용기
제가 일하는 직장은 특성상 각급 영어학원의 선생님들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곳입니다.
아이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직업군이기에 그런 편입니다.

왜 사람이 일로 타인을 만나게 되면 그냥 똑같은 형태로 가늠되어지는게 대부분이잖아요. 그 사람의 심성,겉모습,분위기등 이런것들보단 내가 일할때 수월한 사람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딱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본의아니게 시작된 지금의 제 직업에서 그래도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건 큰 매력입니다.그들과 대화를 하면 많은걸 알게 되고 또 조카들같은 아이들의 행동을 보는것도 즐거움이고요.

지난주 금요일이었습니다. 여느때처럼 심드렁하게 하루를 시작한 아침이었죠.

회사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닌 일을 하게 되었을때 한 영어학원의 선생님을 보게되었습니다.모자를 푹 눌러쓰고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무신경한채 들어오던 양반이었죠.

일을 할때 만나는 선생님들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양반을 보기전까진 말이죠.

사람 마음이란게 참 묘하더라고요.굉장히 평범한 그 선생님을 보며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알바하는 애들한테 저 사람 어떤거같냐라고 물어볼만큼 말이죠.

그냥 궁금증이 드는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들었을뿐 별다른 행동은 없었습니다.주말을 늘 그렇듯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집안 정리도 하고 그렇게 보냈죠. 그러다 월요일 출근을 해서 회의를 하는데 그 선생의 학원 얘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집중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전내내 끙끙대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 선생이 있는 학원의 원장님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저 누구누군데요. 그때 그 선생님 연락처를 좀 알 수 없을까요? 너무 어이없는지(당연하겠죠 원장 입장에선)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을 드렸죠. 제가 여차저차해서 꼭 한번 대화를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저한테 하시는 얘기가 나이가 있으신데 결혼은 안하셨나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또 한번 여차저차 설명을 했죠. 그랬더니 알았다고 자기가 그 선생님께 의사를 물어보고 연락을 주신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후회하느니 한번 쪽팔린게 낫다라고 생각하지만,

35년동안 살면서 후회할 만한 행동도 많이 했고 창피한 행동도 많이 했지만, 전화를 하고 나서의 그 시간들은 정말 창피했습니다.

혹시 회사로 전화해서 항의를 하면 어쩌나..그럼 완전 개망신인데, 어차피 그 선생에게 말도 안해줄텐데 괜한짓했다는 자괴감에 친구놈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해서 위로를 얻으려 했더니, 너 뭐됐다.당연한 개망신코스 아니냐는 너무도 당연한 말로 절 위로해주더군요

그러던중 수요일 그 원장님이 문자로 제게 그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려주셨습니다.너무 큰 기대는 말라면서요.

쉼호흡한번하고 그 선생님께 전화를 했죠.알고보니 저보다 열한살이나 어린 분이더라고요. 그래도 서로 본적이 있는 사이였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어제 만났습니다. 같이 차를 마셨고 전 그 양반에게 말을 놨고..뭐 그정도입니다. 정말 별것아닌 일인데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는게 별로 재미없는 나이죠. 제 나이가. 그런데 어제는 정말 스무살 그때같았습니다. 기다림의 설레임이나 서로 쭈뼛대던 처음의 어색함도 기분좋게 느껴졌으니 말이죠.

그 양반과 잘되서 해피엔딩을 맞으면 좋겠지만, 그게 되겠습니까..그냥 적어도 더 나이먹어서 후회는 안하리라하며 생각했던 행동이 딱 그만큼의 결과를 가져와서 오늘 아침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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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01 08:55
수정 아이콘
머지않아 올라올 염장글을 기대하겠습니다. 화이팅.
NeverEverGiveUP
09/08/01 08:58
수정 아이콘
잘하셨어요!
09/08/01 09:10
수정 아이콘
역시 삶은 후회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는 과장님께선...
13살 차이나는 와이프와 살고 계십니다 ^^
비내리던 어느날.. 왠 여고생이 공중전화 박스에서 비를 피하는데..
우산을 씌워준게 인연이 되어, 졸업하자마자 결혼에 성공하셨지요 ^^

세상에 인연이 있다면 무엇이든 안되겠습니까.
즐거운 삶이 되시길 빕니다!
The HUSE
09/08/01 09:12
수정 아이콘
멋지다.
후기도 꼭 올려주세요. ^^
화이팅!!!
09/08/01 09:45
수정 아이콘
이것은 잔잔한 라부 라부 스토리 ^^ 용기를 더 내어보셔요! 응원합니다.
체념토스
09/08/01 10:38
수정 아이콘
VICTORY!! VICTORY!! VICTORY!!

오 필승 시지프스님! 오 필승 시지프스님~!
아자아자 화이팅!
Bright-Nova
09/08/01 10:45
수정 아이콘
잘 됐 으 면 좋 겠 다 ~~
화이팅입니다~
스타카토
09/08/01 12:04
수정 아이콘
오옷!!!!
이거슨 넷북남 2탄~~~영어학원남인가요!!!!

염장글에 이은 인증글 곧 올라오길 기대합니다~~
오오오옷!!!이런글 좋단말이지!!!!
친절한 메딕씨
09/08/01 12:09
수정 아이콘
부디 행복하시어요.!!!

부럽다 11살 연하라... 휴.. 그럼 전... 23????

과연 내가 지금 23을 만날 수 있을까..??
오가사카
09/08/01 12:30
수정 아이콘
열한살이라... 진정한 동안이신듯
marchrabbit
09/08/01 13:13
수정 아이콘
염장글이 올라오더라도 이번만큼은 용서하겠습니다!
무지개빛깔처
09/08/01 13:16
수정 아이콘
화이팅! 염장글이 올라오더라도 이번만큼은 용서하겠습니다! (2)
09/08/01 13:40
수정 아이콘
이런글은 항상 응원합니다.
LightColorDesignFram
09/08/01 16:13
수정 아이콘
맨 뒷부분 읽는데 왠지 흐뭇하네요,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켈로그김
09/08/01 17:12
수정 아이콘
글을 읽는데, 좋아하던 사랑노래를 듣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쯤 해서 염장글 올라오길 바랍니다.
이 리플이 성지가 될 것입니다.
네오크로우
09/08/01 20:03
수정 아이콘
저랑 동갑이시군요...35살.... 근데 11년이나 어린분을....

이런 도둑!!!!! 친구중에는 13살 어린 분과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엄청나게 알콩 달콩 살긴 합니다. 화이팅!
시지프스
09/08/01 20:28
수정 아이콘
따듯한 마음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게 피지알이죠. 꼭 잘돼서 재밌는 이야기를 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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