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는 직장은 특성상 각급 영어학원의 선생님들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곳입니다.
아이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는 직업군이기에 그런 편입니다.
왜 사람이 일로 타인을 만나게 되면 그냥 똑같은 형태로 가늠되어지는게 대부분이잖아요. 그 사람의 심성,겉모습,분위기등 이런것들보단 내가 일할때 수월한 사람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딱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본의아니게 시작된 지금의 제 직업에서 그래도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건 큰 매력입니다.그들과 대화를 하면 많은걸 알게 되고 또 조카들같은 아이들의 행동을 보는것도 즐거움이고요.
지난주 금요일이었습니다. 여느때처럼 심드렁하게 하루를 시작한 아침이었죠.
회사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닌 일을 하게 되었을때 한 영어학원의 선생님을 보게되었습니다.모자를 푹 눌러쓰고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무신경한채 들어오던 양반이었죠.
일을 할때 만나는 선생님들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양반을 보기전까진 말이죠.
사람 마음이란게 참 묘하더라고요.굉장히 평범한 그 선생님을 보며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알바하는 애들한테 저 사람 어떤거같냐라고 물어볼만큼 말이죠.
그냥 궁금증이 드는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들었을뿐 별다른 행동은 없었습니다.주말을 늘 그렇듯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집안 정리도 하고 그렇게 보냈죠. 그러다 월요일 출근을 해서 회의를 하는데 그 선생의 학원 얘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집중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전내내 끙끙대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 선생이 있는 학원의 원장님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저 누구누군데요. 그때 그 선생님 연락처를 좀 알 수 없을까요? 너무 어이없는지(당연하겠죠 원장 입장에선) 왜 그러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을 드렸죠. 제가 여차저차해서 꼭 한번 대화를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저한테 하시는 얘기가 나이가 있으신데 결혼은 안하셨나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또 한번 여차저차 설명을 했죠. 그랬더니 알았다고 자기가 그 선생님께 의사를 물어보고 연락을 주신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후회하느니 한번 쪽팔린게 낫다라고 생각하지만,
35년동안 살면서 후회할 만한 행동도 많이 했고 창피한 행동도 많이 했지만, 전화를 하고 나서의 그 시간들은 정말 창피했습니다.
혹시 회사로 전화해서 항의를 하면 어쩌나..그럼 완전 개망신인데, 어차피 그 선생에게 말도 안해줄텐데 괜한짓했다는 자괴감에 친구놈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해서 위로를 얻으려 했더니, 너 뭐됐다.당연한 개망신코스 아니냐는 너무도 당연한 말로 절 위로해주더군요
그러던중 수요일 그 원장님이 문자로 제게 그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려주셨습니다.너무 큰 기대는 말라면서요.
쉼호흡한번하고 그 선생님께 전화를 했죠.알고보니 저보다 열한살이나 어린 분이더라고요. 그래도 서로 본적이 있는 사이였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어제 만났습니다. 같이 차를 마셨고 전 그 양반에게 말을 놨고..뭐 그정도입니다. 정말 별것아닌 일인데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는게 별로 재미없는 나이죠. 제 나이가. 그런데 어제는 정말 스무살 그때같았습니다. 기다림의 설레임이나 서로 쭈뼛대던 처음의 어색함도 기분좋게 느껴졌으니 말이죠.
그 양반과 잘되서 해피엔딩을 맞으면 좋겠지만, 그게 되겠습니까..그냥 적어도 더 나이먹어서 후회는 안하리라하며 생각했던 행동이 딱 그만큼의 결과를 가져와서 오늘 아침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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