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자살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는 부끄러워서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네요. 최소한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며 살아오진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그게 모두 무너진 순간이기도 했고, 꽤 오랫동안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목표도 꿈도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몸무게는 80에서 60까지 줄어 버렸고, 이후 건강검진 결과 이상 소견이 7개나 나올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뼈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할머니 지팡이를 짚고 다닐 지경이였으니까요. 정신적인 상태 때문에 몸이 그렇게나 망가질 수 있다는 걸(술을 마시거나 하지도 않던 때입니다. 매일 술이 없으면 유지가 안되는 기간도 거친 일이 있는데 그 무렵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피폐했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멍에 속에서 살도록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근근히 버텨가던 하루하루 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력한 제재 장치 조차도 무력해질 만큼 버틸 힘이 없게 되자 끈을 놓기로 결심했습니다.
뛰어 내려 죽는 일은 혹시 그저 식물인간이나 불구자가 되기만 하고 말아서 더 괴로운 생활을 이어가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손목에 칼을 대는 일은 어린 시절에 어쩌다(자율학습을 하다 호기심에 장난을 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경험을 했는데 결과 왠만한 힘으로는 흠집을 내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거의 절단 수준으로 하려다 혹시 실패하면 어찌할 지 걱정이 되더군요.
바보 같지만 네이버 지식인에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고, 결행하기 쉬운 자살 방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금 보면 웃기지만, 혼자만의 방 안에 갇혀 버리면 정말 생각이 짧아지는 것 같습니다. 죽고 싶으면 그냥 이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도 그만일 텐데 말이죠.
대부분은 죽지 마라, 일단 1년만 더 살아라 그 이후에 죽고 싶으면 내가 죽여주마, 가족을 생각해서 참으세요 등의 답변이었습니다. 자살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위로가 되지도 않는 어느 면에서나 고려할만 하지 않은 답변들만 달렸죠. 그 중 한 분이 너무 무섭다고 제발 죽지 말라는 글을 남기셨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1주일쯤 더 망설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죽고 나면 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를텐데 무엇이 그렇게 걱정되었던지 하나하나 생활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유서도 쓰고, 소지품도 정리하고... 때때로 그만 둘까... 그냥 정신이 병들어서 그런 거라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가끔 들긴 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던 것 같습니다.
거의 정리가 되어 갈 무렵 웹상에서의 종적도 지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가족들이 보게 되면 하나하나 볼 때 마다 생각이 나고,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을 할 것 같았으니까요.
그러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작은 일이 생겼고 그 덕분에 변화가 왔습니다. 그 때의 일을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 분이 여러 차례 쪽지를 보냈더군요. 글로만 보아도 울 것 같은, 너무 무서워 하는,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린 여학생이었어요.(중학생이었으니 조카나 친척 막내 동생 뻘 정도일까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 때문에 생활을 못할 정도로 아파하고, 걱정해 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도망치는 것이 옳은가? 스스로에게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해서, 실망했다고 해서 이렇게 끝내는 것이 맞는 일일까? 저 여학생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진심을 담아 아픔을 이해하려 하는데 내 가족이라면... 자신보다 더 나를 사랑해줄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까? 나의 잘못 때문에 그들을 고통 속에서 일평생 살게 해야 하는 걸까...
그 여학생 덕분에 잠시 숨을 고르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년 넘게 마음고생을 해왔던 것들을 누나와 상의했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 근처에서 보자마자 설명도 없이 안겨 울고(누군가의 앞에서 그렇게 울어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나... 죽는 것 밖에 방법이 없어...'를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좀 진정이 된 후 얘기를 나누던 중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건 죽을 일이 아니야. 그런 일 얼마든지 있어. 그냥 넘기면 돼...' 전혀 실망한 목소리도 아니였고(오히려 이후에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할 때에는 실망이 컸던 것 같더군요.), 따뜻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평온해져 버렸습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지금까지도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그 이후로도 매일 악몽을 꾸고 가책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생활이 됩니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습니다. 즐거운 시간들이 점점 자주 찾아오고 있고, 꿈도 꿀 수 있습니다. 여전히 제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저를 어리석지 않으며, 정의롭다고 믿고 있고, 예의바르고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알아주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는 것 조차 부끄러워서 고개를 바닥에 쳐박고 1년 넘게 살았는데(심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의 얼굴도 하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벽과 길과 흐릿한 사물 밖에 볼 수 없었던 시간이네요.) 아무도 제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꿈만 쫓는 30대 백수에 불과한 저를 여전히 자랑스러워 하고, 사랑해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렇게나 힘들었던 일들이 그들에게는 그저 제가 겪은 안좋은 일 중 하나 정도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혹은 그렇게 느끼도록 해 주고 싶었던 거겠죠.
간혹 지인들이나 동생들이 상담을 해옵니다. 정말 힘들어 합니다. 제가 보기엔 얼마든지 다른 꿈을 꿀 수도 있고, 그저 넘겨 버리면 그만인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고민하고 함께 아파합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도 걱정은 했습니다.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말 아파하고 나누고 싶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이는 소소한 것들 까지도 말이죠.
무조건 안아주는 가족 덕분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위로하고 함께 웃어준 친구들 덕분에... 그들의 사랑 덕분에 열심히 살 수 있는 요즘이 너무 행복합니다. 여전히 미래가 두렵고, 과거의 기억에 휘청거리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 충실히 살아가고 있지만은 못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몇 번씩은 웃으며 지낼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말씀드리려고 쓴 글은 아니예요. 그 소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을 알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지만, 제가 어떤 상황이었는 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아파해 준 그 소녀 덕에 많은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후후..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몰라도, 잘 할거라고 믿는다. (친구먹기로 한거 여전히 유효한거지?? ^^;;)
(여기서부터는 진짜 댓글모드...)
사랑이 사람을 살린다는데 진짜 동감합니다. 희망이라는건 한 조각도 없는것 같은 상황에서 저를 구해줬던건,
다른것이 아니라, 교회학교에서 제가 가르치던 제자의 크리스마스 카드였거든요.
뭐, 별다른 내용도 없었어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사랑합니다~" 가 전부였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