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그냥 월급쟁이랍니다. 윗사람에게 밉보이면 당장 밥줄이 위태로워진다구요.
가족도 있어요. 인터넷에 글 한 번 잘 못 올렸다 감옥에라도 끌려가면 내 새끼들과 마누라는 어쩝니까.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요즘은 예전 5공 때처럼 무슨 말만 잘못해도, 엉뚱한 장소를 잘못 지나가기라도 하다가 경찰에 걸리면 호된 곤욕을 치를 수도 있는 거 아시죠? 잘난 촛불을 한 개만 들고 있어도 물대포에 방패에 여차하면 어디 잘못 맞아 피터질 각오를 해야 한다구요.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그래요, 저 겁쟁입니다. 결혼이라도 안 했으면 앞뒤 생각 안 하는 무대뽀같은 정신이라도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요, 저 소심해요. 일찍 좀 퇴근하겠다고 말해서 사장님이 오늘 어디 가냐고 물었을 때, 식구들 데리고 조문에 참석하러 간다고 말 못 했거든요. 한나라당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장님 눈 밖에 날까봐서요.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하지만 이제,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 보겠습니다.
저 내일, 아니 이제 오늘이 됐네요. 노란 넥타이는 없어서 정장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려고 해요. 정장을 전혀 안 입는 제가 갑자기 그렇게 입고 가면 분명히 뭐라고들 할거예요. 누가 혹시라도 눈치채고 물어보면 오늘 영결식이잖아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쪽은 안 가실 거냐고까지 물어볼 거구요.
그게 뭐 대수냐고요? 제 입장에서는 그게 얼마나 큰 용기를 내는 건데요.
전철이나 버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넥타이를 보고, 눈치를 채며 속으로 비웃을까요.
그거 무시하렵니다. 당신께서 돌아가시기까지 한 이 마당에 그 잘난 남의 눈이 대수입니까.
이것도 저한텐 용기 내는 거예요.
그리고 이건 진짜 제가 정말 크게 인심쓰는 거예요.
예전엔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옛날 옛적의 잘난 사람들 이름대려고 고민 많이 했거든요.
이제부터 무조건 당신의 존함 석자만 댈 거예요. 별 거 아니라구요? 우리 애들에게도 계속 주입시킬건데요? 대를 이어서.
당신께서 얼마나 훌륭하셨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요 노무현 대통령님, 저 이 정도밖에 못 해드려요.
소심하다고, 좀스럽다고 흉보셔도 이 정도 밖에 해드릴 용기 밖에 없어요.
그래도, 그래도 제 마음 정도는 받아주실 수 있죠?
언젠가 저도 늙어 하늘에 가면 만나주실 거죠? 그때 그 넉넉한 미소 좀 다시 보여주세요.
제가 담배 한 갑 사드릴게요.
=================================
오늘까지 너무나 많이 자주 울었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내가 많이 울면 돌아가신 분께서 돌아오실 수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요.
이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역사 200년이 넘는 미국에 전혀 꿀리지 않는 대통령을 가졌다고 자부했는데...
그 자부심을 산산이 깨버린 이 현실이 밉습니다.
대한민국, 앞으로 희망이 없진 않겠죠? 이런 일들이 모두 큰 거름이 돼서 그 희망이 이루어지겠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