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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5/27 22:04:57
Name 아우구스투스
Subject [일반] 2009년 5월 23일, 무한도전을 보고싶었습니다.
뭐... 제목이 낚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입니다.

5월 23일 토요일. 그날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차를 타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가는 내내 잤죠. 전날에 늦게까지 학교의 과제를 하느라고 말이죠.

아버지께서 2월에 몸이 안 좋으셔서 입원하신 뒤로는 일주일에 2번 정도는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힘을 쓰는 일이고 하다보니까 잘은 못하지만 그래도 아프셨던 아버지보다는 아직 젊은 제가 더 나으니까요. 다만 시간이 애매하고 화물차는 운전하지를 못하기에... 가면서 내내 잠을 자는 편입니다.

그래서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뭐 저희 집에서 저와 제 동생은 무한도전을 굉장히 즐겨봅니다. 매주 한편도 빠짐없이 보고 또보고, 재방해주는 거 보고 그럽니다. 그야말로 광팬입니다. 무모한도전 시절부터해서 한편도 안빼놓고 다 봤습니다. 무한도전때문에 토요일에는 외식도 안 할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그날도 그런 큰 일이 있는데도... 뉴스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무한도전이 할 시간이 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당연히... 당연히 무한도전은 방영되지 않았죠. 아주 당연한겁니다. 저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 무한도전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보면서 정신을 놓을정도로 웃고 다른 근심 걱정을 다 잊게 만드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 날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무 생각이 없이 마구 웃다가 그렇게 자지러지다가 문뜩 생각이 나서 흐느끼고 싶었던 걸까요?

하지만 전 무한도전이 보고 싶었습니다.

국민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면 대통령으로서 욕을 기꺼이 먹겠다던 그분의 말씀처럼, 국민의 아니 최소한 저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던 그 무한도전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분과 예능프로그램을 비교한다는게 정말 웃기지만 토요일 예능 최약자에서 국민예능으로 발돋움한, 그러면서 언론에게 집중포화를 당하곤 하는 무한도전은 가끔은 그분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기에 그랬을까요?

하지만 전 무한도전이 보고 싶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잊지 않고 찾아오던 무한도전이기에, 파업으로 결방시 너무나 아쉬웠던 프로그램이었기에, 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었기에, 마치 이번주 토요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저에게 말하고픈 제 자기 최면이었을까요?
무한도전이 정상적으로 방영되면 이 날 벌어진 일이 다 거짓일 거라고 생각해서일까요?



어쩌면 만일 그날, 만에 하나라도 무한도전이 방영되었다면... 가장 비난하고 다시는 그 프로그램을 안 볼 사람이 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게 제 생각이기에 말이죠.

제가 철이 없기에 그런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기적이기에 그런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못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저는 무한도전을 보고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더, 고 노무현 전대통령님을 보고싶었습니다.




아무런 신을 믿지 않는,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저이지만...

만일 신이 계신다면...

가장 좋은 곳으로 그 분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좋은 곳에서...

오래동안 행복하게 계시길 바랍니다.

그곳에서는 힘들게 정치 안하셔도 됩니다.




이제 남은 곳에서는... 비록 작은 힘일지라도 당신의 뜻을 잇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할 지언정... 저 역시 아주 작고 나약하고 비겁한 힘일지라도 보태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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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세라프
09/05/27 22:09
수정 아이콘
만약에... 아주 만약에...
좋은 곳에 계신 그 분을 만날 기회가 된다면
"자네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네."
라는 말을 꼭 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우구스투스
09/05/27 22:11
수정 아이콘
새벽의세라프님// 저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 영광일듯 합니다.

하지만 그분이라면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고개를 숙이면서 "저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죠? 여기는 편안하기 편히 계시길 바랍니다." 라고 하실듯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지만 국민에게만은 고개를 숙이는 분이기에 말이죠.
09/05/27 22:15
수정 아이콘
추모의 기간이지만 예능을 보고 싶은 분들의 마음은 절대 잘못이 아닙니다. 저 역시 이번 노 전대통령님의 서거로 가슴이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어제 야구 보면서 제가 응원히는 팀이 이기니깐 좋아라 했으니까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게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자그마한 개념이라도 놓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봅니다.
아우구스투스
09/05/27 22:18
수정 아이콘
괴수님// 뭐 변명같지만 그냥 예능이 보고싶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인데도 저도 잘 모르겠지만 참... 웃으면서, 정신없이 웃으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주말 내내 믿지 않았습니다.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했으니까요.
09/05/27 22:2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eline Dion - Because You Loved Me라는 노래를 듣다가 이 글을 봤는데...
마음이 참..슬픕니다..
앙앙앙
09/05/27 22:26
수정 아이콘
아우구스투스님// 그 마음 이해합니다. 어제 오늘 속속 올라오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 미공개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고인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 여친도 어느 날 문득 살아돌아올 것 같다고 자조 섞인 희망을 읊조리더군요...
09/05/27 22:38
수정 아이콘
저도 아우구스투스님 마음에 백번 공감합니다.
당연히 예능이 방송되어서는 안될 분위기임을 알면서도, 마음이 너무 황망해서 잠깐이나마 웃고 떠들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덕분에 지난 주말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구요.
王非好信主
09/05/27 22:42
수정 아이콘
전 무한도전이 보고 싶었습니다.

전 담배도 안피고, 술도 연례행사에 가까울 정도로 안먹습니다. 저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거의 예능프로를 보는 것입니다. 마음 놓고, 그냥 웃어서 잊는 것이 고3때부터의 저의 습관입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정도로 슬펐던 기억은 3번정도 입니다. 부모님의 이혼, 사귀던 사람의 양다리. 그리고 가장 존경하던 한 분의 서거. 전 입에 담배를 물 수도 없었고, 술도 먹지 않았습니다. 예능프로가 간절히 보고 싶었습니다만, 보지못했네요. 저한테는 예능 불방이 크리티컬이랄까요?

사실 드라마건 스포츠 중계건 다 하는데 예능만 하지 않는다는 건 좀 이해가지 않지만... 애도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평소의 스트레스 해소법없이 슬픔을 그대로 만끽하는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도무지 이 슬픔은 가시지가 않네요.
더블인페르노
09/05/27 23:35
수정 아이콘
저 또한 뭔가 다른게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정말 잠시라도 다른생각을 하고 싶엇습니다
새벽에 늦게 들어와서 늦게 일어나 마눌이 이제 일어나라고 깨울때 무심결에 티비를 틀었을때.. 서거소식을 봤습니다
잠결에..서거..서거..뭐였더라..
서거!! 졸리던 제 정신이 찬물을 맞은거처럼 확 돌아오더군요
그자리에서 몇시간동안 뉴스를 봤습니다 최면에 걸린듯 보게되더군요
정말 다른게 보고 싶엇습니다..이게 꿈이엇음 오보였음 햇습니다
본좌유키
09/05/27 23:36
수정 아이콘
사실 저는 무한도전보단 1박2일이 더 보고 싶었어요.
09/05/28 00:01
수정 아이콘
저도 무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방송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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