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KBO 타자들의 클래식 스탯인 타율/출루율/장타율과 세이버 스탯인 OPS, XR, XR/27, BABIP 을 같이 정리해 봤습니다. 50타석 이상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정리하였으므로 엔트리 확대 후 올라온 일부 백업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XR은 단타는 0.5점, 홈런은 1.4점, 도루실패는 -0.32점, 병살타는 -0.37점 하는 식으로 타자의 각 타격행위 (+주루)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것이 팀 득점에 어느정도 기여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추정 득점의 약자) 입니다. 즉, XR 1이면 그 팀에 1점 기여했다는 의미로서 세이버 스탯 중에서 가장 보기 편한 스탯입니다. 타출장보다 훨씬 직관적이죠. 아울러 누적스탯이므로 출장 많이한 선수가 이 스탯도 높습니다. 저는 투수의 이닝만큼 타자의 타석수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타율이 망했건 장타율이 낮건 상관없이 XR이 높은 선수가 무조건 장땡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참고로 XR은 메이저리그에서 1955년부터 1997년까지 42년간의 자료를 모아 회귀분석하여 나온 결과입니다. 어마어마한 자료를 노가다로 분석한 것이라 꽤 정밀한 편이고, KBO에도 잘 적용되는 편입니다.
XR/27 은 누적 스탯인 XR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고안된 비율 스탯으로 한 선수로 1번부터 9번까지 꽉 채울 경우 한경기를 치루는 동안 몇 점이나 얻을 수 있을지 나타낸 지표입니다. 올해 MVP인 박병호는 이 수치가 9.7인데, 박병호로만 1번부터 9번까지 채우면 경기당 9.7점을 얻는다는 뜻이죠. 참고로 OPS 1.4가 넘었던 2004년 배리 본즈의 XR/27은 18.1 입니다. 이런 정신나간 ...
BABIP은 한 타자가 그라운드 안으로 타구를 보냈을 때 몇 %의 타구나 안타가 되었나를 나타냅니다. 타자의 타격 메카니즘에 따라 다른 수치가 나오는지라 보통 타자의 고유한 값을 가진다고 보고 있으며 보통은 0.320 에서 0.350 사이의 수치에 수렴합니다. 땅볼을 많이 날리거나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잘 생산하는 타자는 이 값이 0.360이 넘을때도 종종 있습니다. 0.400 이상의 상당히 높은 BABIP이 나왔다면 대부분 한 해 동안 특별히 운이 좋았던 것으로 보아서 다음 해에는 타격 관련 지표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이 대세입니다.
각 팀의 최종 순위 순으로 정리하였으며 XR의 계산식은 (1루타×0.5 + 2루타×0.72 + 3루타×1.04 + 홈런×1.44 + (몸에 맞는 볼 + 볼넷 - 고의4구)×0.34 + 고의4구×0.25 + 도루×0.18 - 도루실패×0.32 - (타수 - 안타 - 삼진)×0.09 - 삼진×0.098 - 병살타×0.37 + 희생플라이×0.37 + 희생번트×0.04 ) 입니다.
1. 삼성
보통 XR/27이 6이 넘으면 강타자 (강정호가 6.3입니다), 7이 넘으면 한 팀의 MVP 입니다 (김태균이 7.4). 삼성은 이런 팀 MVP급 선수를 셋이나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우승을 하지 못하면 이상한 수준인 강팀인거죠. 특히나 최형우의 511타수 출장은 경이적인 수준입니다. 타출장이 채태인이 더 아름다우나 제가 보는 삼성의 MVP는 역시나 최형우입니다.
다만 삼성의 미래에 대해 약간의 걱정을 해보자면 주전은 흠잡을데 없는 수준의 고른 타선이지만 100타석 미만의 백업 선수들이 삼성의 명성에 비하여 약해 보입니다. 그래도 삼성의 선수 키우기 능력을 생각해보면 저 선수들이 머잖아 XR/27 4.0 이상의 주전급으로 커주겠죠.
2. 두산
홍성흔을 FA로 다시 잡았던 것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김현수에 이은 팀내 2번째의 공헌을 했네요. 두산의 특징이라면 박병호 같은 슈퍼스타는 없지만 모든 선수들이 골고루 잘한다는 것입니다. 올 한해 부진했던 손시헌을 제외하면 주전부터 백업까지 모든 선수들이 XR/27이 4.0이 넘어가는데 이건 두산을 제외한 어떤 구단에서도 불가능한 구성입니다. SK나 삼성같은 우승 왕조를 이루진 못했지만 KBO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팀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바탕이 되었겠죠.
다만 속쓰린 것은 팀내 공헌도 4위인 이종욱이 나가고, 68타석이라 모수가 부족하긴 하나 어지간한 주전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준 XR/27 5.6 짜리 윤석민을 XR/27 3점대인 장기영과 바꿨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그래도 두산의 선수층 수준을 생각해보면 투수진이 폭망하지 않는 한 딱히 내년 성적이 올해보다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3. LG
박용택은 리그 최고의 중견수였습니다. 이용규가 지난 3년간 연평균 72점 정도의 XR로 리그 최고의 중견수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 시즌 박용택은 그보다 한차원 높은 수준이었죠. 팀내 수훈 갑도 박용택입니다. 아울러 큰이병규 작은이병규 할 것 없이 이병규는 둘 다 잘했습니다.
오지환도 체력 부담이 큰 유격수 자리에서 441타수나 출장했습니다. 타출장 등의 비율 스탯은 좋지 않으나, 득점 기여도인 XR/27로 보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편이고 팀내 1위의 도루 숫자 및 도루 성공률로 공헌한 것도 적지 않습니다. 두자릿수 홈런이 나오지 못한것은 개인적으로 좀 아깝겠네요.
용병으로 XR 70 정도 찍어줄 수 있는 1루 거포가 들어온다면 팀의 득점이 올해보다 30점 이상 뛰어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두산보다는 못하지만 백업 선수들이 고만고만하게 괜찮은 것도 팀의 장점. 1루와 포수가 강해질 수 있다면 가을야구 단골손님이 되지 않을까요.
4. 넥센
어메이징 넥센입니다. XR이 116 넘는 박병호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습니다. XR/27 3.3인 장기영이 5.6인 윤석민으로 바뀌었습니다. 올레. 강정호가 내년 시즌이 끝난 후 해외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속쓰리나 빌리장석이 알아서 잘 구해 오겠죠.
포수진의 타격이 취약한 것은 롯데와 SK를 제외한 어느팀이나 마찬가지인 문제고, 그를 제외하고 보면 전체적으로 고른 타격을 보여주는 넥센의 야수진은 리그 상급 수준입니다. 투수진만 어느정도 해주면 내년 가을야구도 떼놓은 당상일 것 같습니다.
5. 롯데
저는 점괘을 믿지 않지만 손아섭이 야구를 잘하기 위해 개명한 후 대폭발한 것을 보면 믿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올해는 외야수중에 최형우, 박용택, 손아섭 등 유독 팀내 MVP 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한명은 중견수, 한명은 우익수로 말이죠.
이대호와 홍성흔이 떠난자리가 좀 휑합니다. 그래도 포수 중 유일하게 규정타석을 채운 강민호가 KBO 포수 평균에 비해 두 차원 높은 타격 (보통 KBO 포수들의 XR/27은 3점대에 형성됩니다) 을 보여주는 것이 강점이네요. 최준석이 들어와서 타격 보강이 된 점도 희망적이구요.
다만 롯데도 백업 선수들의 뎁스가 얇은 것이 안타까운 점입니다. 기아 만큼은 아니지만요.
6. SK
최정은 박병호만 아니었다면 리그 MVP를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시즌이었습니다. 수비 포지션이 3루인 것도 강점이구요. 박정권도 어느 팀 1루 못지않은 타격을 보여주었습니다. 박진만이 유격수 자리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내야 수비는 리그 최고, 공격도 넥센과 쌍벽을 이룰 수 있는 훌륭한 내야진이었습니다. 추가로 포수를 감안하면 넥센보다도 SK가 훌륭했죠.
문제는 정근우가 팀을 떠났다는 것. 기아에서 이용규가 나간 만큼이나 속쓰립니다. 내년에 최정과 조동화가 FA가 된다는 점도 팬들에게는 불안한 점이구요. 김상현의 올해 활동은 300타석이 넘게 들어선 것 치곤 (그중에서 기아에서 뛴 것도 적지 않지만) 백업 선수 수준인 XR/27 3.3 수준이었습니다. 기아팬 입장에서도 팀을 떠날 때 안타까워 했던 김상현의 부진이 아쉬울 다름입니다.
SK도 주전은 골고루 타격이 되지만 백업 쪽에 XR/27 3 미만의 선수들이 여럿 있는 것이 걱정이 되네요.
7. NC
이호준은 올해 제대로 긁힌 로또였습니다. 신생 팀에서 기둥이 됨과 동시에 훌륭한 타격을 보여주었죠. 올해 도루왕도 NC에서 나왔습니다. 김종호는 볼넷도 리드오프 치고는 괜찮게 얻어낸 편이고, 주루도 훌륭했는데 삼진이 너무 많고 도루왕의 수준에 걸맞지 않게 병살타도 11개나 때렸습니다. 그래도 신생 팀에서 465타수나 출장하면서 득점 기여 66을 올린 것은 맹활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성범, 모창민, 조영훈은 내년이 더 기대됩니다. 여기에 리그 상위권 중견수인 이종욱이 FA로 합류한 것도 크죠. 다만 나성범, 권희동, 김종호, 박정준이 이 모두 외야인데 이정도 선수를 백업으로 쓸 순 없는 팀 사정상 어떻게 교통정리를 할 지가 궁금합니다.
타팀 팬이지만 충격과 공포의 1할대 두자릿수 홈런 타자 (그래도 시즌 말에 2할대로 올리긴 했죠)는 아직도 잊을수가 없네요. 백업 선수의 뎁스가 얇은 것은 김경문 감독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극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8. KIA
기아에 대해서는 예전에 따로 자세히 쓴 글이 있으므로 길게 적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XR/27이 1 이하인 선수가 1군에서 54 타수나 출장하는건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홍재호, 이홍구, 이준호, 백용환도 너무했습니다. 아 .. 뒷골땡겨.
XR/27 5.1인 이용규가 3.2인 이대형으로 바뀝니다. 대략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XR/27 1점 낮아질 때마다 연평균 득점이 타수에 따라 10~15점 까인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대형 잘 좀 합시다. 그나마 김주찬이 내년에는 400타석 정도 뛰어주면서 최근 3~4년간 성적만 올려줘도 이용규의 빈자리는 채워지겠지만 -20 한다음 +20 하면 결국 0죠.
안치홍은 XR/27 5.0 정도는 찍어줄만한 선수인데 (정근우가 5.3) 올해 지독한 부진속에 3.9에 그쳤습니다. 내년을 기대해야죠. 이번 겨울 보호선수 중에 박기남, 이종환을 풀자는 팬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랬다가 타팀에서 픽하는 순간 기아 내야나 외야나 장기적인 출혈이 있었을 겁니다. 이종환이나 박기남이나 어느팀 백업보다도 타격 면에서는 훌륭한 선수들입니다. 더군다나 둘다 군필이죠. 이거는 일부 한화 팬들이 고동진 풀자는 소리나 마찬가지로 프론트에서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이야기긴 했죠.
저메씨는 3년째 250타수 수호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내 공헌도는 크죠. 250 타석 이상에서 최희섭보다 XR/27이 높은 선수가 KBO 다합쳐서 15명밖에 안됩니다. 죽건 살건 끝까지 안고 가야하고 여기서 은퇴시켜야 할 선수입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좀 많이 나옵시다. 길게 안적으려고 했지만 팬심이 작용하니 이만큼이나 나오네요.
9. 한화
김태균의 스탯은 언제봐도 아름답습니다. 김태균의 XR이 70 밖에 안되는 것은 팀 리드오프가 좋지 않았다는 점도 있고, 볼넷을 73개나 얻어내 박병호에 이은 리그 2위라는 점도 있습니다. 여차하면 거르면 되거든요.
XR/27 5.0이 넘는 선수가 주전 중에선 김태균, 최진행 둘 밖에 없습니다. 김태균이 일본서 안돌아 왔다면 여기서 더 못 볼 걸 볼뻔했죠. 백업 뎁스도 얇은 편이고 이대로 갔으면 우울한 2014년이 될 뻔 했으나 리그 상급 중견수와 2루수를 FA 영입했습니다. 이번에 영입한 선수 둘 다 폭망해도 5.0은 넘기는 국대출신들이죠. 타자 용병이 XR/27 5.0만 넘겨줘도 괜찮은 한해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수비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은 덤. 달리 김응용 감독이 바로 불러서 밥을 먹인게 아니지 싶습니다.
그런데 1234위팀의 전력이 5위 이하와는 차이가 좀 납니다. 주요 선수들이 FA로 빠져나간것도 두산, SK, KIA 였는데 두산은 무시무시한 뎁스를 가진 팀이라 이종욱이 빠져도 데미지가 덜할테고 치명타를 맞은 SK는 6위, KIA는 8위 팀이었죠. 재건을 노리는 팀들에게는 내년 한해도 빡빡한 한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1-21 18:47)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