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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4/01/20 03:41:17
Name 자이체프
Subject 어느 섬사람들의 350년간의 투쟁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알려진 전남 신안군 하의도는 바로 옆에 있는 상태도 하태도와 더불어 하의삼도라고 불린다. 조선 초기 공도정책으로 비워졌던 섬은 임진왜란 이후 이주민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그렇게 평화롭게 살던 섬사람들에게 그늘이 드리워진 것은 인조반정 직후 인목대비의 딸 정명공주가 풍산 홍씨 집안의 홍주원과 결혼하면서부터였다.



섬사람들은 얼굴도 보지 못한 두 사람의 결혼이 날벼락이 된 이유는 왕실에서 정명공주의 혼수로 하의삼도를 홍주원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하의삼도의 땅 일부의 소유권을 넘겨준 것이다. 조선의 백성이라고는 하지만 관리의 코빼기도 볼 일이 없던 하의삼도 주민들로서는 청천 벽력같은 일이었다. 곧 홍씨 집안에서 파견한 세금 징수인들이 섬에 나타났다.



이들은 왕실이라는 권세를 등에 업고 섬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문제는 이들이 원래 세금을 걷어야 할 땅 뿐만 아니라 섬에서 나는 생산물 전부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섬사람들이 하나하나 돌을 쌓아서 간척한 땅도 뺏었다. 따라서 섬사람들에게 땅을 되찾는 일은 대를 이어가는 한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섬사람들은 경종 때 대표자를 뽑아서 한양으로 올려 보냈다.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한 끝에 이 문제가 공론화되었지만 아쉽게도 홍씨 집안의 세도에 밀려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임금이 억울한 사정을 듣고 문서를 써 주었지만 홍씨 집안에게 빼앗겼다는 전설이 남아있을 정도니 섬사람들이 얼마나 원한에 사무쳤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역설적으로도 일제강점기는 섬사람들에게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궁내부에 소속되었던 하의삼도의 토지소유권은 일본인들 손에 넘어갔다. 소송을 해서 유리한 판결을 받았지만 소유자가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방식으로 떠넘겼다. 친일파의 거두 박춘금까지 가담한 소유권 분쟁과 갈등은 일제 강점기 내내 이어졌다. 해방은 섬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미군정은 섬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참다못한 섬사람들은 대규모 봉기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빨갱이라는 낙인뿐이었다. 정부수립이후 토지분배가 실시되면서 또 다시 희망이 찾아왔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토지 소유권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섬사람들이 토지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타결이 되었다. 장장 350년을 끌어온 하의삼도의 분쟁은 섬사람들에 핏빛 증오심만을 남겨놨을 것이다.



섬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섬사람들을 위해 무료변론을 해준 일본인 변호사의 공덕비가 세워져있다. 나는 사람들이 법을 우습게 생각하는 버릇이 하루아침에 생겼다고 보지 않는다. 이렇게 법이 공정하지 못하고 권력의 편에 서 있는 걸 몸소 체험한다면 누구나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섬사람들이 겪은 350년의 시간들을 대체 어느 누가 글로서 설명하고 풀어낼 수가 있을까? 섬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땅을 되찾는 것을 숙명처럼 여겼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자식에게까지 이어진 그 증오의 기억들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희생 끝에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슬프게 했던 것은 정부가 섬사람들로부터 땅의 매입자금을 받고도 소유권을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1990년대까지 섬 대부분의 땅이 일본인과 정부 소유로 남아있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2-20 16:41)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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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토스
14/01/20 07:52
수정 아이콘
추천만 있고 댓글이 없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자이체프
14/01/20 15:38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들어서 몇 글자 적어봤습니다.
14/01/20 09:1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자이체프
14/01/20 15:38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차후에 좀 더 자료 정리를 해볼 생각입니다.
Sviatoslav
14/01/20 09:30
수정 아이콘
그 한이 모이고 모여서 일국의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었던 것일지도요.
자이체프
14/01/20 15:40
수정 아이콘
아는 분이 그 얘기를 듣고는 '저항의 유전자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건 아니었구나.'라고 답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공고리
14/01/20 09:39
수정 아이콘
1990년대까지면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 이게 바로잡히게되는건가요? 궁금하네요.
14/01/20 11:25
수정 아이콘
찾아보니 1950년대에 토지소유권은 주민들에게 귀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 본문에 언급된 매입하는 방식의 타결이라는 것은 농지개혁법상의 유상배분인 것 같구요. 다만 이에 대하여는 무상이라고 언급한 자료도 있고 <추가> 처음에는 무상이었다가 전쟁 후 유상분배로 변경되었다고 설명된 자료도 있는데, 그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원자료를 확인해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께서 말씀하신 1990년대 이야기는 자료를 찾지 못했는데, 아마 등기가 정리되지 않고 있었던 부동산에 관한 내용이 아닌가 싶네요.
※ 참고로 우리나라는 등기기록에 공신력이 없으므로 등기명의자 = 소유자임이 추정되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1950년대 이후 국유나 일본인 명의로 등기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등기명의자가 소유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 추가 >
자료를 좀더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있군요. 추측대로네요.
1993년 신안군 의회는 하의3도 상환농지관련 청원심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확인한 결과 6백여 필지가 미등기로 남아 있어, 신안군은 이후 등기이전 작업을 진행하여 1999년 현재 100여 필지가 미등기로 남아 있는 상태가 되었다.
※ 이렇게 된 이유는 등기권리자가 등기비용을 부담하는 보통의 소유권취득과 달리, 이 케이스는 특별케이스이므로 국가가 등기비용을 부담하기로 약정했던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분배농지는 상환완료되면 등기와 상관 없이 소유권이전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타인에게 팔기 전까지는 등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 상속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므로 분배받은 사람이 사망하여도 상속인들이 소유권 행사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음). 전쟁 직후는 나라가 가난하여 예산배정이 안 됐을 것이고, 나중에는 인플레이션에 비례하여 등기비용이 증가하여 배정된 예산이 계속 부족하니, 당장 팔 땅만 먼저 해 주고 기타의 땅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던 것이 반복되어 상당기간이 흘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자이체프
14/01/20 15:43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게 맞은 듯 하네요. 결국 섬사람들은 300년이 넘게 뜯고 뜯기고 또 뜯기다가 제 돈 주고 땅을 사게 되는 꼴이 되고 말았죠. 사실 책 관련해서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상세한 내용을 들으니까 반갑습니다. 혹시 책에 쓰신 내용을 인용하는 것을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14/01/21 08:13
수정 아이콘
법률해석 부분은 인용하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구체적 사건에 관련된 내용은 원자료도 아닌 2차 자료를 인용한 것이거나 추측에 불과하니 제 설명보다는 신안군 쪽의 자료를 인용하시면 어떤가 합니다. 제가 찾아보기로는 신안문화원의 설명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신안문화원 홈페이지 내의 역사와 문화 - 역사적 사건 메뉴에 있습니다).
자이체프
14/01/21 15:13
수정 아이콘
인용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공고리
14/01/20 16:12
수정 아이콘
댓글 잘봤습니다^^
자이체프
14/01/20 15:41
수정 아이콘
은별님 말씀대로 재산권 행사에는 별 문제가 없는 상태가 지속된 것 같습니다. 아마 90년대 들어서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루크레티아
14/01/20 10:07
수정 아이콘
봉기 했으나 빨갱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이 잘 드러나는군요..
자이체프
14/01/20 15:44
수정 아이콘
7.7봉기라고 해서 대단히 큰 사건이었습니다. 섬주민들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지는게 덕전농장 사무소 직원들이 그대로 미군정이 세운 신한공사 출장소 직원이 되었으니까 바뀐 게 아무것도 없게 된 것이었죠.
수호르
14/01/20 10:19
수정 아이콘
아.. 정말 가슴 아픈 일이네요.. 젠장.
자이체프
14/01/20 15:45
수정 아이콘
짧은 글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한과 슬픔이 서려있는 곳이죠.
싸이유니
14/01/20 10:26
수정 아이콘
잘 읽고갑니다. 그런대 이런 내용은 어디서 구하시는지요...궁금하군요
자이체프
14/01/20 15:46
수정 아이콘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조선의 일상 법정에 서다'라는 책에서 나온 내용을 보고 자료조사를 했습니다. 국회전자도서관에 들어가면 논문 몇 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참한하늘이빛나
14/01/20 10:32
수정 아이콘
어릴때 한중록 읽고 혜경궁 홍씨 때문에 덩달아 그 집안에게까지 기구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데, 풍산 홍씨도 참 장난아니게 전횡이 심했군요.
자이체프
14/01/20 15:47
수정 아이콘
당사자입장에서는 정당하게 취득했으니까 놓고 싶지 않았겠죠. 그래도 조금 섬사람들을 생각했으면 이런 문제까지는 안 일어났을텐데 말이죠. 아마 지금도 저 섬사람들은 풍천 홍씨라면 이를 갈지 않을까 싶습니다.
Je ne sais quoi
14/01/20 10:5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자이체프
14/01/20 15:48
수정 아이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올린
14/01/20 10:58
수정 아이콘
어느날 갑자기 왕의 권세를 빌린 자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다니...주민들에겐 정말 날벼락이 따로 없었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자이체프
14/01/20 15:48
수정 아이콘
당사자는 커녕 관리 얼굴도 볼 일이 없던 섬사람들한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질 일이었을 겁니다.
두꺼비
14/01/20 14:03
수정 아이콘
그 공덕비에 있는 있는 인물이 혹시 아사히 겐즈이인가요? 그렇다면, 변호사가 아니라 노동운동가입니다.
친일파 박춘금 일당이 하의도 소작쟁의를 원천봉쇄하고 있을 때, 하의도로 숨어들어가 노동쟁의단체를 결성하고 하의도를 불하받은 일본 기업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잡혀서 일본으로 추방당한 사람입니다.
자이체프
14/01/20 15:50
수정 아이콘
목미씨라고 나온 걸로 봐서는 아시히 겐즈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한 소송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직후의 일입니다. 섬사람들이 승소했지만 원 소유주가 판결이 나기 직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는 바람에 일이 원점으로 돌아가버렸죠. 그리고 박춘금은 정말 말이 나오지 않는 인물이죠. 이런 놈이 일본으로 가서 제명에 살다 죽었다는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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