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뻘글이라 평어체로 작성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그리고 뻘글이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되었습니다.
0.
살다보면 불행끼리 서로 경쟁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불행이라고 하기까진 뭣하지만, 최근 좋지 않은 일이 계속 겹치는걸 보면 나를 얼마나 괴롭힐 수 있을지 나의 불운들끼리 요즘 한창 경쟁중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에 자게에 글을 올렸다가 문제 혹은 논란이 되었던 친구의 결혼식도 그 불운중의 하나였다. 당시에는 슬픈 마음에 술을 진탕 마시고 쓴 글이라 누군가에겐 불편함을 줄만한 글이라는것도, 누군가에게는 잘못된 편견을 심어줄만한 글이라는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이 반, 나머지 절반은 이 세계에서 누군가가 겪는 불행을 한 사람에게라도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었나 싶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주면 사회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거야-라는 거창한 생각까지는 못했지만 그냥 알리고 싶었나보다, 내 친구가 불운한 가해자라는게 까발려지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어쨌든, 오늘도 이어서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버티는’ 조금 특별한 대한민국의 노처녀 이야기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
참, 오늘은 술도 안 마셨고 위안 받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크크.
1.
고모부의 부고 소식을 들은건 오후 4시다. 덕분에-라고 말하면 못되어먹은 놈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덕분에 야근없이 정시 퇴근을 했다.
고모부께선 내가 어렸을때 나를 참 예뻐하셨고 내 아버지를 동생처럼 여기셨으며 남편을 일찍 보낸 내 어머니를 무척 안쓰러워하셨던 분이셨다. 정 많던 분이 이겨내시기엔 힘든 시간이었을까. 고모님께서 30년이 다 되어가는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신지 채 반년이 지나기도 전에 아주 편안히 고모님을 따라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해야 할지,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잠시 지방에 가 있느라 바로 올라올 수 없는 동생을 제외하고 어머니와 장례식장을 찾았다. 고모댁 언니, 오빠들과는 사실 서먹한 사이이기도 하고 거의 연속으로 상을 당한 이들에게 뭐라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어서 그저 묵묵히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태의연한 위로 따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고모댁 남매는 총 넷이다. 큰언니, 둘째언니, 오빠, 막내언니. 큰언니와 둘째언니의 나이 터울만 3년 차이고 나머지는 모두 연년생이다.
올해로 사십 일곱인 큰언니는 시집을 못 갔다. 큰언니는 삼십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고모님 병수발 하랴, 고모부 모시랴, 동생들 뒷바라지하랴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채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그 시간동안 큰언니의 삶에 언니 자신은 없었던 셈이다. 그 희생 덕에 둘째언니, 오빠, 셋째언니는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도 가졌고 결혼해 가정도 있다. 고모부께서 돌아가심으로써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사람은 큰언니 뿐이다.
자연히 친지들의 화젯거리는 큰언니의 여생이었다. 내일 모레면 쉰이 되는 나이에 뭔갈 제대로 배워본적도, 일해본 경험이나 사회생활 경험도, 연애경험도 없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언니가 살아야 할 남은 삶을 모두들 안쓰러워했다. 넉넉하진 않아도 고모부의 유산이면 큰언니가 먹고 살 걱정은 크지 않겠지만, 모두가 걱정하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외로움이었다. 그 나이까지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심지어 연애 한번 못하고 살아온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남자를 찾는건 아마도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 저마다 가정 없이 혼자서 보내야 할 큰언니의 쓸쓸한 말로를 걱정하는 가운데서 나는 그들의 말에 공감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그들처럼 큰언니를 가여워 할 수도 없었다.
고모님이 돌아가셨을 땐 세상이 끝난것처럼 울던 큰언니는, 이번엔 울지도 않고 신기할정도로 초연했다. 무표정하게 앉아 영정앞을 지키던 언니가, 멍청하게 앉아 저마다 떠드는 말을 듣고있던 나를 불렀다.
"요즘도 술 안 마시니?"
"특별한 일 없으면 안마시고 싶어. 이제 몸이 힘들더라구."
"그럼 커피라도 마실래?"
병원 본관의 커피집에서 커피를 사서 장례식장 건물 밖 벤치에 앉았다. 아직 밤은 추웠다.
"언니가 커피를 마셨던가?"
"마시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어."
차마 왜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잠을 자기가 싫더라구."
그 마음을 내가 왜 모르랴. 그 말을 들으니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십년전 이맘때 언니는 장례식장에서 내게 뭐라고 했었더라?
"무슨 말이든 해봐. 왜 아무 말도 안해?"
"뭐라고 하겠어. 나 원래 위로하는거 잘 못해. 이런 상황에서 위로같은게 별로 도움 안된다는걸 알기도 하고."
언니는 힘없이 웃었다.
"너도 내가 불쌍해?"
"뭔 소리야, 언니가 왜?"
"난 이제 혼자잖아, 죽을때까지."
그래, 사람들이 아무리 뒤에서 작게 속닥였대도 다 들렸겠지.
"언니가 칠십 넷도 아니고 마흔 일곱인데 왜 벌써부터 평생 혼자 살 생각을 해? 언니 인생 내일 모레 끝나?"
"누가 나랑 결혼하겠니?"
"왜? 언니가 어때서?"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나도 언니의 결혼이 쉬울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괜찮아, 어차피 각오하고 있었어."
그 초연한 얼굴이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아주 조금 마음이 저렸다.
"... 언제부터?"
"음... 한 서른쯤부터?"
나도 그랬어,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너도 이제는 결혼 해야지. 더 늦으면 이제 정말 못한다?"
"알아."
"더 미루지 말고 얼른 해. 안그럼 나처럼 된다."
"언니처럼 되면 효녀 소리나 듣지. 언니랑 비교하기엔 내 인생이 좀 부끄러운데."
"뭐가?"
"언니는 언니 희생해서 가족을 지탱한 거지만, 난 내가 희생하기 싫어서 결혼을 안 하는거니까."
언니는 살짝 웃었다.
"예전부터 언니가 존경스럽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그래."
"존경스러울 것도, 불쌍할 것도 없어. 내가 선택한 거니까."
언니는 커피를 벌써 다 마셨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카페라떼는 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래도, 너는 결혼 했으면 좋겠다."
언니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고 있는걸까.
2.
집에 돌아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나도 어머니도 상가집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음료만 잔뜩 마시고 온 터였다.
"A(큰언니) 걔 좀 안됐더라. 고모 돌아가신 뒤로는 잠도 잘 못잔대."
"뭐... 그렇지 뭐. 우리도 아부지 돌아가신 한동안 못 잤잖아."
"그나마 고모부 계셔서 버틴것 같던데, 이제 진짜 혼자잖아. 평생 외로워서 어떡한대니?"
"........ 그게 엄마 딸 미랜데 뭐."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이런 말을 싫어하신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문득 한번씩 이렇게 심술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왜일까? 언니의 그 외로운 얼굴에서 내 미래를 보고 와서일까? 그 미래가 너무 두렵고 억울해서?
"................. 그래서 내가 마음이 너무 불편해."
"뭘 불편해. 엄마가 나더러 혼자 살라며."
"말은 바로 하자. 내가 언제 혼자 살랬어? 남자랑 결혼해서 정상적으로 살라고 했지."
커밍아웃한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성적 지향에 있어서만큼은 비정상인 딸이다. 딸을 사랑해 마지않는 어머니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딸이 고치기 '힘든'―'없는'이 아니라―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으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안된다니까."
"그래, 그러니까 싫은거 안 시킨다구. 대신 너도 내가 싫어하는거 하지 말라구. 서로 양보하자는 거잖아."
"그래, 그래서 엄마 딸은 여자랑 안 살고 평생 혼자 외롭게 살다가 늙어 죽겠다는 거지 뭐."
그냥 내가 여자랑 만나는게 너무 싫다, 징그럽다 하는 말에는 별로 화가 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꼭 정상이네 비정상이네 하는 얘기가 나오면 그렇게도 화가 치민다. 그래서 늘 이성을 잃고 어머니께 상처주는 말을 한다. 분명 돌아서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늘 이런 식이다.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다. 내가 죽어야만 끝나는 문제다.
"...... 나도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야."
"알아. 내 말은, 엄마 딸도 저렇게 살거니까 A언니 너무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A처럼 불쌍하게 너 혼자 두고 가고 싶지가 않아. 엄마 마음 편하게 죽을 수 있게 좀 정상적으로 살아주면 안돼?"
'정상'이란 단어를 '평범'이란 단어로 바꿔서 말해달라고 그렇게 오랫동안 부탁했지만, 어머니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한은 힘드신가보다. 포기해야지,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화가 나는건 어쩔 수가 없다.
"엄마, 난 엄마를 위해 한창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나이에 그걸 포기하고 살고 있어.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 나는 계속 지금처럼 외로울거야. 그래도 참을 수 있어. 근데 내가 참을 수 있는건 딱 거기까지야."
다 포기해도, 내가 나일 권리 만큼은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그게 싫어서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커밍아웃을 했는데, 이제와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어머니께는 내 존재 자체가 상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어머니께 상처를 주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셈이다. 오늘처럼.
내가 이렇게 태어난게 내 죄도 아니지만 어머니 죄도 아닌데, 어머니께 회복 불가능의 상처를 냈으니 그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은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마찬가지로 이렇게 태어난 게 내 죄가 아닌데 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용인해주는 것도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설득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사실, 어머니는 내게 설득당한 게 아니라 내게 포기를 강요받아 반쯤 포기하신 셈이다. 아직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셨다는 게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서 때때로 이렇게 내게 씨알도 안 먹히는 주문을 하시는 거겠지.
누구와 얘기하건 간에 역시나 결혼 얘기의 끝은 좋지 않다.
3.
이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버티기 위해서 내가 들었던 "이젠 너도 결혼 해야지."라는 강요는 몇번이나 될까. "넌 왜 아직도 결혼 안 하니?"라는 물음에 나는 몇번쯤 답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강요를 듣고 더 많은 답을 해야 할까.
십년 뒤에는 나도 A언니처럼 친지들의 동정을 받고 있을까? 이제 결혼할 시기를 놓쳐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는 불쌍한 애라고?
오늘도 장례식장에서 내게 "결혼은 대체 언제 하려고 그래?" 하고 물어오는 이들에게 "전 혼자가 좋아요." 하고 대답하면서, 실은 곧 내 미래가 될 A언니의 외로운 얼굴을 보며 두렵고 무서워 떨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겠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남들처럼 연애하며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고, 그렇게 감정을 꾹꾹 눌러서 가슴속 한 귀퉁이에 파묻어 버리는 것에 익숙한 척 살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사느라 모든 진을 다 빼버려서 이렇듯 문득 마주치는 내 미래의 자화상을 보고 있노라면 두려워 미칠 것 같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젊어서도 늘 외로웠는데 노년엔 얼마나 외로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고, 평생을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으면 그 숨의 끝자락이 얼마나 비참할지 벌써부터 무섭다고, 그 결혼이라는 거 나도 하고싶지 않아서 안 하는게 아니라 다만 내 결혼을 사회에서 인정해 주지 않을 뿐인데 나는 억울하다고, 뭐 그런 것들을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까지는 "결혼 언제 해?" 소리가 듣기 싫을 뿐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너 그러다가 평생 결혼 못하고 늙으면 어쩌려고 그래?" 하는 소리가 너무 무섭다. 그렇게 겁주지 않아도 실은 외로움이 문득문득 사무치는 어떤 날 밤에, 혼자 끝없이 상상하며 걱정하고 두려워한다고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날 밤이면, 그 긴 밤이 수없이 남은 내 인생이 너무 막막하니 당신들까지 겁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나는 충분히 무섭다.
내가 선택한 삶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두려움을 떨치고 내일을 버틸 각오를 한다. 십년 뒤의 내가 오늘 A언니의 모습처럼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고 싶다.
그래도 두려움은 어찌할 수가 없다.
0.
누군가에게는 그저 안부 인사로 건네는 말이겠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진심어린 충고겠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가벼운 오지랖이겠지만, 그 말이 어떤 이에게는 가급적이면 잊은채 살고 싶은 두려움을 깨우는 열쇠라는 것을,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원치 않는 이와 살을 맞대고 맞아야 하는 밤보다, 혼자 끝모를 외로움을 세는 밤이 그래도 더 나을 거라는 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셀 수 없이 많이 남은 혼자만의 밤이 가져오는 두려움을 버틴다. 얼마나 많이 남았을지, 얼마나 더 무서워질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셈해보면서.
그래, 내가 선택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