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은 무협지다. 폴 크루그먼은 60년대 이후 90년대 초까지 거시경제학의 흐름과 발전을 두 주요한 학파의 대립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그 정통학파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사파들이 어떻게 미국정부를 장악하고 혼란스럽게 했는지 보여준다.
태초에 대공황이라는 괴물이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홀연히 나타난 케인즈가 이르되 거시경제학이 있으라 하였다. 케인즈학파는 유효수요신공이라는 새로운 초식으로 괴물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케인즈학파가 무림을 장악하고 있을 때 밀턴프리드먼이 나타나 반격을 시작했다. 프리드먼을 위시한 시카고학파는 적절한 시점에서 사용되는 유효수요신공의 유용성은 인정했지만 언제 그 신공을 쓸 수 있는지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신공을 쓰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시카고학파의 로버트루카스는 합리적 기대가설 초식을 접목해서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유효수용정책의 무용함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 보수주의학파들이 어떤 즉각적이고 간단한 정책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학자였기 때문에 실제경제로의 적용에는 조심스러웠다.
80년대에 이 우아하고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시카고학파의 보수주의 경제학은 아주 이상한 사생아를 낳게 되었다. 바로 아서 래퍼의 래퍼곡선으로 잘 대변되는 공급중시론자들이다. 공급중시론자들은 복잡하고 미묘해서, 그래서 주의깊은 집중력과 이해력을 요하는 보수주의 경제학의 사상을, 세금을 낮추면 경제성장이 가속화될것이라는 아주 쉽고 단순한 정책처방으로 바꾸어놓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바로 수요가 공급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부심하던 공화당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간명하고 선명한 정책슬로건이 필요했고 공급중시론자들의 주장이 그들의 입맛에 맞았다. 크루그먼의 책은 이 공급중시론자들의 주장이 왜 헛된 것인지 조목조목 설명하는데 책의 반을 할애한다.
케인즈경제학은 시카고학파로부터 받은 타격에 너무도 큰 상처를 입어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케인즈는 죽었다'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하지만 케인즈는 다시 관뚜껑을 열고 살아돌아왔으니 앨런 애커로프, 맨큐 등의 신케인즈주의자들이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을 밝히고 케인즈의 정책을 다시 논리적으로 규명해내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신케인즈주의자들의 사상도 간단하고 보기쉬운 정책처방으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를 공급중시론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해낸 자들은 바로 클린턴행정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략적 무역론자들이다. 크루그먼은 마찬가지로 이들 전략적 무역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폴 크루그먼의 주장이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그가 공급중시론자들이나 전략적무역론자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데에 있다. 그는 자신이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편린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이들 정책처방이 미국경제에 해를 끼치긴 했지만, 그 해끼침의 정도는 비판자들이 말하듯이 그리 막대한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의 그의 비판이 더 뼈아프고 깊게 느껴질 것이다. 오히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무식한 단순화와 도그마가 되어버린 사상이, 경제학사상이 이루고 있는 빛나는 지적 성취를 가리고 진지하면서도 사려깊은 경제학자들을 점점 더 상아탑속으로 후퇴시키는 것이다.
요즘 베스트셀러 상위순위를 차지하는 경제서적들중 대개는 자극적이고 비관적이다. <세계가 일본된다>라든지, <2018년, 인구절벽이 온다>, 혹은 2008년에 발간된 책이지만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등이 그것이다. <경제학의향연>은 지적인 탁월함이 갖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해본다. 그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날아와 목을 죌 수도 있는 말이지만, 크루그먼은 순순히 경제통계는 어떤 시점을 어떤 방법으로 잘라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입맛에 맞게 결과를 산출해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꼭 경제학을 부정해야한다는 결론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당파적인 입장을 떠나 한걸음 뒤에서 바라볼때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사실에 다가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만한다. 자극적인 주장이나 선언은 언제나 사람들의 공포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잘 팔리것이다. 이런 나팔을 부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현실이 그러한가? 우리가 매일 느끼듯이 세계는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고, 진리는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의 영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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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쉴러 교수의 <야성적 충동>으로 경제학을 읽기 시작해서해서 맨큐의 경제학으로 바닥을 다지다가 폴 크루그먼 저서를 보니 눈이 확 트이는 느낌이더군요. 진짜 쉽고 편하게 잘 서술해준 책이 크루구먼의 책에 많이 있습니다. <불황의 경제학><미래를 말하다> 두개의 저서만 해도 정말 쉽게쉽게 설명해 주더군요.
2008년이었나요? 맨큐하고 예전에 블로그 논쟁(이라 적고 키보드 배틀이라 읽습니다 크크크크)한걸 보니, 확실히 이 사람은 경제학을 '현재 사회현상의 설명방법 중 하나'로 보는 느낌이 강하더군요. 보통 경제학자들은 경제논점에서 허우적 대기 마련인데, 좀더 큰 사회적 기반의 틀에서 다른 현상을 보는 '안경'같은 도구의 하나로 경제학을 보는 방법이 신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