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정집, 거실 안에서 신부님과 수녀님이 기도를 올립니다. 기도가 다 끝나자 방으로 올라간 영재는 조심스레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챙겨 신부님과 수녀님께 드리며 정성만이라도 어떻게든 표를 내려고 애를 씁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신부님이 이름을 묻자 영재는 냉큼 자신의 세례명인 요한이라 답하고, 자신을 돌봐주는 원장 어머니 역시도 맞장구를 쳐줍니다. 신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수줍게 드러내며 영재는 한껏 고개 숙여 집을 나서는 신부님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싹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영재에게 있습니다. 영재는 천주교가 후원하는 일종의 보호시설에 얹혀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재의 불우한 현실을 보며 우리가 쉽사리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핍박 받는 청소년기의 설움, 아직 예민할 시기의 소년을 둘러싼 현실적 문제들, 이런 것들이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쌓이고 쌓여 영재의 삶에서 어떤 분기점을 던져주고, 그 갈림길 앞에서 영재는 타락하거나 혹은 거듭나거나 하는 식의 성장영화 스토리 같은 것 말이죠. 클라이맥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영화는 그런 식으로 영재를 더 깊은 수심으로 끌고 들어가지도, 또 물에서 건져주지도 않습니다. 영화 끝까지 영재는 내내 허우적댈 뿐이고 딱히 그를 둘러싼 수렁을 헤쳐나올 만큼 굳세게 자라지도 않습니다. 이미 영재는 영악하게 자라있습니다. 영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보금자리와 적당한 수준의 삶 뿐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자 나이에 걸맞지 않은 거인이 아직 덜 여문 육체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비인간성 때문에 영재가 이렇게 옹색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영재는 어린 아이들을 자식처럼 키우는 보호시설의 원장 부부의 지원 아래에서 학교를 다니고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신부가 되기를 꿈꾸는 영재에게 영적으로 도움을 주는 신부님도 있지요. 문제는 영재를 돕는 사람들이 완벽한 천사가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적당히 베풀고, 어느 정도는 무관심하며 어쩔 때는 권위적이고 무례합니다. 영재가 쩔쩔매고, 처량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약간은 미심쩍기도 하거든요. 그냥 딱 보통 사람인 겁니다. 원장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영재에게 걸레질을 시키고, 담임 선생님은 신학대를 꿈꾸는 영재에게 빨리 취직할 것을 은근히 종용합니다. 그들의 마음씀씀이가 머무는 곳은 현실이어서 가끔씩은 베풀 수 있는 선의가 바닥이 날 때도 있습니다. 자기네가 이렇게 돕고, 영재를 위해주는데 가끔씩은 좀 신경질도 부리고 윗사람으로서 마음 내키는 대로 말도 할 수 있고 하는거죠. 더욱이, 영재 역시도 투정부릴 수만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후원물품으로 들어오는 신발을 빼돌려 팔아치우는 영재가 어떻게 순수하고 따뜻한 보살핌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현실이라는 건 나이를 먹는다고, 돈을 번다고, 가족을 꾸린다고 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별 고민 없이 성적과 게임과 여자친구에 치여 살 나이의 영재에게는 삶의 짓누름이란 훨씬 더 무거울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영재는 어디에서나 눈치를 봅니다. 혹시 내가 원장님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진 않을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사근사근하게 굴면 신부님이 나에게 뭔가 길을 터주지 않을까. 힘든 삶 때문에 삐뚤어져버린 불량 청소년이 되는 아이도 많습니다만 영재는 그렇게 엇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거야말로 철 없는 얘들이 멋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라는 걸 영재는 알고 있으니까요.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정도로 치면 영재는 이미 충분히 성숙한 사람입니다. 다만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혼자 다 떠안은 탓에 밝고 당당하게 자랄 기회를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빛을 볼 틈도 없이 쑥쑥 자라야만 했던 영재에게 왜 그렇게 콩나물처럼 힘없고 늘어졌냐고 꾸짖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남들 다 받는 용돈이 아쉬워서 영재는 비겁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착해진다는 것, 그런 건 사치일 뿐입니다.
영재가 따스함 대신 세상의 야박함을 먼저 배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곁에 부모가 함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재네 아버지는 딱히 일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 후원으로 나오는 장학금을 영재와 그 동생 앞으로 타내려 하는 일종의 사기꾼이죠. 자신이 거짓말을 돕고, 또 그 거짓말에 팔려간다는 사실이 영재는 창피하고 분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미워하죠. 영재의 어머니 또한 영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허리를 다쳐 언니 집에서 쉬고 있는 영재의 어머니는 미안해하면서도 영재 형제를 거두지는 못합니다. 영재의 부모님은 무능하고 무책임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슨 인간쓰레기 정도의 거창한 악인은 아닙니다. 게으르고, 염치가 없고, 적극적이지도 의지를 가지지도 못했을 뿐이죠. 영재는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배우지 못한채 수치와 증오를 먼저 익힙니다. 영재는 엄마 아빠가 밉고 한심해요. 그래서 제 몸을 스스로 간수하려 그렇게 아둥바둥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재가 혼자 살아 나가는 법을 배운 건 누군가를 닮고 싶지 않아서, 또 그네들과 함께 살며 조금의 신세라도 지기 싫어서입니다.
영재를 둘러싼 상황은 점점 더 절박해져 갑니다. 영재가 살고 있는 보호시설의 원장님 내외는 절도 사건을 영재의 룸메이트 범태의 짓으로 오해하고 영재 또래의 고등학생들을 책임지는 것에 회의를 내비치며 영재를 불안하게 합니다. 잠깐 집에 들렸던 영재에게 아버지는 자꾸 동생마저 같은 보호시설에 맡기면 안되냐고 영재에게 도움을 부탁합니다. 판 신발이 마음에 안든다며 같은 반 아이는 영재에게 반협박으로 환불을 요구합니다. 평소처럼 신발을 빼돌리다가 이를 쫓겨난 범태에게 들킨 후 영재는 범태를 다시 받아주라고 원장님 내외에게 부탁해야 합니다. 의지를 하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많은 사람들은 영재에게 기대고, 그를 이용하려 합니다.쫓겨나기 싫어서, 정말 갈 곳이 없어서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미운 털이 안 박히려고 영재는 열심히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영재가 잘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영재의 필사적인 노력에 경멸을 보태죠.
기적 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생존이란 타인의 희생과 직결됩니다. 범태가 자동차 절도를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눈치 챈 후 영재는 현장에서 그가 체포되도록 몰래 신고를 합니다. 그렇게 친구를 팔아넘기고 자기 자리를 간신히 지켜도 원장님 내외는 영재에게 여전히 나가라고 눈치를 줍니다. 그래서 영재는 더욱 더 절박해집니다. 없는 돈에 장갑을 선물하며 영재는 과외 선생님에게 부탁합니다. 자신의 성적이 충분히 안정권인 것처럼 원장님께 말씀드리고 숙식이 제공되는 기숙 학교로 자신이 옮길 수 있게끔 도와달라고요. 굳은 표정으로 선생님은 말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말고 말 하는 대로 정말 열심히 살았으면 한다고. 한 곳에서는 자신에게 거짓을 요구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모든 유혹을 뿌리칠만큼의 강직함을 바라죠. 치사한 사람과 올곧은 사람 모두가 영재의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영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로 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댈 누군가를 찾아 헤맵니다.
끝내 영재네 아버지가 영재의 동생을 위탁하러 찾아오고, 영재는 아버지를 말리려고 애를 쓰다가 수치심에 못이겨 자해를 합니다. 술 먹고 한 밤중에 찾아왔을 때도 창피를 무릅쓰며 아버지를 달래 쫓아냈는데, 이제 동생까지 데리고 온 아버지를 더 이상 어찌할 길이 없어 갈갈이 날뛰다가 과도로 자신의 팔을 긋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흥분이 격해져 자신의 상처를 봐주려는 과외 선생님을 인질로 잡는 추태를 보이다가 영재는 쌍욕을 얻어먹은 뒤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깨닫습니다. 그리고 다시 원장 아버지에게 울며불며 매달립니다. 더 열심히, 더 착하게 살겠으니 제발 자기를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울지만, 결국 영재는 다른 시설로 옮겨가게 되지요. 그리고 영재는 차가운 위로를 듣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만 안하면 된다고. 세상이 베푸는 것은 불행 속에서도 상대우위를 느끼며 자기 연민을 멈추라는 냉혹한 충고 뿐이죠.
그렇게 떠나가는 와중에도 영재는 동생에게 들려 자신이 입던 옷이며 신발을 몽땅 건네줍니다. 뒤돌아 한발자국 걸을 때마다 새어 나오는 흐느낌을 앙 다문 입 속에 가둔 채 다른 먼 위탁 시설로 가는 차에 몸을 싣습니다. 그렇게 도움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남의 도움을 얻는 게 싫어서, 그래도 하나 있는 동생에게는 좀 의젓하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서러움 섞인 허세를 마음껏 부리고 창밖을 내다보는 영재를 달래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서러운 사춘기를 그렇게 파렴치한과 무관심한 타인들 틈바구니에서 보내는 영재가 덜 다쳤으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이런 아들내미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배고플 때면 아무 고민 없이 우리 가게로 와, 따뜻한 밥은 언제고 넉넉히 먹여줄테니” 하는 넉살을 차마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없던 아이의 고통이 과연 어른이 된다고 해서 끝날까요. 청춘이란 타이틀이 영재의 지독한 투쟁을 웃을 수 있는 과거로 덮어줄까요. 가난이 한 소년의 예민함을 어떻게 꺽고 생채기를 내는지, 이를 견디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자존심을 구부려뜨리는 법을 배운 소년의 삶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커다란 사람, 거인입니다.
@예고편 정말 이상합니다. 영화는 지극히 건조한데 예고편은 무슨 휴먼 드라마처럼 그려놨더군요.. 누군가는 다르덴 형제를 말하기도 하던데, 저는 레아 세이두 주연의 시스터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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