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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1/14 01:05:13
Name 덱스터모건
Subject [일반] 네고 좀 그만하자. 응?
A 과장을 세 시에 만나기로 하고 접견실에서 기다릴 때만 해도 덱스터는 그가 잠시 후에 겪을 곤란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요즘 B 회사와 일이 늘어나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곧 있을 회의에 관해 부담을
느끼지도 않았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그는 영업사원이다. 그가 담당하는 회사 중 가장 큰 회사 2곳은 그가 일하는 업종에서
가장 큰 2개의 회사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인 B 회사에서 곧 출시되는 신기종에 그의 회사 제품이 들어가게 되었고 개발팀과
협의를 끝낸 지 2주 만에 구매팀과 미팅이 잡혔다.

"그 가격에는 절대 못삽니다." A 과장은 눈을 치켜뜨며 단호히 말했다. B 회사 쪽 담당자가 바뀌어 대면 미팅은 처음이다.

덱스터는 아차 싶었다. 이 회사 구매팀은 개발팀이나 영업팀과 사전에 가격협의가 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개발팀에 견적을 줄 때도 그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구매 쪽 하고 네고 감안해서 드릴까요? 아니면 견적가하고 최종가 따로 드릴까요?"

덱스터는 이런 말을 할 때 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깎을 걸 감안하고 가격을 줘야 한다니..'

어쨌든 개발팀 말만 믿고 최종가로 견적을 제출한 게 화근이다.

"쭉 보니까 지난번에 000원에 계약하신 게 너무 많이 받으셨네요. 이번거 XXX원에 견적 주시면 바로 살게요"

'헐..많이 받어? 응? 많이 받어→어↗어↑??'

A과장이 다니는 B회사는 덱스터에게 가장 큰 고객이다. 이번에도 그가 낼 수 있는 최선의 가격을 냈다.
많이 받았다는 000원은 그 회사와 계약된 라인업 중 마진율이 제일 낮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 낮은 마진율을
기준으로 가격을 냈다. 이번 건만 잘 마무리되면 올해 B회사 상대 매출 목표 달성은 떼 놓은 당상이다.

그런데 많이 받는단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기고 원가는 얼마 안 할텐데 너무 정성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간
가격이라고 혼자 평론질하고 있다.
아...쏘나타 깡통은 2천만 원인데 별 차이 없는 풀옵션은 왜 3천이냐고 2천2백 만 받으라고 할 기세네...

'무조건 깎는다' 구매팀에서 일해본 경험은 없지만 덱스터가 생각하는 구매팀 직원들의 팀훈? 이다.

기본적으로는 '이게 최저가에요' 라는 말을 못 믿는다. 상대방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깎아달라고 하면 깎아주니까.
공급자가 손해를 보건 혹은 부풀린 이익이 줄건. 그가 알 방법은 없다. 그래서 더욱 깎는데 매진한다.
방망이 깎던 노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 깎는다.

높게 부르고 네고 해주는건 소용이 없다. 그들은 상대방이 제시하는 가격을 인정하지 않고
구매자 입장에서 가격을 정한다. 중고나라 왕족 출신인가 보다.

그게 그들의 일이다. 때로는 안쓰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A과장이 그가격에 못산다고 할때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물드는 것을 보며 덱스터는 생각했다.

'갑질이 아니고.. 너는 그냥 갑이구나. 갑.'

미팅을 마치고 나온 덱스터는 스마트폰 주소록을 뒤적였다.
이번에 계약하는 그 기종을 구매키로 계약한 업체 담당자 전화번호가 화면에 떠올랐다.
덱스터네 제품을 애용하는 업체다.

'요번에 B하고 계약하신거에 저희꺼 넣으셨잖아요~ 여기서 못사겠다는 데요?'

이 말을 되뇌이며 폰을 만지작 거린다.

갑과 슈퍼갑이 싸우는걸 보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이 움찔 움찔 한다.

----------
본 내용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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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캐리어
15/01/14 01:14
수정 아이콘
사려는 사람은 어떻게는 깎고 후드려치는거고, 팔려는 사람은 어떻게든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하는게 영업이고 구매니까요...

적정선에서 서로 맞아떨어지면 좋은데, 그게 안되면 죽어나는건 개발팀이죠.. 크크.

뭐 꼭 들어가야하는 제품이라면 처음부터 견적받을때 구매팀 성격 파악해서 '네고'감안해서 보내달라고 이야기 해야겠죠..그리고 바가지 안쓰게 구매팀에 시장가, 원가, 구매희망가 귀뜸해주고...
덱스터모건
15/01/14 01:25
수정 아이콘
근데 이게.. 간단히 표현하면.. 쏘나타 깡통을 이미 납품하고 있는 상황에 쏘나타 풀옵 견적을 냈더니 led 램프는 얼마쯤..휠 커진건 얼마쯤.. 일테니까. 깡통에다가 200만원만 더받으시면 되겠네요... 하는 상황이라서요...
최종병기캐리어
15/01/14 01:32
수정 아이콘
1. 구매팀은 '제품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무하니 가장 간단하게 단중이나 수량을 베이스로 가격을 비교할 수 밖에 없죠.
2. 알면서도 더 많이 후려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일수도 있구요.

구매-영업은 방패와 창이다보니...

그걸 잘 뚫는 사람이 영업을 잘하는거고, 가격을 잘 방어하는 사람이 훌륭한 구매자니까요...

그리고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견적낼때 깡통 2천만원 + LED 50만원 + ...... + 마진 200만원 = 총계 3000만원
이렇게 견적 가져오라고 시키는데 저는... 거기에 비교견적까지 받아서 구매팀에 넘기거든요. 뭐.. 저야 개발팀 입장이다보니 일편하게 하려면 제가 원하는 단가에 네고 생각해서 5%면 5%, 10%로 10% 엎어서 견적 가져오라고 이야기하고 그거 쭉 풀어서 가져와라... 뭉뜽그려서 가져오면 칼질 당하니까 다 풀어서 되도록이면 복잡하게해서 구매팀에서 '개발팀'에 연락오게 해서 가격검증 부탁하게끔 해라... 이렇게 이야기 하죠...흐흐.. 그러면 저야 빨리 진행해야하니까 제가 계획한 원가에 맞게 구매단가 결정하게끔 구매팀이랑 사바사바하고.... 뭐 그런거죠
덱스터모건
15/01/14 01:41
수정 아이콘
그건 그렇죠. 그게 서로가 맡은 일이니까요. 근데 본사 직원들 얘기 들어보면 우리나라가 좀 심한거 같아서요.
비상식적이라는 생각 까지는 안하지만 지나치게 소모적이다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최종병기캐리어
15/01/14 01:45
수정 아이콘
구매팀은 '개인실적'이 '구매액'이 아니라 '네고율'이라서 네고를 많이해야 자기 고과를 '잘' 받습니다. 영업팀이 '매출액'과 '이익률'이 고과인것처럼 말이죠...

내 고과를 위해서... 어쩔수없는거죠 뭐...
덱스터모건
15/01/14 01:50
수정 아이콘
그렇죠. 제가 말한 '소모적'인 협의가 많아질 수 록 담당자 고과는 올라가겠죠.
제 입장에서는 소모적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생산적인 시간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억지를 부리는 구매담당자들 보면 좀 안쓰러워요.
영업이지만 구매팀하고 만날 일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땡깡 수준의 대처를 보여주는 사람들 만나면
좀 속이 상하네요.
최종병기캐리어
15/01/14 01:55
수정 아이콘
흐흐흐... 영업직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야 개발/기획이니 뭐... 남 이야기처럼 이야기 하지만서도, 주변 영업하는 친구들 보면 그걸 뚫는 쾌감에 영업한다는 친구들도 있고 큰 계약 성사시키고나면 회식이니 뭐니하면서 자축하는거보면 부럽기도 하더군요.

개발/기획은 뭐... 맨날 보고서보고서보고서보고서... 이러니까요...
덱스터모건
15/01/14 02:02
수정 아이콘
의도하시진 않았겠지만 힘이 되는 댓글이네요. 말씀하신대로 성취는 상당하죠!!!! 그 재미로 하는거니까 크크...
김구라&신정환
15/01/14 04:11
수정 아이콘
슈퍼 갑社에서 그냥 갑社에 OEM 개발로 진행되는 건인 건가요?
어찌 개발팀과 구매팀간의 분쟁을 이리도 사실적으로 묘사하셨는지요.크크크
업종 막론하고 본문 사항들은 공통적으로 적용되나 보네요..
보통 고객사 구매팀에서는 자기네들 개발팀한테 단가를 절대 오픈하지 말라고 하는데 개발팀에서 계속 견적을 요청을 하는데
어찌 오픈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 같습니다ㅠㅠ
15/01/14 06:14
수정 아이콘
일 하다 보면 개발쪽 (현업) 에서 구매팀을 디펜스 할 일도 생기더라고요.

우리는 일 하려면 제발 그 물건(그 시스템)이 필요한데 구매팀에서 딴지 놓는 바람에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사다달라고 한게 아닌 가격맞춰서 영 다른 (스펙은 비슷해보이나 하나도 도움 안되는) 물건 사올 때도 있고.... 그러면서 막상 피부에 와닿는(?) 단가구매처 관리는 제대로 못해서 시장가보다 비싸게 사게 만들고 (이건 KPI 잡은 사람이 없는듯..).. 짜증이...
제정신인가.
15/01/14 10:12
수정 아이콘
접대를 받은 A과장은 예전 가격과 별 차이 없는 생색 내기용 네고를 받고 흔쾌히 계약을 진행한다....
첸 스톰스타우트
15/01/14 18:22
수정 아이콘
222
iAndroid
15/01/14 11:52
수정 아이콘
근본적으로는 구매팀의 한계요 잘못입니다.
면대면으로 상대방과 가격협상을 진행하려면 그만큼 기술적인 지식을 확보하고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구매팀 사람들은 그게 안되니까 제대로 된 협상이 안되는 거죠.
기술지식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구매팀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딱 두가지입니다.
개발팀에게 막후협상을 맡기고 자신은 그냥 행정적인 절차만 처리해 주는 현실순응형 정책을 취하거나, 아니면 본문처럼 괜한 자존심 내세워 양쪽 다 피곤하게 만드는 진상짓을 하는 거고 말이죠.
Galvatron
15/01/14 13:00
수정 아이콘
전 요새 형동생하던 구매책임자한테서 똑바로 해라, 가격 안내리면 아니면 다음분기부터 오더가 없어질걸 각오하던가 이런 위협을 듣는게 일상입니다. 슈퍼갑 지정으로 독점공급할때가 그립네요....
15/01/14 13:25
수정 아이콘
저도 예전에 구매팀에서 일해봤는데 제 입장에서는 얼마에 샀느냐가 아니라 처음으로 제시받은 원가에서 얼마를 네고했냐가 제 실적이 되는지라 그냥 처음 제시 받은 금액에서 적당히 네고해주면 그냥 계약해줬었네요
15/01/15 03:54
수정 아이콘
구매는 그게 일년 성과니까요.
보통 15프로정도 할거에요.
갑질이라기보다 자기 성과내는거죠.

이런건 사수가 잘 알려줘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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