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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11 16:14
유비의 황제 즉위를 명분없는 즉위로 비꼬았으면서도 촉한의 건국 후 공문서는 그가 전담하다시피 했고, 국호와 연호도 그가 만들었으나, 여러 사료 등을 살펴보면 그가 여전히 유비에게 충심으로 사관하였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쯤되면 도대체 왜 이렇게 유비를 싫어하는지 궁금할 정도인데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다. 한 마디로 미스테리한 인물. 라고 위키에 나와있네요 크크 유비 피해 조조에게 가고 조조가 형주쪽에 있으라고 하니깐 유비 내려오면 어떡함?싫음 했다고 크크
15/01/11 16:16
이릉대전 무렵인 222년(장무 2년)에 세상을 떠나 결국 죽음으로서 유비에게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1년 후 유비도 사망하여 저승으로 따라온다. 사스갓 유파 스토커 유비..
15/01/11 16:21
이엄도 엄밀히 말하면 형주파에 가깝죠. 유표 항복 이후에야 익주로 넘어갔고 유비에 항복했을 시기는 그 후 기껏해야 5년 이후니까요.
15/01/11 17:06
반대파 까지도 활용해야 할만큼 인재풀이 좁기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릉전투를 전후해서 보면 인재들이 상당수 죽지요 고명대신이 제갈량 이엄 조운 셋뿐이 안됩니다
15/01/11 18:30
인재풀이 적은것도 적은것이지만 사실 외지인이 들어온터라 여론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죠.
당시 중국이라 불렸던 부분은 사실상 조조가 차지했던 지역이고 익주, 형주, 양주는 미개발지가 많아 한족이 살던데가 적었거든요. 남중이나 교주는 말할 것도 없구요.
15/01/11 17:48
제도를 만든다기에 진군의 구품관인법인가 그게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걸 떠올렸는데... 세계사 시간에 분명 언급될 정도로 꽤나 임팩트있는 물건이긴 했는데 어지간히 막장이었다더군요?
근데 검색을 해 봐도 촉과에 대한 내용은 잘 안 나오네요... 역시 기록 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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