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가 올린 <피로사회> 독후감의 댓글에서 거론되기도 했고, 최근 한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주요하게 등장했던 책이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라는 책이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이 남아있더군요.
(밑에 첨가한 '없는게 메리트'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3년 전쯤 썼던 글인데, 지금보니 '정신승리'라는 생각이 드는 부끄러운 글입니다.
제가 큰 뜻(?)을 품고 시민 운동가로 살아간지 반년이 지난 지금,
서글픈 현실과 지치는 마음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같고요.
그래도, 누군가에겐
이 부끄러운 글이 참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남겨봅니다.
리뷰는 그저 그렇지만,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좋은 책이기에
추천해드리고 싶어서 올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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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 한윤형 외,『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열정에의 강요와, 열정이라는 새로운 착취 동력
저는 소문난 서태지빠입니다. 아니, 사실 그보다는 서태지빠라고 소문내고 다닌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네요. 아무튼, 그만큼 서태지는 제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만해도 저는 딱히 꿈이 없었습니다. 그저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억지로 공부를 할 따름이었지요.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서태지가 2000년 컴백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고1이었는데요. 그 때를 계기로 저는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서태지를 보면서 확신한 것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잘할 수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대체로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뒤로 놓치고 있던 것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사회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버티는 것이라는 점이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서태지는 너무나 운이 좋았던 한 경우에 불과한 것이었고, 꿈을 향해 달려가다가 부서진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무대 바닥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서태지의 음악을 통해 사회비판적 감수성을 갖게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실의 타계를 위해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었습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유예하라는『마시멜로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었지요. 그런데『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의 저자는 ‘마시멜로’가 기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폭로 합니다.
당신은 지금 마시멜로를 모으고 있는 중이라는 달콤한 위로,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면 언젠가는 얻을 수 있다는 조언, 그것들의 진짜 의미는 사실 ‘그러니까 혼자 알아서 하세요’라는 냉정한 외면이다.(184-185)
제가 자기계발서를 읽고 노력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부딪히는 한계에 직면했던 이유가 사실 여기에 있었습니다. 잠을 줄이고, 아침형 인간이 되고, 모든 시간을 생산적이게 사용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했지만, 닿을 듯 닿을 듯 하다가도 끊임없이 밀려나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룰 자체가 의자 빼앗기구나’ 하고. 서태지가 <교실이데아>에서 불렀던 그 지점,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 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그 지점의 중심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계발의 환각으로부터 벗어나니 잔인한 구조의 폭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그리고 노동 계급의 죽음.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윽박질러지고 강요된 것이었다. 사실 1990년대 말 한국의 기업들이 정리 해고를 요구했을 때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유지를 제안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의 노동자들보다 이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대박 아니면 쪽박’의 위험천만한 내기에 뛰어드는 이유는 위험을 회피할 방법이 없어서이다.(···) 1990년대 말부터 벌어진 파업들에 대해 법원이 한 일이 바로, 노동자들에게 ‘위험 회피’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었다. 법원에서는 “정리해고나 사업 조직의 통폐합, 공기업의 민영화 등 기업의 구조 조정의 실시 여부”에 반대하는 파업은 원칙적으로 경영권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노조가 자발적 임금 삭감 등의 양보 교섭을 통해 얻어낸 고용 안전 협약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무력화되었다. (208-209)
우리는 파편화되어 자기계발과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이러한 극단적 룰이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IMF 이후에 닥친 경제 위기 앞에 우리의 선배들은 그래도 연대를 통해 고통을 분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법은 국민을 밀쳐냈고 자본에 손을 들어 줬습니다. 이후 우리는 극단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속에 조인(join)하게 되었습니다. 게임의 룰에 우리는 아무런 개입을 하지 못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러한 구조를 외면한 채 열심히 게임에 참여함으로써 "가진 자들이 더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정당화" 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게임의 이름이 바로 신자유주의입니다.
하비가 탁월하게 분석하고 있듯이, 신자유주의는 케인스주의식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고 성장을 이루었다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오로지 부자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만 성공한 체제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의 전 지구화 이후에 서계경제의 성장률은 오히려 하락하였고, 다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 사이의 차이만 엄청나게 벌어졌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는 못 가진 쪽에서 가진 쪽으로 소득을 이전하는 프로그램이다.1)
엄기호는 바로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가르침이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이며, 우리가 옆의 동료들과 함께 더불어가기보단 자기계발과 스펙쌓기에 몰두하는 이유가 신자유주의의 철학을 내면화했기 때문임을 지적합니다. 그것이 가진 자에게 더 많은 부를 주기 위한 시스템인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펙쌓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 룰은 도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자기계발을 그만두고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이 룰을 거부하고 함께 사회적 행동을 한다면 세상은 빠르게 바뀔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혼자 세상을 바꿔보려고 뛰어든다면 오히려 상처받고 쓰러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그저 이렇게만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계발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심을 놓치지 말자고. 그리고 때로는 함께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행동도 해보자고.”
우리는 지금의 현실이 처참하지만 그럼에도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그 대안없음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많은 학자들이 이미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 신자유주의 즉,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룰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가는 것을 철학으로 삼는 국가가 더 나은 지표를 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증자료도 많이 있습니다.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가장 탄탄하게 버텨낸 국가가 바로 가장 복지가 잘 구축된-즉, 경쟁이 아닌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철학을 포기하지 않은 북유럽 국가라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경제학자 장하준은 “복지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복지가 덜 되었던 것(철저하게 운영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꿈이, 열정이 어떻게 자발적 착취의 동력이 되고 있는지를『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가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이유로 쉽게 착취당하고 당연하게 버려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꿈조차도 자발적 착취의 동력으로 만들어 버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리고 다른 세상을 꿈꾸고 그것에 이르기 위해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를 냉소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그래도 가장 쉽게 그리고 가시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도구가 또 정치입니다. 제가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인기 없는 정의당을 지지하는 이유도, 꼭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들이 우리 정치장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치를 냉소하면 할수록,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찔러야 하는 당위는 강화될 뿐입니다.
'이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럼 어떻게 해볼까'라는 지점에서 고민하고 움직여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서태지도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죠.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기만 바라고만 있을까?”(<교실이데아> 중)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손발을 거칠게 움직이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따뜻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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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기호,『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낮은 산, 2009. 3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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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게 메리트> vs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요즘 즐겨 듣는 음반 중 하나가 옥상달빛의 데뷔 앨범입니다. 특히 타이틀 곡인 <없는게 메리트>를 무척 좋아하지요. 옥상달빛은 이 곡에서 "없는게 메리트라네/ 있는게 젊음이라네/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꺼야"라고 노래합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나의 젊음이 찬란해"라고 하면서 용기를 냅니다.
한편,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틀어막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라고.
저는 이 사이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자신을 봅니다. 사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요.
같이 한 번 들어봐요. 옥상달빛의 <없는게 메리트>
* 가사
없는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게 젊음이라네 난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꺼야
나는 가진게 없어 손해 볼게 없다네 난
정말 괜찮아요 그리 슬프지 않아요
주머니 속에 용기를 꺼내보고
오늘도 웃는다
그래, 없는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게 젊음이라네 난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꺼야
어제 밤도 생각해봤어
어쩌면 나는 벌써 겁내는거라고
오늘은 나, 눈물을 참고 힘을 내야지
포기하기엔 아직은 나의 젊음이 찬란해
없는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게 젊음이라네 난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난 달려갈꺼야 난 달려갈꺼야
난 없는게 메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