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예쁜 여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고, 연애가 하고 싶은 평범한 20대 남자지만, 초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내게 여자란 적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특히 저학년 시절에는 삶이란 여성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 참 지독하게도 여자애들과 싸웠던 기억이 난다. 보통은 책상에 줄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거나, 아이스께끼를 한다거나, 고무줄이나 공기놀이를 방해하는 수준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보다는 좀 더, 아니 좀 더 많이 못된 아이였다. 운동장에서 지렁이를 잡아다가 책상 속에 넣어둔다거나, 의자에 물을 뿌려 놓는다거나, 왜 이렇게 못생겼냐며 핀잔을 준다거나, 코딱지를 파서 등에 붙여놓거나........ 지금 내 얼굴은 생각지도 않고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다.
나는 어떤 여자애를 타겟으로 삼으면 울다 지쳐 선생님한테 이르거나 학교에서 도중에 집으로 도망 갈 때까지 괴롭혔으니, 그야말로 끝을 봐야 속이 시원했던 악마였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남에게 행할 모든 악행을 초등학교 2학년 이전에 몰아서 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새삼 그 여자애들의 부모님들께서 날 패죽이러 학교에 찾아오지 않으셨던 걸 생각한다면 다들 생불이 아니셨을까 싶기도 하고.. 내 딸이 그런 꼴을 당했다면 난 그 애를 가만둘 자신이 없을 것 같고 그렇다. 어쨌든, 하루는 내가 타겟으로 잡은 여자애가 생각보다 꿋꿋이 버티길래 며칠을 두고두고 그 애를 괴롭혔다. 너무 오래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괴롭혔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여자애의 이성이 어느 순간 없어졌다는 점이다.
여자애는 펑펑 울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으레 있던 과정이었기에 우쭐한 마음에 계속 쫒아가며 놀렸던 것 같다. 근데 이게 왠걸, 여자애는 계단을 뛰어내려가는게 아니라 윗 층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교무실은 1층이었고, 집에 가려고 해도 내려가야하는데. 혹시 그 애에게 고학년의 오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 애는 계단 중간에 멈춰섰고, 나 역시 계단 밑에 멈춰서 끊임없이 걔를 놀려대고 있었다. 그 여자애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씩씩대다가, 이윽고 이야야아아아!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번쩍 뛰었다. 다섯칸? 여섯칸쯤의 높이에서.
부웅 하고 커다란 발이 내 몸뚱이에 날아왔다. 나는 찍 소리도 하지 못하고 계단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이단옆차기에 맞아 나동그라졌다. 끄어억하고 일어나려는데 너무 세게 맞았는지 숨이 잘 안쉬어졌다. 막상 숨이 턱 막히니 겁이 나고 눈물부터 날 것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여자애한테 진 꼴이 되버려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게 엎어져서 꺽꺽대고 있었는데 왠걸, 그 여자애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높은데서 이단옆차기를 하고는 그대로 바닥에 철푸덕 떨어지는 바람에 어지간히 아팠는지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결국 그 날 나와 그 친구는 선생님의 인도로 조퇴를 했고, 그 아이는 며칠 학교를 더 쉬었다. 꽤 큰 해프닝이었던 이 일은 내가 다니던 태권도 도장 사범님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나는 그 뒤로 관장님의 수련 후 특별 교육시간을 통해 매일같이 인격 수업을 받았다. 주먹쥐고 엎드려 뻗친 상태로 외는 삼강오륜이란.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나마 그 뒤로는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그 애가 학교에 다시 나오고, 나는 여전히 여자애들에게 장난을 쳤지만 이젠 다른 애들과 비슷한 수준의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이스케키 같은 것들말이다. 그렇게 내 초등학교 시절의 악마는 점점 봉인이 되어갔고,평범하게 졸업을 했다. 그리고 여자 한번 볼 수 없는 근처의 남중을 가고 남고를 지나 대학에 왔다. 평범한 사춘기를 보낸 남자애들이 그렇듯이, 여자에게 장난을 치기는 커녕 여자를 몰라서 쩔쩔매고 긴장하는 그런 흔한 남학생이 되어서.
스물한살 첫 동창회때, 그 이단옆차기를 했던 여자애를 초등학교 졸업이후 처음보았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예뻐질 수 있는 건지. 초등학교 동창들이면 마냥 반갑고 편할 줄 알았는데 왠걸, 어색해서 말도 꺼내기가 힘들었다. 아니, 눈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그 애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주 생생했는지 어릴 때 얘기를 꺼내면서 내가 아주 나쁜 놈이었다며 웃었다. 웃어줘서 고마울 정도였지만, 다른 애들까지 덩달아 한마디씩 하며 조용해진 날 보고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냐고 신기해 하는데도 한 마디도 잘 하지 못했다. 그 애가 그때 이단옆차기 맞은거 기억나냐고 물었을 때, 아파 죽을뻔해서 눈물이 쏙 나올뻔 했는데 지기싫어서 이악물고 참았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 애는 웃으면서, 내가 너 좋아했던건 모르지? 하고 말했고, 난 그 말을 듣고 벙 찐 상태로 변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야유가 들리고, 근데 지금은 너 쫌 별루다. 같은 소리를 또 들어야했고, 어른스러워 지니까 매력없네 같은 말도 들어야 했고, 술이 한잔 두잔 더 돌고. 문득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다.
동창회가 끝나고 서로 헤어지는 시간에, 나는 어릴 때 내가 괴롭혔던 아이들에게 그땐 미안했다고 고개숙여 사과했다. 웃어 주니 그보다 다행인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애는 더 이상 웃지 않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핸드백을 들고왔었는데, 그 반짝거리는 까만 에나멜 색 핸드백을 휘둘러 날 때렸다. 야, 미안하다면 다냐? 미안하다면 다냐고! 맞지도 않는 또각구두를 신고는 얼큰하게 술이 취해 휘청거리면서, 아가씨가 된 그 예쁜 친구는 그날 계단 위에서 울던 아이같은 표정이 되어 날 붙잡고, 때리고, 흔들었다. 그때만큼 간절히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다. 숨고 싶어도, 숨을 곳이 없었다.
술이 덜 취한 친구들이 주정을 부리는 그 애를 겨우 챙겨 데리고 돌아가고, 나도 남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문득 그 옛날에 맞은 이단옆차기가 다시 떠올랐다. 가슴팍이 아릿한 느낌이 들어 웃는 듯, 우는 듯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집에 들어가자 부모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속이 약간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재빨리 누웠다. 술기운 덕에 금방 잠에 들수 있었다.
다음 날, 핸드폰에 한 통의 문자가 와있었다. 어제 일은 너무 담아두지말라며, 어릴때 일이니까 아무렇지 않다고 앞으로 종종 연락하고 지내자는 그녀의 문자였다. 왈칵, 그 문자 한통에 눈물이 터졌다. 어딘가에 죄책감이나 응어리처럼 남아있던 건지, 어, 왜이러지 하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왔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입대를 했고, 한참이 지나 계란 한판에 더 가까워 지고나서야 너의 소식을 접했다. 결혼한다는 소식을.
난 학생주제에 꽤 거금을 모아 축의금을 내면서, 그 애를 다시 만나 편안하게 웃었다. 그 애는 크게 반가워 해 주었고, 동창들은 삼삼오오 모여 옛날 이야기를 떠들었다. 식이 끝나 사진을 찍고 연회장에 가서 밥을 먹는데, 나쁜년이 지 신랑한테 얘가 자길 괴롭혔던 애라고 고자질했는지, 여행가기전에 연회장에서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할때 신랑분이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얏. 나 참, 맞은건 난데. 그 이단옆차기 맞은거 꽤 아팠단말이요.. 당신도 조심해야된다구. 잘해줘야 할걸? 아차 했다간 매서운 날라차기가.. 하고 속으로 인사했다. 쭉 행복하시라는 기분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