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유행과 여자와 패션에 눈을 떠가던 나는 난 너네 평범한 닝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과잉분출되는 자의식을 해방하기 위한 분출구가 필요했다. 가…각성해버렷!! 하고 남다름에 천착하던 내가 도달한 하나의 해답이 바로 그당시 유행하던 테크노였다. 젊은이들과, 채 젊지 못한 햇병아리들이, 고개를 휘저으며 좌우 안전을 확인에 재차 확인하던 춤사위가 까리하던 시절이 도래했고, 힙합과 뽕끼 넘치는 케이팝이 점령하던 시대에 나는 반기의 기치로 테크노를 휘둘렀다. 사랑타령이니 현실비판이니 말같지도 않은 가사를 웅얼거리며 치렁치렁한 앞머리로, 선글라스로, 두건으로 얼굴 면적을 어떻게든 좁히고 멋짐을 가장하는 이들을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걸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어디서 유행하는 테크노 컴필레이션 음반을 하나 사서 시디플레이어 안에서 주구장창 회전시키며 힙합 바지를 고수하는 아해들을 향해 혀를 찼을 뿐. 그것도 엄청 조용하고 몰래.
그런데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에게 테크노란 마약은 그렇게 많이 허락되지 않았다. 왜냐면 인터넷이라는 게 그렇게 널리 보급되지도, 발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벅스뮤직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음반을 사는 게 당연하던 시절, 테크노를 접할 길이라고는 엠넷에서 혀꼬부랑 소리를 내는 아가씨 VJ가 순위를 언급하는 데서나 어쩌다 마주쳤을 뿐 인터넷으로 테크노를 찾아 듣는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원래 중삐리들이 쉽게 빠지지만 그만큼 쉽게 질리기도 하는 성향의 족속들인지라 가지고 있던 씨디는 점점 물리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테크노랑 하우스를 구분도 못하면서 그냥 뿅뿅거리고 꿍뛰꿍뛰 거리면 그거 듣는게 좋다고 콜라텍을 가고 그랬다. 상상해봐라. 당시 유행하던 차이나 카라 정장에 말구두를 신고서, 코카콜라 유리병에 빨대를 꽂아서 쪽쪽 빨며 스탠드 테이블 어딘가에 똑같은 꼬라지를 한 친구와 함께 음악에 취해있던 중삐리 꼬맹이를. 할 수 만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 죽빵을 날리고 싶다.
그리고 난 가요계에 은빛 펄가루를 눈 아래에 뿌리고서 어디 은나라 시절 달기 같은 자태를 한 여인이 새끼 손가락을 들고 부채를 펄럭거리며 노래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소오름. 이건 SES나 Fine Killing Liberty가 표방하던 이쁨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야금 소리가 몇번 똥땅거리더니 테크노에 목말라 있던 전자음이 튕겨나오기 시작했고 한 맺힌 목소리로 막 버림받았네 어쩌네 하소연을 하는데 싸비 부분에 들어가니까 부채를 쫙 펼치는 데 거기에 왕따시만한 눈깔이 똬악! 그리고 설마가 사람잡았다고 계속 한풀이를 해대는데 옆에서 백댄서들은 갑자기 경련이 일어난 듯 하이패션 자태로 몸을 삐걱거리고… 한국 가요계에도 테크노가 상륙했구나. 난 정말 전율에 떨었다. 테크노 전도사라고 소개되던 그 가수의 이름은 이정현. 그런데 알고 보니 또 우리 또래의 소녀였다. 물론 엄정화 누님이 이 전에 플라스틱 헤드셋을 끼고 몰라 몰라를 연발하며 테크노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그 누나는 내가 열광하기에는 쪼끔 늙고 좀 뭔가 대중적이고…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아무도 안 한(것 같은) 음악을 들고 와서, 해괴망측한 옷차림과 퍼포먼스를 막 펼치는데 그게 나와 같은 10대 소녀라는 게 그렇게 쩔었던 거다. 어린 나에게 전위의 개념을 최초로 가르쳐준 여자 연예인이면서, 동세대로서 뻔한 세상에 투쟁하던 동지로서 이정현은 진짜 쥑이는 존재였다. 그래서 다음날 내가 이정현 무대 봤냐고, 와 노래 허뻐 멋찌지 않냐고 막 설파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얼뜨기 같은 몇몇 놈들은 가슴이 너무 작다고 이정현을 거부했다. 멍청한 색히, 유진도 가슴 별로 안커 임마. 하여간 촌놈들은 뭘 몰라도 한참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정현은 1위를 차지했고, 세기말의 혼란과 사춘기의 발칙함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우뚝 떠올랐다. 나는 세례를 받은 선지자처럼 이단과 무지한 이들 사이에서 조용히, 열광적으로 이정현을 숭배하는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렇지만 내가 이정현을 팬으로서 추앙하던 시절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테크노 열풍은 어느 순간 촌스러운 게 되었고 이정현은 전자음과 한 장르에 그렇게 목매다는 가수는 아니었다. 중이병을 도지게 하는 것들은 이정현 말고도 많았고, 나는 그렇게 짜게 식어서 한 때 좋아했던 가수이자 이제는 조금 오글거리는 컨셉의 여자가수로 이정현을 가슴 속에 묻었다. 그럼에도, 이정현은 내 삶에서 굉장히 독보적인 위치를 지닌 가수로 남아있다. 진짜 골 때리게도, 첫사랑의 실패, 우정과 연인 사이의 묘한 줄타기 같은 풋풋한 감정을 난 이정현으로 달랬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유행하던 휘성이나 플라이 투 더 스카이로 별로 풀고 싶지 않았다. 사내다운척 하는 게 하염없이 등신 같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슬픔에 복받쳐 워우워우워 하고 울부짖는 건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난 좀 더 신경질적이고, 짜증과 예민함이 가득한 음악이 더 잘 맞았다. 그러면서도 가라앉기는 싫어서 리듬은 흥겨운게 좋았다. 느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상실감과 불안감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으니까. 침대에 자빠져서, 이어폰을 끼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나는 방안에서 혼자 솔로 퍼포먼스를 펼쳐댔다. 그럼 좀 그래도 안에서 엉키던 게 풀리는 느낌은 들었다.
이정현을 맨 처음 찾게 했던 건 한 학년 위의 같은 과 선배였다. 그 누구보다 성숙하고 진지하면서도, 웃을 때는 두 눈가에 초승달이 떠오르던 사람이었다. 어찌어찌 나랑 다른 신입생 남자애랑, 그 선배누나랑, 또 다른 남자 선배랑 넷이서 술을 먹었는데, 진실 게임에서 선배누나가 이 자리에 있는 나보다 어린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하는 순간 난 진짜 표정관리가 힘들었다. 이건 나네. 이건 나야. 엠티 다녀온 이후 저 선배랑 까페를 다닌 게 몇번이고 밥을 먹은 게 몇번인데. 그리고 그날 밤 저녁 MSN 으로 채팅을 하는데 고백을 받았다. 미안해, 사실 그거 너 아니구 XX였어. 그 비리비리 말라깽이를? 개 평범한 찐따 같은 걔를? 사람이 너무 놀라니까 단전에서 열기가 올라와서 뒤통수를 확 휘감는 느낌이 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래도 찌질해지긴 싫어서 아~ 그렇다고 제가 걔를 매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니겠죠 따위의 개드립으로 좀 싸하던 채팅 분위기를 매끄럽게 넘기며 쿨가이로 인정받는 건 성공했지만, 채팅창을 종료하고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아뜩한 추락감이 나를 덮쳤다. 아…………………… 이걸 어떻게 하지??
안되겠다, 뭐라도 들어야겠어 하고 진짜 피카소의 큐비즘같은 얼굴을 하고서 노래를 찾았는데 좋아하는 아티스트 목록에 이정현이 있었다. 와 를 들으며 멍한 머리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하는데 예전에 너무 좋아했던 노래라 큰 효과는 없었다. 1집 노래 목록을 찾는데 “충격” 이란 제목의 노래가 하나 있어서 그걸 들었다. 이건 진짜 딱 내 이야기였다. 나의 시간은 너에게로 멈춘 걸. 내 인생을 찾아줘. 그 때 난 진짜 그랬다. 그 때 내가 느낀 이별(이라기엔 썸탔던 게 다지만)의 심상은 뭐랄까, 그 당시 언어로 표현하면 좀 사이버 스페이스틱한 그런 느낌이었다. 격렬한 고통도 아니고, 눈물샘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것도 아니고, 뭔가 폭발하거나 추욱 가라앉는 게 아니라 멍해진 자아가 어디 먼 다른 공간으로 날아가버린 느낌? 눈물 나는 비련이나 증오같은 감정보다도, 나를 휘어잡은 감각에 저항할 수 있는 노래가 필요했다. 진짜 나는 무너졌고 무감각했다. 정말 그랬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처럼 얼마 안있다 학교를 안나가버렸다. 그 거지같은 느낌이 불쑥불쑥 나를 휘감아오는데 레포트고 중간고사고 뭐고 다 그냥 부질없었으니까.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이 노래만 들었다.
버림받은 느낌에 혼자 몸을 푹 담그고 밥을 먹는 둥 잠을 자는 둥 하며 죽지 못해 사는 나날이었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지만 난 사나이 따위는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는지 늪 속에서 허우적 대던 와중에도 가끔은 숨통이 틔이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이정현과 성만 다르고 이름 두글자는 똑같던 얘가 학교를 안나가던 나를 열심히 걱정해주고, 이전과 달리 단문으로 끊어치는 답장에 장문의 문자니 전화니 열심히도 원거리에서 마음을 써주곤 했으니까. 첫사랑의 절망에 세상 멸망나는 꼴은 혼자 다 경험하면서도 그 얘한테 여자친구 직전의 설렘을 느끼며 스스로를 열심히도 달래던 시절이었다. 내가 사는 건 정현 덕분이야 늬글거리는 문자를 보내는 추태도 열심히 부렸다. 이 때 이정현의 “Surprise Party”가 유난히도 꽂혔다. 아마 얘도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자기 마음을 모른다고, 널 기다리는 내 초조함을 빨리 알아주라고 하는 몽상에 나는 흠뻑 젖곤 했다. 바보 바보 하는 가사에 정말 바보같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첫사랑의 자국을 지울 수 있었다. 도피성 고백이라도 저지르는 게 인연에 좀 더 충실히 응답하는 건 아니었을까.
어영부영 잠적한 1학기와, 정식으로 휴학한 2학기를 흘려넘기고 2학년이 되어 날 위로해주던 이 아이를 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세상에, 왜 이렇게 귀여워진거지. 나는 아직까지도 그 얘처럼 귀여움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신입생의 번데기 시절을 지나고 나니 여자애들이 죄다 이쁘고 어른스러워졌는데, 그 얘는 특히나 군계일학이었다. 딱히 외모가 요정 급도 아니었고 매력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사람을 감아오는 어떤 능력치 같은게 되게 높아져서 같이 이야기하다보면 고백을 고민케하는 부류의 요물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거기다 몸매도 좋아졌다-_-) 내 우악스런 개그와 뾰족한 감수성을 이해해주던 그 얘는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친구였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친한 친구 사이에서, 심심함을 뽀뽀로 때울 수 있는 사이로 좀 나아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사투리가 심하고, 푸히히히히 하고 게걸지게 웃던 걔 때문에, 걔가 안겨준 낭만적 공황상태 때문에 나는 이정현 노래를 다시 찾아들었다. 벡터맨 이글인 기태영이 집을 잠시 비운 사이 바비 인형이 주인 몰래 개판을 쳐놓고 묵비권을 태연히 행사한다는, 상당히 뻔뻔한 뮤직비디오의 그 노래는 정말 완벽하게 그 아이였다. 때로는 순결한 백합처럼, 때로는 붉은 장미처럼. 톡 쏘는 콜라처럼 아련한 청량감을 가지고 있던 얘였다. 당시 첫사랑이랑은 어찌됐냐고? 미국으로 잠깐 어학연수인가 뭔가 나가 있던 터라 나는 이 친구 안에서 계속 헤맬 수 있었다. 여유롭고, 달콤하게.
사실 잘 될려면 잘 될 수도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우리는 잘 맞았고 붙어 다니는 게 자연스러웠으니까. 그런데 선배가 미국에서 돌아왔다. 물론 그 동안 이메일로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마음 속 우상으로 우뚝 세워진 그 사람 앞에서 속으로 숭배를 멈추기는 쉽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래도 현재를 점령하고 있던 건 앙증맞고 깜찍하던 옆의 그 아이였고 선배 누나는 마주칠 일이 없어서 내가 더 이상 긴장할 필요도, 가슴 속 아릿함에 호흡을 다스릴 필요도 없었다. 완전연소를 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살아있는 불씨는 차츰 잿가루 속에서 조용히 연기를 내뱉으며 죽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등장만으로도 모든 걸 바꿔버리기도 했다. 마주치는 게 무서워 바쁘다 바쁘다 그렇게 요리저리 피해다니다가 우연히 학교 후문에서 마주쳤는데, 그 재회의 느낌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기뻤다는 게 아니다. 그냥 나를 모조리 장악해버리는 느낌에 겁부터 났다. 장작더미 끝에서 새빨갛게 빛나던, 불꽃이라기에도 뭐한 잉걸불이 갑자기 화염이 되어 전신으로 번지는 감각에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안녕하세요, 인삿말을 뿌려놓은 채 정말 도망을 쳤는데, 온통 걱정만 들었다. 잠깐 보기만 해도 이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잡혔다. 집으로 황급히 돌아와 한참 다정하던 얘에게서 온 문자를 데면데면하게 대꾸하고선 이정현의 “악어”만 하루 내내 들었다. 잊고 싶지만, 잊고 싶지만, 난 정말 너에게 미쳐가나봐. 물론 이 선배누나가 나한테 무슨 장난을 친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느낌과 내 나약함이 정말 진저리나게 싫었다. 변명을 하자면, 이건 우유부단한 게 아니었다. 내가 내 미련과 그리움을 너무 과소평가했을 뿐이지. 친구 이상이 될 뻔 했던 그 얘는 그렇게 더 커다란 불꽃이 삼켜버렸고 나는 다시금 사정없이 휘둘렸다. 문자나 전화를 징그럽게 기다리면서도, 또 막상 뭔가 연락이 오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였고 많이 불안했다. 저 물가에는 악어가 있고, 그곳에 가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다시 깨물리고, 물 속으로 끌려가고, 무심한 이빨에 그렇게 찢기면서도, 피투성이로 헉헉대며 못가로 나와 만신창이가 된 나를 그렇게 눕히고 좋았노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이 때 정말 짝사랑은 원없이 했다. 예전처럼 바보같이는 굴지 않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허구헌날 그게 안된다는 것만 확인하던 지난 날. 이게 내가 정말 온 자신을 투영해서 들었던 이정현의 마지막 노래다. 이후 나는 군대를 갔고, 궁상과 쾌감은 다른 음악에서 찾게 되었다.
왕년의 가수들은 듣는 사람의 왕년을 떠올리게 하기에 그들의 음악이 그렇게 반갑고도 아련한 것이겠지. 다른 90년대, 2000년대 노래들을 들으며 나는 그 당시의 나와 내가 살고 있던 세계를 떠올리지만, 이정현만큼은 그렇게 흘려들으며 즐기고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다시는 오지 않아서 서글프고 또 천만다행인 열렬함의 화흔에, 나는 또 몸서리를 친다. 안 그래도 안 끌리는 토토가를 그래서 더 못보겠다. 나에게 그렇게 멋지고 쿨했던 여자가수였지만, 이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난 여전히 어딘가에 턱 걸리는 감각에 섬찟해진다. 정말 테크노 전도사가 맞긴 맞다. 애달프게, 귀염만발하게 부르던 이정현의 노래를 끊고 나니 이제는 현실과 유리하는 일렉만을 찾아 듣고 있으니까. 간만에 이정현의 노래를 주구장창 듣다보니 지난 날의 내가 처량하고 바보같고 머저리 같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추억은 함부로 들쑤시는 게 아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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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쓴 분보다 이정현 시절엔 더 어렸고, 토토가에는 별 관심도 안 생기고 그런데, 바로 이 글 때문에 제 1, 2학년 시절을 떠올리게 되네요. 크크크 어쩜 저랑 겪은 패턴이 이처럼 비슷하신지... 제 1학년 2학기의 에프학점들, 2학년 1학기의 휴학 기억들을 왕천군님 글에서 잘 추억(?)하고 갑니다. 덕분에 저도 이불킥 좀 하다가, 그렇게 잠들기 어려운 밤이 될 것 같습니다. 맛깔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