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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06 21:11
우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가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할과 가면은 본연의 내가 아니다! 라는 생각은 꽤 역사가 깊지요. 이에 관련해서 제가 제일 인상깊게 읽었던 말은 (본문과 크게 다를 것 없긴 한데) 키에르 케고르가 '네가 사회에서 요구받아서 행하는 모든 역할을 벗어던지고 나서 남는 것이 너의 실존이다. 근데 그 실존을 마주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불안한 일이지' 라고했던 문장입니다. 근데 이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보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그 실존이라는 개념이 극히 괴랄한, 아마도 불가능한 개념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요구받아서 하는 일 말고 내가 정말 스스로 가지고 있는 욕망이라는 것도 결국 '내가 의식하지 못할 뿐,' 결국 남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난 것들이지요. 설령 태어날 때부터 가진 천성이 있다고 한들 그것 역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결정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즉, 일반적인 용어 사용법 말고 철학적인 수준에서 깊게 파고들어가보면 '그런 거 다 빼고 남은 진정한 나' 라는 것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의미한 존재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은 '자기 역할을 잘 완수했거나 내가 원하는 성취를 이루었을 때' 지요. 그 역할이나 욕망의 원천이 무엇이냐는 것은 가끔 재미삼아 파볼 흥미거리는 될 지언정 내 행복을 무력화시키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떤 만화가가 마라톤을 즐기는 자신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를 그린 것을 보았는데, 마라톤을 하면서 행복함을 느끼다 말고 '근데 이 행복감이라는 것도 결국 세로토닌이네 엔돌핀이네 하는 것들 때문에 느끼는 거지. 어쩌면 이게 다 환상일 지도 몰라. 근데 그래서 뭐? FXXX the SXXXX! 내가 지금 행복하면 얘기 끝이지!' 라는 독백을 하는 장면이 나와요. 저 개인적으로는 저게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합니다. 철학은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 자기 성찰을 명료하게 해보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4/09/06 21:34
좋은 댓글 잘 읽었습니다. (인문학 관련 책리뷰는 댓글도 잘 안달리고 그래서 쓸쓸했는데 이렇게 양질의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흐흐)
어쨌든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네요. 다만 말씀하신 내용 중에 [철학적인 수준에서 깊게 파고들어가보면 '그런 거 다 빼고 남은 진정한 나' 라는 것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라는 부분을 인정하지만, 어쩌면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제가 이 책을 읽고 가장 감명깊었던 건 그동안 원인 모르게 스스로를 괴롭혔던 외로움과 답답함의 실체를 마주했다는 것이거든요. 즉 그 외로움의 근원이 결국 연극 무대 위의 가면극을 하는 배우처럼 속으론 울면서 겉으론 웃고 있는 그런 연극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 자체로 많은 위안이 되고 힘이 되더군요. 제가 저를 이해하게 됐달까요. 물론 저도 아직 저의 맨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고 진정한 제 자신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라는 게 연극판 위의 연극과 다를 바 없고 우리들의 소외와 고독감이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이러한 현실을 직면하는 일만으로도 어떤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그 용기라는 게 다른 사람의 가면 속 눈물도 이해할 수 있게되는 그런 마음일 수도 있구요. 사실 '행복'에 대한 OrBef님의 시각(두번째 문단)의 내용은 영화 [그녀](her)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등장하는데요. 거기에서 주인공 시어도어가 컴퓨터 프로그램 사만다와 연애를 하면서 이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혼란에 빠지는데 그때 친구인 애이미가 '행복'을 이야기하죠. 짧은 인생, 잠깐 쉬었다가는 우리네 삶인데 행복하면 그걸로 그만 아니겠냐면서 그녀도 Fuck 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그 생각이 잠깐 났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유의미한 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직장인의 가면을 쓴 나의 욕망과 자녀의 가면을 쓴 나의 욕망과 그 페르소나 속 맨얼굴의 욕망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직장인의 가면을 쓴 내가 바라는 것이 승진이고, 자녀의 가면을 쓴 내가 바라는 것이 결혼이라고 했을 때 이 두가지가 정말로 나의 진정한 욕망인지, 진짜 나의 행복인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봐요. 결국 페르소나의 논의가 라캉의 욕망론과도 연결되는 느낌인데, 어쨌든 남의 행복(타인의 욕망을 통한 행복)이 아닌 나의 행복을 찾고자 노력하는 과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그 끝에 나의 맨얼굴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런 건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나의 욕망과 행복을 마주하기 위해 부지런히 페르소나를 벗겨내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 현대인들에게 유의미하다고 봐요.
14/09/06 21:43
예 저도 말씀하신 < 정작 그 끝에 나의 맨얼굴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런 건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나의 욕망과 행복을 알기 위해 부지런의 페르소나를 벗겨내는 과정은 현대인들에게 유의미하다고 봐요.> 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 거 다 빼고 남은 진정한 나' 가 없다고 생각할 뿐, '진정한 나' 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내가 쓴 가면을 다 합한 게 진정한 나이긴 한데, 그 중에 썼다 벗었다 해도 되는 가면하고 나한테 정말 중요한 가면을 잘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 정도가 가면에 대해서 제가 가진 입장입니다. 저를 굴러가게 하는 욕망과 가면들을 중요도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가장으로서의 의무이자 가족한테서 받는 행복감' - '앎에 대한 욕구' - '적정 수준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유지하고 싶은 열망' - '여행에 대한 욕구' - '이 뒤로는 버려도 되는 것들'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1 번이 저 본인에게서 나오는 욕망이 아닌 것 같지만, 사실 깊이 파고들어가보면 '마누라랑 아이랑 나는 별개의 개체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지라.... 저게 남의 행복인지 나의 행복인지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고요.
이런 얘기 할 기회도 많지 않은데, 즐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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