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러분들은 이제 한국의 화성유인 탐사 프로젝트의 대원들로 뽑혔습니다. 기쁘시겠죠. 어렸을 때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니까요. 화성에 가게 되면 여러 가지 알아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오늘은 한번 화성에서 여러분들에게 적용하게 될 법체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제협약에 따르면 어떠한 국가도 지구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국제협약에 따르면 만약 여러분들이 어떠한 국가의 영토에도 속해있지 않을 때는 여러분들은 해상법(maritime law)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재의 국제법 체계에서 화성은 어느 한 국가에도 속해있지 않는 "공해(international waters)"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을 화성으로 보낸 기관이 한국항공우주국(KASA: Korea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이라고 칩시다. 여러분들을 태우고 화성에 착륙한 착륙선은 KASA의 소유물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착륙선 안에 있을 때는 한국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착륙선 안에서 다른 대원과 사이가 틀어져 한바탕 주먹질을 했으면 (물론 이래선 안 되겠죠...) 여러분은 한국법에 따라 폭행죄로 처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우주복을 차려입고 착륙선 밖으로 나가서 화성위에 발을 딛고 서는 순간부터 여러분들은 해상법의 적용을 받게 되고 공해상에 있게 되는 셈이 됩니다. 임무를 마치고 다시 착륙선으로 들어오는 순간 한국법이 적용됩니다.
또 다른 경우를 살펴봅시다. 여러분들이 화성에 도착하기 1년 전에 미국 NASA에서 화성에 유인 탐사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미국 우주인들이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전에 화성에 어떤 시설물을 남겨뒀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빈 시설물에 마침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싶은 장비가 하나 있어서 그걸 징발하고 싶습니다.
미국 우주인들이 있든 없든 그 시설물은 미국 NASA소유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그 시설물에 들어갔다고 해서 바로 미국법의 적용을 받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미국법이 적용되려면 일단 여러분들이 그 시설물의 통신 시스템을 작동시켜서 NASA측과 통신이 이루어지고 난 뒤라야 그 시설물 내부가 미국법의 적용을 받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그 시설물에 들어가서 가지고 나오고 싶다면 시설물에 들어가서 통신 시스템을 켜고 NASA에게 정중하게 요청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보세요?...거기 NASA죠?...아, 예...안녕하세요...저는 한국에서 온 우주인 김아무갭니다. 저...죄송한데 제가 여기 있는 오함마 좀 쓰고 나중에 돌려드리면 안될까요? 제가 깜빡하고 한국에서 출발할 때 오함마를 안가지고 왔네요..."
NASA: "아, 네...쓰셔도 되는데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겠지만 고가의 매우 정교한 장비니까 조심해서 다뤄주세요...그리고 쓰신 다음에 꼭 제자리에 잘 갖다 놓으시고요..." ]
이렇게 NASA측의 허락을 받고 오함마를 시설물 밖으로 반출하셔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들이 그 시설물에 들어는 가되 통신시설을 사용하여 미국 측과 통신하지 않고 그냥 거기 있는 오함마를 들고 나왔다...그러면 여러분들은 미국 내에서 절도를 한 셈이 되는 게 아니라 공해상에서 물건을 훔친 셈이 됩니다...이런 경우 해양법을 적용하면 여러분들은 바로
[해적!]이 되는 것입니다. 나름 엘리트라고 해서 화성까지 갔는데 거기서 그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말리아 해적들하고 동급이 된 것이죠...아니, 이 경우에는 우주에서 벌인 해적질이니까
[우주해적]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 고생해서 화성까지 갔는데 우리 해적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P.S.
1. 화성에서의 무선 통신은 지구에서와는 다릅니다. 지구와 화성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여러분이 통신 시스템을 켜고 지구로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면 지구에는 그 메시지가 최소 3분에서 최대 21분 정도까지 딜레이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메시지를 듣고 다시 지구에서 여러분들에게 뭔가 말을 해도 여러분들은 또 그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말을 듣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저 위의 상황에서 NASA에 오함마 좀 써도 되냐고 물어보고 난후 NASA에서 하는 대답을 듣기까지 꽤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대답 오는 거 기다리는 동안 가져간 맥심 8월호라도 좀 읽고 계십시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는 화성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동이 안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2.
NASA 시설물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B.A.S.H. 오함마...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손잡이가 편안한 그립감을 주고 묵직한 머리에서 나오는 둔중한 타격감이 일품인 제품이다...
3. 에베레스트 산은 높이가 제가 어렸을 때는 8,848미터라고 했고 지금은 8,850미터라고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다 아시겠지만 이 높이의 기준점은 해발입니다. 즉 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0미터로 놓고 재는 거지요. 화성에서의 고도는 어떻게 계산할까요? 아시다시피 화성에는 액체로 된 바다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구의 과학자들은 화성에서 화성의 대기압이 610.5파스칼이 되는 지점을 화성고도 0미터로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정작 당사자들인 화성인들하고 협의를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