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에 가입한지가 고등학교 어느 때, 지금은 올해로 26살이 되어있네요.
그동안 글 한번 안쓰고 여러분들 글만 읽으며 보냈습니다.
올라오시는 글들이 전부 필력이 대단하셔서 감히 글 써볼 엄두를 못내다가 오늘 첫 글을 씁니다.
막연히 음악을 예전부터 참 많이 좋아했는데 문득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가 쓴 글입니다.
제 싸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그대로 옮겨와 그냥 반말체로 되어있는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저도 예전엔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시끄러운 음악을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요즘도 물론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락밴드들의 음악에는 아직도 환장 하지요.
하지만 요즘은 어쿠스틱한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다양한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도 좋지만 요즘은 그저 피아노 하나, 기타 하나 연주하며 혼자 노래부르는 스타일이 떙기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홍대나 신촌에 그런 인디 음악을 들으러 자주 가는 편입니다.
주위에 같이 즐겨주는 사람이 없어 주로 혼자 다니다보니 좀 외롭네요.
PGR21에도 그런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 많이 안계신가요?
좋아해주시는 분들 있으면 같이 가고 싶어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당장 모래 토요일에도 홍대에서 제가 좋아하는 '유발이의 소풍'이 공연한다던데 같이 갈 사람이 없네요.
이래저래 자꾸 우울한 생각이 많아지는 막바지 겨울 밤입니다.
서론이 길었고 이제야 본문 시작합니다. 저는 이래서 음악을 듣습니다.
< 그래서 오늘도 음악을 듣는다 (1) >
학창 시절 학교에서 내주는 문제들은 항상 정답이 있었다.
하지만 정답 이외에도 답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았다.
수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 그리고 객관식보다는 주관식이더욱 더 그랬다.
그래서 시험과 학교, 제도에 대한 반항심은 고등학교 3때쯤 이르러서는 극한에 다다르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에 실패하여 재수를 하던 20살,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짜피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는 원래부터 수 많은 답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답 중에서 하나만을 놓고 정답이라 하는 것은 그 답이 문제를 낸 이가 원하는 대답이기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질문이 다가올 때, 내가 생각하는 답이 아닌 질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답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2004년 여름,
어느 대학 논술 시험장에서 내 생각이 아닌 문제를 낸 사람이 원하는 답을 고민하고 있었고, 그 해 8월, 대학에 합격 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모든 게 쉬워졌다. 내가 스무살에 얻은 깨달음은 사람 사이의 대화에도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덕분에 인간관계도 원만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세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 질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는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지만, 내 질문에 내가 원하는 답을 준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둘째, 질문하는 사람 본인도 본인이 원하는 답을 몰라하는 상황이 점점 많아져갔다. 답이 될 수 있는 후보 몇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음에도 정작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게 무언지 모르니 질문을 받는 나도 정답을 내려줄 수가 없었다.
셋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보이지만 그 대답이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원하는 대로 하기 힘든 경우이다.
나이가 들며 이런 유형의 경우가 점점 더 많아져갔고 그래서 나도 상대방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내려주기가 힘들어졌으며
인간관계도 복잡해지고 있었다.
결국 돌아보면 학창시절 나에게 주어지던 질문들에 정답을 내는 일은 지금에 비해 정말 쉬웠다.
이런 상황들과 접하게 되면서 동시에 예술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 그래서 오늘도 음악을 듣는다 (2) >
앞에서 이야기 한 세 가지 문제 중 가장 먼저 맞닥드리게 된 문제는 첫 번째 것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나에게도 내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찾기 힘들었고 우울한 기분이 잦아져 갔다.
우울함과 동시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잦아지자 다른 방법의 정답찾기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예술'이라는 방법이었다.
예술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소통과정과는 전혀 다른 순서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소통과정은 '질문->답'의 순서로 진행되지만,
예술 소통은 '답->질문'의 순서로 진행된다.
많고 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표현 방식은 이미 다양한 정답을 제시해 놓은 상태다.
예술시장속에 있는 수많은 정답 중에서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된다.
자신이 어떠한 특이한 질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질문들은 이미 누군가 이전에 생각해 봤을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그렇기에 내 질문에 대해 듣고픈 답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만약 주위의 누군가에게서 대답을 찾기 힘들다면 예술 속에서
찾아보면 된다. 그러면 누군가 표현하고 있음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원하던 답을 이미 표현하고 있던 예술가를 만났을 때 느끼는 기쁨은 크다. 답을 명확하게 이야기 해 주는 경우도 있고,
단지 그 느낌만으로 답을 얻을 때도 많다. 또한 스스로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 정답으로 느껴질 때는 참 묘하다.
이런 방법을 알게된 후부터 삶이 윤택해지고 또 다시 세상과가까워졌다.
사람관계도 다시 즐거워지고 이전보다 다양하고 많은 답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 앞서 생겼던 세 가지 문제 중 두 번째, 세 번째 문제도 해결됐다.
나는 예술 중에서도 주로 음악을 통해서 답을 얻는다.
내가 원하는 답을 모를 때, 자신의 답이 현실과 어울리지 않을 때 음악을 통해 방법을 찾아본다.
음악에서 답을 찾는 일이 꼭 가사를 듣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주곡도 그 느낌에서 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을 자주 찾는다.
특히 상대방이 두, 세 번째 문제들에 해당하는 질문을 가지고 온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답을 주려 애쓰기보다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음악을 듣는 편이 낫다. 나도, 그 사람도 어떤 답과 느낌을 얻어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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