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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1/11 13:17:31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어느 비상한 사람의 비상한 삶과 죽음
1.

대학 시절, 아인슈타인을 숭배했고, 그에 따라 모차르트를 즐겨들었던 한 교수님이 삶의 진정성에 대한 말을 꺼내면서 ‘레퀴엠’에 대해 얘기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나무로 만든 관속에 눕혀져 마침내 모든 빛을 덮듯이 뚜껑이 닫히고, 마지막 네 귀퉁이에 못을 박는 망치소리가 멈추는 그 순간을 그린 장송곡을 들으며 출근하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삶에 대해 더욱 겸손해진다.’

대략 이런 내용의 얘기였는데,(원래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였지만) 그 강의를 들으면서 죽음도 삶의 일부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애도를 받으며 깔끔한 수의를 입고, 향기로운 나무냄새가 나는 관속에 편안하게 누운 채 흙으로 돌아가는 평온한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던 어느 조선인의 무덤 하나가 일본에서 최고급 귀족들만 묻힌다는 아오야마 공원묘지의 외국인 묘역에 있습니다.

‘비상한 재주를 갖고,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도 세우지 못하고, 비상하게 죽어간...’

이렇게 시작하는 묘비명을 가진 무덤의 주인공은 묘비명만큼이나 쇼킹하게 무덤이 한국과 일본에 있으나 그 어느 곳에도 시신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꿈을 꾸다 중국에서 죽어간 그의 머리카락과 유품이 이곳에 묻히던 날, 일본 우익인사로 이루어진 추모위원회와 그를 기리는 명사들로 공원묘지는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이때가 1894년 5월 말, 불과 두 달 후에 조선과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정세까지 뒤흔들 무시무시한 변화는 바로 그날 그 무덤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가시화되었습니다.

오래도록 조선에 파병하려는 온갖 구실을 찾아서 갑오농민전쟁군속으로 첩자를 집어넣는 등 별의별 수작을 다 부리던 우익들은 ‘일개 망명객의 죽음으로부터 청일전쟁을 이끌어내려는’ 선동적 문구를 남발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갔습니다.

조선 실학의 학풍속에서 자라나 근대화의 디딤돌을 놓고자 했던 ‘개화파’ 김옥균의 운명은 그렇게 비참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처참한 굴욕을 당하며 시신의 존재조차 찾기 어려웠고, 중국은 관심조차 주지 않았으며, 일본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해 먹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 한줌, 비통한 묘비명만을 남긴 김옥균의 삶도, 그리고 죽음도 모두 예사롭지 않았으나 공허하고 애처롭습니다.

2.

안동김씨 나부랭이집안에서 태어난 김옥균은 유난히 하얀 얼굴로 ‘옥균’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미 어릴적부터 사람을 사로잡는 능력을 높이 사서 세도가 북촌의 양반집 도련님으로 입적하며 전형적인 귀족교육을 받았습니다. 탄탄하고 엄격한 교육과 품격있는 가풍을 전수받은 김옥균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외모까지 겸비하며 타고난 비상한 재주를 마음껏 뿜어대는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바로 그때, 조선시대 실학의 상징물이었던 백탑(원각사지 석탑-지금의 탑골공원)부근의 청년들은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며 수시로 모였습니다.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를 중심으로 그의 사랑방에는 중인 오경석과 유홍기가 모여들었고, 그들은 청국을 드나들며 신문물의 위력을 실감하였고, 위원의 해국도지를 통해 조선 근대화의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경험을 가진 박규수는 이것을 동도서기,서세동점이라는 허장성세의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는 냉정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모든 문명과 적은 바다로부터 오고, 그 바다에 맞서기 위해서 침몰한 제너럴 셔먼호의 잔해를 수집, 해국도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내는 일을 통해 소박한 미래를 꿈꿨습니다.

개화파 1세대는 조선의 미래가 인재,그것도 젊은 북촌의 지식인들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을 설득해서 교육시켜낸다면 조선의 변화는 품위있게 그리고 파워풀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에 따라 발탁된 개화 2세대가 바로 김옥균입니다.

김옥균이 방문하던 날, 박지원이 중국에서 가져온 오래 된 지도를 펼치며 박규수는 말했습니다.

“보게나, 지도를 이렇게 돌리면 미국이 중심이고, 이렇게 돌리면 또 조선도 중심이 되지 않는가? 어찌하여 중국만 중심이란 말인가? 우리도 노력한다면 세상의 중심이 되지 못하란 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것은 젊고 재능 있고 애국심이 가득 찼던 북촌도련님 김옥균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날 이후 김옥균과 개화파들의 슬로건은 ‘개화=탈중국’이었습니다.

신채호는 이 만남에 대한 인상을 적으면서, 훗날 ‘갑신정변’으로 이 에너지가 폭발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규수를 정점으로 한 개화 1세대에겐 단순한 변화의 욕구만이 존재할 뿐 주체도 방향성도 없었던 것이 김옥균을 비록한,김윤식,박용교, 홍영식,서광범,박영효에 의해 구체화되었고, 그 결과가 갑신정변이었으니까요.

갑신정변의 주요 강령은 ‘탈중국’즉 ‘중국적 질서로 일컬어지던 성리학적 질서의 타파’였습니다. 후에 갑오개혁이후 청나라 종속의 상징물이던 삼전도비를 한강에 밀어넣고, 청나라 사신들을 영접하던 곳에 독립문을 세운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북학파의 맥을 이은 개화1세대의 철학적 정치적 특징은 ‘서인-노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었지요. 왕을 정점으로 하는 봉건적 질서에 대한 의문은 이미 홍대용-박지원-박제가로 이어지며 북학이라는 실학사상으로 다시 박규수-김옥균에 이르면 개화라는 근대화론으로 이어집니다. 왕과 신하는 동격-이라는 정치철학에 바탕을 둔, 그래서 나라도 독립, 신분도 독립, 따라서 이들의 정치적 슬로건은 ‘독립’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메이지 유신과 다른 점이고, 그것이 갑신정변의 비극을 잉태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대화의 추진력으로 왕실을 신격화시켜낸 일본과 달리 개화파는 왕실을 정치적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 이 ‘비상한 시대’를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어찌되었든 전제왕권의 권위나 관습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문서 몇 개로 홀라당 바뀔 리 없는 것이었고, 무시무시한 세계사속에서 그나마 뿌리 깊은 정치세력은 조선왕실이었으니까요.

박규수에게 세계지도를 보던 날, 젊은 김옥균의 가슴속에 담겨진 꿈은 ‘부국강병의 조선’이었고, 그가 훗날 일본에서 만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에서 벗어난 일본 우익의 ‘흥아론’에 감복한 것도 여기에 있었겠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슬로건만이 존재하는 개화사상의 비극. 좀체 변하지 않는 조선을 어떻게라도 변화시켜낼 묘수를 찾아내기보다는 그냥 아시아 패권주의에 묻혀서 가려는 안일함. 국세사회의 냉정함을 알지 못했기에 그는 ‘비상한 공’을 세울 길이 없었습니다.

3.

외척세력의 세도에 신물이 난 흥선대원군은 한미한 집안인 민씨집안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이에 따라 김옥균과 같은 해에 태어난 명성황후는 뜻하지 않게 입궁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씨집안이 진짜로 아무런 정치적 파워가 없는 촌무지래기였던 것이 조선 왕실에게나 조선 백성들에게 또 다른 비극을 낳고 있었습니다.

기댈 언덕이 하나도 없었던 명성황후는 정치적 음모가 서릿발처럼 칼끝을 겨눈 궁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시덥잖은 궁녀조차 정치적 끄나풀을 다 가지고 온갖 고자질과 이간질을 해대는 곳에서 순박한 시골소녀는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지요. 생존의 규칙을...

명성황후는 이미 거미줄같이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지해줄 정치세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독함과 무기력함, 때론 궁녀들의 질시와 냉대까지 참아내면서 그녀는 칼끝을 벼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촉수에 걸린 새로운 세력, 그들이 개화파입니다.

개화파는 정치적,철학적 뿌리는 노론이었고, 그래서 비교적 쉽고 편안하게 한양을 활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며, 그래서 요직에 기용되기도 쉬웠고, 동지를 모아내기도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지향점은 어떤 정치조직과도 달랐고, 그렇기에 명성황후와의 결합은 쉬웠습니다. 개화파는 왕실권력을 필요로 했고, 명성황후는 비빌 언덕이 필요했으니까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직접 정치를 할 수 없었던 명성황후는 자신의 대리인으로 민영익을 지목합니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민영익은 왕비의 후광에 힘입어 15세의 나이로 민씨일가의 실력자로 부상,21살에 당상관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민영익은 명성황후와의 독대를 통해 정치적 임무를 수행했고, 아마도 명성황후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뛰어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개화파와 어울렸습니다. 개화파는 명성황후의 정치적 원군으로 부상했습니다.

개화파는 민영익이 자신들과 정치적 동지이며, 조선의 미래에 대한 꿈도 함께 나누는 줄 알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기 위해 개화파와 함께 나라밖 유람을 떠나 1882년에는 일본, 1884년에는 미국으로 떠났던 민영익은 돌아오자마자 태도를 바꿔버립니다. 이 황당한 변심은 개화파를 결정적으로 궁지로 몰아넣었고, 왜 갑신정변 당시 민영익이 제거대상 1호였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근대사의 비극을 낳은 민영익의 배신에 대하여 한 학자는 왕실교육을 받지 못한 채 왕권을 손아귀에 쥔 민씨집안의 천박함이 낳은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아도 조선 왕실은 엄격한 제왕학을 공부함으로써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고, 무분별한 욕심보다 나라의 균형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소양을 갖추었습니다.500년 왕실의 전통따위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총결집한 민씨집안의 욕망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민영익의 변심을 부추긴 것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추측은 동행했던 개화파들의 급진사상으로부터 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들은 모두 박지원으로부터 이어지는 급진적 노론의 정치이데올로기를 계승했습니다. 박지원의 정치철학은 근대적 시민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만민평등론. 왕실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킬지도 모르는 이 위험한 정치사상을 접한 민영익은 귀국과 동시에 명성황후에게 일러바쳤을 것입니다.
왕실이야 어찌어찌 명예를 유지하면서 일본식 입헌군주제가 되어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외척가문의 미래 따윈 어디에도 보장받을 수 없는....
(일부 학자는 미국행을 통해, 대통령제를 본 충격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왜 명성황후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개화파들과 멀어지면서 때로는 청나라에 때로는 러시아에 자신의 정치적 명맥을 의존해야 했는지 민영익의 행동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라의 미래가 가문의 안위 따위와 바꿔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5.

갑신정변의 실패는 개화-반개화의 구도를 친일-반일의 구도로 바꿔갔습니다. 그것은 이시대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못하게 하는 정치적 유산으로 남아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옥균을 부르조아 혁명가로 찬양하고, 그에 따라 남한에서는 친일파로 낙인지워버렸습니다. 그러다 다시 이명박정권의 탄생과 함께 김옥균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살아서도 그러했듯이 죽어서도 그는 갈기갈기 찢겨진 채 구천을 맴돌고 있을 시신처럼 그는 비극적인 이름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묘지명의 마지막말은 더욱 더 절묘하게 느껴집니다.
‘비상하게 죽어간, 하늘나라의 김옥균이여.’

느닷없이 김옥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개화파와 친일파는 구분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개인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엔 친일파가 너무 많고, 그래서 오히려 진짜 친일파들이 보호받고 있는 듯합니다. 좀더 정교하게 근대화과정에 대한 뼈저린 평가와 연구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까닭에 함부로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자보다 작가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6.

오랫동안 근대사 토론을 잇지 못했습니다.개인적으로 일이 있어서....
그나마 글쓰기도 거의 반년만에 하는 것 같네요.그래서인지, 제 글인데도 제가 다 낯섭니다^^

근대사에 대한 발제를 이런 식으로 해볼까 합니다. 많은 분들의 지식과 지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근현대사는 주요연구분야가 아니라, 모자란 부분이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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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관
24/03/17 19:0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supernova
10/01/11 13:36
수정 아이콘
아 역시 좋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

저도 개화파와 친일파는 구분해야한다고 봅니다

저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의 고민과 갈등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겁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은 그들의 고민과 해결방법을 제대로 기록하고
또 평가를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로랑보두앵
10/01/11 13:50
수정 아이콘
와 정신없이 읽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중고등학교때 근현대사책 펼치고 참 무미건조하게 외우기만 했던게 조금은 부끄러워지네요 ㅠ
벤카슬러
10/01/11 13:54
수정 아이콘
예전에 친일파라는 말이 모호하니 '반민족행위자'라는 용어로 고치자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 이후 '반민족행위자'가 보편화되지 않더군요.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다카키 마사오, 서정주, 김성수, 방응모... 이런 사람들은 '친일 반민족행위자'가 되었겠지요.

저도 개화파와 친일파는 구분해야한다고 봅니다 (2)
일단 선리플 달고, 집에가서 후감상 하겠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두미키
10/01/11 13:56
수정 아이콘
글 읽다가.. 혹시 하고 글쓴이를 보니 역시..군요...
좋은 글 감사 합니다.. 知日과 克日, 親日은 구분되어야 하죠..... 우리나라의 잘못 끼워진 단추........
10/01/11 13:58
수정 아이콘
역시.
10/01/11 14:15
수정 아이콘
아무생각없이 클릭한 글에 이런 고 퀄리티는 뭔가요.... 이래서 PGR은 못 끊나 봅니다. ㅠㅠ
10/01/11 14:23
수정 아이콘
역시. (2)
Je ne sais quoi
10/01/11 14:24
수정 아이콘
역시 좋은 글입니다. 저렇게 자세한 내막까지는 몰랐지만, 항상 명성왕후가 쓸데없이 높여진다고만 생각했던 제게는 역시나라는 깨달음이 오는군요.
10/01/11 14:30
수정 아이콘
역시. (3)
여자예비역
10/01/11 15:06
수정 아이콘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글쓴분아이디가 더 반갑기도 했구요..
하늘나라의 김옥균이여...(2)
10/01/11 16:5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0/01/11 17:13
수정 아이콘
근현대사가 주요 연구분야가 아니시면 도대체 어느 영역이 .. 풀썩
제리와 톰
10/01/11 17:25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시 한 번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기를 부탁드립니다.
10/01/11 18:12
수정 아이콘
제가 계절학기 시험공부하는 부분이군요-_-;; 덕분에 막힘없이 술술 읽었네요..
10/01/11 22:48
수정 아이콘
하루 날 잡아서 이분을 납치한 다음에 역사 강의를 20시간쯤 받고 싶은...
10/01/12 15:18
수정 아이콘
이제서야 글을 봤네요. 항상 happyend님의 글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워갑니다.
10/01/12 17:1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10/01/12 17:20
수정 아이콘
OrBef2님// 전 이분 잡아다가 이런 소재로 이렇게 맛깔나게 글을 쓰는 그 재주에 대해 강의를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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