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의 선수생활중 전 경기에 가까이 출장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 해는 5, 6번에 지나지 않고 남은 기간동안은 극히 부진한 모습을 보인 선수입니다.
그러나 2번이나 홈런부문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1번의 타점부문 타이틀 수상, 4번의 골든글러브와 1번의 정규시즌 MVP를 받아낸 선수.
아직까지 2루수로서는 유일하게 홈런부문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역대 최고의 2루수 논쟁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선수입니다.
삼성라이온즈의 김성래.
1980년대 장효조, 이만수와 함께 공포의 타선을 이루었으며 1990년대 초반에는 강기웅, 양준혁과 함께 극강의 타선을 이루어낸 선수.
이만수, 양준혁등의 선수와 비교해 볼때면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지도 못했으며 몇해 반짝하고 더 오랜 기간동안 수그러들었지만 그의 17년에 걸친 선수생활은 그에게는 극도의 고난과 재기를 향한 노력의 세월이었습니다.
비록 2번이나 홈런부문 타이틀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수, 장종훈, 이승엽등의 전설적인 홈런타자들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져보이기는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서는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자리잡은 선수.
약소하나마 그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961년 12월 3일에 태어난 김성래. 고교야구에서 명문팀으로 손꼽히는 경북고를 다녔으며 연세대를 졸업했습니다.
180대에 달하는 큰 키, 그리고 큰 키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수비동작을 보유했던 김성래는 소속팀의 주전 내야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1984년 삼성라이온즈의 1차지명을 받고 프로무대에 처음으로 올라온 김성래.
그러나 내우외환이 겹치며 김성래는 팀에서 원하던 모습에 훨씬 못미치는 성적을 내고 맙니다.
1984 김성래 : 39경기 출장, 타율 0.186, 출루율 0.290, 장타율 0.271, 70타석 59타수, 11안타, 1홈런, 3타점
소속팀 삼성라이온즈는 김시진과 재일교포 김일융으로 이루어지는 원투펀치, 장효조와 이만수, 장태수, 오대석등이 버티고 있는 타선을 바탕으로 손쉽게 전기리그를 휩쓸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자신들이 부정승부까지 벌여가며 선택한 롯데자이언츠와 경기를 갖지만 롯데자이언츠의 초특급 투수 최동원이 경이로울 정도의 내구력을 바탕으로 4승을 일구어냈고 마지막 7차전에 1할의 빈타에 시달리던 유두열이 김일융을 상대로 결승 3점 홈런을 때려내는바람에 3 : 4로 패배하게 됩니다.
김성래는 이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에 출장했지만 2타석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습니다. - 모두 삼진아웃 -
1985년, 삼성의 김영덕 감독은 김성래에게 유격수 대신 2루수로 보직을 옮길 것을 권했고 유격수 자리에는 오대석이 단단히 자리를 잡은 상황이라 김성래는 순순히 2루수로 보직을 옮깁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년간 김성래는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거침없는 활약을 보입니다.
큰 키를 활용한 점프캐치로 웬만한 내야수는 걷어낼 수 없는 안타성 타구를 잡아냈으며 깔끔한 수비동작으로 2루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방망이 실력도 아마시절때로 돌아오며 삼성의 차기 중심타자를 예약했습니다.
1985 김성래 : 103경기 출장, 타율 0.283, 출루율 0.390, 장타율 0.467, OPS : 0.857, 359타석 300타수, 85안타, 2루타 16개, 13홈런, 51타점, 40득점, 41볼넷, 몸에 맞는 공 13개, 고의사구 1개, 5도루
타율 14위, 출루율 6위, 장타율 8위, OPS 7위, 최다 타석 26위, 최다 타수 30위, 최다 안타 24위, 최다 2루타 16위, 홈런 7위, 타점 8위, 득점 23위, 볼넷 15위, 몸에 맞는 공 3위, 고의사구 15위
1985년은 삼성라이온즈가 전후기리그를 휩쓸었기 때문에 김성래의 포스트시즌 기록은 존재하고 싶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해에 김성래는 청보핀토스의 정구선에게 밀려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에는 실패합니다.
1986년, 일단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김성래는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홈런 수는 작년에 비해 조금 줄어들었지만......
1986 김성래 : 102경기 출장, 타율 0.288, 출루율 0.362, 장타율 0.427, 391타석 344타수, 99안타, 8홈런, 48타점
삼성라이온즈도 거침없이 질주하며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플레이오프에서 후기리그 1위팀 OB베어즈와 격돌, OB베어즈를 3 : 2로 꺾으며 전후기리그 모두 2위를 차지한 해태타이거즈와 한국시리즈를 벌이게 됩니다.
"가을까치" 김정수의 공에 눌리며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1 : 4로 패배, 준우승에 머무르게 됩니다.
김성래는 플레이오프에서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533, 출루율 0.563, 장타율 0.667, OPS : 1.229를 기록하는 불방망이를 휘둘렀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전경기에 출장, 타율 0.399, 7안타, 3홈런, 5타점, 5득점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보입니다.
특히 이 해에 평균 자책점 0.99, 24승, 214삼진을 기록한 선동렬을 상대로 1차전 7회초에 선제 2점 홈런을 때려내는 활약을 보이며 이 한국시리즈에서는 선동렬의 천적으로 군림했습니다. - 이외에도 3차전 1회말에는 이상윤을 상대로 선제 2점 홈런을 때려냈고 4차전 8회말에도 솔로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
김성래는 3년동안 연속해서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정구선을 제치고 처음으로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게 됩니다.
1987년, 장효조 - 이만수와 함께 공포의 중심타선을 형성한 김성래.
타율 0.387이라는 기록적인 타율로 4번째 수위타자에 오른 장효조, 타율 0.344, 18홈런, 76타점을 기록하며 4번째로 타점부문 타이틀을 차지한 이만수와 더불어 김성래는 타율 0.332, 22홈런, 70타점을 기록했고 처음으로 홈런부문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김성래가 1987년에 홈런부문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로 아직까지 2루수가 홈런부문 타이틀을 차지한 경우는 없습니다.
1987 김성래 : 99경기 출장, 타율 0.332, 출루율 0.413, 장타율 0.569, OPS : 0.982, 385타석 334타수, 111안타, 2루타 11개, 3루타 1개, 22홈런, 70타점, 59득점, 45볼넷, 몸에 맞는 공 3개, 고의사구 3개, 2도루
타율 4위, 출루율 3위, 장타율 2위, OPS 2위, 최다 타석 20위, 최다 타수 22위, 최다 안타 8위, 홈런 1위, 타점 3위, 득점 2위, 볼넷 9위, 몸에 맞는 공 27위, 고의사구 10위
김성래는 화려한 성적에 힘입어 이 해에도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합니다.
삼성라이온즈는 팀타율 3할을 기록한 공포의 팀 타선과 23승을 기록한 에이스 김시진을 앞세워 전후기리그 모두 1위를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 1985년에 삼성라이온즈가 전후기 통합 1위를 하면서 통합우승을 했기 때문에 규정이 1986년에 바뀌었습니다. -
한국시리즈에서 해태타이거즈와 재격돌했으나 또다시 해태에게 0 : 4로 패배,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무르고 맙니다.
김성래는 전경기에 출장했지만 타율 0.118, 출루율 0.118, 장타율 0.118을 기록하며 극히 부진한 모습을 보입니다.
1988년, 작년에 비해 홈런 수는 줄어들었지만 더욱 정교한 타격솜씨를 보이며 수위타자 경쟁에 뛰어들어 확실히 삼성의 중심타자로 자리매김한 김성래. 그러나 시즌 막바지 해태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2루 수비를 보다 김성한과 충돌하며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그대로 시즌 아웃.
1988 김성래 : 96경기 출장, 타율 0.350, 출루율 0.459, 장타율 0.516, OPS : 0.975, 386타석 314타수, 110안타, 2루타 18개, 3루타 2개, 10홈런, 54타점, 54득점, 58볼넷, 몸에 맞는 공 7개, 고의사구 2개, 7도루
타율 2위, 출루율 1위, 장타율 5위, OPS 2위, 최다 타석 15위, 최다 타수 23위, 최다 안타 8위, 최다 2루타 8위, 최다 3루타 22위, 홈런 13위, 타점 10위, 득점 8위, 볼넷 1위, 몸에 맞는 공 7위, 고의사구 11위
삼성라이온즈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빙그레이글스에게 0 : 3으로 패배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시즌아웃된 김성래는 당연히 플레이오프에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성래는 이 해에도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3년연속으로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합니다.
이제 김성래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1989년에는 강기웅이 입단하면서 2루수의 자리도 위협받은 김성래 - 게다가 강기웅은 1987년에 입단한 류중일과 함께 역대 최고의 콤비라는 명성을 얻습니다. - , 결국 재활을 병행하며 팀에서는 간간히 대타로나 출장하는 정도로만 활용됩니다.
1989 김성래 : 39경기 출장, 타율 0.247, 출루율 0.314, 장타율 0.364, 87타석 77타수, 19안타, 2홈런, 13타점
1990 김성래 : 54경기 출장, 타율 0.199, 출루율 0.302, 장타율 0.348, 164타석 141타수, 28안타, 6홈런, 20타점
1991 김성래 : 30경기 출장, 타율 0.157, 출루율 0.328, 장타율 0.353, 68타석 51타수, 8안타, 3홈런, 5타점
부상이후 3년간 김성래가 거둔 성적입니다. 몇년간 리그 정상급 2루수로 활약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시절 김성래가 포스트시즌에서 활약한 기록은 198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에 출장, 타율 0.333, 출루율 0.429, 장타율 0.333, 2안타, 1득점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수술을 받고 재활에 성공한 김성래. 나이도 30대 초반에 접어들었고 2루수에는 강기웅이 완전히 안착했기 때문에 2루수에서 1루수로 보직을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1992년, 많은 경기에는 출장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재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992 김성래 : 86경기 출장, 타율 0.292, 출루율 0.392, 장타율 0.496, 266타석 226타수, 66안타, 11홈런, 50타점
삼성라이온즈는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롯데자이언츠의 염종석과 박동희에게 완봉패를 당하며 0 : 2로 패배,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김성래는 2경기에 출장, 타율 0.143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3년, 김성래는 드디어 부활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예전의 정확성과 파괴력을 되찾았고 신인 양준혁과 주전 1루수 자리를 양분했습니다.
강기웅, 양준혁과 함께 새로운 중심타선을 꾸려나갔으며 상대 투수들을 압살하기 시작했습니다.
1993 김성래 : 124경기 출장, 타율 0.300, 출루율 0.395, 장타율 0.544, OPS : 0.939, 521타석 436타수, 131안타, 2루타 18개, 3루타 2개, 28홈런, 91타점, 64득점, 69볼넷, 몸에 맞는 공 5개, 3도루
타율 5위, 출루율 3위, 장타율 2위, OPS 2위, 최다 타석 4위, 최다 타수 6위, 최다 안타 3위, 최다 2루타 13위, 최다 3루타 24위, 홈런 1위, 타점 1위, 득점 4위, 볼넷 2위, 몸에 맞는 공 23위
그리고 빙그레의 장종훈이 무릎부상을 당하며 시작된 홈런부문 춘추전국시대에서 후배 양준혁을 제치고 1987년에 이어 2번째로 홈런부문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후배 양준혁을 제치고 타점부문 타이틀도 가져갔습니다.
게다가 해태타이거즈의 선동렬을 제치고 정규리그 MVP까지 차지했으며 1루수부문 골든글러브도 수상하게 됩니다.
삼성라이온즈는 리빌딩을 끝낸 타선과 김상엽, 박충식, 김태한, 성준이라는 투수들을 앞세워 정규리그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LG트윈스를 3 : 2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김성래는 전경기에 출장, 타율 0.214, 출루율 0.421, 장타율 0.357을 기록했으며 3안타, 2득점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해태타이거즈와 격돌, 숨막히는 혈전끝에 결국 2 : 4 - 그리고 1무승부 - 로 아쉽게 패배하고 맙니다.
김성래는 전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59, 출루율 0.323, 장타율 0.370을 기록했으며 7안타, 1홈런, 3타점, 3득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7회초에 2점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1994년, 시즌 전반기까지만 해도 김성래는 리그를 호령하는 강타자로 활약했지만 또다시 허벅지에 부상이 찾아오면서 주춤하게 됩니다.
1994 김성래 : 105경기 출장, 타율 0.246, 출루율 0.395, 장타율 0.442, 349타석 276타수, 68안타, 14홈런, 43타점, 3도루
그리고 다시한번 김성래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미 나이도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재기할 확률도 낮았던 상황이었습니다.
1995년과 1996년, 계속해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995 김성래 : 44경기 출장, 타율 0.258, 출루율 0.345, 장타율 0.363, 144타석 124타수, 32안타, 3홈런, 17타점
1996 김성래 : 22경기 출장, 타율 0.162, 출루율 0.262, 장타율 0.297, 42타석 37타수, 6안타, 1홈런, 3타점
1997년, 그는 13년간 입었던 삼성유니폼을 벗고 쌍방울레이더스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100경기 가까이 출장하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7 김성래 : 99경기 출장, 타율 0.256, 출루율 0.348, 장타율 0.410, 325타석 266타수, 68안타, 9홈런, 45타점
소속팀 쌍방울레이더스는 작년의 돌풍을 그대로 이어가며 3위에 올랐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삼성라이온즈와 혈투끝에 1 : 2로 패배,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김성래는 전경기에 출장해 타율 0.167, 출루율 0.231, 장타율 0.167, 2안타, 1도루를 기록했습니다.
1998년, 역시 나이로 인한 노쇠화때문인지 김성래는 작년에 비해 주춤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8 김성래 : 93경기 출장, 타율 0.231, 출루율 0.314, 장타율 0.378, 281타석 238타수, 55안타, 5홈런, 26타점
1999년, 그나마 자신의 소속팀 쌍방울레이더스는 자금난으로 인해 이미 작년부터 선수들을 팔아 팀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 해에는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려고 했습니다.
이런 암담한 상황속에서 김성래는 이동수, 조원우, 최태원등과 함께 무너져가는 팀을 떠받들려 했습니다.
1999 김성래 : 113경기 출장, 타율 0.272, 출루율 0.363, 장타율 0.405, 401타석 346타수, 94안타, 9홈런, 48타점, 1도루
2000년, 결국 소속팀 쌍방울레이더스는 해체되었고 그 빈자리를 대신해 신생팀 SK와이번스가 들어섰습니다.
이미 나이가 30대 후반이던 김성래는 백업으로나 이름을 올리는 상황이었습니다.
2000 김성래 : 29경기 출장, 타율 0.266, 출루율 0.373, 장타율 0.359, 75타석 64타수, 17안타, 2홈런, 8타점
그리고 2000년 정규리그가 끝난 후 , 김성래는 팀에서 방출당했고 이로써 17년간에 걸친 선수생활도 막을 내렸습니다.
김성래가 남긴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통산 1277경기 출장, 타율 0.277, 출루율 0.376(23위), 장타율 0.451, OPS : 0.827, 4314타석, 3633타수, 1008안타, 2루타 170개, 3루타 10개, 147홈런(28위), 1639루타, 595타점, 490득점, 502볼넷, 몸에 맞는 공 95개(18위), 고의사구 20개, 24도루, 희생타 44개, 희생플라이 39개, 실책 89개
2번의 홈런왕과 1번의 타점왕, 3번의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와 1번의 1루수부문 골든글러브, 그리고 1번의 정규리그 MVP
포스트시즌과 올스타전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 6번 모두 동군으로 참가(그리고 1985년은 올스타전을 3번 가졌습니다.) -
포스트시즌
36경기 출장, 타율 0.271, 출루율 0.351, 장타율 0.415, OPS : 0.766, 137타석 118타수, 32안타, 4홈런, 8타점, 13득점, 13볼넷, 2도루
올스타전
8경기 출장, 타율 0.227, 출루율 0.346, 장타율 0.227, OPS : 0.573, 26타석 22타수, 5안타, 0홈런, 1타점, 2득점, 3볼넷
17년간의 선수생활중 좋은 모습을 보인적이 얼마 없었고 팬들의 눈에는 꾸준하지 못한 선수로 보였지만 그가 부진에 빠진 시간은 김성래 자신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고난과 재활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활에 성공하여 다시한번 찬란한 선수생활을 보냈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김성래라는 이름은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는 않은 대나무같은 기백을 우리에게 선물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