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베르나르님 글 읽다가 리플로 쓰려던 글이 길어저서 & 다른 이야기도 생각나서 글 올립니다.
살다가보면 애정이 남아서 버릴 수 없는, 그리고 집착이 남아서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 존재하죠?
그런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아니 두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우선 애정이 남아서 버릴 수 없는 물건.
아래 베르나르님 글에 남긴 리플에 살짝 언급되어 있지만 전 지갑 하나를 10년 + 대략 3년 정도 계속 쓰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시절 저희 외삼촌이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그걸 어떤 사람이 주워서 경찰서에 가져다 줬습니다.
외삼촌은 주소지가 저희 집으로 되어있던 터라 지갑은 저희 어머니가 받으셨고
외삼촌에게 잃어버린 지갑은 다시 쓰면 안 좋으니까 그냥 진릉이 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려받은 지갑.
5년 가량 잃어버리지 않고 썼습니다. 대학을 가도 군대를 가도 그 지갑과 함께 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정말 가고싶던 통영으로의 네번째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만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행 경비로 사용할 10만원 가량의 돈은 물론이고 휴가증까지 들어있던 지갑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경찰서에까지 들어가서 지갑 분실 신고를 했습니다.
어찌어찌 나눠서 보관한 남은 돈으로 하루 통영에서 지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자
어머니께서 통영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지갑을 발견한 분이 있고, 지갑을 찾으러 오기 어렵다면 배송까지 해주겠다고 했답니다.
지갑을 받지 못하고 복귀해서 휴가증 없이 복귀했다는 것에 가깝게 지내던 부소대장님께 약간의 핀잔도 들었지만,
다음 휴가를 나와서 등기 봉투에 들어있는 지갑을 보니 제가 이 지갑과 떨어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안에 들어있던 10만원 이상의 현금도 그대로 들어있었습니다.
통영 경찰서에 연락해보니 습득하신 분의 연락처는 없지만
통영 시내 서호시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셨고,
안에 들어있던 휴가증을 보고 큰일이다 생각하여 빨리 전달해주길 원하셨다고 하십니다.
지갑도 그렇지만 통영이란 도시에 한층 더 애착을 가지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누군가 여행지를 물어보면 더욱 더 통영을 추천하고,
언젠가 살고싶은 도시로 항상 통영을 이야기 하곤 합니다.
이후 7년이 넘게 그 지갑은 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검은색 가죽으로 된 그 MOOK라는 예전에 나름 유명했던 브랜드의 지갑은
이제 장마철에는 파란색 곰팡이가 슬고, 모서리는 헤져서 실밥이 날립니다.
가끔 지갑을 들고있을때면 너덜너덜한 지갑에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일하고 있는 곳이 지갑도 취급하는, 게다가 직원에게는 원가에 제공하는 쇼핑몰이라
다른 지갑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도 굉장히 많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네요. ^^;
그리고 집착이 남아서 버릴 수 없는 물건.
딱 4년 전입니다.
25년간 수련하며 대마법사의 길을 걷고있던 저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었습니다.
'빼빼로 데이 따위 13년(지금은 17년. ㅠ.ㅠ) 동안 우승 못하는 야구팀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노린 상술일 뿐이야!'
라고 생각하던 저에게 맥삐날드가 더 맛있지만 롯삐리아를 가끔 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게 한 사람....인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고마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
제가 너무 서툴었던 점이 많아서 결국 헤어지게 되었지만,
그당시 받았던 빼빼로가 들어있던 병과 선물들과 편지들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지금 그녀를 다시 만난다 해도 다시 만난다던가 하는 말을 할 마음도 없고, 할 자신도 아직 없습니다.
그저 흘러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면서 가끔씩 펼쳐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조금 더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네요.
얼마 전 2년 전 받았던 마지막 발렌타인 데이 선물에서 벌레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단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포장 안에 초콜렛이 대부분 남아 있었는데 거기서 벌레가 나오더군요.
더 고민하지 않고 통째로 쓰레기 봉투에 넣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소중한 추억이라도, 그 기억이 담긴 물건이라도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나쁘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놀랐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이렇게 썩어버리기 전에 버려야 할 추억이기도 할겁니다.
언젠간 지갑도 바꿔야 할것이고,
소중한 추억의 물건들도 이번처럼 버려야 할 날이 오겠죠.
그러나 언제나 추억 할 수 있는 이런 소중한 물건들이 있었다는건
힘든 시간에 절 웃음짓게 할 수 있는, 돌아볼 수 있는 기억으로 남을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물건들이 있나요?
ps. 고백 받은 날 한참 금연하던 담배를 다시 사러가던 밤길에서 들었던 노래가 윤하의 일본 앨범 중 '願いはひとつ'라는 곡입니다.
저야 추억 속에 남은 곡이라 그렇게 느낄지 몰라도 좋은 곡이니 한번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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