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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1/10 18:57:20
Name 디미네이트
Subject [일반] [바둑] PGR 바둑 이야기 : 대회 개최 공지 및 복귀 기념 연재 - 명제로 살펴보는 포석의 기초 제1회
  
  **리스타트가 예정보다도 많이 늦어졌네요. 이렇게 공(空)약을 남발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요즘 제가 하는 일이 다 좀 그렇네요.;; 아무튼 따스하게 맞이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PGR 바둑 이야기배 방내기룰 바둑 대회

   현재 세부 룰은 아직 확정 짓지를 못했으나, 일단 오늘부터 참가자 신청을 받기 시작하여 일요일에 참가자 신청을 마감하면서 세부 룰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회는 타이젬에서 치루어질 예정이며, 급 리그/단 리그로 구분 해서, 스위스리그 식으로 4라운드를 3판 2선승제 방내기 게임으로 진행한 다음, 누적 집 수의 포인트가 가장 많은 4인을 뽑아 준결승, 결승, 3, 4위전을 치러 1, 2, 3위를 가릴 예정입니다. 각 리그 1위에겐 '우승의 영예'와 함께 문화 상품권 만원권, 2위에겐 문화 상품권 2만원권, 그리고 3위에겐 문화상품권 5천원권을 드리고자 합니다(미리 말씀드리지만, 절대로 오타가 아닙니다). 기력 차이는 접바둑 식이 아닌 몇십 집 역덤을 주는 형태로 핸디캡을 조절할 것입니다.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께선 저에게 쪽지로 (닉네임, 타이젬 ID, 기력)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번 대회에 참가하셨던 분들께는 약간 어드밴티지를 드릴 예정이니 그분들은 지난번 대회 참가했단 사실도 써주시기 바랍니다. 기력 쓰실 때, 양심에 호소하는 바, 위로 뻥튀기 하시는 건 상관없으나, 아래로는 낮추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참가 신청은 이번 주 일요일 자정까지입니다. 그럼 많은 참여부탁드립니다.


복귀 기념 연재: 명제로 살펴보는 포석의 기초 - 제1회

1. 서론
        타자를 치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아, 내가 터무니없는 짓을 하겠다고 나섰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초 포석에 대해서 논하겠다니. 이미 프로들이 쓴 혹은 프로의 이름을 빌린 수많은 기초 포석 책들이 전국의 서점 선반 위에서 먼지만 소복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발에 채이는 게 이런 종류의 책이죠. 그런데 고작 타이젬에서 1단 밖에 안 되는 제가 그런 나름 권위를 갖춘 책보다 더 잘 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걸 PGR 정모다 뭐다해서 지난주 월요일 오후 느즈막이 집에 돌아오고, 이틀 만에 정리해서 내겠다고 했으니(결국 그보다 훨씬 더 걸렸고), 이거야 원 허풍도 이런 허풍이 없습니다. 결국 시간 약속은 다 어기고서는 아직도 마무리를 짓지 못한 상태에서 연재 형태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걸 쓰겠다고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구상을 세운 건 제법 오래 전이었습니다. 기존의 바둑을 가르치는 방식은 말하자면 주입식 교육법이었습니다. ‘이 모양이 좋으니 이렇게 둬라’, ‘행마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좋다’. 물론 나름 그렇게 둬야할 이유는 있습니다. ‘일립이전, 이립삼전’이 어쩌고, ‘공격은 날일자로’가 저쩌고, 대부분 격언과 그 격언에 맞는 사례들을 근거로 한 설명들이죠. 물론 수많은 예외가 존재하는 격언들이긴 해도, 전반적으로 볼 때 특별히 틀린 말들은 없고 실제 바둑을 둘 때는 어떻게 두어야할 것인가의 지침이 되어줍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게 편합니다. 저도 이렇게 쓰라고 하면 프로급으로 쓸 자신 있습니다. 프로들이 쓴 책을 짜깁기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격언에 기반을 둔 설명들은 궁극적인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이비로 다니긴 해도 명색이 수학과인지라, 이런 격언들을 근거로 한 귀납적인 접근보다는 좀 더 돌에 관한 공리와 논리로 구성된 연역적인 이론 체계가 더 취향에 맞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한 딱딱 떨어지는 듯한 이론은 현재 바둑에선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둑은 부분적으로는 논리가 지배해도 결국 전국적으로는 감각이 좌우하는 게임입니다. 바둑의 형세란 것은 단순히 집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부분의 내 돌이 강하고 어느 부분이 약한가, 내 돌이 갖춘 모양은 얼마나 반상의 다른 부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 등 딱 떨어지게 수치화할 수 없는 많은 요소를 감안하여 판단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한 부분에서 이득을 봤는데도 바둑판 전체의 형세로 놓고 보면 오히려 손해가 되는, 마치 경제학에서 short term과 long term의 차이가 연상되는 그런 장면은 바둑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정확히 판단해내는 감각, 그것을 연역적으로 이론화한다는 것은 참 어렵겠죠.


        그러나 바둑에서의 논리와 감각은 별개의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각이란 것은 수 천 년동안 수십억에 가까울지도 모를 바둑을 사람들이 두어오면서 귀납적으로 형성된 것인데, 그것을 형성하는 과정에는 분명 돌과 돌이 얽혔을 때의 논리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19 곱하기 19라는 한정되었음에도 무한한 변수를 가진 반상의 불확실성에 의해 그 연결 고리가 우리에게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라고 봅니다.


        그 희미한 연결 고리의 단편들을 모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어렴풋이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왔던 내용들을 이렇게 글로 구체화하려고 합니다. 돌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공리에서 기초적인 포석 이론이 어떻게 유도되는가. 그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전개를 쓰면서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 머릿속을 정리해서 글로 구체화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그리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왜 이런 글을 바둑 전문 사이트가 아닌 바둑 불모지 PGR에서 쓰는가? 물론 바둑을 잘 아는 사람에게 검증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고 있는가를 확인해보고 싶달까요. 길 가던 사람을 붙잡고 설명해줘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수준쯤은 되어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저 스스로가 이해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길 가던 사람을 붙잡아 시간을 뺏을 순 없으니(자칫하면 한 대 맞을지도 모르니), PGR에 뜬금없이 글을 던져서 희생자를 찾아보려는 겁니다.;;


        또한 지난번 바둑 기본 룰 설명에 관한 글에 대한 댓글이나 개인적인 쪽지로 기초 포석에 관한 요청을 몇몇 받았는데, 그분들을 위한 강좌인 척하면서 초장문의 희생양으로 삼기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나은 점은 이번엔 글을 미처 완성 못해 연재 형식으로 나가니, 지난번 같은 극악 분량을 갑자기 떠안게 되시진 않을 거란 점입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의 반 정도 쓴 것 같은 지금 현재 대략 20페이지 정도 썼으니, 완성되고 나면 결국 엄청난 분량을 떠안게 되실 거라고 봅니다.^^ 지난번에 글만 24페이지 쓰고 뒷부분이 잘려나간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글도 완성하고 올렸다간 뒷부분이 대거 잘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게 뻔하니, 이유야 어찌됐든 연재 형식으로 전환하기로 한 건 잘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GR 바둑 이야기는 당초 예정보다 많이 늦었지만, 컴백 기념으로 기초 포석 연재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현재 생각하기로는 크게 세 파트에 걸쳐서 돌의 영향력, 돌의 근거, 돌의 능률에 관련한 이야기를 해나갈 생각입니다만, 중간에 쓰다가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삼천포로 빠지는 바람에 분량이 더 불어날 수도 있겠습니다(지금도 약간 그런 문제로 막혀있는 상황입니다). 어찌되었든 이번 주 그리고 어쩌면 다음 주까지는 원래 연재하던 내용이 아니라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고수 분들께선 너무 당연한 내용들이라 재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름 조금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지라 부족한 점 지적해주시면 좋겠고, 기존의 바둑을 알던 다른 분들께는 포석에 대한 새로이 정리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으며, 왕초보자 분들께는 바둑의 감각으로 설명되는 부분들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왠지 하수의 어줍잖은 개똥철학식 접근이고, 정리는 하나도 안 되었으며, 나만 알기 쉬운 글이 될까봐 두렵습니다. 아무튼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2. 공리

        우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지난번에 쓴 바둑의 기본 룰에 관한 글, ‘바둑을 두지 않고 바둑을 즐기는 법 - 바둑을 모르는 분들을 위한 바둑 강좌’를 읽으신 분으로 가정합니다. 우리가 이론 구성의 기점으로 둘 이른바 ‘공리(Axiom)'는 거기에 적힌 바둑의 규칙과 거기서 파생된 기본적인 내용들입니다.


        잠깐 요약해보겠습니다.


          가. 착수 교대의 규칙 - 흑백이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둔다.

          나. 활로의 규칙 - 돌의 활로가 모두 막히면 죽는다.
                ** 단수, 돌을 잡는 법/살리는 법, 착수 금지, 완생 등을 유도.

          다. 패의 규칙 - 패 모양은 상대가 따낸 뒤 바로 되따낼 수 없다.

          라. 승패 결정의 규칙 - 바둑판 위에 살아있는 돌이 많은 쪽이 이긴다.
                ** 집의 개념 및 중요성을 유도.


        이 중 패의 규칙은 우리가 다룰 내용에서는 크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대부분의 내용들은 나와 라에 근거하여 유도 될 것입니다.


        사실 단순히 규칙만 알아서는 이 글 내용이 이해 못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말을 통해서 증명을 펼치고자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실제 수순을 통해서 증명을 해야 할 부분은 빠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돌과 돌이 얽혀서 생기는 과정은 규칙을 단순히 아는 것보다는 좀 더 익숙해져야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란 점이 이 글을 이해하는 데에 장애가 될 듯합니다.


        ‘어떤 돌이 사실상 잡혀있다’라고 이야기를 할 때, 설령 그게 세 수 이내에 결판나는 간단한 모양이더라도(프로들은 2~30수 앞까지 읽어서 ‘사실상 잡혀있다’라는 판단을 내릴 때도 있지만), 이 돌이 왜 살아서 도망갈 수 없는지 이해하는 건 PGR 바둑 이야기에서 부족하게나마 다루어왔던 초보자 코너, 혹은 적어도 돌을 잡는 놀이 Capture game이라도 여러 판 접해보셔서 룰에 많이 익숙해지셔야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에 올린 초보자 강좌보다는 더 많은 걸 알고 있어야하죠.


        그러나 이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은 본격적으로 바둑을 두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셔서 그 이후 바둑에 대해 조금은 더 접해보신 분들 혹은 그 이상임을 가정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설령 그런 분들이 아니더라도 복잡해 보이는 수순만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 주신다면 기본적인 로직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 점을 목표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거니까요.


        기본 규칙 외에 또 알아두실 것은 바둑판 위에서의 위치상의 명칭들입니다. 귀, 변, 중앙 이런 단어들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번 명확히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림 0> 귀, 변, 중앙


        사실 귀, 변 중앙의 경계선은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몇 줄까지 귀고, 어디서부터 몇 줄까지 변이고, 중앙이라 부르자, 뭐 이런 게 없습니다. 그냥 모퉁이에 가까우면 귀, 모서리에 가까우면 변, 한복판이면 중앙,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일러둘 것은 여기서 대부분 다루는 케이스는 ‘주변에 다른 돌은 하나도 없음’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상황의 대부분이 주변에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돌이 있으면 결과가 확 달라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변수들을 단순화해서 일반적인 이론을 다루고자 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니, 그런 세세한 상황의 변화들까진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물론 다 다루려고 해도 다룰 수 없고요. 그게 바둑이 어려운 이유죠). 경제학에서 곧잘 가정하는 ceteris paribus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달라질 때 결과도 확 달라진다면 이론이 소용이 없는 게 아니냐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바둑의 일반적인 이론들은 어떤 수를 둬야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단초를 마련해줍니다. 예를 들어 뒤에서 설명하게 될 ‘일립이전’이라는 것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수를 둬야할지 생각하는 것과, ‘일립이전’이라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주변 상황을 고려해서 어떤 수를 둬야할지 생각하는 것에는 수의 수준에서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바둑 격언이나 이론은 그것이 절대적이어서가 아니라, 주변 돌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반 상황에서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으면 실전의 복잡한 상황에서도 수를 찾아낼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란 걸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3. 포석 이론의 정리

    정리 1. 바둑판은 대칭이 아니다.

        첫 머리부터 웬 헛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네모반듯한 나무판 위에 가로 세로 19줄 올곧게 그어져 있는 바둑판을 보고 대칭이 아니라니.


  <그림 1> 이렇게 반듯한데...

        물론 형태상으로는 정확한 상하/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둑판 위에 게임이 시작되고 나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고스트 바둑왕을 보신 분은 초반부 에피소드 중에 ‘흉내 바둑’에 관한 게 있었던 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흉내바둑이 바로 ‘바둑판은 대칭이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전략입니다.


  <그림 2> 천원을 중심으로 한 점대칭

        바둑판 정중앙의 점이 찍힌 곳이 바로 ‘천원’입니다. 가치가 천원짜리라서 그런 게 아니라, 하늘의 근원이 되는 자리라서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바둑판의 모든 점은 이 천원에 대해서 점대칭을 이루는 페어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른쪽 위(바둑에서는 ‘우상’이라 부릅니다)의 A점은 왼쪽 아래(‘좌하’라고 부릅니다)의 A점과 대칭의 위치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좌상(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감을 잡으셨으리라 봅니다)의 B와 우하의 B와 대칭이고, C점끼리 역시 대칭 자리에 있습니다.


        흉내 바둑의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바둑은 착수 교대의 원칙이 작용하는 곳이다. 동시에 두 군데를 둘 수는 없다. 그런데 바둑판의 모든 점은 항상 천원에 대해 점대칭이 되는 점이 존재한다. 대칭이 되는 점은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둔 곳에 점대칭이 되는 곳을 두면 상대와 똑같이 형세를 맞춰나갈 수 있다.’


        물론 유일하게 한군데 대칭점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천원 그 자체죠. 천원은 바둑판 위의 쌍이 유일한 점입니다(180쌍의 커플들 사이의 유일한 솔로...). 만약 상대가 흉내 바둑을 두어온다면 나는 이 천원을 두어서 흉내를 그만 두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천원을 두면 상대는 흉내내서 둘 점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내가 흑이라면...



  <그림 3> 흑의 흉내 바둑

        맨 첫 수로 천원을 차지하면 대칭점이 존재하는 자리들만 남습니다. 그 다음부터 상대가 두는 점의 대칭되는 점만 챙기면 상대가 가져간 자리의 가치와 내가 가져간 자리의 가치는 똑같겠죠. 그런데 나는 천원에 한 수가 더 있습니다. 그러니 천원의 가치만큼 내가 앞서있는 셈입니다.


        듣고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이렇게 두면 프로와도 지지 않을 바둑을 둘 수 있을 것 같네요. 내가 흑 잡고 천원에 맨 첫 수를 둔 다음 프로가 둔 지점과 대칭되는 지점에 따라두면 되니까요. 그러면 난 항상 천원의 가치만큼 프로보다 앞선 형세를 지니게 됩니다. 어때요, 참 쉽죠?


        이게 됐으면 바둑이 수천 년 이어지지 않았겠죠. 흑을 잡는 쪽이 역전의 여지조차 없이 필승일 테니까요. 그러나 고스트 바둑왕 보신 분들은 실제로 흉내바둑이 응징당하는 가장 간단한 모양을 보셨을 겁니다.


  <그림 4> 흉내 바둑 응징법 101

        백1부터 흑18까지 백이 둔 자리에 점대칭 되는 자리를 뒀습니다. 그런데 백17 단계에서 흑 다섯 점이 단수가 걸린 게 보이십니까? 그 다음 흑이 18로 흉내 내서 백 넉 점을 단수 쳤는데, 다음 차례가 누구죠? 백입니다. 백은 다음 수인 19로 흑을 먼저 따낼 수 있습니다. 이 흑 다섯 점을 따낸 순간 흉내 바둑은 와해되는 겁니다.


  <그림 5> 20으로 따라뒀지만...

        19로 백이 흑 다섯 점을 따낸 뒤에 흑이 백19에 대칭 되는 자리인 20에 둬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백이 취한 흑 다섯 점의 이득을 흑20으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뭐, 실전에서 누가 바보 같이 저 수순을 따라가겠습니까. 하지만 저 수순이 존재하기 때문에 흑은 무턱대고 흉내 낼 수가 없는 겁니다. 즉, 백이 저 수순을 두기 시작하면 흑은 어쩔 수 없이 흉내를 그만두고 다른 곳을 두어야한다는 거죠. 따라서 흉내바둑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분명 흑은 백이 둔 곳과 대칭이 되는 곳을 두었습니다. 대칭이 되는 곳은 기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분명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을 텐데, 결국 손해는 흑이 봤네요. 바둑판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흉내바둑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모순이 나왔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우리가 가정한 내용이 틀렸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바둑판은 대칭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둑판 위에서 대칭이 되는 자리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간의 불균형을 창조하는 천원의 존재, 그리고 또 하나는 시간의 불균형을 창조하는 착수 교대의 원칙의 존재입니다.


        천원은 유일하게 대칭점이 존재하지 않는 곳, 달리 말하면 자기 혼자 솔로입니다. 기하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천원을 제외한 다른 점들은 자기 자신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대칭점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천원의 경우, 천원의 기하학적 가치를 대체할만한 점이 없습니다. 이는 바둑판 위에서 불균형을 창출해내게 됩니다. 흉내바둑의 경우에도 흑은 천원의 가치만큼 백보다 앞서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불균형입니다. 흑에게 유리한 불균형이긴 하지만,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언제든지 역전의 가능성을 시사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림 4>를 비롯한 여러 가지 흉내 바둑을 깨는 수순들이 이 역전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안티 흉내 바둑 수순들은 천원이라는 이 기하학적으로 대체할 곳이 없는 유일한 지점을 활용하는 수순입니다. 천원은 바둑의 어느 시점에서든 바둑판의 불균형을 보장해주는 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이 때문에 바둑판의 줄 수는 홀수로 발전해온 게 아닌가 감히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솔로 만세!


        또 하나 흉내바둑에서 간과했던 것은 착수 교대의 원칙입니다. 흑백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둔다는 것은 바둑이란 게임에 또 하나의 불균형을 부여합니다. 착수 교대에 의한 불균형이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게 바로 <그림 5>의 형태인데요, 백19와 흑20은 대칭 상에 있는 같은 위치지만, 백19는 돌을 따내는 행위고 흑20은 아무런 의미 없는 곳을 두는 행위, 둘은 서로 다른 행위입니다. 흑은 두 곳이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가정하고 바둑을 두어왔지만, 그것을 두는 시점, 즉 시간에 따라서 두 지점은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좀 더 넓게 보면 이것은 <그림 3>에서 두어진 모든 흉내 바둑 수순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그림 5>의 백19와 흑20만큼 명백하지 않을 뿐, 먼저 둔 수와 뒤따라 둔 수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흑이 1로 천원을 차지했을 때, 백은 2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흑이 뒤따라서 3을 둡니다. 그 다음 백4는 흑3까지 두어진 점들을 고려해서 결정된 자리입니다. 흑5는, 만약 흉내 바둑이 아니었다면, 백4까지 두어진 점들을 생각해서 결정했어야할 자리고요. 흑3까지 두어졌을 때의 바둑판의 상황과 백4까지 두어졌을 때의 바둑판의 상황은 서로 다른 상황입니다. 서로 다른 상황인데, 똑같은 위치가 답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만만찮게 많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바로 착수 교대의 원칙입니다. 내가 두었을 때의 상황과 그 다음 상대방이 두었을 때의 상황은 항상 한 수의 차이가 나고, 이 한 수의 차이는 그 한 수의 가치에 따라서 크고 작은 불균형을 계속 바둑판에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좋은 자리에 대칭 되는 자리가 반드시 내게 좋으란 법은 없는 거죠. 착수 교대의 원칙에 의해서 바둑판은 시시각각에 변화하는, 달리 말하면 시간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단순히 바둑판이라는 공간만을 바라보고 둔 흉내 바둑은 바둑판에서의 시간의 힘이 만들어낸 불균형을 간과해서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스타에서 초단위를 다투는 타이밍 싸움 같은 급박함은 없어도, 바둑 역시 누가 게임의 주도권을 잡아서 불균형을 리드할 것인가, 즉 선수를 놓고 싸우는 형태로 시간 싸움이 펼쳐지는 게임이었던 것입니다.


        여담입니다만, 흉내 바둑은 그래도 여전히 쓸 만한 전략입니다. 분명 쓸 만한 전략이지만, 아마추어들 사이에선 이것을 단순히 상대방의 수를 베끼는 비매너 행위로 생각해서 잘 나오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프로 기사들 사이에서라면 과거 일본에는 후지사와 호사이라는 프로 기사가 있었는데, 이 기사는 백을 잡았을 때 흉내 바둑에 능했습니다(이 자리에서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백도 흉내 바둑을 둘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흉내를 내는 쪽이 생각을 덜 해도 되니까 시간을 덜 쓸 거라고 여기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후지사와의 경우 항상 상대방보다 제한시간을 훨씬 많이 썼다는 점입니다. 흉내 바둑은 매 시점 상대의 수가 내게도 좋은 수인가 나쁜 수인가 판단해서 흉내를 계속 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해야했기 때문이죠.


        이렇게 대놓고 흉내 바둑만 줄창 두던 기사는 이제 없지만, 그래도 요즘에도 1년에 한 판 정도는 흉내 바둑이 나와서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비매너 논란을 달구기도 합니다. 흉내 바둑에 어떤 전략적 장점이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간 엄청난 삼천포로 빠질 테니, 단순히 기계적으로 상대가 둔 자리를 따라두는 게 아닌 시시각각 변화는 바둑판 위의 상황을 고려해서 어느 시점까지 흉내를 낼 것인가를 판단하면서 두는 흉내 바둑은 또 차원이 다르다라고만 언급해두겠습니다.


        정리하자면 단순히 형태만을 보고 대칭이라 생각했던 바둑판이 실제 게임 내에서는 한시도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아주 불안정한 존재라는 점, 이는 바둑이란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 성립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라고 보기에 이를 정리 1로 채택하고자 합니다.



    정리 2. 어떤 바둑돌이든 바둑판 위에서 영향력을 가진다.

        우리는 보통 모든 가능한 한 판의 바둑의 경우의 수는 단순히 365!가지(있어요, 399!의 그 느낌표가 아니라 팩토리얼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바둑판 위에 무작위로 돌을 놓는다면 그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여전히 착수 금지 규칙 등에 의해서 둘 수 없는 자리가 생기고, 또 패 등의 이유로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둘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365!보다 클지 작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둑판 위에 분명 존재하는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를 판단해서 둡니다. 흑이 두는 첫 수만 해도 요즘 프로 바둑에서는 거의 다음 두 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림 6> 누구든 프로의 첫 수는 50% 확률로 맞출 수 있다

        딱 A, B 저 두 곳입니다. 물론 세모로 표시된 다른 자리도 얼마든지 둘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자리들은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다크 아칸과도 같은 자리입니다(참고로 여기까지 썼을 당시 아직 저는 우정호 선수의 경기를 보지 않았었습니다.;). 입스타로야 얼마든지 장단점을 논할 수 있지만, 실제 플레이하기엔 최적화가 덜 된, 연구가 A, B에 비해 부족한 자리입니다. 가끔씩 저런 세모 자리들에 두는 경우엔 올드 팬들에게 옛날 향수를 부르기 위한 목적이던가, 아니면 뭔가 필살기성으로 연구해온 것이 있다는 의미죠.


        바둑판 위의 A, B의 대칭에 해당되는 자리에 두는 경우도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바둑의 예절상의 이유이긴 합니다. 흑은 첫 수를 둘 때 우상 쪽 자리에 놓아서, 백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가까운 쪽의 오른쪽 자리(흑의 입장에서는 좌상귀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어차피 다른 대칭되는 자리에 둔다고 해서 바둑이 크게 달라지진 않습니다. 바둑판을 상하좌우를 반전시킨다던지, 회전시키면 결국 우상에서부터 시작한 모양과 똑같은 모양이 나올 테니까요. 적어도 맨 첫 수에 한해서는 대칭되는 자리는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첫 수만 해도 365가지라는 수많은 가능성에서 2가지로 대폭 감소해버렸습니다. 그 다음 수는 어떨까요? 365 자리 중에서 흑이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364가지 중 하나일까요? 다음 상황을 고려해봅시다.


  <그림 7> 접근전

        흑이 1로 두니까 백이 2로 딱 붙여서 두어왔습니다. 초보자 바둑에서 자주 보입니다. 이렇게 붙이는 수의 목적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상대의 활로를 줄이겠다’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흑1의 돌의 활로를 줄여서 잡아보겠다란 뜻이죠. 실제로 흑1 돌의 활로는 세 개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백2의 돌의 활로를 세어보시죠. 역시 세 개밖에 안 남았습니다. 백이 흑의 활로를 줄임과 동시에 흑도 백의 활로를 줄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누구 차례인가? 흑의 차례입니다.


  <그림 8> 백의 활로를 줄일 수 있다

        흑3으로 백의 활로를 하나 더 줄인 모습입니다. 백의 활로는 두 개, 흑의 활로는 세 개, 이제 백의 차례이긴 하지만 백은 이 불리한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A로 자기 자신의 활로를 늘려야합니다. 그 이후에 발생할 변화는 다양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백에게 다소 불리한 결과가 나옵니다. 물론 이렇게 접근전을 펼쳐서 이득을 보는 상황도 있지만, 적어도 초반에는 이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자리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둘 이유가 없죠.


        비유를 하자면 자리 잡은 러커에 달려드는 마린 한 기와 같습니다. 미칠 듯한 컨트롤로 러커 한 기를 잡아내는 이득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마린이 불리한 상황이죠. 바둑에서 상대의 돌이 먼저 선점한 자리에 지나치게 붙여서 두지 않는 데에는 이러한 활로의 논리와 착수 교대의 규칙에 의해서 자리를 먼저 선점한 쪽이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테테전에서 시즈 탱크 먼저 박은 쪽이 유리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습니다. 자리를 선점한 돌은 단순히 365가지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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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10 19:29
수정 아이콘
여전히 대단한 글이군요.
감사의 말씀 먼저 드리고, 두고두고 읽겠습니다.
큐리스
09/11/10 19:36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한 번에 다 읽을 양은 아니군요... 한 1/5까지 읽다가 내렸습니다. 추후에 마저 다 읽도록 하겠습니다.
연재 복귀는 축하드리고요.
읽은 부분 중에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천원이 없고 가운데 구멍이 난 360칸이더라도 비슷한 방법을 쓰면 흉내바둑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천원의 특수성 때문인지는 좀 의문스러운데요.
디미네이트
09/11/10 19:43
수정 아이콘
큐리스님// 일단 당장 생각해봐도 그렇게 되면 천원에 있는 돌을 축머리로 활용해서 두는 몇몇 흉내바둑 파훼법들이 통하지 않을 것 같네요. 천원에 구멍을 뚫어서 그것을 마치 1선의 테두리 같은 역할로 만들어버린다면, 천원은 '중립 지역'이 돼버립니다. 천원에 누군가가 돌을 놓아서 자기 걸로 만드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생기겠죠.
물론 18X18의 짝수 바둑판이라면 천원 지점이 없고, 여기서도 흉내바둑은 성립하지 않는 수순이 있겠죠. 어쩌면 천원의 존재보다도 착수 교대의 원칙에 의한 시간의 불균형이 흉내바둑이 성립하지 않는 더 큰 요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둑판은 (착수 교대의 원칙에 의해서든, 천원의 존재에 의해서든) 항상 불균형한 존재다라는 논지 자체에는 크게 해가 안 가지 않나 싶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칭점 없는 유일한 점인 천원을 누군가 한 명이 선점해서 그 천칭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흉내바둑 불성립'의 주요 이유는 안 될지는 몰라도, 바둑판이 불균형한 이유로서는 여전히 유효할 것 같습니다.
큐리스
09/11/10 20:04
수정 아이콘
제 생각은요.
천원에 구멍이 있고 테두리와 같은 역할이라면
4도와 같은 그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백이 흉내바둑을 둘 수 없다는 건 '천원의 존재 여부와 관계 없다'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중요한 말씀은 아닌데... 수학에서 공리 하나 줄이는 거랑 비슷한 거랄까요...
태클 같이 되버려서 죄송하네요...

덧붙임) 다 쓰고나서 새로고침하니 댓글 내용을 추가하셨는데 위 내용을 뭐라고 고쳐야 될 지 난감해서 그냥 올립니다. @_@;
디미네이트
09/11/10 20:10
수정 아이콘
큐리스님// 저도 생각하면서 계속 댓글을 수정한 거라서요.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말씀처럼 흉내바둑 불성립의 이유는 안 되겠습니다만, 애당초 흉내바둑은 '바둑판이 대칭 아니다'를 귀류법을 이용해서 증명하려고 든 반례의 역할이고, 천원 역할에 대한 설명은 흉내바둑 불성립의 이유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바둑판 불균형의 이유를 해석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전체적인 논지에는 해가 안 갈 것 같네요(실제 천원에 돌이 선점되어 있는 것을 활용한 파훼법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천원의 존재가 흉내바둑 불성립의 이유의 전부는 아닐 지언정 일부는 담당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음에 전체적으로 수정하면서 흉내바둑과 천원점의 관계 부분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쓰여진 부분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기적의미학
09/11/11 00:00
수정 아이콘
디미네이트님. 좋은 강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궁금한 점이 있어서 질문해보고자 합니다.

1.두간 벌림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바둑 책에서는, 한칸 두칸 세칸 벌림 이렇게 표현한 것을 보았는데, 두간 벌림, 세간벌림은 생소해서 질문드립니다.

2. 흉내바둑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많은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한번 주제넘게도 제 의견을 말해보려고 합니다.
바둑의 기본 규칙 4가지가 있다고 전제할때 흑이 백의 수를 100% 똑같이 둘 때 막히는(?) 이유는 (1) 중앙 화점을 제외하면 백이 먼저 두고, (2)돌은 서로 영향을 주며. (3) 바둑판에 중앙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흉내바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흑,백의 대칭이 깨어져야 하는데, 대칭을 깰 수 있는 곳은 흑 백 서로의 대칭선, 그 중에서도 바둑판의 중앙 밖에 없다고 판단됩니다. 중앙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서로 차지할 수 있지만, 중앙은 같이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흉내바둑을 하게 되면, 결국 중앙에 손이 가게 되는데, 천원을 제외한 부분은 백이 먼저 손이 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그림 4>처럼 백이 먼저 중앙부근의 흑돌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생겨, 흑의 흉내바둑을 파훼할수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만약, 도넛모양의 바둑판에다 덤이 없다면 백이 흉내바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p.s. 제가 쓰고도 제 말이 맞는지 아리송하네요.^^.
흑이 흉내바둑을 하는데, 백이 흉내바둑을 타파한다고 가치가 적은 수를 두자,
흑이 손빼버리고 다른 곳을 두고, 백이 오히려 흉내바둑을 하면 어찌되나하는 재밌는 생각도 듭니다.
09/11/11 04:36
수정 아이콘
덕분에 바둑에 대해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타이젬에서 1승 10패의 18급이지만 (1승은 상대방이 내돌을 다 따내고 수고했다며 기권한 경기) 앞으로 열심히 둘려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디미네이트
09/11/11 07:23
수정 아이콘
기적의미학님//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이 좀 옛날 것들이어서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원래는 '한간', '두간'이 원래 용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아마 일본 서적을 번역해오면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우리나라 바둑 용어는 대부분 조남철 국수께서 확립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냥 '한칸', '두칸'이라고 하는 게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니까 요즘엔 그냥 두 개가 혼용되는 척 하다가 오징어집과 오징어칩의 관계처럼 그냥 한칸, 두칸이 더 정착되는 추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평소엔 한칸, 두칸이 더 자연스러우니까 이 표현을 미는 편이지만, 일단은 강좌인 관계로 용어에 좀 더 신경 쓴답시고 한 게 오히려 혼란을 드린 걸지도 모르겠네요.

흉내바둑에 관해 말씀하신 건, 저도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여러 판 흉내바둑을 둔 제 경험에 의하면 끝까지 흉내를 이어나갈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말씀하신대로 돌이 중앙으로 가기 시작하면 좀 미묘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정 수순까지만 따라하고 언젠가는 결국 그만두어야한다는 거고, 이 타이밍을 재는 게 흉내바둑에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됐건 흉내바둑은 상대에게 선수를 계속 허용하는 셈이니, 상대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상대의 의도대로 이끌려가기 싫으면 언젠가는 그만 두어야하겠죠.

본문에서 설명하지 않은 백의 흉내바둑은 기본적으로 덤을 전제로 한 흉내바둑입니다. 물론 흑은 언제든지 천원을 두어서 흉내를 그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은 '고작 천원을 차지해서 덤 6.5집의 차이를 극복해낼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흑에게 던지는 거죠. 따라서 흑은 천원의 가치를 최대화 하는 방향으로 두어나갈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모양이 생깁니다. 후지사와 호사이는 이런 상대의 대모양 속에서 사는 것에 능했기 때문에 이런 백번 흉내바둑 전략을 선호한 겁니다. 실제로도 타개에 자신이 있다면 꽤 둘만하다고 봅니다. 흉내바둑은 일단 모양이 단순해지거든요.

역으로 흉내를 내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일단 바둑판 위에서의 모양의 대칭이 깨진 다음에는 흉내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백이 가치가 적은 수, 이를 테면 자기 집을 메우는 수를 두었고, 흑이 다른 곳을 뒀을 때, 그 수부터 시작해서 백이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면, 백은 자기 집을 메운 그 한 수 때문에 계속 한 집 형세에서 밀리는 채로 바둑을 진행하게 되는 셈입니다. 나중에 가면 도무지 극복 못할 한 집이 될 수도 있는 수죠.

이 정도까지가 제가 드릴 수 있는 의견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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