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가 나오니까 저도 이런 저런 군대 시절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름 오랜전 이야기입니다.
저는 전방에서 근무하지 않았습니다.
2군 지역에서 근무했죠.
그렇습니다. 경기도 아래로 있는 후방 부대입니다.
편안하게 군생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이런 불변의 군대 명언이 있죠?
내가 근무하는 그 부대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부대다.
전방에서 1미터 이상의 눈치우기 이런건 없었지만 후방이라고 간부들이 무지하게 괴롭히는게 있습니다.
내무생활 이것 저것 다 참견하고, 말년이라고 해서 열외라는 것은 절대로 없었죠.
현역 복무한 분이면 동원사단이라고 하면 아실겁니다.
모르시는 입영 예정자분들에게 알려드리면, 동원 사단은 예비군들 훈련시키고, 전시에는 그 예비군들과 합류해서 전투에 투입됩니다.
동원 사단마다 특정 주소 지역의 예비군들을 관리합니다.
대충 이렇게 알려드리면 이해가 되실련지요?
동원 사단은 예비군이 합류될때 다른 일반 보병 사단의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동원 사단은 현역 병사의 숫자가 일반 보병 사단의 현역 병사 숫자보다 부족합니다.
일반 부대는 1개 대대가 대충200명 정도 되지만 동원 사단은 1개 대대가 대충 50명 정도 됩니다.
항상 인원 부족에 시달리는 부대니 휴가가는 인원이 많으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지는게 있습니다.
간부들이 무지하게 참견하고 난리를 치니 막말로 고참이 후임 못살게 구는건 거의 안하게 됩니다.
다른 연대에서 구타사고로 제가 있던 부대로 온 후임이 그러더군요.
우리는 매일 집합하고 맞았는데, 여기는 그런거 없어 좋았다고.
그 후임은 무지하게 순하고 착해서 구타사고를 견디지 못해서 소원수리를 썼나 휴가 미복귀를 했나 그런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제가 있던 부대로 왔죠.
그당시엔 구타 사고가 발생하면 때린 사람, 맞은 사람 같이 영창을 갔고, 둘 다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습니다.
전출이라고 해봤자 같은 사단내에서 돌려집니다.
같은 연대에서 다른 대대로 보내거나 다른 연대로 보내는 정도였죠.
왜 좋았다고라는 말을 썼냐면 구타는 없어 좋은데, 간부들이 하도 힘들게 해서 좋았다는 말을 쓰게 된거였습니다.
일과 시간후 자유시간에도 작업해야했고, 휴일도 작업이나 잔일을 하니 짜증나고 지치게 되더군요.
사단장은 놀때 놀고 일할때 일하게 한다고 했지만 놀때도 일해야 했습니다.
물론 제가 있던 부대에서도 간혹 구타사고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죠.
다만 뒤에서 발생하고 쉬쉬하는 일은 없는 문화였기에 빨리 발견되고, 다른 부대보다 오히려 잘보인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부에게 많이 찍힌 부대이기도 했죠.
인원이 많지 않으니 소원수리를 쓰게 되면 누가 누군지 티가 났습니다.
2중대 60미리 박격포 포수라고 하면 1명 뿐이니까 모르는게 이상하죠.
소원수리를 모르신다면 구타 및 내무반 생활의 어려움을 익명으로 적어내는 설문 조사입니다.
물론 익명 보장이라고 말은 하지만 전혀 익명 보장이 되지 않죠.
거기에 부대가 작아서 누가 누군지 이름 빼고 다 알수있으니 그냥 이름적고, 어떤 음식 좀 제발 안나오게 해달라식으로 적었죠.
그 당시에 제가 있던 부대는 후방이라고 고기류는 상당히 적게 나왔습니다.
군대리아 버거는 쨈 반통이나 한통을 가지고 50명 정도가 나눠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쨈에 물을 타서 섞어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 다했죠.
하지만 특정 음식은 정말 잘 나왔습니다.
그건 바로 임연수어였습니다.
무지하게 많은 물량의 임연수어였기에 아예 제 이름 적고, 그 음식 좀 그만 나오게 해달라고 적었던게 생각납니다.
소원수리 한다고 하면 그냥 손들고 불만 사항 말하는게 더 좋겠다면서 나름 혼자서 비아냥 거리기도 했죠.
병장되서는 일과 시간 시작전에 간부들의 금일할 것은~하고 말할때(주로 통합 중대장이 했죠.) 나중에 손들고 건의했습니다.
후방이었지만 나름 남들 겪는 것처럼 별별 황당한 일들 겪어보고, 사회 생활의 경험이 없다시피했던 제가 나름 사회생활도 했습니다.
팔도의 다양한 남자들과 살면서 이런 저런 사람도 겪었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모습도 발견했죠.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군대에서 사회주의를 겪은거였습니다.
하루종일 매달릴 작업 분량.
일과 시간 시작부터 끝나고 저녁 먹을때까지 그 작업만 하는거였죠.
물론 후다닥 한다면 점심 먹을때쯤 마무리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일을 시키고, 다들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하나 붙잡고 하루 버티면서 하루 보내는겁니다.
사회주의 국가가 하는걸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에서 할줄이야.
이러니까 사회주의가 망할수밖에 없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군대 제대할때 남자가 철든다는 말을 하죠.
저는 어린 왕자 어른이 되다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남자가 나름 돈의 중요성을 깨닫고, 제대하면 뭔가를 해서 내 자신에 대해 책임지고, 더 나가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니까요.
제대할때가 되어도 말 그대로 철없음 모드가 유지되는 남자들도 있긴 하지만요.
저는 제대할때 정말 미련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습니다.
나가면서 눈물 흘리는 고참들도 많았지만 저는 그런 기분 안들게 군복무를 해서 말이죠.
개인적으로 나름 악독하게 굴었기에 후임들도 저를 싫어하기도 했고요.
가끔 전라도 고참이나 경상도 고참이 악질이라고 하는 글을 보는데, 후임들은 아마도 그 서울놈이 악질이라고 기억하고 있을겁니다.
즐거운 추억은 없지만 그럭저럭 보낸 시간들.
그래도 잊을수는 없는 시간들입니다.
이런 저런 글을 보다가 혹시나 해서 제가 근무했던 부대를 검색했죠.
그런데 그 부대가 2008년 12월에 해체되었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제가 근무할때도, 제가 근무하기 전에도, 제가 근무한 후에도 계속 부대 해체한다고 말 많았습니다.
근무 당시에 해체한다고 창고의 물건을 빼고, 취소되었다고 해서 다시 집어넣은게 기억납니다.
그 공간은 공원이 된다, 다른 부대가 사용한다 이런 말이 있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게 되겠죠.
군부대 앞에 바로 택시와 버스가 다니고, 아파트가 있고, 학교가 있던 나름 번화가에 있던 그 곳.
사람도 없고, 규모도 작지만 지역 방송국이 있던 그 곳.
나중에 어떻게 여행 도중 그곳을 지나게 된다면 나름 이런 저런 기억이 날련지...
몇년전만 해도 나름 연락하고 지냈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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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랑님// 근무한 부대는 다르지만 동원사단은 인원이 적어도 훈련은 훈련대로 작업은 작업대로 다 시키는건 똑같군요.
동원훈련 준비때는 저도 님과 똑같이 해봤습니다.
저걸 연대장 보여준다고 연병장에 셋팅하라고 해서 그 전날에 해놓으니, 밤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그거 실내로 옮기느라 고생했죠.
쌍용훈련은 안하셨는지요? 저는 운좋게 그거 끝나고 배치 받았거든요.
그거 준비하느라 완전히 돌아버리는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축구사랑/헐~저도 72사단 나왔는데...전 기산저수지쪽...
동원훈련 1년에 한번 했지만 나름 신경 쓸거 많았죠.그 많은 예비군들 물자 세팅하고 미리 예비군들은 듣지도 않을 교육할거 준비하고
예비군들 돌아가고 난뒤에는 물자 잃어버린거 없나 찾고 잃어버린거 있으면 다른 중대꺼 !!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