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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9/22 00:14:53
Name 유유히
File #1 유유히_핸드폰의_위엄.jpg (0 Byte), Download : 158
Subject [일반] [일상] 설레임이 설레발이 되는 과정


전혀 외롭지 않았던 어느 새벽녘
그녀의 문자는 잠들려던 나를 깨웠어
잘 지내라는 세글자에 난 답장을 보내
너무도 오랜만에 그녀의 문자는 나를 놀래켜
시작된 문자놀이, 긴 밤을 새워
내 상상속의 그녀는 날 웃게 해줘
어느새 저 해는 떠 저 구름 위에 앉아
어느새 내 맘도 저높은 구름 위에 앉아
붕 뜬 평온함에 그녀가 생각난다
왠지 모르게 내 맘속엔 외로움만이 남아
나도 모르게 자꾸 전화만 바라본다

- 드렁큰타이거, '문자놀이' 중



어제 새벽에는 오랜만에 레지던트 이블 4를 하던 도중이었습니다. 기생수의 표절이 분명한, 좀비 목에서 솟구쳐나온 괴물에 총질 삼매경에 빠져있던 때였죠. 레온이 샷건으로 좀비를 갈길 때마다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즐거운 게임이었죠. 불을 다 꺼놓고 오직 스피커의 소리 방향에만 의지해 접근하는 좀비를 알아챌 때의 무시무시한 즐거움은 해본 사람만이 알 겁니다.

괜히 나대다가 얻어맞는 애쉴리 챙기랴, 통이란 통은 칼질로 다 깨랴 분주하던 참에 문자가 한 통 왔습니다. 이 시간에 문자 오는 일은 드문데, 고개를 갸웃합니다. 주로 문자오는 시간은 낮이나 오전, 주로 오는 내용은 'xx캐피탈입니다. 고객님 8백까지 가능하십니다' 라거나 '싸이월드 도토리 무료증정! 1연결 2취소' 같은 게 많기 때문입니다.

"잘 지내?"

광고가 아닌 문자는 오랜만이군요. 알고 지내던 지인 윤아(가명)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수준급의 외모와 붙임성있는 성격 탓에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였지만, 불행히 과내 연애에 실패하고, 수군수군대는 뒷담화를 피해 도미(?)했다는 소식만 들려오던 아이였습니다. 정말, 상당히 오랜만이군요.

사실 '잘 지내?'이 세글자를 보는 순간 바로 떠오른 것이 드렁큰타이거의 '문자놀이'였습니다. 전혀 외롭지 않았던 어느 새벽녘, 문자 한통으로 즐거운 문자놀이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가슴속에 외로움만이 가득했다는 가사 내용이죠. 갑자기 한숨이 쏟아져 나오고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실 윤아는 제가 좋아했던 아이였죠. 댓쉬했다가 차이고 나서 마음을 접은지 몇 년이 됐는데, 같은과 친구와 연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쓴웃음만 지으며 혼자 소주나 마셨던 기억도 스무살의 객기로 치부한 지 얼마만인데.

이 대책없이 설레는 마음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그래서 어떡합니까. 결국 외로움으로 귀결될 문자놀이를 해야죠.

"어떻게 지내? 미국에선 언제 왔어?"

"나 온지 3년 됐어. 키읔 너 완전 소식 깜깜이다"

"니가 연락했어야 될꺼 아냐 키읔 3년동안 머했는데?"

"너 몰랐구나, 나 1차 됐어. 2차도 잘본거 같애"

무슨 1차?라고 할 뻔했지만, 잠깐 생각해 보니 이 친구가 사법고시를 한다고 설레발을 쳤던 게 기억납니다. 스무살의 객기로 해보는 말인 줄 알았더니 군대갔다오고 나서도 계속 공부한단 이야기가 드문드문 들려왔던 것도 같습니다. 오, 윤아가 사법고시 합격 직전이었구나.

"3차만 잘보면 되겠네"

"응. 근데 공부하다가 너무 짜증나서 키읔 그냥 니번호가 아직도 남아있길래 신기해서 키읔"

그랬구만. 그리고 나서 의례처럼 관심없는듯 나머지 안부를 묻고, 의례처럼 열심히 산다는 문자를 하고, 이런저런 두서너개의 문자들. 그리고, 그저 그런 친구사이의 모범 이별공식, '언제 한번 보자'로 무난하게 문자를 마무리짓고. 외롭지 않으려고 설레발을 최대한 자제하며 핸드폰을 접고 다시 레온을 조종하지만,

어떡합니까. 이 갸레발보다 무서운 설레발이 가슴속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왜 연락했을까? 왜 하필 지금일까? 지금 무슨 심정일까? 남친은 있을까? 아, 패스만 하면 골라 가질 수 있으니 아직 없으려나. 사시 얘기는 왜 한걸까. 나한테 자랑할려고? 니가 넘봤던 여자가 지금 어떻게 되어있나 어디 한번 봐라 하면서 통쾌하게 웃고 있으려나? 아니면......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신기합니다.
분명 그냥 설레였던 내가,
설레발만 가득 치고 있었습니다.

PGR여러분도 설레임을 느낄 때가 있으십니까?
저처럼 설레발은 치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ps.
결국 다음날(오늘입니다.) 공부하려면 몸보신이 중요하다는 핑계로 밥 한끼 사주려고 했습니다만, 공부 열심히 하느라 바쁘다며 빠꾸먹었습니다. 설레발 인증이었죠.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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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09/09/22 00:17
수정 아이콘
누구나 가끔은 이선 설레임인지 설레발인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죠^^
유유히
09/09/22 00:20
수정 아이콘
글쎄..님// 그럴까요? ^^; 위안이 됩니다.
바카스
09/09/22 00:30
수정 아이콘
깨졌던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잘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다가가 보세요.
09/09/22 00:33
수정 아이콘
용기만 있다면 어떤일이든지 긍정적으로 풀리지 않을까요?^^
09/09/22 00:37
수정 아이콘
이래 저래 알수 없는것이 여자사람분들 이니까요 ^^ 그래도 힘내세요~
엡실론델타
09/09/22 00:38
수정 아이콘
별 생각없이 읽을수있는 가벼운글(칭찬이예요^^;;) 잘 읽었습니다~
제기분마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드네요
연락온 다음날 바로 연락했다는 부분에서 좀 아쉬워요
좀 더 기다렸다가 문자 하시지...3~4일 정도후에...뜬금없이 그냥 나도 정말 갑자기 생각나서 문자했다는 식으로요.
굳이 표현을 조금 하자면 여자분이 미끼를 주었는데 너무 덥석 문 기분이 들어서요.
사람 좋아하는데 감정이 최우선이지만 어느정도 연애기술도 있으면 좋잖아요 ^^
몸보신 시켜준다고 말하시는 센스는 좋았다고 생각되는데 말이죠 ^^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미친스머프
09/09/22 00:38
수정 아이콘
김동수해설의 어록이 생각납니다... '절대타이밍...'
최종병기캐리
09/09/22 00:55
수정 아이콘
저도 가끔 잠안오면 핸드폰에 있는 아무 이성에게 문자 날려보곤하죠...

그러다 걸리면 두어시간 문자질하고....

가끔 옛여자친구가 걸려들어서 뻘쭘도 해지고....
논트루마
09/09/22 01:16
수정 아이콘
댓글들에서도 있듯이 사람의 일상이 어느정도 정형화되면(나쁜 말로 지루하거나, 힘들다면) 종종 "옛날 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 역시도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초등학교 때 친구 싸이를 찾아보거나, 혹은 그당시 주고받았던 편지 등을 읽어보면서 웃곤 했죠. 아마도 "미화된" 과거(혹은 과거의 인물)과 만나면서 현실을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그런 심리형태로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저같은 경우는 연락할 방법도 없어서 연락까지는 안 해봤지만, 글에서의 여자 분은 아마도 그러한 어찌보면 굉장히 단순한 심리표현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PS부분에서..;; 어쨋든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냉정할수록 빛을 보는 상황도 있는 법입니다.
어디쯤에
09/09/22 01:16
수정 아이콘
전 반대의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ㅡ.ㅜ 이런 문자 보내면 얘가 괜히 설레발 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경우가 많지요(남자입니다;;).

괜한 노파심인가 싶다가도 또 이상하게 이런 저런 구설수에 많이 휘말리는 편인지라 정말 .. 아아 여튼 설레발은 죄악입니다
09/09/22 02:04
수정 아이콘
윤아는 안됩니다! 가 아니고... 설레임이 설레발이 될 때가 가장 조심해야될 때죠. 설레발은 망함의 지름길이니 냉정함을..
09/09/22 08:58
수정 아이콘
글이 재밌네요 :) 근데 가능성은.. ㅠㅠ
여자예비역
09/09/22 09:51
수정 아이콘
위엄쩌네요... 크크.. 기운내십숑..
The Greatest Hits
09/09/22 10:38
수정 아이콘
일단 평정심부터 찾고 힘내세요~!
스웨트
09/09/22 18:49
수정 아이콘
남일이 아니네요; ㅠ_ㅠ 전 지금 겁이나서 설레임인지 설레발인지 알수가 없는상황에..
상대방은 문자가 끊겨서 답장할수 없는 상태라고 하네요;(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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