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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8/26 15:57:04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드라마 선덕여왕속 고천문학 이야기
일요일날 친구들을 만났더니 드라마 <선덕여왕>이 어디까지가 허구인지에 대해 경계를 못짓더군요.
사실,픽션인 드라마에 역사적 진실 어쩌고 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상상력의 공간이고,그 상상력이 극대화 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작가 김영현씨가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참에 우리가 새롭게 얻게 된 역사적 진실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방영된 일식은 작가가 실수했다고 보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대로 드라마를 보면서 들었을 법한 의문들을 풀어가보겠습니다.오늘은 고천문학관련해서 두가지입니다.

1.역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을까?

‘사다함의 매화’로 알려진 대명력이나 미실을 궁지로 몰아 넣은 정광력이나 모두 역서입니다. 대명력은 중국 남북조 시절 남쪽국가인 양나라 달력이라면, 정광력은 북쪽 국가인 북위의 달력입니다. 모든 중국의 왕조는 패업을 이루면 반드시 자신의 ‘연호’를 써야 하는데요, 이 ‘연호’가 달력입니다. 그래서 연호를 선포할 수 있는 황제는 달력,즉 역서를 반포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까닭으로 달력을 만드는 방법(비법이라고 할지도 모르는)을 담은 역법은 그 어떤 기밀문서보다 중요했습니다. 한나라의 ‘쇠뇌’기술이 그토록 오랫동안 유출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역법은 쉽게 노출되었던 것일까요?

역서의 경우는 주변의 제후국이나 조공을 바치는 나라에서 온 사신이 요구하면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양나라와 관계가 있었던 백제나 일본, 혹은 가야에서 대명력에 의해 만들어진 역서를 가지고 있었을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실크로드를 오갔던 상인들에게 북위의 달력인 정광력에 의해 만들어진 역서가 흘러들어간 것도 당위성이 있습니다. 약간의 논리 비약을 더해서 역법인 대명력이 가야를 거쳐서 사다함(그리고 미실에게로)에게, 정광력이 덕만에게 있었던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역법이 유출되었다면 말이죠.

물론 아무도 알 수 없죠.다만, 당시 삼국 중 어떤 나라도 두가지 역법으로 만들어진 달력을 쓴 흔적이 없었으니 증거는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월천은 천재 천문학자인가?

월천대사는 한국 과학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운 인물입니다.일단 월천을 ‘격물가’라고 했는데, 이것은 유명한 대학의 ‘격물치지’에서 나온 말입니다.

대학은 대략 이런 구성을 가졌습니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아시다시피 이 체제 하에서 ‘격물’을 ‘치지’하는 것은 형이하학으로 분리됩니다. 그리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렇게해서 고대 유학의 핵심이랄 수 있는 ‘예치’의 “예”,즉 법률은 성문법적인 체제에서 불문법적인 체제로 전환됩니다. ‘격물치지’가 ‘법률’혹은 ‘법칙’의 지배를 받던 체제에서 ‘誠,心’의 영역으로 넘어갔으니까요.(개인적으로 중용의 핵심인 誠이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이렇게 자연과학이 정신세계의 하위체제로 전환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주희’입니다. 주희는 고대 경전인 ‘예기’의 본문 중 한편에 불과하던 ‘대학’을 4서의 경지에 올려놓았으니까요.

따라서 격물을 추구하는 격물가라는 것은 주희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보편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월천의 경우는 불교의 승려이므로 격물가라기 보다는 자연철학자의 개념이 강하다고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격물가가 이시대에 쓰이지 않은 개념인가라고 묻는다면,역시 허구와 상상의 영역이므로 노코멘트입니다.(그리고 이것이 드라마를 보는데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월천이 정말로 천문학에 관심이 있었을까요?

삼국시대에 승려의 역할은 고대 신관의 역할을 이양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약재는 삼국시대 불교 승려와 도교 선인들의 실험의 결과였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의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찬기파랑가를 살펴보면 충담사라는 승려도 의술을 시행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성덕대왕 신종(일명 에밀레종)이 왜 만들어져야 했는지, 다시 말해 왜 불사의 중요한 작업 중에 하나가 동종이었는지도 생각해보면 월천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동기 시대가 남긴 유산인 동으로 만든 신물(종,방울)은 불교의 의식에 흡수됩니다. 불교행사의 대부분은 동기를 두드리거나 울리는 걸 볼 수 있는데요, ‘태양빛’을 닮은 구리가 산화하면 ‘하늘빛’을 닮은 푸른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청동기시대 이후 하늘과 접속하는 도구로 여겨진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 사찰에도 동종을 놓았는데요, 이 동종의 역할은 두가지가 더 있었습니다.하나는 목재로 만들어진 사찰건물을 갉아먹는 흰개미가 종소리에 죽는다고 하네요.구충의 효과가 있었고,그 다음 하나가 바로 ‘천문학’과 관련이 있습니다.바로 ‘시계’입니다.

사찰의 종은 시간을 알리기 위해 울렸습니다.당연하겠지만 시간을 알리려면 시간을 알아야 했고,그것을 위해서 해시계를 연구하고 천문학을 연구해야 했던 것입니다.따라서 월천은 천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동양 3국에서 사찰이 천문학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역법을 그토록 쉽게 번역하여 일식과 월식을 계산한다는 것은 거의 절대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월천이 아인슈타인,아니 아인슈타인의 할아버지급이라도 불가능한 일입니다.그 이유가 월식과 일식의 계산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데이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정광력과 대명력이 일식과 월식 계산에 그다지 유익하지 않았습니다. 정광력은 당시 북위의 중원지배전략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북위는 ‘선비족’이 세운 북방국가여서 유목민족의 정권이었지요.이들이 중국 중원을 지배하려면 ‘농심’을 잡아야 했지요.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태양의 움직임’입니다. 이 태양의 움직임은 자로 잰듯 정확하기 때문에 24개의 주기로 토막내면 매해 일정한 움직임의 패턴을 얻게 됩니다.태양의 움직임,다시 말해 일조량은 태풍의 발생,장마전선의 움직임까지도 결정하는 중요요소이다 보니 어지간한 날씨는 이 24개의 주기안에서 해결이 되며, 식물은 이 주기를 따라 생장하니까요.

그래서 정광력은 24개의 절기를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때 북위의 수도가 낙양이라 우리나라에 도입된 절기와 맞지 않기도 합니다.‘입춘’은 우리나라에선 ‘대한’쯤 되어 보이는데 입춘인 이유가 당시 낙양의 태양고도와 기후에 의해 정해진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달력으로 일식과 월식의 정확한 계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단 한가지 요소외엔 없습니다.태양의 미세한 움직임을 구할 수 있다는 정도.절기가 태양고도에 의해 나눠지니까, 미묘한 이 차이를 계산해내서 정확한 동지날짜를 알아내야 나머지 24절기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월천대사가 정광력을 보고 기뻐했다면 달의 궤도와 태양의 궤도의 차이에서 오는 일식요인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낸 것이 선명력입니다. 선명력은 중국 당나라때 달력이며 선덕여왕시대보다 200년 가까운 시간차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일에 월천대사가 천재 천문학자였다는 가정을 해보죠. 그래서 이 궤도차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동양에도 메톤주기가 알려진 때이므로 이런 가정도 무리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정광력이든 대명력이든 간에 역법은 기하학적인 체계가 아니라는 겁니다.일종의 주기율표.날짜별로 태양의 위치,오행성의 위치,달의 위치가 표시되어있을 뿐인 숫자표였습니다.
그러니까 월천대사는 중국 낙양을 기준으로 되어 있는 이 역법을 보고 신라 경주의 위도와 경도에 맞게 계산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그러러면 뭐가 필요한지 아시나요?바로 ‘북극출지’라고 불렸던 위도계산입니다.

지금(혹은 조선시대)에는 북극성의 고도가 위도입니다.그래서 조선시대에 ‘간의’란 것을 만들었습니다. 간의는 지표면과 북극성간의 각도를 재는 각도기입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이 필요했는데,첫째가 수평을 잡을 줄 알아야 했고,둘째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잡고,셋째가 각도가 정확해야 합니다.

간의가 만들어진 세종시대에는 천재과학자 이순지와 장영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중국 원나라 곽수경이라는 불세출의 천문학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곽수경이 베이징에 간의를 만들어 놓았고, 장영실은 세종에게 프로젝트 비용을 받아 대략 2년간 산업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이 기간에 간의에 대한 모든 기술을 익힌것이지요.

그러니까 월천대사가 간의도 없이,더군다나 당시의 정확한 북쪽은 북극성이 있는 곳도 아닌 허공이었는데도 위도와 경도차를 계산했다?이것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매력이 있는 것은 어찌되었든 우리 나라 고천문학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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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26 16:05
수정 아이콘
오오오 전문지식이 하나도 없고 글에서 다소 어렵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드라마를 통해 이런 것도 알 수 있어서 좋군요.

좋은 것 배워갑니다~ 후후후 친구들에게 아는체 해야지!!
happyend
09/08/26 16:10
수정 아이콘
賢熙님//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말그대로 광속으로 쓴 탓에 말도 어렵고,글도 어렵습니다.(수정할 시간이 없어서)
모르는 부분이나 잘못을 지적해주시면,댓글로 혹은 본문에 보충설명을 하거나 수정하겠습니다.
특수알고리즘
09/08/26 16:29
수정 아이콘
음 선덕여왕속 제가아는 허구는 천명공주(박예진)의 죽음..실은 그것보다 오래살았다죠.
천문학은..좀 후덜덜..
좋은 글 잘 봤습니다.(2)
나두미키
09/08/26 16:4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역시나!!!
Je ne sais quoi
09/08/26 16:51
수정 아이콘
드라마는 관심밖이지만 역시 재미있고 좋은 글입니다!
zephyrus
09/08/26 17:02
수정 아이콘
어제 오랜만에 선덕여왕을 봤는데, 다른건 뭐 다 제쳐두더라도 어째 일식이 일어나는 장면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말도 안되게 만들었더군요.

동생이랑 보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태양이 다시 열릴 때;;;
09/08/26 17:16
수정 아이콘
오호~~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저도 이번 여름휴가때..선덕여왕이 하두 재밌다고해서..빠진뒤론..닥본사수준이어서..전..어제의 내용이 너무 재밌었는데요..이런 모순도 있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드리구..선덕여왕을 보면서 선덕여왕의 즉위배경이나..비담의 난, 가야세력의 존재 등 여러가지로 궁금한게많아서 네이버나..이것저것 찾아봤는데..명확하게 알기가 어렵던데..혹여..이런 주제로도 글을 써주실수는 없으신지요???^^ 넘 귀찮은 부탁이죠??;;;;;;;
백마탄 초인
09/08/26 17:42
수정 아이콘
정말 해피엔드님의 역사 지식이란...

외워라 임이최마판해?.....
09/08/26 18:0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9/08/26 18:19
수정 아이콘
드라마 스토리상의 키워드와 작가가 나름 마련해놓은 설득력은 배제하고 글을 쓰셨네요
드라마야 어차피 허구이지만 어느정도 말은 되야하므로 작가가 바탕에 깔아 놓은게 있습니다

바로 '사다함의 매화'입니다

'선덕여왕'에서 가야멸망당시 사다함이 가야의 역법을 빼돌려 미실에게 건넨것이 '사다함의 매화' 입니다
(드라마나 만화,소설등에서 가야는 신라보다 과학에서는 훨씬 앞선것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그래서 미실은 그 역법을 바탕으로 홍수와 가뭄등을 예측,연출해서 '신권'을 가지게 되는거지요

대명력을 얻고나서 처음 한것이 가야의 역법 즉 월천대사가 가지고 있던 데이터와 결합시켜 '월식'을 이용한거지요


ps.드라마 상으로는 그렇지만 조선시대까지도 기우제를 지낸것을 보면 7세기에 일식을 오차 하루차이로 맞춘다는 것은 좀 말이 안되죠
happyend
09/08/26 18:34
수정 아이콘
청염님// 아. 제가 착각아닌 착각을 한것이 있네요.'사다함의 매화'는 대명력이 아니라 '가야의 역법'이군요.

드라마에서 '사다함의 매화'라는 가상의 '역법'을 설정한 것이 바로 제가 지적한 이유때문이 아닐까요?
삼국시대에 북극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역사시대중 가장 흥미있는 시대가 바로 백제무왕-신라 진평왕을 가로지르는 시대인데요, 이때 비슷한 시점에 그 증거를 남겼습니다.양국에서.
백제에서 당시 정확한 북쪽을 알았다는 증거는 미륵사지의 가람배치를 통해서 밝혀졌고요, 신라의 경우는 유명한 '첨성대'의 배치를 통해서 나왔습니다.

다만,문제는요,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자체 역법을 갖지 못한 것은 중국 역법에서 천체의 운행을 기하학 방정식으로 표현한것이 아니라 도수표로 되어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이 표는 작성자의 위도와 경도에 근거한 것이란 때문이죠.그래서 어지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체의 운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조선시대 칠정산 내편의 경우도 엄밀하게 말하면 독자적 역법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중국 수시력 번역서입니다.

그래서 월천대사와 사다함의 매화는 이런 역사적 허점을 메우려는 작가의 시도였는데,반대로 시청자들은 그걸 과학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그 점을 분리해보려는 것이 이 글의 이도입니다.

그리고 홍수와 가뭄을 예측하는 것은 '역법'의 영역은 아닙니다.
09/08/26 19:06
수정 아이콘
선덕여왕은 보지 않지만, 재밌네요.
날아랏 용새
09/08/26 20:07
수정 아이콘
happyend님의 지식에는 막힘이 없네요...
GreatObang
09/08/27 18:17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늦게나마 선덕여왕을 보기 시작했는데, happyend님의 이런 좋은 글 때문에 더욱 볼 맛이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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