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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8/05 23:33:21
Name 루크레티아
Subject [일반] 미야베 미유키의 남편이 되고 싶은 1人(모방범과 백야행은 스포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지인의 부탁으로 밤샘을 하면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니터링이라고 해봐야 한 시간 단위로 오는 메세지에 마우스 클릭 한 번씩만 해주는 일인지라 몹시 따분했습니다.
딱히 피곤해서 컴퓨터를 할 생각도 없었던지라 사무실의 책장을 뒤적거리다가 사전 두께의 책 세권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모방범' 이었습니다.

대충 후기를 보아하니(저는 후기부터 보고 책을 보는 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리와 범죄소설의 냄새가 풍겼습니다.
할 일도 없었던지라 무심코 책을 펴들었던 저는......
3권째의 마지막 부분을 덮는 순간 경악감과 어지러움에 한숨을 내쉬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일본 소설 작가라면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 오쿠다 히데오 뿐이 모르던 저에게 '미야베 미유키'라는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방범의 뒷 맛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범인의 자백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결말을 기대하던 저에게는 이전까지의 치밀함에 비해서 약간 허무한 결말이었기에, 그리고 모방범을 읽고 나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읽은 소설이 하필이면 '용의자 X의 헌신'이었고, 이후에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푹 빠져버렸기에 미야베 미유키는 잠시 저의 뇌리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다시 '나는 지갑이다'를 읽었습니다.
'백야행'의 급마무리에 당황하여(책의 내용과 전개에 비하면 마지막에 료지는 너무 급하게 죽는 느낌입니다.) 방황하던 저에게 지갑들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누구의 작품인지 보는 순간 다시 한번 미야베 미유키는 저에게 벼락을 내리쳤습니다. 마지 '왜 날 잊고 있었어?' 라고 말하는 것 처럼......


이후로 '이유', '화차', '이름없는 독', '용은 잠들다'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지금은 책꽃이를 화려하게 진열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다작인 작가라서 책값이 정말 눈물 나더군요...;;



요즘 가장 유명하고 잘 나간다는 일본 소설가들을 꼽으라면 오쿠다 히데오, 히가시노 게이고, 에쿠니 가오리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장점은 통렬한 풍자와 유쾌함, 정교한 트릭과 엄청난 반전,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체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전부 물리치고 일본 최고 작가의 정점에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극에 달한 치밀한 내용 구성과 엄청난 인물 묘사,활용들 꼽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우선 하나같이 스케일이 방대합니다.(책의 두께부터 다르죠.)
스케일이 방대한 만큼 그녀의 소설에는 사건이 시도때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건이 많으면 독자는 혼란스럽기 마련이고 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소설은 산으로 가게 됩니다. 작가로서는 최악의 경우가 말생하죠.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이러한 사건들을 버려두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끼워넣습니다. 이 연결고리 속에서 사건들은 각자의 자리를 찾고 일사분란하게 최종 결말을 향하여 독자를 안내합니다. 독자들은 그렇기에 계속적으로 소설에 집중하게 되어 처음 볼 때에는 기가 질릴만큼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놓질 못하게 하는 내용 전개로 인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읽어버리게 됩니다.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치밀한 구성은 정말 당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다른 장점인 인물 묘사,활용은 특히나 '모방범'과 '외딴 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모방범'의 가장 큰 특징은 엑스트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지나가는 행인1, 취객2' 이런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방범의 모든 인물들은 소설에 최소 2회 이상 등장합니다.(결코 인물의 수가 적은 것이 아닙니다. 수십명 이상입니다.) 수십명이나 되는 인물들에게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여하고, 또한 그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은 가히 극에 달한 이야기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부와 그녀의 딸은 중간에 위로하는 역할로 반 페이지도 할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등장시켜 여운을 남기는 모습에서 정말 전율이 느껴집니다.)
'외딴 집'에서는 불행한 출생배경으로 인하여 바보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하지만 정말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소녀 '호'를 등장시킵니다. '호'의 행동과 심리 묘사는 정말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소설의 백미입니다. 하지만 소설의 이면에는 추악한 어른들의 본심과 이기적인 행동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소설을 읽자면 도대체 이런 극과 극의 인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등장시키고 동시에 표현해내는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할 지경입니다.


나이를 먹어가고 결혼을 가끔씩 생각하게 되면서 '과연 누구와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란 생각을 종종 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그냥 이 생각뿐이 들지 않더군요.

'미야베 미유키와 결혼해서 그녀의 소설을 실시간으로 읽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정말 부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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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05 23:40
수정 아이콘
모방범 진짜 엄청난 흡입력을 가진 작품이죠. 저도 엄청 재밌게 읽어서 그 많은 분량을 삼일정도에 다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대로 약간 끝이...-_- 그슥해서 허무했던 기억도 납니다. (최근 현대일본소설의 특징이랄까..트렌드랄까.. 폭풍같은 마무리;)
히가시노 게이고도 재미있었지만, 저도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 좀 더 몰입해서 읽게 되더라구요. ^^
세상속하나밖
09/08/05 23:45
수정 아이콘
모방범을 pgr21에서 재밌다고 글을본후.. 1권을 보면서 갑자기 주인공이 바뀌고 좀 혼란스러워져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2권부분이 정말 재밌다 라고해서 결국 2권을 봤는데

정말 재밌더군요;; 3권 내용이 정말 아쉬워요..
마술사
09/08/05 23:47
수정 아이콘
오오 얼마전에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 작가분 책도 읽어봐야겠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추천해드리고 갑니다
09/08/05 23:47
수정 아이콘
요즘 일본 추리소설에 빠져 지내고 있는 1人입니다^^
미야베 여사님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반전시리즈물 정말 재밌죠... 요즘 미야베월드에 빠져서 지내고 있습니다..크큭
09/08/05 23:50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취향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은 작가가 완성의 마침표를 찍기전에는 그저 단어의 조합일뿐이죠

어떤 예술품이라도, 그것이 완성되기전에 옆에서 그 과정을 자세히 본다면 재미가 반감될것 같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의 글이라고해도, 실시간으로 보는건 저라면 하지않을것 같아요

그저 완성된 것을 세상에서 가장 먼저 그녀의 곁에서 읽는걸로도 충분하고, 그 순간을 매번 손꼽아 기다리겠죠

그리고 저역시 요즘 일본추리소설을 아주 재미나게 보고있는데,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겠군요;
09/08/06 00:07
수정 아이콘
모방범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호기심에 봤다가....
그렇게 충격적인 소설의 영화화는 처음이었습니다.
박서방
09/08/06 00:12
수정 아이콘
제목보고 백야행만 스포가 있다고 해서 읽으려고 들어 왔는데(백야행은 봤기 때문에)

모방범에 범인이 자백하는 방식 여기까지 보고 글을 급히 내렸습니다 모방범을 안 읽었기에

모르겠지만 만약 모방범이 범인의 자백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아니라면 강력한 스포 아닌가요?

범인이 잡히냐 안잡히냐가 추리소설에 백민데요 물론 어떻게 잡히냐가 더 중요한 문젤 수 도 있지만요
루크레티아
09/08/06 00:32
수정 아이콘
박서방님// 제목 수정하겠습니다. , 로만 해 놓으니 착각하실 법도 하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모방범은 범인이 엄청 얽히고 섥힌 소설이기 때문에 저 한 마디 가지고는 읽으셔도 별로 타격은 없으실 듯 합니다.
(읽다보면 제 말은 이미 잊고 계실겁니다. 흡입력도 흡입력이지만 분량이 장난이 아닌지라..;;)

i wanna님// 말씀하신대로 물론 창작해가는 과정을 하나 하나 들으면 별로겠지만 책의 한 단락, 한 단락씩 끊어 읽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굉장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모방범도 신문 연재 소설이었지만 그런 연재 소설이 한 부분씩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읽는다면 정말 부러운 일이겠죠?
Noam Chomsky
09/08/06 01:41
수정 아이콘
미야베 미유키 여사 나이가 쉰살에 가까운 걸로 압니다.

사랑에 아무리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지만, 저는 소설 좀 늦게 읽더라도 다른 여성분과 결혼할거에요!
도시의미학
09/08/06 02:14
수정 아이콘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에 저는 기리노 나쓰오까지 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새로 나온 신작의 다마모에는 사실 추리는 아니었고 딱히 흥미가는 내요은 아니었지만 술술 넘겨가며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임쏘리마마/잔혹기/아웃/그로테스크 다 재밌어요!

미야베 미유키는 사실 생각해보니..의외로 작품을 읽은건 2개밖에 되지 않네요-_-; 모방범과 낙원. 그렇지만 진정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모방범을 보고 나서 그 임팩트가..휴.
본호라이즌
09/08/06 02:22
수정 아이콘
모방범.. 후덜덜한 작품이죠. 구성하며...방대한 인물 심리 묘사, 마지막의 책 제목이 왜 모방범인지 밝혀지는 장면... 그런데 워낙 묘사가 치밀하다보니 미미여사님의 작품 읽히는 속도는 히가시노 게이고 씨의 작품보다는 좀 느리더군요. 이 분들이 워낙 많은 작품을 쓰시는 지라,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도 꽤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씨의 작품은 언제나 대출중이고 예약까지 다 되어 있는 작품이 많아서... 요코야마 히데오 라는 분의 '루팡의 소식' 이라는 작품을 읽어봤는데... 이것도 참 재미있더군요. 히가시노 게이고 처럼 작품 내내 열심히 트릭을 풀어놓고선 마지막에 다시 한번 뒷통수치기 스킬 작렬하는... 흐흐;; 일본 추리소설들은 일상적인 소재에서 재미있는 구성들을 잘 해내는 거 같습니다.
테페리안
09/08/06 02:52
수정 아이콘
읽는게 엄청 빠르신가보네요... 밤샘하는 동안 3권을 다 읽으시다니 덜덜덜;;;;
저도 마무리가 살짝 맘에 들진 않았지만.... 미야베미유키 특유의 탐정설정(평범한 사람이 사건을 해결하죠) 때문인지 더 몰입이
되더군요
동료동료열매
09/08/06 09:28
수정 아이콘
독소소설/ 흑소소설/ 괴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3연벙(...)은 아니고 블랙유머 3연작. 볼만합니다.
여자예비역
09/08/06 11:33
수정 아이콘
사놓은 책인데.. 스포일러 당할뻔 했네요... 첫문단만 읽고 스크롤 내렷씁니다.. 휴우...
09/08/06 23:00
수정 아이콘
미야베 미유키님은 아마도 게임과 결혼 할 겁니다. 사무실에서도 '게임 금지령'을 내려놓으니까 말이죠.
그래도 만화 작가가 아니라 다행이네요 누구처럼.... 덜덜

사족으로, 06년도에 읽고 미야베님의 팬이 되게 만들어버린 모방범.
태어나서 가장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추리소설이자 성장소설이자 인간소설. 미야베 미유키의 모든 책이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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